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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Antares[0.5막] - Follow me 10 -

2006.05.28 16:42

히이로 조회 수:220

"저놈이 기사들의 총지휘관이다."

우드득∼!

팔을 이리저리 휘두르자 경쾌한 소리가 났다. 라펜드의 눈은 하이만 기사단장에게 고정된 채 떠날 줄을 모르고 있었다. 하이만이 노장의 직감으로 마르셀을 알아봤다면 라펜드는 스스로 칭하는 소위, 전사의 감각으로 하이만이 대장이라 생각했다. 또한 그가 마르셀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라펜드의 입가에 미소가 흐릿하게 걸려 있었다.
하이만을 본 순간, 라펜드는 그를 사냥감으로 점찍은 것이다.

"어이, 비켜라."

상퀼로트들을 밀치며 라펜드는 서둘러 하이만이 달려올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상대의 목표물을 알고 있는 지금, 진로를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을 일.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마르셀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적의 지휘관을 상대할 수 있다는 짜릿한 쾌감이 그의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전투도 못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거물이 제 발로 자신에게 기어들어왔으니 그가 흥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채앵∼! 서걱!

하이만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여지없이 날카로운 금속음, 살이 베이는 섬뜩한 소리, 비릿한 혈향과 고통스런 비명만이 남아있었다. 그가 들고 있는 검은 붉은 피로 목욕을 한 지 오래. 전설 속에서나 전해내려온다던 붉은 기사의 검이 그의 손에 들려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런 하이만의 선전에 상퀼로트는 물론, 이제는 에르겔 마법병단까지 조심스럽게 그를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역시 이름 뿐인 부대는 아니었군. 포위가 견고하구나."

베어도 베어도 줄지않고 방어진을 형성하는 상퀼로트를 보며 하이만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린다. 그때, 갑작스런 돌풍과 더불어 뜨거운 열기가 그의 등 뒤에서 느껴졌다. 재빨리 고개를 숙인 그의 머리 위로 붉은 빛을 띈 정령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크윽∼!"

왼쪽 옆구리에 둔탁한 통증이 느껴짐과 동시에 머리에도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온 힘을 다해 중심을 잡았기 망정이지, 자칫했다간 그대로 낙마했을 것이다. 가벼운 통증이 아닌 듯 계속해서 적에게 당한 부위가 욱신욱신 거렸다. 다른 마법병의 공격에 당한 것이다.
하이만은 주변의 상퀼로트를 경계하면서도, 이제는 동시에 이어질 마법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읏!"

왼쪽 눈의 시야가 갑자기 막혀 버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밀려오는 쓰라림. 역전 노장인 하이만조차 신음을 흘릴 정도로 큰 고통이었다. 머리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혈액이 그의 눈을 적시기 시작한 것이다. 마음 같아선 투구를 벗어 던지고 지혈을 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자살행위.
그나마 투구 덕분에 충격이 둔화되어 정신을 잃지 않은 것이지, 맨 머리에 맞았다면 그대로 즉사했을지도 모를 공격이었다.

"조무래기들부터 처리해야겠군."

위력적인 마법 공격 덕분인지 자연스럽게 하이만의 마음이 변했다. 왼쪽 눈을 찡그린 채 말을 몰아 급격히 선회하는 하이만 기사단장. 대부분의 상퀼로트가 마르셀을 호위하기 위해 진형을 짠 상태에서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기에, 적의 저항이 상대적으로 덜했다. 물론 그 대신 마법병단의 공격이 거세어져 갔지만…….

"으랴아아앗!"

까앙∼! 휘익∼! 휘익∼!

마법병들이 소환한 정령들에게 그대로 맞서거나 피하면서 하이만은 전진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몸은 피투성이가 되어갔지만 속도는 줄지 않았다. 불의정령에게 당했는지 갑옷 곳곳이 검게 그을려 있었고, 그외 바람이나 땅의 정령에게도 공격을 허용했는지 몸 구석구석에 크고 작은 상처가 나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공격도 하이만의 의지를 꺾지 못한 듯, 검을 잡은 양 손에는 여전히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하이만은 한 마법병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

"꺄아아아아악!"

