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어둠을 파고 시궁쥐 눈깔 같은 봉숭아 씨앗을 심을래요 모르는집 창문에 애절히 피워 나 모르는 그들을 울게할래요 봉숭앗빛 뺨을 가진 어린 손톱에 고운 핏물을 묻힐래요

우리집에 왜왔니 왜왔니 왜왔니
꽃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서둘러야해요 나를 통과해가는 그들의 눈을 볼래요 너무 오래 견딘 상처는 아물지 않아요 몹시 처량해진 나는 모르는집 창문 밑에서 울거예요 당신을 부르며 울 때 사람들은 어두워져요

문이닫혀요

이렇게 부질없는 이야기는 처음해봐요 나는 늘 술래이고 아직 아무도 찾지 못해요 가위바위보가 문제에요 나는 주먹만 쥐고 있거든요 아무도 내게 악수하는법을 가르쳐주지 않아요 당신도 곧 잘 숨는다는걸 알아요 이제는 내가 숨을래요 꽃피지 않는 계절에 오래도록 갇혀있을거예요

우리집에 왜왔니 왜왔니 왜왔니
꽃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봉숭아꽃이 만발했어요 보세요 정말 내가 모르는 집이에요 창문밑에 피어난 저 붉은 봉숭아! 무슨 꽃은 봉숭아 꽃이어야 해요 당신은 봉숭아꽃을 찾으러 온거에요 나는, 나는 꽃피지 않을거에요.

아무도 찾지 못해요 문은 열리지 않아요


-이향미님의 우리집에 왜왔니








비가온다.
낡은 대문에 기대어 서서 올려다본 하늘은 다 타버린 담배가 떨군 새하얀 재, 그것 뿐이였다. 더 이상의 의미가 없어보이는 저 하늘에서…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삼베로 만들어진 이 옷은 불편했다. 목덜미가 껄끄럽고, 움직일때마다 옷깃이 부딪쳐 사락, 사락 하는 이상한 소리가 나기도 했다. 이런 싫은 옷도…평소에 입지않는 이런 옷도 지금은 입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서있는 낡은 대문의 주인은 꽤 큰 한식 저택. 대문을 지나면 정원, 그곳은 조그만한 연못에서 잉어들이 뛰놀고 잘 정돈된 소나무가 위엄있게 서있는 곳. 그리고 정원으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커다란 저택의 마루바닥이였다.
종갓집 같은 분위기. 내가 철이들때쯤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정계에 큰인물이라고 하는 아버지. 돈을 어디서 받아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우리들은 돈이 많았다. 썩어넘칠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돈은 많았다. 하지만 그만큼, 서민들의 마음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뭐, 지금은 필요없다고 생각하지만…곧 필요있다고 생각된다.

대문 안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수십명. 커다란 집을 모두 메우고 있었다. 아까는 대통령이라는 사람도 다녀갔다. 이외에 수많은 장관, 그리고 정계의 유명한 사람들이 다녀갔다. 이것이 아버지의 인지도인지, 자신들의 얼굴을 알릴려는 잔꾀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건 딱 하나 있다. 나에겐 귀찮을뿐.

가까운 친척부터 먼 친척, 모두가 와있었다. 그중에는 내 또래의 아이들도 있었고, 그들의 부모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애들과 나와의 차이라면…아버지가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죽었다. 지금 상례중이다. 지금 집 안의 사람들은 영정의 사진 한장으로 슬퍼하고 있다. 핏줄이 죽었으니, 별수 없지 않을까?

언니가 죽은게 엊그제 같은데…그 사이에 아버지마저 죽어버렸다. 더 이상 내게 핏줄은…없는듯 싶다.
어머니는 어쨋냐고? 아아, 분명 있긴 있다. 피가 이어져있진 않지만…

진짜 어머니는 아버지가 신혼때 이혼했다고 들었다. 들었을 뿐이지…그것이 진실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모습은 어릴때 잠시 봤을 뿐이지…그 이후로는 한번도 못만났다.
뭐, 이혼율 세계최고인 우리나라이니…
그 후 나는 자식상속에서 아버지의 승리로 아버지 밑에서 키워졌던 것 같다. 그 후 얼마 안되서…아버지는 재혼했다.

