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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Antares[0.5막] - Follow me 09 -

2006.05.26 16:58

히이로 조회 수:388

익시드 나이츠의 창끝은 에르겔 마법병단에게로 향해 있었다. 헬무트가 재빨리 중앙의 상퀼로트를 정비하여 추격에 나섰지만, 말을 타고 있는 그들을 당해낼 재간은 없었다.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익시드 나이츠를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라펜드. 그의 뒤로는 열 명의 마법병들이 각자의 간격을 확보한 후, 저마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르, 카류는 나와 함께 공격을 담당한다. 나머지는 우릴 엄호하도록. 절대로 적을 가까이 접근하게 해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긴장한 라펜드와는 달리 마르셀은 동요의 기색 없이 차근차근 명령을 전달했다. 대충 마법병단의 대열이 갖춰지자 그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눈을 감은 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외에 다른 마법병들도 각자 마법을 쓰기 위해서였는지 정신을 집중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마르셀님. 아직 멀었습니까!”

 적이 다가오는데도 마법은커녕, 자폐아처럼 중얼거리는 이들이 답답했는지 라펜드가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그 누구도 라펜드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마르셀은 품속에서 기묘한 무늬가 새겨진 잔을 꺼내 그것에다 물을 부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자신의 주변에다 잔에 담긴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마르셀과는 달리 소르와 카류라 불린 마법병은 지팡이(Wand)를 꺼내들고 땅에다가 알 수 없는 문양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머지 마법병들은 별다른 행동 없이 주문으로 생각되는 것만을 외우고 있을 뿐이었다.

 “대체 뭘 하는 거야? 적이 코앞까지 다가왔단 말……읍!”

 “대장님. 조용히 하셔야 합니다.”

 “뭐, 뭐라고?”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고함을 지르려던 라펜드는 한 병사가 입을 막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찢어 죽일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방해한 부하를 노려보는 라펜드. 그 눈빛에 상대는 잔뜩 움츠러들었지만 떠듬떠듬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법병단이 저러는 건 정령을 불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그, 그러니까…마법을 준비하려는 것이죠. 저, 저 상태에서의 마법병단을 방해하면…곤란합니다.”

 “이, 이자식이!”

 라펜드는 병사의 말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런 그의 태도에 병사는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어색한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하지만 라펜드가 그를 계속 노려보는 이유에는 속사정이 있었다. 사실 그는 마법사나 마법에 관한 지식이 전무 했던 것이다. 그러나 병사의 말을 인정하면 자신의 무식이 폭로되는 것이었기에 속으로는 어쩔지 고민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계속해서 분위기를 잡고 있었던 것.
 의외로 이런 쪽에 민감한 라펜드였다.

 “이 멍청한 놈아! 내가 그런 것도 모를 줄 알았나. 너무 느리니까 답답해서 그런 것이다! 답답해서! 너흰 뭘 그렇게 쳐다봐! 적이 가까이 왔는데 전투준비는 하지 않고!”

 병사를 살짝 쓰다듬어(?) 준 후, 그럴싸한 변명을 가져다 붙인 라펜드는 내심 찔렸는지 애꿎은 부하들을 닦달하였다. 하지만 이 작은 소동으로 그는 이전보단 긴장이 많이 풀어진 상태에서 적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한편, 라펜드가 이렇게 삽질을 하는 동안 마르셀을 비롯한 마법병단은 겉으로 보기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마법병 전원이 주위에 1개에서부터 3개까지의, 각자가 서로 다른 4가지 색상의 구체를 생성해 놓은 상태였다. 특히, 마르셀과 2명의 마법병은 그 숫자가 남들에 비해 월등히 많았는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마법병을 이끄는 마르셀이었다.

 “저, 저것이 정령이라는 건가.”

 마르셀 주위에서 떠도는 8개의 푸른 구체를 보고, 동시에 한기를 느끼면서 라펜드는 중얼거렸다. 그의 주위에는 어느새 둥근 원이 그려져 있었고, 원의 내부에는 꼭짓점을 아래로 향한 정삼각형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새겨진 알 수 없는 문양들. 주변을 떠도는 푸른 구체는 정말로 생명이 있는 듯,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마법진 내부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평소의 온화한 마르셀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거만하고 냉혈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노을빛 머리카락을 가진 남성이었다.

 “평소의 마르셀님과는 전혀 딴판이군.”

