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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하아, 하아."

숨을 거칠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한 소녀가 거리를 달리고 있다. 검고 하얀 반팔 티셔츠에 긴 청바지, 거기다 긴 금색머리를 휘날리며 소녀는 어느 무리로부터 도망을 치고 있었다.
작은 키와 갸느다란 다리에비해 소녀의 움직임은 매우 빨랐으며 그 속도는 마치 초원에서 치타와 경주를 하는것 같았다.
그렇게 폐허가된 도시안에서 홀로 질주하던도중 어느순간, 눈앞에 커다란 녹색 슬라임같은 물체가 턱하고 튀어나오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녀는 발을 땅에 탁 내리찍고는 치이이익 길게 땅에 그을음같은것을 남긴채 멈춰섰다.

"젠장! 이미 이곳은 완전히 장악되어버린건가!"

멈춰선 소녀를 향해 질퍽질퍽한 녹색 덩어리같은게 커다랗게 몸을 펼치며 덮쳐왔다. 땅을 차서 몸을 뒤로 날린후 공중에서 한바퀴 돌아 무릎을 살짝 굽히며 착지하자, 자신이 있던 자리가 바닥이 아예 깨져서 박살이 난게 눈에 들어온다. 그 중앙에서는 방금전 자신을 습격한 녹색의 끈적끈적한 덩어리가 이번엔 몸의 일부분을 순간 창살같이 뾰족하게 만든후 소녀를 향해 길게 늘으뜨리며 날려보냈다.

탁 피슉 탁 피슉 탁 피슉

다시 계속 발로 땅을 차며 피할때마다 날카로운 적의 촉수같은 것이 땅에다 구멍을 내며 꿰뚫는다. 하나 둘 셋 그렇게 박자에 맞춰서 몇번 도망치다가 타이밍을 맞춰 갑자기 속력을 높이며 앞으로 돌진했다. 허리를 숙인 상태로 발을 빠르게 움직이면서 반원을 그리며, 그대로 그 괴생명체가 있는곳까지 단숨에 거리를 좁힌다. 그리고나서 소녀는 허리춤에 있던 플라스틱 폭탄의 스위치를 누른후 그것을 괴물을 향해 던지고는 잽싸게 자리를 피했다.
잠시후 소녀가 안정거리에 들어오자마자 펑하는 소리와함께 그 괴물이 있던곳에서 연기와 불꽃이 튀어나온다. 하늘에서 벗꽃이 떨어지듯 그 괴물의 녹색조각이 바람에 나풀거렸고 소녀는 목표의 제거를 확인한후 다시 발걸음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이젠 정말로 시간이 없어. 어서 빨리..나도 찾지 않으면 안돼."

숨을 헐떡이며 달리면서 소녀는 허리춤에 달려있던 이상한 기기를 꺼내든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스크린이 달려있는 기기는 연신 특정포인트를 반짝거리고 있었으며 그것의 위치또한 표시하고 있는듯 보였다.

"얼마 남지 않았어. 이번에야 말로 틀림없..?!"

혼자서 소녀가 중얼거리며 뛰던도중, 그녀는 자신을 누군가가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달리던 상태에서 몸을 다 바꾸지는 못하고 고개만 돌려본다.
사람이 있다. 군복을 입고 무기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피부가 녹색인 이 군인들은 그녀를 향해 총이며 바주카포며 갖고 있는 모든걸 겨누고 있었으며 소녀가 눈치챘을때는 이미 방아쇠는 당겨진 후였다.
무수한 총탄과 폭탄이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1화 성사된 계약








테 76년 10월 2일

오늘 새로 만난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쪽 지역에서는 날짜가 내가 사용하는 테쪽 시간으로 계산하면 9월 13일이라고 했다. 역시, 핵전쟁이후로 수백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인류의 통합은 완전히 된게 아니구나라고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되었다. 시간하나도 아직 제대로 정리되있지 않으니 말이다.
그 사람은 사막쪽에 살던 사람들의 날짜를 사용했는데 이쪽까지 오는 동안 들른 도시가 수십개라고 했다. 거기다 놀라운건 그 도시 모두가 현재의 지도나 기록에는 등록되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도대체가 언제쯤이야 제대로된 세계지도를 보게될지, 새삼 인간이란게 한심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어쨋든 오늘 만난 그 사람은 여행자였는데 이때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무기의 수준은 어느곳이나 상당히 올라가있지만 생활수준은 과거로 치자면 2차 산업혁명정도 때와 같다고 말했다.
뭐 이러니저러니 갑자기 사회얘기를 하긴 했지만 지금은 먹는것과 쓰는것, 그리고 먼곳이라도 바라보는 시간이 훨씬 더 소중히 여겨지고 있는면이며 피난 열차를 이렇게 직접 타고있는걸 경험하니, 이제 나도 제대로 느끼고 있나보다.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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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에 지나가던 꼬마아이가 흔들리는 기차의 힘에 못이겨 넘어지는걸 바로 옆 좌석에 앉아있던 남자가 재빨리 잡아일으켰다. 소녀는 맹한 눈으로 이마에 열이 좀 있는듯했고 몸의 균형을 잘 잡지 못했다. 뒤에서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이 이제서야 눈치챘는지 놀라달려와서는 딸을 안으며 그에게 말했다.