알수없는 여자였다. 속마음을 도저히 읽을수 없는 여자…나에게 있어선 어머니도 아니고 근처의 알고 지내는 아줌마도 아닌…전혀 모르는 사람. 가족계보상 어머니가 되어있지만, 완전히 모르는 사람인 그녀. 그건 지금도 그렇다.

내가 대문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쐴때까지 새엄마는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울고있었다. 아주 서럽게, 너무나도 서럽게 울고있었다. 그것이 연기인가 아닌가는…그 당사자만이 알고있겠지.

그 새엄마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나에게는 한참 어린 꼬맹이. 초등학교 저학년인 그녀석은 엄청 귀여운 녀석이라, 나도 잘 놀아주곤 했다. 그녀석도 날 엄청 잘따라서, 마치 친동생 같은 느낌. 나도 귀여워 해주고, 녀석도 날 좋아해줬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안 새엄마는 자신의 아들에게 나와 놀지 않는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가끔 몰래 몰래 놀러오는 녀석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미어져 온다.
지금 그 꼬마녀석은…자신의 엄마 옆에 앉아서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표정으로 앉아있겠지.

삼베로 만들어진 옷이 사락 사락,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비가 차갑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대문 밖에서 발을 옮겨 정원으로 들어갔다. 우산은 없다. 그냥, 조용히 걸어서 들어가면 집 마루까지는 금방이다.

아버지는 상냥했다.
정치계의 인물 치고는 굉장히 착실한 사람이라고 주변의 사람들도 속삭였다. 그런 아버지가 나는 좋았고, 사랑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죽었고, 그 유산들은 모두 새엄마가 받게 되었다. 유서에 그렇게 적혀있었다고 한다. 유서의 조작 가능성도 배제 할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작했다고 단정지을수도 없는 노륵이다. 그래봤자 나하고는 상관없지만…
유산따윈 애초에 관심도 없었다.

비를 맞으며 정원에 멍청하게 서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았는지…

“송월아. 오랜만이구나.”
“아─”

입에서는 조그만한 감탄사만이 흘러나올 뿐이였다.
그곳에는 덩치가 커다란 한 남자가 서있었다. 머리카락은 짧게 자르고 여기저기 근육도 붙어있는 듬직한 남자. 이 남자는 아버지의 오랜 친구로써, 나에겐 ‘조폭아저씨’라는 칭호로 자주 불려졌다.

“오랜만이네요 아저씨.”
“안본사이에 꽤나 성숙해졌는데 아가씨?”

그런 비행기 태우기식 칭찬에 나는 그냥 미소로 흘려보냈다. 이 아저씨는 분명히 좋게 생각해서 말한 이야기지만…나로써는 약간 부담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그런 내 표정을 읽어냈는지…아저씨는 말을 바꾸었다.

“네 언니일에 이어서…안됐구나.”
“언니건의 범인은 잡혔어요.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죠. 죽은 사람은 붙잡아두면 안된다고 할머니가 그랬거든요. 죽은 사람은…빨리 잊어주는게 좋아요.”

그래? 하고 조용히 중얼 거리며 아저씨는 미소지었다.
그 미소가 너무나도 사람이 좋아보여서, 나 역시 미소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난, 이럴때에 울지도 않고 웃을수 있는걸까? 그 의문에 나는 그저 ‘낙천적이니까’라는 한마디로 내 마음과 타협점을 봤다.

“그러니까, 네 아버지 일은……”
“반 민주파에서 온 사람의 짓이라면서요? 아저씨도 바쁘겠어요. 당끼리 싸우느라 말이죠.”
“하하핫! 그건 비꼬는게냐?”