 익시드 나이츠가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이라도 한 듯, 라펜드를 비롯한 상퀼로트 전원은 에르겔 마법병단에 온 시선이 뺏긴 상태였다. 라펜드는 방금 전 살짝 쓰다듬어 준 부하에게 시선을 보냈다. 느닷없는 그의 행동에 병사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곧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고는 한숨을 길게 내쉰 후 입을 열었다.

 “자연력, 그러니까 정령을 이용한 녹마법은 크게 4개 원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불, 물, 땅, 공기인데요. 마르셀 대장님 같은 경우 물속성의 정령을 사용 하시는 듯 하네요.”

 “그리고?”

 “각 속성마다 가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음성과 양성적인 면, 쉽게 말해서 장단점인데요. 물 계통의 정령은 소환자 내부의 감정과 대응한다고 들었습니다. 마법을 시전 할 때 그 특징이 극대화 되는 것인데…어, 그러니까 지금의 마르셀 대장님은 인간의 감정적인 면을 극대화한 상황에서 양성적인 면으로 마법을 쓰는 것이고, 그 대가로 음성적인 면이 성격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둘은 뗄 수 없는 관계니까요.”

 “한마디로 지금은 단점 투성이의 인격이라 이건가?”

 “예, 적어도…그 부분은 그렇겠지요.”

 마르셀을 여전히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는 라펜드였다. 복잡한 걸 싫어하는 그로써는 감정이니, 음성이니 하는 것 보단 마법을 쓸 때는 성격이 개같이 변한다로 이해 하는게 훨씬 수월했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마르셀과 마법병들은 평소의 그들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성격이 안 좋아지면 안 좋아졌지 좋게 변할 리가 없을 마법병단을 보며, 어떻게 그들을 호위해야할지 걱정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봐, 그건 그렇고 상당히 똑똑하구나. 어디서 배웠냐?”

 “예?……이, 이건…‘상퀼로트’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인데…….”

 호기심으로, 순수하게 물어봤던 라펜드의 얼굴색은 병사의 대답으로 인해 흑빛으로 변했다. 상퀼로트 부대원들도 지휘관을 바라보며 두려움 반, 어이없음 반의 표정으로 라펜드를 주시하고 있었다. 단순한 병사가 아닌 발사로크의 정예병 상퀼로트는 깊이 있지는 않지만 기초적인 군사지식은 교육 받는 게 원칙. 계급이 가장 낮은 병사가 이정도인데 지휘관은 어떠하겠는가.

 “저…대단히 죄송스럽지만 질문 좀 하겠습니다. 정말 우리의 지휘관이 맞으십니까?”

 다른 병사가 나서서 그에게 물었다. 라펜드는 병사를 바라보며, 인상을 구겼지만 별다른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자신은 정당하게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온 것이었기에 이런 문제로 꼬투리를 잡힌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었기 때문. 담담하게 대답대신, 상퀼로트의 지휘관임을 상징하는 패를 품에서 꺼내 병사에게 던져주었다.
 조심스럽게 그것을 받아들고는 살펴보는 병사들. 잠시 동안 이었으나 어색한 침묵이 주변을 맴돌았다.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어째서…….”

 병사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라펜드의 얼굴에 힘줄이 돋았다. 그 부분은 오히려 자신이 묻고 싶었던 것이다. 검상이 회복된 후, 그는 자연스럽게 전공을 인정받아 진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워졌고, 라펜드는 이에 대한 보상대신 상퀼로트에 소속되기를 원했다.
 발사로크에서는 전쟁에서 전공을 세운 병사가 각자의 병과에 맞춰 정예군 상퀼로트나 케클론 중기병단 등에 들어가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었기에, 별다른 문제없이 그의 희망은 이루어지게 되었고 지휘관으로써 임관식을 하자마자 이곳에 파견된 것이었다. 상퀼로트의 일원은 모두 일정한 군사교육을 받는다는 사실은, 라펜드에게는 금시초문이었다.

 “모른다. 임관식을 끝내자마자 부대를 배정받고 이곳으로 파견된 것이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혹은 눈빛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었고 그것이 라펜드를 불쾌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가 속으로 애써 분을 삭이던 중, 자신의 진위여부를 확인하려 했던 병사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의 말은…라펜드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전 대장님의 지휘를 받을 수 없습니다. 지휘관을 상징하는 패를 가지고 있어 일단은 인정해 드리겠지만, 전투에 필요한 기본개념도 배우지 않은 지휘관의 명령을 따를 순 없습니다.”