"두려워하지마라. 곧 편하게 해줄터이니."

서걱……쿠웅∼!

여인의 자지러지는 비병소리가 한순간 모든 것들을 정지시켰다. 적, 아군을 떠나 모든 이의 시선이 비명의 근원지를 향하고 있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듯 한 젊은 여마법사의 몸이 허리를 기준으로 깔끔하게 두조각으로 나뉘고 있었다.
사방으로 피를 흩뿌리며 허공에 치솟았다가, 육중한 음색을 풍기며 땅 아래로 떨어지는 그녀의 상반신. 움직이지 않는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다.

"이 개자식!"

격노한 라펜드의 음성이 주위를 뒤흔든다. 하이만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달려 들어가는 바람에 부지런히 그의 뒤를 쫓던 라펜드는 지금 이 장면을 누구보다 생생히 목격했다. 적 지휘관에게 목숨을 잃은 마법병은 라펜드와 면식이 있는 자였다.
중앙부대를 뒤쫓아 돌격할 때, 마르셀에게 마르텔산에 복병이 있다는 것을 경고 했던 마법병. 솔직히 말하면 공기계열 정령마법사의 특징인 노출이 심한 복장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았던 상대. 자신이 뚫어지게 바라보는 바람에 얼굴이 붉어져 마르셀 뒤로 숨는 모습이 아직도 그의 기억에 생생했다.

"거기서라! 죽여버리겠어! 반드시!"

격해진 감정을 여과없이 그대로 표출하며 하이만에게 달려드는 라펜드였다. 첫눈에 그녀에 반한 것 따위의 감정은 아니었다. 단지, 안면이 있는 사람이, 그것도 여자가 잔인하게 살해되는 모습을 보자 알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것은 라펜드 혼자 만의 감정이 아닌, 상퀼로트와 에르겔 마법병단 소속의 남자들 모두의 감정 상태였다.

"으아아아아앗! 서라고 했지이!!"

"……기운이 넘치는 놈이군."

하이만도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라펜드의 존재를 인식한 듯, 그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내뱉는다. 그리고는 상대를 해주겠다는 의미인지 말머리를 라펜드 쪽으로 향한 후 달리기 시작했다. 달려드는 보병과 그걸 상대하는 기병의 싸움. 라펜드는 3년전 이름모를 여기사에게 당했던 치욕스런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놈을 잡아 공을 세우겠다!'

마침내 두사람이 맞부딪칠 수 있을정도로 거리가 좁혀졌다. 라펜드는 고함을 질러 있는 힘껏 투지를 끌어올리는 한편, 계속해서 하이만의 검을 주시하고 있었다. 상대는 분명 그때와 같은 속임수를 쓸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은 그때의 찰나를 파고들어 치명타를 입혀야만 했다.
말을 공격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 상대의 검에 자신이 당할 확률도 높았으므로 자제해야 했다.

"으랴압!"

라펜드의 건틀릿이 하이만의 검을 향해 달려든다. 주먹을 내지르는 그의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검을 들고 휘두르는 것과 주먹을 휘두르는 것에는 확연한 힘의 차이가 존재했다. 상대 정도의 지휘관이라면 그 정도는 알고 있을터, 반드시 어느순간 검을 들어올려 자신의 등 뒤를 노릴 것이다.
라펜드가 노리는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번에도 당할까보냐!"

"목소리 하난 우렁차군."

라펜드의 외침과 하이만의 혼잣말이 교차되는 가운데 마침내, 두 사람의 무구가 맞부딪칠 지경까지 왔다. 그러나 라펜드의 표정은 자신만만함에서 당황한 기색으로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다. 상대는 속임수는커녕, 정면승부를 노리는 듯 했다. 자신의 손 힘에 자신감이 있는 것일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얼굴로 날아드는 피묻은 검날……. 예상을 빗나가는 상대의 행동에 그는 재빨리 양 손을 교차시키며 하이만의 검을 막아내려 했다.

끼기기기기긱∼!

"응?……허억!"