"고, 고맙습니다. 너무 사람이 많아서 그만. 얘, 괜찮니?"
"흐음, 멀미를 좀 심하게 하는것 같네요."
"네?"

남자는 주머니에서꺼낸 작고 네모난 흰색 종이조가리같은것을 한조각 때어낸후 소녀의 손목에 탁 붙였고 보호자에게는 약병을 하나 내밀며 말했다.

"식후에 먹이면 그래도 전보다는 괜찮아질겁니다. 그리고 이 손목에 붙인건 한 세시간 정도 뒤에 떼시면 되고요."
"아아, 감사합니다. 의사신가 보군요."
"뭐 비슷한거지요. 그럼 몸조심하십시요."

꾸벅꾸벅 인사를 하면서 여성은 아이를 데리고 그자리를 천천히 떠났고 그러던 도중 소녀는 남자쪽을 향해 슬쩍 몸을 반정도 돌린후 손을 흔들며 인사를 표했다. 남자도 씨익 웃으며 좌석에 앉은채 손을 흔든후 다시 노트와 펜을 잡았다.

"흐음, 아무래도 일기는 나중에 써야겠군."

검은 바지에 검은 상의와 조끼, 그리고 마찬가지로 검은 머리카락을 위로 세운채 수염도 면도를 안했는지 듬성듬성 나있는 남자는 노트를 탁 접고선 가방속에 넣은후 창밖을 내다보았다.
불과 몇시간전만해도 그가 머물러있었던 도시가 이제는 완전히 잿더미가 된채 뿌연 연기를 내뿜고 있다. 그러던중 빌딩하나가 툭하고 무너져내린다. 그는 묵묵히 그것을 지켜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거지? 처음에는 실종사건에서부터 시작되더니, 테러리스트로 바뀌었고, 이제는 전쟁이라니..도대체 어느 국가가 시작했단거야? 그보다 지금 세계의 어느 누구나 힘든 상황이 뻔할텐데 전쟁을 일으킬만한 국가라는게 존재한단말인가? 설령 존재한다해도 이렇게 모두가 살기힘든 지금 전쟁이라니..'

"저, 저게 뭐지?"

'?'

조용한 승강칸안에서 누군가가 또렷히 말한 소리에 모두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말했던 사람이 가리키고 있는 쪽을 향해 한명한명 고개를 돌리기 시작하면서 맨 끝칸에, 그 의사인것 같은 흑발의 남자쪽도 고개를 돌렸다.
멀리 떨어져있는 숲속에서 사람이 나오고 있다. 몸에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머리에는 붕대도 감은 남자가 이쪽을 향해 애처롭게 달려오고 있지만 기차안 사람들의 시선을 잡은건 그 남자가 아니었다. 남자를 바싹 쫓아 달려오고 있는것, 웬 녹색의 거대한 슬라임같아 보이는 물질은 그대로 남자를 뒤집어 삼켜버렸고 괴로워하는 남자의 몸을 그대로 자신의 안에 가둔채 그대로 그 사람의 몸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귀, 코, 입등을 통해 들어간 녹색물질, 남자는 그대로 멍하니 서있었고 잠시후 피부와 머리카락이 모두 녹색으로 변하였다.

"사, 사람이?!"
"뭐, 뭐야 저게!!"
"뭐가 어떻게 된거지?!"

약 몇 km 떨어진 기차에서 승객들은, 피난민들은 모두들 놀라 소리치며 아우성거렸다. 곧이어 녹색으로 피부와 머리카락이 변한 그 남자는 갑자기 절고있던 다리를 쭉 편채 제대로 걷기 시작하였고 뒤이어 숲속에서는 그와 똑같이 피부와 머리빛이 녹색으로 변한 수십명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살피던 그들의 시야에 멀리서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있던 기차가 들어왔고, 그러자 그둘중 무기를 든 자들이 이쪽을 향해 마구 총이며 발칸포같은것을 쏘기 시작했다.
피난민들도 처음에는 고개와 몸을 털썩 쑥였지만 곧이어 저들의 무기가 여기까지 닿지 않는다는걸 알자 안심하고 일어서선 서로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뭐지, 저것들은? 게다가 아까 그 이상한 녹색모양의 것은 또 뭐야?"
"새, 생화학 무기인가?"
"괴물이고 뭐고 좌우지간 어서 빨리 여길 떠나고싶어 미치겠군."
"자, 잠깐 저길 봐요!!"