 “…뭐라고.”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당신같이 무능한 지휘관에게 목숨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이 자식! 가만두지 않겠다! 날 능멸하는…….”

 시간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라펜드는 병사의 -무능한 지휘관-이라는 발언에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것은 단순한 의미에서도 열 받는 일이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목숨을 걸고 공을 세워 이 자리까지 온 라펜드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했기에 그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말았던 것이다.
 발작적으로 상대에게 달려드려는 그를 병사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막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라펜드는 곧바로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지척까지 다가온 익시드 나이츠를 향해 마볍병단의 선공이 시작된 것이었다.

 촤르륵~!

 첫 공격은 소르와 카류라는 두 명의 마법병이었다.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듯한 붉은 구체 8개가 익시드 나이츠 쪽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낮이지만 흐린 하늘을 붉게 빛내는 불의 정령을 보면서 라펜드와 상퀼로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지켜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해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마법사가 싸우는 모습은 그들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마법병단이 공격을 시작했군. 하아, 그래. 난 말단 병사부터 시작해서 여기까지 올라왔다. 천민출신이라 어찌 보면 너희들보다 당연히 머릿속도 비어있겠지. 하지만 이건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군. 난 정당한 절차와 그에 상응하는 공을 세워 이 자리에 온 것이지 꼼수 같은걸 부린 적은 결단코 없다. 결정은 너희들이 할 일이다. 나를 믿고 따라올 자는 따라오고, 신뢰할 수 없는 자는 각자가 알아서 우리부대의 목표인 마법병단을 호위하도록. 나도 인간성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 나 싫다는 놈을 억지로 끌고 갈 성격은 못되거든. 자, 가자!”

분노는 여전했으나 마법병단의 공격이 시작되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생각한 라펜드는 이 한마디를 던지고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 상퀼로트는 서로가 눈치를 보며 그대로 얼어붙은 듯 서 있었지만, 서서히 라펜드를 따라가는 병사가 늘기 시작했다.
어처구니없다면 없다고 할 수 있는 일로 잠시 반목하던 그들은 일단은 문제를 덮어두고 전투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익시드 나이츠는 말 그대로 전력질주를 하고 있었다. 모두가 이번 공격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품은 지 오래. 서서히 후방부대와 거리가 좁혀질수록 긴장감은 높아져 가고 있었다. 하이만은 자신의 옆에서 말을 몰고 있는 부관을 쳐다보았다. 투구 사이로 시선이 교차한 후, 부관은 그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부대를 둘로 나누어 양쪽을 공략할 시간이 온 것이다.
그것은 죽음의 문턱까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고, 살아서 부관을 비롯한 기사들의 얼굴을 보는 것은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건투를 빌겠네.”

곧 떨어질 기사들을 한번 훑어본 하이만은 부관을 향해 소리쳤다. 그는 대답대신 고개를 한번 숙여 마지막으로 하이만에게 예를 갖춘다. 그리고 잠시동안 망설이다가, 마침내 큰 소리로 기사들을 향해 외쳤다.

“제2군은 나를 따르라!”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채찍을 들어 사정없이 말의 엉덩이를 때리는 부관의 모습. 채찍의 영향 덕인지 말의 속력이 빨라졌고 그의 뒤를 10여명 가량의 기사가 뒤따르기 시작했다. 하이만 역시 약간 진로를 좌측으로 바꾼 후, 더욱더 속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시야에 뚜렷하게 들어오기 시작하는 상퀼로트와 에르겔 마법병단. 중앙부대와 달리 수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하이만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가고 있었다. 마법병단 주위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둥근 구체들. 적들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로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제길! 모두 최대한 떨어져서 움직여라! 적들의 마법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절규에 가까운 하이만의 외침 덕분일까. 그가 지휘하는 제1군은 재빨리 넓게 퍼진 상태로 대열을 재편했다. 그러나 제2군은 하이만의 명령이 들릴 리가 없었기에, 여전히 뭉친 상태로 용맹스럽게 적을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멀리서 이런 그들을 바라보던 하이만은 안타까움과 비통함이 묻어나오는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순간, 마법병단의 첫 공격이 시작되었다.

“불이여 빛을 내어라. 그리고 불이여 타올라라! 뜨거움을 자아내는 멧돌을 만들지어다!”