달리는 말 위에서 있는 힘껏 후리는 검과 건틀릿이 부딪칠 때의 충격을 예상하며, 이를 악물고 팔에 힘을 넣은 라펜드였지만, 그것은커녕 철과 철이 빠르게 긁히는 소리만 나자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라펜드는 비명과도 같은 쉰 목소리를 내며 재빨리 뒤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양 손을 움직여 몸통부분을 막았고, 동시에 용수철처럼 발을 튕겨 최대한 상대와 떨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몸을 튕겼다.

까아앙∼!

이전의 긁혔던 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날카로운 음색, 거기다 팔 뼈에 금이 가는 듯한 강한 충격, 미처 건틀릿이 막지 못했던 왼쪽 어깨 부근에서 피가 솟구쳐 올랐다.

쿠당탕탕∼!

"으윽!"

"호오 제법이군."

중심을 잡지 못하고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지는 라펜드. 제대로 낙법 자세를 취하지 못한 상황에서, 검에 당한 부위에 충격이 오자 극심한 고통이 그를 엄습해왔다. 덕분에 라펜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비명을 지르고 만다.
한편, 그를 베고 지나간 하이만 기사단장은 말머리를 돌려 라펜드를 바라보았는데, 투구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흘러나오는 목소리에는 놀라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크윽! 제…제기랄!"

"젊은이. 패기 못지 않게 실력도 상당하군. 내 검을 상대로 그 정도까지 선전하다니."

"시, 시끄러!"

고통 속에서도 재빨리 일어나 방어자세를 취하는 라펜드를 보며 하이만은 그에게 말을 건다. 그러나 격렬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라펜드.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상대가 자신을 조롱하는 것이라 느꼈던 것이다. 더불어 3년전 여기사에게 당했던 방법으로 똑같이 당한 라펜드는, 자존심에도 이미 많은 상처를 받은 상태였다.

"제기랄! 그때와 같은 방법으로 또 당하다니! 수치다!"

"같은 방법이라니? 무슨 말인가?"

"흥! 방금 네가 나에게 사용한 기술 말이다!"

"으음? 기술이라니? 난 그런 걸 쓴적이 없네. 기사는 암기 같은 건 사용하지 않아."

영문을 모르겠다는 하이만 기사단장의 발언이 라펜드를 더욱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대놓고 자신을 놀리고 있는 기사를 노려보며 라펜드는 애꿎은 자신의 이빨만 부득부득 갈았다.

"기술이니 뭐니라며 흥분해 있는데, 이건 확실히 해야할 것 같군. 기사는 암기 따윈 쓰지 않는다! 아무리 적이고 서로의 피를 보기 위해서 싸운다고는 하지만 상대의 명예정도는 지켜주었으면 하는군! 하물며 자신의 실력이 부족한 것을 다른 이상한 탓으로 모함하지 않길 바란다!"

하이만도 라펜드의 말에 기분이 언짢았는지 엄한 목소리로 말한다. 라펜드는 혼란스러웠다. 자신을 우롱하는 것이라면 저런 반응이 나올 리가 없었다. 분명 끝까지 시치미를 뗐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서 있는 노기사는(목소리를 듣고 라펜드는 상대가 어느정도 나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달랐다.
확실한 증거는 없었지만, 일단 라펜드는 상대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좀 전에, 내 등을 베고 지나가려던 검술, 그게 기술이 아니면 무엇이냐!"

"……등을 베고 지나가려던 검술?"

여전히 거친 라펜드의 말에 하이만은 생각이 잘 나지 않았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이 났는지 가볍게 검면으로 자신의 투구를 탁탁 두들겼다.
그리고는……천지가 떠나갈 정도로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와하하하핫!"

"뭐, 뭐가 그리 우스운 것이냐!"

"아, 아닐세 하하하……자네가 말한게 무엇인지 알았네."

발끈하는 라펜드를 보며 억지로 웃음을 참는 하이만은 그를 쳐다보았다. 라펜드의 눈빛에서 설명하라는 기색을 읽은 하이만은 약간 고민이 되었는지 잠시동안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전에 자신의 뒤에서 슬금슬금 다가오던 상퀼로트의 왼 팔을 날려버린 다음에 말이다.