뒤이어 숲속에서 녹색피부의 괴물들을 뚫고 나온 것, 캐터펄트가 달려있고 크기는 3,4m되보이고 전신에 장갑이 두뤄진채 포대가 하나 달려있는 그건 틀림없는 탱크들이었다. 위의 기관포가 달린곳에는 마찬가지로 녹색피부의 인간이 탄채로 말이다. 천천히 포대가 각도를 조정하며 기차쪽을 향해 겨누었다.

"!"

그리고 두말할것없이 그 숲으로부터 포탄이 날아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나둘 처음엔 근처에 떨어진 포탄은 세번째부터는 명중을 하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기차칸 하나하나가 폭발을 일으키며 뒤집어져나갔다.
전승강칸에 있는 승객들은 모두들 너나 가릴것없이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고 결국 맨앞에서 승강칸을 이끌던 열차도 포탄의 재물이 되어 박살이 나자 뒤따르던 승강칸들이 모두들 철로에서 바깥으로 튕겨나가지며 나가떨어졌다. 그렇게 몇분이 흘렀다.

"으으.."

깨진 유리조각으로 얼굴과 팔 여기저기에 긁혀서 흘러나오고있는 피를 닦으며, 조금전 일기를 썼고 아이에게 멀미약을 주었던 흑발에 수염이 군데군데 면도를 안했는지 약간 나있던 남자가 옆으로 기울어진 승강칸안에서 쓰러진채로 눈을 떳다. 왼쪽 허벅지에서 통증이 느껴져온다. 기차칸이 기울어질때의 충격으로 박살난 유리 파편하나가 박혀버린것이다. 다행히도 그다지 큰 상처는 아니었기에 별다른 무리없이 뽑고 버렸지만 그와중에 일어서면서 그는 자기를 위에서 덮고있던 무언가가 옆으로 쓰러진것을 보게되었다.
시체다. 온몸이 유리 조각과 나무조각으로 박힌채 죽어있는 시체가 굴러떨어졌다.

"히이익!"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덜덜거리며 떨고있는 손과발을 감싸며 주위를 둘러본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쏟으며 몇몇은 신체의 일부를 잃어버린채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그는 두려움을 느끼자 그와 함께 추위또한 느끼면서 더욱 몸을 움츠렸다.

'마, 만약 이 사람이 내 위에서 나를 감싸게되지 않았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나, 나도 저렇게 유리조각에 찔려 죽었겠지..'

뭔가가 그를 감싸고 있었다. 어서빨리 이 자리를 떠나야한다는걸 머리는 알고 있는데 몸은 움직이지가 않았다. 무언가가 그의 손과 발을 꽉 움켜쥔채 놓아주질 않는다. 공포라는 이름의 족쇄가 그의 몸을 묶으며 차츰 완전히 침식해가고있던 순간이었다.

"어, 엄마.."
"!"

누군가가 있다. 자기말고도 살아남은 누군가가 있다. 그것도 자신보다 한참 나이어린 꼬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애는 어떤 상황에 놓여있을까? 혹시나 무언가에 깔려서 나오질 못하고 도움을 청하고 있는게 아닌걸까?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씩 공포에게서 남자는 몸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팔과 다리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여가면서 승강칸으로부터 나가본다. 계속 엄마엄마하며 찾는 꼬마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남자는 목소리에 이끌려 자신의 귀를 믿으며 걸어갔고 마침내 승강칸아래에 짖이겨 죽어있는 한 여성의 시체옆에서 울고있는 소녀를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이 멀미를 약간치료해준 그 소녀였다.

"저, 저기 괜찮니?"
"엄마가..엄마가 일어나질 않아요."
"얘야.."
"죽은거 아니죠? 아닌거 맞죠? 아저씨 의사죠? 아까 나를 고쳐줬죠? 부탁이에요! 엄마를..엄마를 살려주세요!"
"..."

뭐라 위로해줄 말이 생겨나지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바라볼뿐, 이래서인지 의사라고 불리기가 참 싫은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가만히 지켜보는게 제 3자로써는 최선일거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지고 있을때였다.



"!"