소르와 카류라는 마법병이 주문을 끝내자 그들 주위에 그려져 있던 마법진이 빛을 냄과 동시에, 각자가 4개씩 소환한 붉은 빛의 구체가 익시드 나이츠 제2군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8줄기의 붉은 빛이 잠시 동안 모든 이의 시선을 빼앗는다.
그러나 빼앗겼던 시선이 원래대로 돌아 왔을 때는, 이미 익시드 나이츠 제2군이 자리 잡고 있던 장소는 불바다가 된 뒤였다.

“으아악!”

전신에 불이 붙은 기사하나가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뜨거운 불꽃에 무차별 폭격을 당한 그들은 절반가량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다행히 살아남은 자들 중에서도 다수가 심한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놀란 말들은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하는 바람에 낙마한 기사들도 있었고, 그 중에는 말에 짓밟혀 생을 마감하는 기사도 있었다.

“으헉!”

“커헉~”

제2군에 있던 15명의 기사 중 불길을 뚫고 무사히 빠져나온 자는 고작 4명. 그러나 이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마법병의 정령이었다. 마법진을 그리지 않은 나머지 마법병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견제를 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불어 닥치는 돌풍을 비롯해 사정없이 날아드는 돌덩이. 결국 4명의 기사들은 전진하지도 못한 채 갈팡질팡하다가 라펜드의 상퀼로트에게 목숨을 내주고 말았다.

“으아아!”

생생히 모든 장면을,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서 두 눈으로 확인한 하이만 기사단장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달리는 말 위에서 울부짖었다.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는 그 역시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었고 60평생을 살아오면서 실제로 여러 번 만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학자가, 그것도 고작 두 명이서 열 명이 넘는 기사들을 도륙하는 것을 본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평소의 그였다면 주저 없이 말머리를 돌려 달아날 만큼 두려운 광경……. 그러나 현재의 하이만은 분노가 전신을 지배하고 있는 상태. 이성적인 판단이 평소보다 상당히 흐트러져 있었다.

“시에라, 크리톤, 알자드…….”

죽어간 기사들의 이름을 되 뇌이며 하이만은 달렸다. 주름이지고 검버섯이 돋아난 황량한 그의 피부 위로 몇 줄기 강이 쉴새없이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눈동자만큼은 한시도 떼지 않은 채 에르겔 마법병단과 상퀼로트를 주시했다. 그리고 그는 보고 말았다. 제2군을 전멸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불의 정령들이 실체가 구체화 된 상태에서 소환자의 주위를 돌고 있는 모습을.
천진난만한 아이의 표정 같은 정령들의 모습.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생각이라곤 전혀 없는 듯한, 실제로도 전혀 없는 그것들을 보는 순간 하이만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격한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익시드 나이츠! 마지막 명령이다! 적을 각개 격파한다! 뭉치면 저 찢어죽일 마법사들의 희생양이 될 뿐이니 명심하도록! 앞을 가로막는 적은 모조리 죽여 버려라! 그리고! 마법병단 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없애라! 가자!”

하이만의 고함소리와 동시에 살아남은 19명의 기사들은 제각기 발사로크 군 진형의 좌측을 파고 들어갔다. 다수의 적을 상대로 단신으로 돌격해 들어오는 기사들의 모습에 마법병단은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라펜드를 비롯한 상퀼로트 역시 재빨리 마법병단을 가로막고 기사들을 저지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으아아압!”

푸슉! 푸슉!

“커헉…….”

비록 한사람, 한사람이었으나 엄청난 가속력이 붙은 상태에서 긴 랜스를 사정없이 휘두르자 상퀼로트는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무너져 갔다. 라펜드도 고함을 지르며 적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변변한 전과도 없이 적의 무기를 황급히 피하기만 급급했다.
그러나 발사로크군 역시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은 않았다. 서둘러 마력을 정비한 마법병들이 지원에 나선 것. 그들의 견제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상퀼로트에게 역으로 당하는 기사들도 늘어가기 시작했다.

“귀찮게 되었군. 적 지휘관 녀석도 어느 정도 머릴 굴릴 줄은 아나본데.”

바로 눈앞에서 선혈이 낭자한 전투를 지켜보던 마르셀이 입을 열었다. 감정의 움직임 같은 건 전혀 존재하지 않는 무미건조한 그의 육성. 음성적인 면이 극대화된 현재의 마르셀은 말 그대로 냉혈한 이었다.

