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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카시오페아 -프롤로그-

2006.06.22 15:46

오얏나무 조회 수:173

#프롤로그


밤...

짙게 드리운 구름이 달빛 마저 삼켜버린 밤이었다. 구름 아래 펼쳐진 거대한 사막은 어슴푸레 비치던 달빛이 사라져 버리고나자 어둠의 장막 속에 그 실루엣을 드리웠다. 그렇게 검고 고요한 사막의 실루엣은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를 연상시켰다. 어둠과 정적에 휩쌓인 바다.......

그 거대한 모래 바다의 군데군데에 부서진 자신들의 잔해를 떨군채, 쓰러질듯 위태롭게 폐허들이 기울어져 있었다. 마치 검은 바다 위를 표류하는 망가진 난파선 같은 모습이었다.

모래 바다 위 수 많은 난파선들 가운데, 어느 하나의 갑판 위에서 사막의 정적을 깨며 작은 움직임이 일었다.

끼이이익
오래된 철문이 삐걱이며 열린것이었다. 폐허의 내부와 옥상을 이어주는 그 문은 녹이슬고 낡아있어 당장이라도 떨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열려진 그 문 안으로, 밤의 어둠을 한조각 잘라 넣어 놓은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 입을 벌리고있었다.

저벅..
암흑 속에서 희미하게 발소리가 들려온다 싶더니 이내 더러워진 구두하나가 옥상 바닥을 디디며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어, 그 구두를 시작으로 문 안의 수면같은 어둠속에서 사람의 형상 하나가 물 위로 떠오르듯 옥상으로 빠져나왔다.

전체적으로 왜소한 체격에 헐렁한 흰색 가운을 뒤집어쓴 여자였다.
여자는 천천히 옥상의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불어오는 사막의 밤바람에 헝클어진 머리칼이 휘날렸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휘날리는 머리칼보다 오로지 품 안에 감싸안은 검은 상자만이 중요한듯, 그녀의 시선은 줄곧 상자에만 박혀있었다. 하지만 그 상자 자체는 그리 값어치 있게 보이지는 않았다. 검은색 안감을 덧댄 조그만 상자......

저벅.
옥상의 정중앙에 다다라 그녀는 멈춰섰다.
달빛이 구름 속에서 조금씩 빠져나오며 그녀를, 그녀의 발 밑을, 녹슬고 구겨진 옥상의 철조망을 순서대로 비추었다. 그렇게 달빛에 의해 옥상위에 쳐져있던 밤의 장막이 걷히자 그녀는 볼 수 있었다.
끝이 뽀족한 나뭇잎 모양의 타원 세개가 겹쳐진 붉은색의 낯익은 문양.
그 문양이 기체 가운데 그려진 헬기.
그리고 헬기 앞에 서있는 검은색 정장차림의 남자들.
이 모든것이 밤이 드리운 어둠 속에 그 모습들을 숨긴채, 옥상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꼬옥,
품안의 상자를 세개 쥐어보며 그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뒤이어 검은 정장의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와 손을 뻗으며 말했다.

"스미레 박사님, 이 쪽으로."

그 어떤 거부감도 망설임도 없이 그녀, 스미레는 남자가 이끄는대로 헬기에 올랐다.
남자는 그녀를 헬기에 태우고서 뒤따라 자신도 헬기에 올랐다. 그리고

철컹.
문을 닫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구 북아메리카 제 3지부로 향할겁니다. 4시간 정도 이 헬기로 이동하신 다음 그곳에서 비행기편으로 갈아타셔서 본사로 가시게 되어있습니다. 꽤 급박한 일정이지만 한시가 급한 상황이니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단, 본사로 가시게 되면 그곳의 요원들이 안전하게 모실겁니다. 이제 금방입니다. 본사에 도착하시게 되면 모쪼록 그쪽의 지침대로 움직여 주십시오."

"금방... 이제 금방..."