무언가, 판자같은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꽤나 많은 수의 발자국 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뭔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그는 몸을 숨기면서 천천히 쓰러져있는 열차칸을 벽으로 삼으며 얼굴만을 살짝 내밀었다.
좀전 그 숲속에 있었던 녹색피부의 인간들이다. 새로운 생화학무기인지 뭔지는 몰라도 그 이상한 물체에 잠식당한것으로 추정되는 인간들. 모두들 하나둘 총이나 쇠파이프, 각목같은 무기를 든채 여기저기를 걸어다니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 몇명이 손을 든채 항복을 표시하는 것을 보자, 이 녹색피부의 인간들을 거침없이 총을 쏘아선 한명도 남김없이 죽여버렸다. 이미 죽은게 확실할텐데도 계속 녀석들은 기분이 내킬때까지 방아쇠를 당겼고 총이없는 무리는 파이프같이 자신들이 들고있는 무기로 이미 죽은 시체를 냅다 내리쳤다.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게 틀림없었다. 아무래도 저들에게 포로나 인질같은 것은 쓸모가 없는 모양이었다. 약간 수염이 나있는 턱을 손가락으로 긁으며 일단 그는 소녀에게 돌아가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잘들어. 아무것도 생각하지마. 살아남는다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마."
"하, 하지만 엄마가.."
"생각하지마! 살아남는것만 생각해. 그거외에는 부탁이니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다오. 미안하구나.."

사과를 듣자 소녀도 약간 마음의 변화가 있었는지 울음을 멈췄다. 그런 소녀에게 남자는 등을 보이며 업힐것을 권했고 소녀가 타자, 곧바로 일어서서는 다시 조용히 말했다.

"알았지? 아무 소리도 내면 안돼. 절대로 아무 소리도 내서는 안된다."
"네."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며 녀석들이 있는곳으로부터 발소리를 최대한 줄인채 달려갔다. 일단은 무작정 도망은 치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어디로 도망을 칠지, 그리고 도망을 쳐서는 뭐할지는 전혀 떠오르지가 않았다. 일단은 가만히 있는것보다는 낫다라고 생각을하며 녀석들에게서 멀어져갈때였다.

"큭!"

커다란 나뭇더미들이 완전히 가리고 있어서 그 너머가 보이지 않았기때문에 설마 이곳을 돌자마자 곧바로 그 녹색피부의 녀석 하나와 정면에서 마주칠줄은 몰랐다.
다행히도 녀석은 총도 칼도 어떤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대로 발로 머리를 차서 선제공격을 가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할때였다.

"꺄아아아아악!"

갑자기 나타난 녹색면상에 놀란 소녀가 손으로 자기 입을 막으면서 크게 비명을 질렀다. 따지고보면 열넷살정도로 보이는 소녀에게 기대한것이 문제였다. 하긴, 어른이라도 이 상황에선 비명을 지를테니 말이다. 어쨋든 이로인해 위치가 발각된건 피할 수 없는 사실, 남자는 이빨을 꽉 깨물면서 허리를 왼쪽으로 살짝 굽히며 오른발을 크게 돌려 눈앞에있는 적의 머리를 까버렸다.
예상대로 그 상황에서 머리를, 그것도 깨끗히 돌려차기가 들어가자 옆에서 녀석을 가려주었던 나뭇더미에 퍽하고 박히면서 움직일 김새를 보이진 않았지만 이미 소녀의 비명소리로 위치가 제대로 들켰으니 숨도 쉴시간이 부족할만큼 바쁜 상황이었다. 좀전에 도망쳐왔던 위치로부터 하나둘 그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달리고 또 달렸다.

"죄송..해요.."

뒤에 업혀있던 소녀가 사과를 해온다. 남자는 순간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앞으론 조심해라."

그렇게 한두마디 대화를 나누자 공포라고 해야할까, 아무튼 자기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는게 살짝 가벼워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덜덜덜 떨면서 달리고 움직이고 있던 손과 다리가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왔고 호흡도 아까전처럼 그렇게 거칠진 않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른으로써 아이에게 안심을 주기위한 잘난척때문인지 조금은 진정이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도중, 뒤쪽에 있던 녀석들로부터는 따라잡히지 않았지만 적들이 그쪽에만 온게 아닌지라 무조건 이쪽으로 도망간다고 해결되는게 아니었다. 기관총을 들고있는 녹색 피부의 녀석들 몇명과 어느새 그렇게 조우하게되자, 남자는 급히 몸을 근처에있던 기차칸으로 던졌다.

투다다다다다당

한발짝만이라도 늦었으면 어떤 꼴이 됐을지 상상하기도 끔찍하게 만드는 총소리가 들려온다. 허리를 숙인채 숨을 헐떡거리며 고개를 돌리던 흑발의 남자는 옆에있던 얼마 떨어지지 않은 다른 열차칸을 보곤 소녀를 향해 말했다.

"좋았어. 총알이 다 떨어져서 총소리가 멈출때, 곧바로 저길로 전력질주할꺼야, 알았지? 꽉 붙잡아야한다."
"네."

타다다다다당

총을 한개만 가지고 있는게 아닌지, 수가 늘었는지 소리는 예상외로 꽤나 길게 지속되었고 둘은 숨을 죽인채 계속 꼼짝도 하지않고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후, 총소리가 멎었다.

