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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카시오페아..(4)

2006.06.24 20:40

오얏나무 조회 수:131

생겼다가 금방 사라졌던 앞 전의 것과는 달리 이번의 주름은 잔뜩 찡그려진 레하르씨의 얼굴 위에서 언제까지고 사라질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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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렇게 계속 인상쓰고 있으면 주름된다."

4교시가 시작된 교실 안, 옆자리에 앉은 안나가 그렇게 말했음에도 에리카는 여전히 찡그린 미간을 펼 줄 몰랐다.

"그치만 저것 보라구, 저것!"

에리카는 어깨까지 찰랑이는 금발 뒤로 손에 쥔 샤프의 끝을 신경질적으로 흔들었다. 그녀의 샤프 끝이 가리키고 있는 교실의 가장자리에 쓰레기통과 노이의 책상이 나란히 놓여져 있었다.

'꺼져라, 재수없어, 마녀의 자식, 죽어, 없어져버려.' 따위의 칼로 파여진 욕과 낙서들로 노이의 책상면은 어지러웠으며 책상 서랍 안에는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썩은 우유, 잡다한 쓰레기가 가득했다. 역겨운 악취가 교실 구석퉁이 노이의 책상 속에서 피어 올랐다.
게다가 실내화는 어디로 갖다버렸는지 노이는 양말만을 신은 채였고, 쓰레기통 옆 그의 자리 주위엔 떨어진 쓰레기들로 너저분했다.

그렇게 반 아이들과 멀찍이 떨어진 책상에 앉아 노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쳐다보고 있었다. 교탁에서 세계사 선생의 수업이 한창이었으나 듣고 있는것 같지는 않았다.

휘익
앞쪽의 책상에서 뭔가가 날아왔다. 노이의 머리 정면이었다. 그러나 노이는 피할 생각조차 없는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사실 1분에 한번 꼴로 날아오는 것 일일이 피하는게 더 귀찮았다.


하고 날아온 종이쪼가리가 노이의 이마에 맞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키득키득..
낮은 웃음소리가 교실을 간질이고 여기저기서 수근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미안. 쓰레기통으로 던진다는게 손이 미끄러져 버렸네."

라던지,

"멍청하게 그것도 못피하냐? 바닥 더러워지니까 얼른 주워 버려."

라던지,

"뭘 주우라는거야? 종이를? 아니, 교실을 깨끗이 하려면 노이, 자기가 먼저 들어가야지. 그렇지, 노이? 아니, 오드라고 불러줄까?큭.큭."

따위의 빈말들이 그 수근거림의 전부였다.
노이는 그 말들을 들은척도 하지않고 떨어진 종이를 주워 책상 옆 쓰레기통에 잡아 넣었다. 이미, 쓰레기통은 그런식으로 던져진 쓰레기들로 가득찬 상태였다.

"이번 시간만 벌써 열네번째네. 오드는 참 부지런하기도 하단 말야. 저렇게 던지는 것 마다 전부 휴지통에 넣어주니."

안나가 그 광경을 지켜보다 고개를 돌려버리며 에리카에게 말하자,

"부지런하기는! 한심한거지! 멍청한 자식, 어떻게 반항 한번을 할 줄 모르냐?"

에리카가 얼굴을 찡그린채로 대답했다.

"얘가, 얘가. 그렇게 옆에서 가르쳐줘도! 멍청이가 뭐니, 멍청이가. 좌우간 넌 그 입버릇 좀 고쳐야돼. 돌로렌시립고등 학교의 학생회장이자, 전교생이 뽑은 3월의 여왕인 네가....."

"아, 예예.."

또 시작 되었나, 안나의 잔소리...
속으로 읊조리며 에리카는 이마에 손을 갖다대었다.
조각을 빚은듯 부드러운 턱선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의 에리카. 어깨까지 찰랑이는 금발과 훤칠한 키에 모델 뺨치듯 군살없고 볼륨있는 몸매. 교내 톱 5를 다투는 명석한 두되와 지도력, 책임감까지 겸비해, 그녀는 전교생의 투표 결과 3월의 여왕으로 뽑히게 되었다.
게다가 학생회장의 신분으로 공석에서 자주 학생들을 대하게 되다보니 어느샌가 공인내지 학교의 아이돌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그녀였다. 그녀의 인기는 전교에 이어 요즘에는 학교 밖 타학교에까지 번지고 있어 일주일에 네댓번 사인을 받으러 불법침입을 일삼는 타학교 무리들이 나타날 정도였다.