그녀는 남자가 들을 수 없는 작은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

후웅,,훙, 부다다다다다다다다!!
때마침,그녀를 실은 헬기의 엔진이 회전을 시작하며 요란스런 소리를 내기 시작하였고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엔진 소음 속에서 그녀는 상자를 품에 안았다. 더없이 소중한 것처럼, 마치 몸의 일부인 것처럼.............

다!다!다!다!
주위의 정적을 꺠뜨리며 '츠바사'사(社)의 헬기가 모래 사막 위 검은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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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놓쳐버렸다고?"

천장이 아득히 높은 방,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대리석으로된 벽을 타고 메아리쳤다. 커다란 창문을 등진 채, 의자에 기대 앉은 남자.

창문 틀 사이로 쏟아져 내려오는 이른 아침의 햇살이 역광을 만들어 그와 그의 탁자에 한없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드리워진 그림자에 가려 젋은 남자의 모습은 그 윤곽밖에 분간할 수 없었으며, 그 사실이 탁자 앞에선 중년의 집사를 더욱 난감하게 만들고 있었다.

젊은 남자 앞의 집사는 그 남자, 즉 가르발디 가문의 가주(家主) '로웬 가르발디'의 질문에 어쩔 줄 몰라하며 주저주저 말을 꺼냈다.

"...그..그게, 어젯밤이었나 봅니다. 곧 바로 현장을 급습했지
만......."

"급습했지만?"

로웬이 그의 말을 따라했다. 집사, 볼쉐는 손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식은 땀을 닦아내며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에.. 그, 그 이미 츠바사의 헬기는 자리를 뜬 다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분 뒤, 구 샌프란시스코 외곽지역의 N.A.A에서 뉴욕으로 향하는 민간헬기 하나를 위성 레이더가 포착했습니다만........."

볼쉐의 말에 로웬의 실루엣이 조금 움직였다. 고개를 옆으로 까딱거린것 같았다. 그리고는 집사의 다음말을 기다리는지 아무 반응이 없었다.

"............."

볼쉐는 그 침묵의 의미를 꺠닫고 허둥지둥 말을 이었다.

"아, 예. 예, 그래서 포착했습니다만, 30초 후 우리측 위성레이더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뭐?"

가르발디 가문의 가주, 로웬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체 날아가던 헬기가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단건가!!"

"그,그게 저로서도...."

"뭐야! 그럼 결국 놓쳤다는 얘기잖아, 젠장!"

쾅!하고 로웬은 탁자를 내려쳤다. 볼쉐는 그 소리에 놀라 하마터면 들고있던 손수건을 떨어뜨릴 뻔 했다.

탁자에서 일어선 로웬은 서재 한구석 으로 걸어 나왔다. 분을 삭이지 못해 씨근거리던 그가 서재 한구석의 책장을 잡고 후우...하며 길게 한 숨을 내쉬었다. 로웬 키의 두배는 되어보이는 기다란 책장이 가주의 한숨소리를 듣고 있었다, 가르발디 가문의 수석집사 볼쉐와 함께.......

잠시 후, 두어번의 심호흡을 끝내고 나서야 책장을 놓아준 로웬 가르발디는 성큼성큼 방 가운데로 걸어와 붉은 카펫을 밟고 섰다. 볼쉐의 앞이었다.

로웬의 눈에 말끔한 올백머리에 흰머리카락이 한두가닥 희끗희끗 올라오고 있는 볼쉐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깨까지 찰랑이는 은발을 뒤로 질끈 묶고 얼굴에는 은테 안경을 낀 말쑥한 가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가주 앞에선 볼쉐도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아무말없이 집사를 내려다보던 가주.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듯 입을 벙긋거리다가 결국에는 하아..하는 두번째 한숨과 함께 쓰러지듯, 뒤에 놓인 탁자에 걸터 앉아 버렸다.

터덕!

"알았어. 알았다구. 뭐, 사실 따지자면 자네 잘못은 아니지."

로웬은 그렇게 말하며 미간 사이의 안경테를 손가락으로 올려 안경의 위치를 다잡았다. 이 젊은 가주와 십수년을 같이 해온 볼쉐는 그것이 난감하다는 의미의 제스쳐란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이거,이거. 츠바사의 노랑원숭이들에게 보기좋게 당해버렸는걸. N.A.A에 레이더에서 사라지는 헬기라니, 생각지도 못했어."