"그럼 간다! 꽉 붙잡아!!"
"네, 네!!"

힘찬 기합소리를 내며 남자는 열차칸에서 빠져나와 몇 십m 떨어진채 쓰러져있는 다음 열차칸을 향해 전력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살짝 달리는 도중 적들을 향해 눈을 돌려보니 다행히도 군복을 입고있지 않은게 정식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이었다. 탄창을 가는게 너무나도 어설펐고 그래서인지 심지어 떨어뜨리기도 했다. 다행히도 별다른 큰 무리없이 다음 칸에 도착하자, 남자는 바로 털썩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히며 숨을 헐떡였다.

"하아, 하아. 괜찮니?"
"네, 네."
"헤헷, 생각보단 별거 아니지?"

땀을 뻘뻘흘리면서도 억지로 웃음을 지은채 말하는 남자의 표정을 보곤 소녀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안심을 하고 긴장을 푼순간 남자의 머리를 향해 막대기 하나가 돌려쳐졌다.
피를 퍽 튀기며 남자는 머리를 잡은채 땅바닥에 구르면서 고통을 호소했고 소녀는 남자의 뒤에서 떨어져 근처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눈앞에는 막대기를 든채 피부와 머리카락이 녹색인 중년의 남자가 씩씩거리며 서있는게 보였다. 너무 안심한 나머지 주변을 체크하지 않아서 나온 결과였다.
녹색피부의 중년남자는 막대기를 양손으로 들고는 이마에 피가 흐르며 손으로는 머리를 잡고있던 그 흑발의 남자를 향해 다가가서는 두 팔을 높이 들곤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아아!"

빡!

막대기로 남자의 머리를 내리치려하는 순간 머리에 돌맹이가 들이박아졌다. 돌맹이가 날아온 방향으로 방금 맞은 부위에선 피를 뚝뚝흘리며 고개를 돌리는 녹색 피부의 남자, 조금전까지만해도 그 흑발남자에게 업혀져있던 소녀였다.
피부도 머리카락도 녹색인 인간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것이 돌아보자 소녀는 흠칫 놀라며 털썩 주저앉았고 그런 그녀를 향해 이 괴물은 터벅터벅 막대기를 든채 걸어갔다. 곧이어 어느정도 흑발의 남자가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상황은 늦을때로 또 늦은 후였다.

"아, 안돼! 그만둬!!"

퍼억! 퍽 퍽 퍽 퍽 퍼억 퍼억!!

남자의 외침은 전혀 들리지 않았는지 이 괴물은 그대로 막대기를 소녀의 머리를 향해 냅다 내리쳤고 그렇게 또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 조금씩 조금씩 피가 튀겨나온다. 땅바닥으로 튀기고 지금 내리치고있는 녹색피부의 남자에게도 튀겨지고 그렇게 이마에는 피를 흘리고있는 흑발 남자의 앞에도 튀겨졌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앞에서, 그것도 열몇살 소녀가 자기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져나왔고 그 분노는 당연히 지금도 마구 시체를 내리치고 있는 녀석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아아아!!"
"?!"

조금전 소녀가 던졌던 돌맹이를 들어선 힘껏 녀석의 머리를 향해 날렸다. 빠악하고 소리가 나서는 녀석은 몸의 균형을 잡지못하고 주춤거린채 이마에선 아까보다 훨씬 더 큰 피를 흘렸다. 그렇게 뚝뚝 흐르는게 상당한 치명상이었지만 녀석은 그대로 꾿꾿히 서있었고 그리고 그대로 녀석이 고개를 들어올렸을때는 흑발 남자가 어느새 근처에서 주운 굵은 판자로 다시 머리를 후려갈길 때였다.

"으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남자는 쓰러진 그 녹색피부의 괴물을 향해 연신 틈을 주지않고 녀석이 떨어뜨린 막대기를 들고는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머리, 팔, 어깨, 가슴 등등 사정없이 온몸을 내리쳤다. 그렇게 한참을 내리치고 멈췄을때는, 적은 이미 온몸을 피로 흠뻑 적시고 있었고 자신은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신채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다.

"헉, 헉, 헉, 헉."

"그래, 분은 풀리셨나?"

"!"

막대기를 양손으로 꽉 쥔채 경계태세를 갖춘 상태로 몸을 돌렸다. 이번엔 긴 금색머리에 열여덟살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서있다. 검게 그을린 오른팔은 상의도 그쪽 부위만 찢어진게 부상을 입은것 같았고, 피부와 머리칼이 녹색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에 안심하고 있을순 없었다.
자기 발치에서 약 5m정도 떨어진 곳에 서있는 소녀는 왼손에는 손바닥만한 스크린이 달려있는 이상한 기기를 든채 자신과 기기를 번갈아보며 바라보고 있었다. 포인트가 이번엔 정중앙에 있었다. 바로 자기 앞에있다는 뜻이었다.