비꼬기라기 보다는 거의 진심이랄까.

“걱정마라. 범인은 내가 꼭 잡아서…”
“정계에 손을 댄 이상 어쩔수 없는 일이였어요.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반감을 사기쉬운 사람들이니까요.”
“꼭 국민들이 아니라 같은 정치인 끼리도 그렇지.”

잘못된것을 지적해주는 선생님처럼, 그는 똑바르게 이야기 했다.

비가 차가웠다. 그게 누구의 눈물인지는 모른다. 어릴때는 마치 하느님이 흘리는 소변이라던지, 눈물이라던지 라는 초등학생 같은 아이들만이 상상할수 있는 유치한 농담. 난 그런 어린시절을 떠올리면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맞아, 새하얀 눈이 내릴때는 하느님의 대변이라고 애들끼리 입모으고 그랬지.

혼자서 미소짓는다.
아저씨의 말은 아무래도 좋다. 범인을 붙잡아준다면 좋은것이고, 붙잡지 못한다면 그걸로 된것이다. 분명 주위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딸이라고는 하겠지만…범인을 잡는다고 해서 아버지가 살아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거기다가 오늘 이후로 이번 일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 안하기로 했으니까…
범인은 아무래도 좋다. 이번 일로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가져도 좋고, 가지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이것 만큼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자신이 한짓의 대가가 얼마나 무거운지를…온몸이 억눌릴 정도로.

그렇게 생각했을무렵.
이상한 목소리와 함께 내 시야에서는 이상한게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네? 아저씨 뭐라고 하셨어요?”
“응? 아니, 난 아무말도 안했는데…”
“분명 들키지 않았다고…어?”

잠시 시야 장애. 그냥 그것 뿐이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그걸로 끝났으면 좋았을텐데. 눈 앞의 조폭 같은 아저씨의 어깨 위로, 알수없는 글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일렁 거리는…아지랑이와 같은 글씨가.

『나만 입 다물면 범행은 반 민주파의 짓이라고 생각하겠지.』
“어…이건……”
“왜그러니 송월아!”

아저씨의 어깨 위에서 춤추는 그 글자들은…아저씨와 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영화에서나 볼수 있는 악마의 속삭임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그렇다면…지금 이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걸로 당파싸움도 격렬해지겠어…역시 계획대로야. 크크큭…』
“그만…”
“송월아!”

…악마의 목소리가 아니라면…
…인간의 진실?
…인간이 품은 진정한 마음?

『녀석, 어찌나 저항하던지…뭐, 죽이고 나서 시체도 무거워서 혼났지만 말이야.』
“그만해…”
“이봐! 잠시 와봐! 의식이 없어!”

속이 울렁거린다.
목이 막힌다.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거린다.
뇌가 요동친다.
손발이 저려오고 심장은 미친듯이 울려댄다.

내 몸은, 카네기 무대에 오른 오케스트라가 되어 합주를 하고있었다.

『이후에는 조용히 이 동네를 뜨는것밖에 남지 않았군…그럼, 』
“그……”

격렬한 연주. 지휘자의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무대는 열기를 더해간다. 연주자들의 마음은 두근거리고 있고, 눈은 질끈, 감고 있다. 악보따윈 보지 않는다. 뇌리에서 떠오르는 리듬을 타고 흘러간다. 식은땀이 흐르고, 전율에 떨린다.
그리고 그 장대한 연주를 끝낸 지휘자의 한 말씀은……

『이걸로 모두가 끝. 해피엔드!』

“그만해에에에에에────!!!”


그 목소리는.
대기에 흩뿌려져 사라가져가고 있었다.