"적에게 이런 걸 알려줘도 되는진 모르겠네만. 알려줘도 그리 문제가 없을 것 같으니 말해주겠네."

"끄아아악! 내 팔! 내 팔!"

촤아아악∼!

"시끄럽다."

뒤에서 기습을 시도했다가 오히려 역으로 당한 병사가 조금 전까지 팔이 붙어있던 자리를 붙잡고 괴성을 지른다. 하이만은 자신의 말소리가 병사의 비명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자, 친히 검을 움직혀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라펜드는 이런 노기사의 모습을 보고는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자신에게 말을 걸던 부드러움과는 상반되는, 주저함이 전혀 없는 결단력. 그것은 강자의 여유였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목숨쯤은 손쉽게 빼앗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자, 그의 다리는 어느순간부터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아아, 잠시 딴 길로 새버렸군. 미안허이. 내가 자네를 공격한 검술은 기사가 검을 든 상태에서 말을 타고 쓰는 기본적인 한 동작일 뿐이지 기술이니 하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없는 것이네."

"기, 기본적인 동작?"

"그렇네. 검을 배우는 과정에서도 앞단계. 승마를 배우고, 말에 탄 상황에서 무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교육받을 때 가장먼저 배우는 동작이지. 굳이 말하자면 대보병용 제압 동작이라고 할까?"

"그럴수가……."

라펜드는 충격으로 할 말을 잊은 채 멍청하게 서 있었다. 하이만은 그의 기분을 이해한다는 듯, 더 이상 다른 말은 꺼내지 않고 투구사이로 조용히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

"……인정할 수 없어."

라펜드의 중얼거림. 힘이 들어간 주먹 때문이지 건틀릿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자신을 상대한 여기사는 실력이 뛰어난 정예가 아니었다. 단순히, 교과서적인 동작을, 창의성있게 응용조차 하지않고 그대로 휘두른 것을, 병신같은 자신이 당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는 알량한 자존심과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만으로 패배를 수없이 정당화 해왔던 것이다.
너무나……허망했다.

"이정도면 충분히 이해했을거라 믿네. 그럼."

"기다려라!"

말머리를 돌려 마르셀에게로 향하려는 하이만을 항해 고함을 지르는 라펜드. 그 목소리가 귀에 거슬려서였을까. 하이만이 다시 한 번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하이만. 하지만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라펜드는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또다른 용건이 있나 상퀼로트?"

"결, 결판을 내지 않은 채 달아날 생각이냐!"

"달아나다니. 놓아주는게 아닌가? 그리고 자네는 날 이기지 못한다. 그 떨고 있는 다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하이만의 검끝이 라펜드의 두 다리를 가리키자 그는 아무런 말도 못한채 신음만을 흘렸다. 하지만 이대로 보낼 순 없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패배자로 살아가긴 싫었다. 그것이 지금 상황에서도 라펜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온 힘을 짜내 발악을 하듯, 라펜드가 하이만을 향해 소리쳤다.

"목숨을 걸고 싸운 눈앞의 상대를 조롱할 생각인가! 그러고도 기사냐!"

"…………."

하이만은 대답대신 라펜드를 향해 말머리를 다시 돌렸다. 라펜드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안도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자신은 저 기사의 손에 죽을 것이라는 데에서 오는 안도감, 즉, 체념. 저자의 손에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 공포감이 뒤섞여있는 상태.
속으로는 그를 불러세운 자신의 용기에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왜 굳이 살려주겠다는 그를 자극에 일을 이지경으로 만들었는가 하는 후회감이 공존하는 라펜드의 속마음이었다.

"죽는게 소원인가? 근성은 좋다만, 무모하구나."

"네놈이 신경쓸 일이 아니다!"

"훗, 그런가……. 그럼 한가지만 묻겠다. 보아하니 격투술을 하는 것 같은데, 주먹을 내지르는 연습을 백번 반복한 소년과 같은 동작을 10만번가량 반복한 어른이 그 동작만으로 붙는다면 누가 이길 것 같은가?"