"하긴 맨몸으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것은 너의 신체도 보통이 아니란 얘기, 적합자라는 얘기군."
"헉, 헉. 무, 무슨 소리야. 너는 누구지?"
"하지만 너무 물렀어."
"뭐?"

소녀는 씨익 사나운 눈빛을 띈채 살짝 미소를 띄며 말했다.

"설마 그정도로 녀석들이 죽을거란 생각을 하는거야?"
"?!"

다리를 무언가가 덥썩하고 붙잡았다. 두개골이 깨졌을텐데도, 온몸이 부러졌을테인데도, 그렇게 전신에 피를 두르고 있는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땅바닥에 누워있던 녹색 피부의 녀석은 조금씩 몸을 움직이면서 팔로는 남자의 다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뭐, 뭐야 이녀석?! 죽은게 아니었어?!?"

쉬익, 당황하고 있는 남자와 달리 소녀는 재빨리 남자곁으로 다가가서는 발로 축구공을 차듯 힘껏 땅바닥에 피투성이로 어기적거리며 움직이던 그 녹색피부의 남자를 찼다. 허리쪽을 발로 강타당한 그 괴물은 공중에 1m정도 띄워지면서 몇 m를 날아가더니 기차칸 벽을 부수며 그대로 안으로 쳐박아졌다. 소녀라고는, 아니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정도의 굉장한 힘, 남자의 눈에는 이제 이 소녀의 피부와 긴 금발마저도 색만다를뿐, 이 아이도 괴물이라고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스태미너는 별로 높지 않은것이었을까? 방금전 말도안되는 일격을 가한 소녀는 숨을 몇번 헐떡이더니 이내 양 무릎을 땅에 털썩 떨구었다.

"하아, 하아. 역시 예상외로 부상이 너무 심해."
"어, 어이 이봐 괜찮니?"

그래도 자신을 구해준 것을 보아서 최소한 적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선지, 남자가 가까이 소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하지만 기껏 용기를 내며 건넨 호의에 소녀의 반응은 냉담하기만했다. 씨익 일그러진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그 모습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소녀가 아니었다.

"흥, 괜찮지 않으면 어떻게 할건데? 당신이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래보여도 의사쪽에는 약간 속한다고. 잠깐 상처 좀 봐보자."
"필요없어!"

거칠게 그의 팔을 치면서 소녀가 외쳤다.

"소용없어. 고맙긴하지만 오히려 폐만끼치는 꼴이야. 그보다 남걱정을 할 시간엔 자기걱정이나 하지그래?"
"!"

시간은 고작해야 5분정도밖에 흐르지 않았을텐데 어느새 둘은 적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어있었다. 약 70m정도 떨어진채 녹색피부의 인간들이 원으로 둘러 싸면서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있다. 총으로 무장한 군인도 있고 더 멀리선 탱크도 한두대 오는게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거기다가 방금전 분명, 소녀의 발로 차여서 말도 안되는 데미지를 받아 열차칸안으로 쳐박혀 완전히 시체가 되어야했을 녀석도, 다시 조금씩 움직이며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팔은 하나 없고 몰골도 피가 여기저기서 뿜어져나오는게 말이 아니었는대도 녀석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이녀석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야. 아메바같은 단세포 생물이라고 불러야할까? 판타지소설에 나오는 슬라임같은 놈인데 우리는 '멜프'라고 부르지. 녀석들은 저렇게 생물의 몸속에 들어가서는 단순한 파괴본능만을 내세운채 인간을 공격하지. 몸이 부서져도 내부에서 저렇게 어떻게든 재구성을 하기때문에 웬만한 무기로 녀석들을 죽이는건 무리야."

반쯤 뜯어진 허리 사이로 녹색의 물질들이 서로 마치 진뜨기같이 이어져가면서 다시 허리를 붙이고 있었다. 떨어진 팔도 녹색물질이 안에서, 그리고 잘린 어깨쪽에서 나와 서로를 잇는다. 이렇게되고보니 녀석들에게 있어서 인간은 단순히 껍데기 같았다. 살점이 떨어져나간 곳을 통해 녹색의 진득진득한 물질, '멜프'라는 녀석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쨋든 지금은 눈앞에 나타난 새로운 생물로 감상에 빠질때가 아니다. 어서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현실에 직시하게되자, 남자는 허리를 굽히며 소녀에게 손을 내밀곤 말했다.

"일어설 수 있겠어?"
"하아, 하아. 못 들었어? 자기걱정이나 하라고."
"그것도 같이 하기로 하지."