“그 이후로 이상한게 보인다고?”
“…네”

천정도, 벽도, 사람도. 모두가 새하얀 공간에서 난 둥그런 의자에 앉아 의사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눈 앞에있는 젊은 의사선생은 이전부터 우리집 주치의였고, 대체로 아버지의 건강을 봐왔던 사람이였다. 이젠 아버지가 죽었으니, 다른 사람의 주치의일을 찾을 수밖에 없겠지만…
신경일이라고 하는 이사람은 왜소한 체격을 가진 사람이였다. 평범한 학문형 케릭터랄까나? 안경은 안끼고 있지만 그래도 그 외모가 꽤나 물러보여서, 어디의 국어선생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믿을수 있는사람. 그렇기에 이사람에게는 모두 말해주었다. 제사가 끝난지 이틀 후.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던 그것을. 정신이 돌아버릴정도로 안구에 꽉차 있는… ‘인간의 진실’을.

“그러니까…이런거 아닐까? 유감이지만…언니와 아버지의 연속적인 죽음에 대한 충격같은거?”
“그건 잘 모르겠어요…그런걸 알아보는게 의사선생님이 할일이잖아요!”

장난끼있는 말투로 말하는 나 자신을 보니, 아무래도 아직은 여유가 있는가 보다. 이것이 내 성격의 최대의 장점이자 단점이랄까? 주위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이미지는 도저히 슬픈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활발하고 괜찮은 녀석일 테니 말이다. 뭐, 대다수가 그렇다는 이야기다.

“나 참. 선생님처럼 비전문적이고 바보 같은 의사는 처음봤네요!”
“하핫, 너무 뭐라하지마라. 내가 이래뵈도 실력은 있다고?”
“무능한 주제에.”
“어허, 이녀석 봐라. 애초에 말이지, 네가 말한 그 증상이라는 것은…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병’같은게 아니잖아?”

…하긴.
나도 이게 의사가 고칠수 있는 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건 내 눈에 대한 진찰이 아니라…믿는 사람에게 털어내는 상담 같은 것이다.

“그리고 더욱 더 중요한건… 난 네가 생각하는 정신병원 의사가 아니라 내과의사야. 정신병에 관한 지식은 요만큼이라고 요만큼.”

그는 소금병에서 집게손가락으로 소금을 집어올리는듯한 시늉을 하며 제스쳐를 보여줬다. 아아, 알고있어요 알고있어. 당신의 그 의학지식에 전 심히 슬픔을 통감중입니다. 그러니까 꼭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그만큼 ‘병’도 아니고 의사가 치료할수 없는 증상이니까…심각한건 확실하겠지?”
“그런것 같아요.”
“그럼… 제일 문제가 될법한 안구. 안과에는 가봤니?”
“…그런델 갈 이유가 없잖아요.”
“멍청한 녀석!”
“…꺄웅”

그의 수도가 내 머리 45도 얼짱각도로 손목스냅을 이용하여 날라왔기 때문에 난 할수없이 조그만한 비명을 지를수 밖에 없었다.
오호라, 이거 내가 생각해도 꽤나 귀여운 목소린데?

“왜때려요! 자꾸 이러면 나도 가만히 있진 않을거에요!”
“흥! 가만히 안있으면 어쩔건데!”
“음, 그러니까……”

조용히 그를 쳐다본다.
그러고 있자보니…역시 곧 눈에 띄는 것은.

“오늘은 김간호사랑 데이트. 마누라에게 들키지는 않겠지? 그래도 조심히.”

내 목소리에 눈 앞에있는 남자는 움찔, 하고 놀란다. 그야 그런 것은, 아무도 모를 자신의 속마음을 읽어버리는 여자가 바로 여기 있으니까.
방금 내 입밖으로 나온 말은 이 의사선생 어깨위에 노릇노릇 피워져 있는 꽃 같은 망상중 하나였다.

“…앗챠~”

그는 잊고있었다는듯이 손바닥으로 따악, 하고 자신의 이마를 친다.
방금까지 상담하던건데…그세에 잊어먹었수?