그에 비해 에리카의 단짝인 안나는 에리카와는 정반대의 이미지랄까?
작고 조목조목 붙은 눈코입은 조막만한 얼굴 위에서 조화롭게 퍼져있다. 동양계의 산단같은 머리결에 나긋나긋하고 사뿐한 몸가짐, 한국계 어머니와 이탈리아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이름은 서구틱했지만 외모나 행동은 단아한 동양의 미인상이었다.
원래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보통 아이들의 사이에 묻혀 지내왔으나 절친한 친구인 에리카가 학생회장에 교내 최고의 아이돌이다 보니 덩달아 안나도 자신의 미모에 걸맞는 관심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안나는,
모름지기 선망의 대상은 범인들의 꿈을 깨어서는 안된다느니, 너에게는 3월의 여왕으로써의 책임이 있다느니 하면서 줄곧 에리카게 있어선 귀찮을 뿐인, 그러나 안나 자신에게 있어선 애정어린 관심을 보여오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에리카의 남자같은 말투라거나, 씩씩한 행동거지 라거나, 몸가짐, 장신구 하나 하나..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 안나의 잔소리가 베이지 않은곳이 없었다. 에리카의 팬들이 절대 그녀의 본 모습을 알 수 없도록.......

".....라구, 알겠어? 걸음걸이 하나도 조신하게. 물 한잔을 마실떄도 사슴같이. 절대 ㅈ번처럼 벌컥벌컥 마신다던가, 성큼성큼 팔자걸음으로 걷는다던가...."

한번 시작된 안나의 잔소리는 쉽사리 그칠것같지 않았다.

"아아.. 알았어. 알았다고."

에리카는 안나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3월의 여왕건은 아이들이 오해한 탓이고 학생회장이 된건 이사장인 아버지에게 떠밀려서라고, 목구멍까지 말이 올라왔지만 열심히 조신한 여자란 무엇인가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는 안나에게 에리카는 그 말들을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랬다간 지금보다 곱절로 잔소리를 듣게 될 테니까.....

"조용. 조용. 너무 소란스럽군요. 다들 수업에 집중하세요. 어이, 거기 자네는 그 손에 쥔 종이로 뭘 어쩌려는 건가. 그리고 안나, 조신한 여성도 좋지만 지금은 세계사 수업 시간이란다."

때마침 들려온 세계사 선생의 목소리가 안나의 끊임없는 잔소리로 부터  에리카를 구해냈다. 네에..하고 작게 대답하며 책으로 눈길을 돌리는 에리카. 그와 동시에 노이를 향해 종이 쪼가리를 던지려던 남학생도 지적을 받자 머쓱했던지 구겨진 종이 쪼가리를 자신의 서랍 속에 집어넣었다.

"보자, 어디까지 했었지? 음,음. 그래. 20세기, 세계 2차 대전 이후 붕괴된 세계 연맹을 이
어 UN이란 범국가적 조직이 생겨났다는 데 까지였죠? 이 UN이 지금의 세계 통합 정부, 'United Glover Government' 통칭, U.G.G.의 전신이 되는 거랍니다. 지금의 강력한 U.G.G.와는 달리 당시의 UN은 범국가적 조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에 그리 큰 영향을 줄 수 없었답니다. 그러던것이,,,"

세계 3차 대전이요.. 라는 작은 소리가 교실 한 귀퉁이에서 들려왔다.

"맞아요. 아마겟돈 이라고도 불리는 그 끔찍한 전쟁 이후, UN은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했어요. 2037년의 일이죠. 6개월 간 30여발의 전술형 핵무기와 40000여발의 미사일이 사용되었어요. 인간이 저지른 최고의, 최악의 실수 그리고 죄악이지요. 승전국, 패전국 할 것 없이 각나라들은 쑥대밭이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댐도 전기도 공장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죠.

당시, 쓰러져 가는 세계를 복구하기 위해 미국과 독일, 영국, 프랑스. 아시아의 중국, 한국, 일본 등 북반구에 자리잡은 OECD회원국들이 뭉치기 시작했답니다. 그들이 전후 복구를 위해 설치한 UN산하의 A.W.S.O.란 기구. 에리카양, 무엇의 약자인지 혹시 알고있나요?"

"After. War. Surpporting. Organization. 입니다."

에리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정확해요. 역시 에리카군요. 자, 그 기구가 가동을 시작하면서 세계는 단일 정부 체제로 급물살을 타게 되요. 이때, WTO 시절부터 추진 되어오던 관세없는 무역이 실제로 시행되기 시작했죠. 덕분에 세계 경제는 국가 안의 기업이 아니라 세계 속의 기업으로 바뀌어  탈국가적 기업들이 그 주역이 되는 새로운 시스템이 구축되게 됩니다.
요 며칠 뒤, 심포지엄을 여는 구 일본계 기업 '츠바사'도 그때에 두각을 나타냈던 기업이란거 기억해 두도록 하세요. 이번 츠바사 심포지엄에는 견학 차 학교에서도 가볼 생각이니까 다들 기대해도 좋을거에요. 이번 심포지엄의 모토가 '22세기에 맞춘 생활의 혁신' 이었던가요?

아아, 얘기가 잠시 딴데로 샜군요.
자, 다시 돌아와서.. 재계의 개편과 동시에 정계도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했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19세기에는 특정 가문들이 정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었어요. 구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 몇번이고 앉아봤었던 부시 가문이라던가 케네디 가문 같은 집안들은 아직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요. 그 이외에도 전후 복구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쌓은 몇몇 가문들이 세계의 정계에 끊임없이 발을 들여놓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지금도 말이죠."

하암..
하고 제일 앞에 앉은 남학생이 하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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