로웬은 팔짱을 끼며 혼잣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지 녀석들이 N.A.A안에 숨어서 까지 만들고자 했던게 과연 무었일까? 방사능 오염에 물자와 식량도 제대로 구하기 힘든 그곳에서 대체 녀석들은 뭘하고 있었던거지?  하긴, N.A.A라면 뭔가를 숨기기에는 안성맞춤 이겠지만 말이야. 이해할 수 가 없군, 녀석들의 생각이란.
우린 그것도 모르고 6개월 동안 허튼 곳만 찾아댔으니......."

턱을 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로웬.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볼쉐가 불쑥 한마디 덧붙였다.

"...그, N.A.A말입니다만...."

"응?"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세개의 N.A.A중 조사결과 특이한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보통, N.A.A라 하면 세계 3차대전에 쓰여졌던 전략형 핵무기의 폭발 영향으로 방사능 오염과 사막화가 뒤따르는 것이 일반적인데, 샌프란 시스코의 N.A.A들 중에선 하나가 방사능이 전무하다 싶을 정도로 수치가 낮았습니다."

"방사능이 전무하다고?"

로웬이 되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사막화는 진행 중이었지만 방사선의 검출은 없었습니다. 대신에 이제껏 전혀 볼 수 없었던 물질이, 아니 레이져의한 종류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정체를 알 수없는 N.A.A에서 츠바사의 헬기가 이륙했던것으로....... 헬기의 경로와 속도, 고도로 보아선 그렇게 결론 내려졌습니다."

"으음..."

가주, 로웬 가르발디는 팔짱을 낀채 생각에 잠겼다. 방사선이 없는 N.A.A라니, 그런것은 여태껏 존재하지도, 아니, 있을 수도 없는 얘기였다. 그런 황당한 것, 신형 핵폭탄이 아니고서야...... 설마? 츠바사가?

알 수 없었다. 누구도, 그 지독했던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었으니까. 이번에도 확신할 수 없었다. 석유 외의 대체 에너지를 만들겠다던 구 일본계 굴지의 세계적 기업, 츠바사. 그 속을 들여다 본다는것은 가르발디 저택의 서재 안에서는 무리였으니까... 그리고,

'에너지는 곧 무기로 치환 될 수 있다.'

석유매매업과 무기 판매업으로 세계경제의 한축을 차지하고 있는 가르발디 가문의 가주가 이 사실을 모를리 없었다.

".....뭔지 알순 없지만, 녀석들이 '그걸' 상용화하는 날엔 우리가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될것은 자명해. 망설일 이유따윈없지. 한방 먹었으니, 갚아주도록 할까? 볼쉐!"

로웬은 생각을 정리하고선 가르발디 가문의 수석집사를 불렀다. 탁자 위에 걸터 앉은 가주 앞을 말없이 지키고 있던 볼쉐가 고개를 들었다.

"말씀하십시오."

"장로 회의를 소집해. 앞으로 여덟시간 이내다. 츠바사 놈들은 분명 본사로 향하겠지. 츠바사 심포지엄이 열리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그것'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도록 손써두어야만해."

"알겠습니다. 각 국에 계신 가르발디 가문의 장로님들께 연락을 취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이란 소리와 함께 바쁜 걸음으로 볼쉐는 서재를 빠져나갔다.

달캉!
서재의 문이 닫히자 로웬은 쓴웃음을 지으며 창가로 걸어갔다. 창틀 너머로 저택의 정원이 보였다. 둥근 분수를 중심으로 미로처럼 얽힌 화단. 로웬의 어린시절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곳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죽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이 잘못되는 날엔 가문은 고사하고 이 정원조차 지켜낼 수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정원을 오랫동안 내려다보다, 로웬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노랑원숭이들. 전쟁이라도 치를셈이냐? 이쪽도 그리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아."

창틀 너머 화단엔 라일락이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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