남자가 부축을 하면서 소녀를 일으켰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소녀는 점점 눈을 뜰 힘도 잃어가는듯 했다. 이제 적들과의 거리는 약 20m로 좁혀져왔다. 왼손에 쥔 기기의 스크린에선 여전히 정중앙의 포인트가 반짝거리고 있다. 마침내 소녀는 결심을 한듯, 중얼거렸다.

"..기로 하지."
"뭐?"

남자가 물었다.

"그 상냥함에 나도 걸어보기로 하지."
"무슨 말이야. 어이, 괜찮아?"
"살고 싶나?"

소녀가 몸이 축 처진채로 옆모습에서 눈동자만을 그를 향해 돌린후 다시 말했다.

"이대로 있으면 녀석들의 동료가되거나 아니면 처참히 살해당할뿐이다. 어떤가, 무슨 일을 해서도 살아남고 싶지 않은가?"
"그야 살아남고는 싶지.."
"그렇다면 나와 계약하라. 나는 그대에게 살아남을 힘을 주겠다. 대신 그대는 남은 목숨을 저들과의 전쟁을 위해, 어쩌면 평생을 소비해야할것이다. 저들이 멸망할때까지, 그대는 계속 싸우고 또 싸워나가야할 것이다. 그런데도 계약하겠나?"
"갑자기 무슨 소리야? 어이, 너 괜찮냐? 머리에 이상이 생긴거 같은데?"
"잔말말고 대답이나해라! 계약, 하겠나, 안하겠나?!"

시끄럽게 소녀가 소리를 치는 사이, 근처에 포탄이 하나 떨어졌다. 흙을 전부다 뒤엎고 모래연기를 내뿜으며 일어난 폭발은, 둘또한 직접적으로 데미지를 주진 않았으나 간접적인 충격파로 몇 m나 몸이 나가떨어졌어야했다.
온몸이 여기저기가 쑤신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가 않았다. 불과 몇 m 앞에 녹색 피부의 인간들이 무기를 든채 걸어오고 있었다. 공포에 휩싸여 제정신을 잃어가고 있는 순간, 그의 근처에 떨어져있던 소녀가 다시 외쳤다.

"계약을 하겠나!"
"하, 하겠어! 계약인지 뭔지모르겠지만 하겠다고!""

남자의 대답이 끝나자, 바로 소녀는 몸을 돌려선 하늘을 향하게하곤 오른팔을 척 들어올렸다.

"계약자 확인완료. 아리엘 전송 개시!"

철컥 철커덩

왼팔이 열리고 닫히면서 속에서 톱니바퀴와 기타 장비, 기계들이 움직이면서 총구같은것이 나오더니 하늘을 향해 빛을 쏘았다. 폭죽같이 길게 자취를 남기면서 빛은 유성같이 날아갔고 뒤이어 몇분후, 하늘에서 검고 작은 물체가 내려오더니 그대로 어마어마한 속도를 내면서 둘의 근처에 쿵하고 떨어졌다.
거대한 크기의 이것은 검은색으로 덮혀진 금속으로 전신을 덮고 있었는데 포즈이며 팔과 다리가 달려있는 것이 틀림없는 로봇이었다. 사람과 외형이 매우 비슷하게 생긴, 허리와 다리를 굽힌 상태에서 약 10m정도의 높이를 유지한 검은 로봇이었다.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두려움반, 호기심반을 가진채 소녀쪽을 향해 눈을 돌린 남자는 그대로 한번 더 가슴이 철렁이게 된다.

'파, 팔이 기계잖아?!'

다시 철컹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소녀의 왼팔은 평범한 다른 사람의 팔과 같은 형태로 돌아왔다. 여전히 숨을 몰아쉬며 일어서는 소녀, 그러던중 흑발에 수염이 듬성듬성 나있는, 자신과 방금전 계약을 했던 남자가 멍하니 이쪽만을 바라보고있는 것을 보자 그녀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뭐해! 어서 피하란 말이야!!"
"뭐?"

스윽 머리를 뒤로 돌리자 녹색 피부와 머리카락을 가진 인간이 수십명 자신의 뒤에 서있는것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들 각기 손에 막대기와 꼬챙이 같은것을 올려든채 그를 향해 막 내리치고 있던 참이었다. 피하기는 이미 터무니없이 늦은 상황, 그도 자신이 죽을것이란걸 필연적으로 느낀 그때였다. 위쪽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자신과 그들을 덮더니 그대로 무언가가 녀석들을 덮쳤다.
충격으로 일어난 흙먼지때문에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채 남자가 살며시 눈을뜨며 상황을 살피자, 아까전 하늘에서 떨어진 커다란 검은 로봇, 그것의 주먹이 그의 머리위를 지나 그대로 그 괴물들을 땅속깊숙이 처박은채 꾹꾹 누르며 완전히 묵사발을 내고 있었다. 남자는 그 로봇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후훗, 일단 아리엘은 완전히 그쪽을 계약자로써 받아들인것 같군."
"아리엘?"
"응, 아리엘. 앞으로 우리와 함께 싸울 그 검은 로봇의 이름이자 당신의 서포터로써 일할 나의 이름이지."
"싸워? 써포터? 큭!"