“네, 대장님. 어떻게 할까요? 저흰 공격에 가담할 수 없긴 하지만…….”

소르가 카류와 눈빛교환을 하더니 조심스럽게 그에게 말한다. 마르셀은 조용히 그들을 쳐다보았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이 당장이라도 아까와 같은 무차별 공격을 하고 싶다는 것을 소리 없이 전하고 있었다. 마르셀은 그들이 소환한 불의 정령들을 흘끗 쳐다보다니 가소롭다는 듯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여간 네놈들은 전투만 하면 발정난 개새끼 마냥 날뛰고 싶어 하는구나. 참아, 아군까지 죽일 생각은 아니겠지? 놈들은 내가 맡을 테니, 너희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현 상태를 유지하기나 해.”

“……알겠습니다.”

마르셀의 말이 자극적으로 들렸는지 두 마법병은 불만스런 표정을 지은 채 대답했다. 거만한 마르셀과 저돌적으로 변한 두 마법병. 계급이 아니었다면 성격을 참지 못하고 한대 갈겼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능력 면에서나 계급에서나 그들은 마르셀을 상대할 수 없었다. 두 부하를 무시하고는 재빨리 자신의 마법진에 새겨진 문장을 바꾸면서 정신을 집중하는 마르셀. 적군이 각개격파로 들어올 때, 지금 소환한 전 방위 정령마법을 시전하면 상퀼로트까지 피해를 입게 된다. 그렇기에 짜증이 났지만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던 것.

“기분 존나게 더럽구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힘을 조절하는 마르셀. 마법은 정령을 소환하는 것도 어렵지만 소환된 정령의 힘을 없애거나 힘의 변화를 조절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의 부대 내에서도 실력이 가장 좋은 소르와 카류조차 힘의 변화를 조절하는 것은 불가능 했으니, 대장인 마르셀이 친히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그의 기분은 더욱 좋지 못했고, 힘을 조절한 뒤 사나운 눈빛으로 전장을 바라보던 그는 마침내 공격을 시작했다.

“내가 청하는 것에 대한 의지가 이루어지리.”

시위를 재고 있던 화살마냥, 엄청난 속도로 전장에 뛰어드는 마르셀의 정령들. 소환자를 빼다 밖아놓은 듯, 무표정한 것이 잘 만들어진 섬뜩한 인형을 보는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가 소환한 8마리의 물의 정령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퍼져 익시드 나이츠를 급습하기 시작했다.

“으아악!”

“제, 제…기랄…….”

오싹한 한기와 더불어 시큼한 고통이 느껴졌을 때는 이미 그의 팔 하나가 절단되어 있거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에서 굴러 떨어지는 스스로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갑옷에 의해 방어가 되었다고 해도 둔기에 후려 맞은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피를 토하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드는 상퀼로트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기사들도 있었다.

“크윽!”

까앙!!

하이만 역시 정령의 표적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겠다는 듯, 재빨리 발의 이동방향을 바꾸어 공격을 피했고 또 다른 정령이 공격을 가할 때는 들고 있던 검으로 그것을 거칠게 후려쳤다. 딱딱한 느낌과 동시에 팔이 떨리는 통증이 느껴지고, 굉음이 울렸지만 무사히 공격을 막아낸 하이만 기사단장.

“네놈이구나!”

정신없이 주위를 살피던 그는 마침내 눈에 띄는 자를 찾아내고는 고함을 질렀다. 청색과 보라색이 어루어진 로브에다 원인을 알 수없는 차가운 느낌, 주변에 생성된 마법진외에도 오랜 기사생활을 하면서 가지게 된 직감이 끊임없이 이 자를 지목하고 있었다. 마침내 결단을 내린 하이만은 청색로브의 마법사, 마르셀을 향해 길을 뚫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그를 힘으로라도 저지하겠다는 듯, 앞을 막아서는 퀼트복장의 한 남자가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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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2주만에 올라가는군요. 이래저래 썼다 지웠다를 제일 많이 반복한
편 같습니다 그려.

마법에 관해서는 일단 이번 편은 있는 그대로 느껴주세요.
마법에 관한 설정과 그외 자세한 이야기는 본편에서 나타날테니 말이죠.
잇힝, 그럼 재미없겠지만 재밌게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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