"당연히 후자다."

"잘 맞추었군. 그렇다면 다음 질문. 어린 아이는 이 사실을 알면서 어른에게 덤빌 생각을 하는게 옳은가? 아니면 그에게 가르침을 받고 자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게 타당할 것 같은가?"

"그것도 역시 후자다!"

주저없는 라펜드의 대답에 하이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저없이 말머리를 뒤로 돌렸다. 라펜드는 대뜸 말머리를 돌리는 하이만의 태도에 당황해 소리를 쳤다. 그러자 하이만은 다시 천천히 그를 향해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라펜드 쪽으로 다시 말머리는 돌리지 않았다.

"이유은 이미 자네 스스로도 알고있지 않은가?"

"그래도! 난, 난, 너의 적이지 않은가!"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라펜드를 쳐다보며, 하이만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쉰다. 그리고는 좀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성을 느꼈는지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늙은이의 노망이라고 생각해도 좋네. 내 아들 중 한놈이 성격이 자네와 비슷했지. 그리고 자네만한 나이때 전쟁에서 전사했네. 가끔씩 생각을 한다네. 자네와 비슷한 실력을 가진 녀석이 만약……. 그때 죽지 않고 살았다면 어느정도까지 발전했을지 말이야. 그래서 그런지 자넬 죽이고 싶지 않더군. 적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궁금한 것을 묻는 자네의 태도도 한 몫했지. 물론 자네의 남들과 다른 재능도 말이야."

"제국 쪽에서도 그런 재능을 가진 자가 있을 것 아닌가! 그런데도 왜 적인 나를 살리는 것인가!"

"부정하지는 않겠네. 지금 협곡에서 케클론 중기병단을 맞아 싸우는 지휘관이나 기사들도 자네만한 나이에다 출중한 실력을 지녔지. 왜 하필 자신이라는게 궁금한가? 특별한 이유같은 건 없네. 그냥 죽이고 싶지 않다. 이것뿐이네."

"나를 살려두면 훗날 제국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데 말인가?"

라펜드의 말에 하이만이 웃음을 터트린다. 자신만만하다 못해, 오만하게 보일지도 모르는 그의 발언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귀여웠는지 분노한 듯한 기색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 말을 꺼낸 라펜드 스스로가 민망했는지, 얼굴을 붉힐 따름이었다.

"그럴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걸 막을 인재와 힘이 없는 바르디아 제국이라면, -망해도 싸다- 난 이렇게 생각하네. 그리고 자네 또래쯤 되는 후배 기사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네를 이렇게 상대할 시간에 마법병단을 상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생각하지 않는가? 하이만 드 칸타빌레. 오랜만에 아들같은 상대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어서 마지막 가는 길이 슬프지만을 않을 것 같군. 고맙네, 그리고 무운을 빌겠내. 이랴!"

말을 마치자 마자 주저없이 말머리를 돌려 달려나가려는 하이만의 뒷모습. 라펜드는 무언가 가슴 한구석에서 아련한 아픔을 느끼며 그의 당당한 뒷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말의 고삐를 잡고 나아가려는 하이만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드는 푸른 빛의 화살…….

푸슉∼! 푸슉∼! 퍼엉∼! 펑!

"…커헉……."

4개가 모두, 정확히 하이만의 몸을 꿰뚫거나 강타하고 지나갔다. 천천히 말 위에서 고꾸라지는 하이만의 모습이 라펜드의 눈에는 슬로우 모션처럼 길게 느껴지고 있었다.

쿠웅∼!

육중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정도 건장한 체격에 갑옷으로 중무장한, 하이만의 몸이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때, 라펜드는 평소의 그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살기가 담긴 목소리로 하이만을 공격한 상대를 향해 울부짖고 있었다.

"마르세에에엘∼!!!! 이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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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전국 모의고사 평가가 있는 관계로 몇주간 연재가 늦어질 것 같아
미리 한 화를 올려보았습니다.

낄낄 뭐 그런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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