대화할 시간도 허용되지 않은듯, 이쪽이 로봇이 나타나자 저쪽도 그에 상응하게 맞써려는듯 탱크를 이끌고 포탄을 마구 쏘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주변이 터지는 충격에 몸을 가눌지 못하고 남자는 풀썩 주저앉은채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이상태론.."
"뭐해, 어서 타지 않고!"

포탄이 두렵지도 않았는지 소녀는 그 검은 로봇의 가슴 위쪽에 열린 구멍안에 어느샌가 들어가선 상체만을 내민채 이쪽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후 그가 그쪽을 향해 달려가선 안으로 들어가자 다시 가슴팍이 덮혀졌다.

"이, 이건.."

전등으로 밝혀져서 보이는 안은 의자며 여러 기기장치들이 달려있는게 조종석 같아 보였다. 두개의 좌석중 뒤쪽좌석에는 아까 그 소녀가 앉아선 남자보고 앞쪽에 앉으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에너지 충전율 97%. 각부위 문제없음, 손상율 제로."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손을 빠르게 움직이며 이것저것 버튼을 누르는 소녀, 그러던중 남자의 앞에 있던 스크린이 번쩍 켜지면서 주변의 영상이 보여졌다.

"카메라 작동완료. 아리엘 기동개시."

기이이이잉

다리와 허리를 펴면서 로봇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스크린에 비춰지는 영상에선 적들은 여전히 포탄을 쏘곤 있었지만 이 기체에게 별다른 타격은 커녕 흔들림도 딱히 눈에띄게 주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공격받는데도 적은 떨림에 남자는 신기한 나머지 중얼거렸다.

"괴, 굉장한데. 로봇이라니, 엄청난 방어력이구나."
"놀라긴 일러. 저길봐!"

멀리 스크린에서 비추는 한 언덕쪽에선 적들이 서로 뒤엉킨채 한곳에 모이는게 보였다. 탱크고 전차고 모두다 한곳에 모여들면서 서로를 찌부시키기도하고 그렇게 밟고 지나가기도 한다.

"저녀석들 뭐하는 거지? 갑자기 서로를 죽이는 건가?"
"그런게 아니야. 시작된거다.."
"시작되?"
"그래. 놈들도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거야. 우리를 죽이기위해서.."

그렇게 서로를 밟고 누르던 녀석들은 어느새 한데 뒤엉켜서는 녹색물질을 뿜으며 물컹물컹 움직이더니 하나의 무언가로 재구성이 되고 있었다. 탱크도 전차도 철들도 그것에 녹아들면서 같이 섞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액체같이 끈적끈적한 상태에서 위로 조금씩 서면서 그것은 점점 커져만 갔고 마침내 인간과 비슷하게 팔과 다리, 몸통을 지닌 거대한 괴물로 변해버렸다.
크기는 18m정도로 보이는 킹콩같이 변한 녀석은 자신의 몸통윗부분에 입을 쩍버린채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뭐, 뭐야 저거?! 하나로 합체했어!!"
"놀라지만 말고 어서 너도 준비해! 온다고!!"
"!"

말같이 굽은 다리를 쿵쿵 움직이면서 그 녹색괴물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양팔을 척 펼치고 입을 크게 벌린채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한다.
무언가 조취를 취하기도 전에 적은 이미 그 입만 달려있는 커다란 얼굴을 둘이 타고 있는 로봇의 바로 앞에다 터엉 내밀었고, 스크린에 갑자기 클로즈업된 괴물의 이빨과 그 혐오스런 모습에 남자는 좌석에 앉은채 아무 조종관이나 꽉 잡고는 비명을 질렀다.

"아, 안돼에에에에!!"







무언가 보이지 않을때가 있다

아무것도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못한채 덜덜 떨고만 있을때가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일상이 지루하다고 느낀게 말이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렇게 조금씩 타락해져만 가던게 말이다

그리고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나는 이토록 내가 싫어한 나로 변해버리고 만것일까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묻겠다

지금의 내게도 기회란게 있는 것일까

나는 정말로 노력할 가치가 있는 존재일까

아니면 다른 성공할 자들을 위해서 그들의 발판이 되기위해서

제거되야만하는 그런 쓰레기 같은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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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면 한분은 아시겠지만 전에 받은 설정을 사용할까합니다.

물론 엄청 수정되겠지만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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