“오케이 오케이. 알았어, 네 요구는 충분히 알았으니까…그런 이상한 눈으로 보지마 이녀석아!!”
“사모님한테 다말할거에요.”
“…제발 살려주세요.”

…금방 비굴해진다.
뭐, 이런 사람이 싫은 것은 아니라서 꽤나 이사람과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 의사 선생님 특유의 꼼꼼함이라거나 싸이코틱한게 찾아보기 힘들다랄까나? 몸의 증상에 대해서는 거리낌없이 상담할수 있는 단 하나뿐인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니까…이렇게 생각할수도 있다고. 네 눈에 보이는 것은 단순한 안구의 이상인가? 아니면 뇌의 이상인가? 아니면 네 개념의 이상인가?”
“사모님한테…”
“알았어 알았어! 무섭구만. 농담도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어.”
“농담도 농담 같은걸 해야죠.”

어처구니 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그는 이내 곧 말을 바꾸어 말했다.

“그러니까…먼저 생각할수 있는건 안구의 이상이야. 보통 안구라고 하면 안과에 가야되잖아? 안그래?”
“선생님은 진료 못해요?”
“난 내과의사라니깐…”
“그럼 약물치료는?”
“저기, 은송월양. 자네가 한번 생각 해봐라. 네 눈은 ‘인간의 진실’을 볼수 있어. 그런게 약물 치료로 나아질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안과에는 그래도 희망이라도 있지…나 같은 평범한 내과의사한테는 안구에 대한 진료를 할 수가 없다고? 거기다가 너 분명히 그 안구를 들고 미국에 있는 NASA나 FBI를 찾아가면 순식간에 네 눈이랑 뇌는 뽑혀서 실험용으로 연구될걸. 알겠어?”
“…그거 왠지 스펙타클하네요.”
“…난 아무생각 없는 네녀석의 뇌 내 정신세계가 더 스펙타클하다.”

분명, 외부인이 이 광경을 본다면 도대체 무슨이야기를 하는지 도저히 모를걸?
왠지 이 진료실만 다른세상이 된 기분이 들어서 등골이 오싹했다.

“그러니까…너를 세상에서 제일 잘 아는 의사선생님으로써 진찰을 내주마. 시골로 요양가는게 어떻냐?”
“…요양?”

요양.
그러니까 즉…도시를 떠나 시골에 정착해 한동안 몸을 회복시키고 오는 그 요양. 한마디로 당분간은 사회와 동떨어져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안정을 취하고 오시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날 내쫓으려는 새엄마가 원하던 일이기도 하다.
설마…라고 생각하고 의사선생님의 ‘진실’을 보기 위해 시선을 올렸지만, 그곳에는 원하는 답따윈 없었다.

“그거…정말로 의사선생님으로써의 진찰이에요?”
“어? 하하! 역시 거짓말은 안통하나 보구나. 미안, 의사선생님으로써가 아니라 네 아버지의 주치의로써. 그리고 네 아버지의 유서를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의 유일한 사람으로써.”

유서가 있다는 것은…
분명 알고있었다. 내가 이 진료실로 들어와 의사선생님이 날 보자마자, 그의 어깨 위에서 ‘진실’이 아버지의 유서를 가지고 있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유일한 사람? 역시…그럼 어머니가 들고있던 그 유서는 역시 위조인가 보군요.”
“그래. 나도 그 장례식에 참여한 사람으로써 말하는데, 완벽하게 위조된 유서야. 나 말고도 다른 사람 여럿도 의심하고 있을걸? 어머님께서 밝힌 유서는 타이핑으로 친 유서이기도 하고, 네 아버지 치고는 너무 문법도 간결해. 딱딱하기도 하고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그는 진료실의 책상 서랍에서 새하얀 종이봉투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참, 그렇게 허술하게 위조하고 말이지…정말 악질이야.”
“너무 그러지 마세요, 선생님.”

일말의 동정이라고 하는걸까.
그래도 어머니라는 사람이니까…라는 마음에서, 그런 동정심이 나온것일지도 모르겠다.

“송월아. 화 안나냐?”
“뭐가요?”
“네 아버지는 내게 말했어. 널 잘 부탁 한다고. 그게 처음에는 널 나에게 맡겨서 결혼하고 잘먹고 잘살라는 이야기로 들었는데……”

은쟁반에 담겨져 있는 소독된 메스를 손에 쥔다.

“아, 알았으니까…진정하고. 농담 안할게. 알았어 알았어. 그러니까, 유서의 내용은 대충 이래. 유산의 모두를 송월이에게 상속한다. 그리고 아내에겐 100만원만 주고 보낸다. 이후의 재산관리는 네 관리니까 네가 알아서 하래.”
“음…과연, 그렇군요. 그런데 그 얘기하고 화가나는거 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묻자, 그는 정말 골칫덩어리를 보는듯한 눈빛으로 고개를 서너번 옆으로 젓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니, 대충 감은 오는데…내 입으로는 말하기 싫어서.

“네 새엄마가 유서위조만 안했더라면 모든 유산은 너에게 돌아갔을 것 아냐? 그것만 있으면 부러울게 없다고. 평생써도 남는 돈이니까.”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그런 의사선생님의 어깨위에 떠오른 ‘진실’은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럼과 동시에 내가 방금 한말은 제대로 듣지 못했는지 연신 ‘?’가 난무하고 있었다. 저런…행위예술 같은 사고방식이 있나.

“나같으면 그돈으로 평생 먹고 살걸!”

생각한것이 바로 입밖으로 나오는 이런 정직한 사람도 가끔 있다.
하지만 난 학교에서 말을 할때는 세번정도 곰곰히 생각하고 나서 말해야 된다고 배웠기 때문에 절대로 저러지 않아. 음.

“그래서 뭐 본론으로 들어가자면…그 유서에 저보고 시골로 요양이나 가라는 내용이라도 적혀있나요?”
“그런 내용은 없고…읽어줄까?”
“네. 저는 까막눈이니까요. 검은건 글씨 하얀건 종이~”
“…그런 80년대 개그는 안통한다.”
“…뭐 그것보다는, 왠지 아버지가 남긴 종이쪼가리 몇장에도 ‘진실’이라는게 보일 것 같아서요.”

그렇게 말하며 선생님의 ‘진실’을 바라보자…그곳에는 동정이 있었다. ‘무서운가 보구나…’라는 가녀린 소녀를 보는듯한 감상. 하지만 그것은 이내 곧 또 다른 망상으로 바뀌어져 갔다.

“알았어. 그럼 읽는다.”

엣헴, 하고 목을 가다듬고서.
선생님의 목소리는 시작됐다.

“에, 에…”
“아 나 답답하네! 그냥 이리줘요! 내가 읽어보게!”

그렇게 말하며 선생님의 손에 들고있는 하얀 종이를 난폭하게 뺏아든다. 그곳에는 필기체로 씌여진 아버지의 글씨가, 아주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정도 읽어 내렸을 때…


“…뭐야그게.”

그러니까 즉슨, 이런거다.
아버지는 자신이 살해당한다는 것도, 이미 어머니가 유서를 위조할것도, 유산을 노리고 있는것도 이미 다 알고있었다. 그러니까…알고있었으면서 왜 그런 여자랑 재혼한거야… 라고 아버지에게 매달려 묻고싶지만, 그는 이미 이 세계에 없다.
유서 위조를 안 아버지는 곧장 이 유서를 써서 의사선생님에게 맡겨두었고, 그리고 조용히 이 세계를 떠나버린 것이다.
유서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이것은 나에게만 보내는 유서였다. 그 누구에의 메시지가 아니라, 아버지가 나에게만 보내는 메시지…그 유서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유서의 위조진위는 이미 알고있다. 언젠가 자신이 살해당할이라는것도 알고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새엄마가 아무것도 하지않을 것을, 자신이 살해당하지 않을 것을. 하지만 유서위조는 되었고, 아버지 역시 살해당했다. 이 유서의 내용은 그런 최악의 가정 이후의 이야기이다.
자신이 죽는다면 유산의 전부는 내게, 새엄마에게는 100만원의 통장 한장만 넘겨라고 했다. 아버지가 죽는 순간 유산은 내 소유가 되니까, 나머지는 알아서 해라고 했다. 여기서, 유산은 위조되어서 어차피 새엄마에게 모두 돌아갈텐데 어떻게 유산을 되찾아 오느냐?
아까의 의사선생님 말대로 위조된 유서는 타이핑으로 씌여진 인쇄물이다. 지금은 그것이 유일한 유서이기 때문에 여기저기 인정받고 있는듯 하지만…만약에 진짜 유서가 나온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것도, 이것은 아버지의 필체이기도 하니까.
필체감정에서 확인된다면 이 유서가 진짜라는 것을 알게되고, 새엄마는 어쩔수 없이 유산을 빼앗길수 밖에 없을것이다.
하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유산따위에는 관심 없으니까. 하지만, 마지막 문구…

[기억하고 있니? 송월아. 어릴적 살았던 저택을. 그곳으로 돌아가라.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그 시골의 저택으로 돌아가라. 그곳은 내가 너에게 남겨주는 마지막 선물이 될거야. 그리고 그곳에는 ‘진실’이 있을것이다.]

“송월아. 어떻게 할래?”

나는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하고싶지가 않았다. 별로, 화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그저, 아련했다. 한마디로 감상에 빠지게 만드는 문구. 추억이라고 밖에 말할수 없는 그곳으로…아버지는 내몰려고 하고 있다.

“간다고 하면 지원은 해주마. 이야기로 봐서는 그곳에 어느정도 돈이 있다고 하긴 하는데…”
“…돈이 문제가 아니에요.”

내가.
이 내가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언니가 허락할수 있을지, 없을지가 문제일 테다. 이 내 마음이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용서할수 있을지, 없을지가 문제다. 분명 허락하지 않겠지. 분명 용서하지 않겠지. 하지만 그런 것을 모두 뿌리쳐 내고서도, 마음만 먹으면 난 갈수가 있었다.
날 묶어두는 쇠사슬 같은 것을 끊고서도.

“…그곳에 대해서는 대충 들었어. 언니가 죽은 곳이라며? 그래서 꺼려지는거야?”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간단히 생각해보면 그렇다.
언젠가부터, 그곳은 내게 트라우마로 남아버린듯 싶다.

“하지만, 여기에 남는것보다야 낫지 않아? 새엄마의 눈치만 보고 살수는 없잖아.”

그런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어째서인지, 그 의사선생님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떠난다. 떠나고, 그 아련한 그곳으로 돌아간다. 내가 살았던 집…이런 삭막한 도시가 아니라 너무나도 즐거웠던 시골로.
언니가 인정하지 않은 나. 내가 용서하지 않은 나. 그런것을 모두 무시하고도, 난 무언가에 끌리듯이 그곳으로 떠나가고 있었다.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말이다.
기차의 플랫폼에서, 내게 작별의 인사를 고한 사람은 의사선생님 뿐이였다. 그런 의사선생님은 그 ‘진실’도,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도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여전히, 개념없이 생각하던걸 입밖으로 바로 튀어내 버리는 사람이였다. 그리고 난, 그런 저 사람을 싫어하진 않는다. 차라리 호감이 간다고 하면 간다는 것일까?

브레지어의 후크가 꽉 끼어 불쾌할정도로 더운 날.
난 낡은 에어컨 바람이 흘러나오는 느린 기차에 올라탔다.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