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연재 [몽환록]1장-사망전이-(1-0)

2006.05.17 02:30

울프맨 조회 수:156


“학교 갔다 올게요!!!”
엄마의 도시락타령을 뒤로 한 채, 나연은 급하게 대문을 박차고 나섰다.
나연이 허겁지겁 주택 골목을 가로질러 큰길에 다다랐을 때는 어느덧 7시40분.
이대로만 잘 달려서 45분에 오는 버스를 잡으면 절대 지각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좋아! 버스다!”
나연의 눈앞에 막 승객을 태우기 위해 문을 여는 버스가 보였다.
버스까지의 거리는 80m. 아슬아슬하게 잡을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온힘을 다해 달려도 모자랄 판에 나연은 멍하니 버스만 바라볼 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학교가 봐야... 뭐해?’
귀가 간지러웠다.
마치 누군가가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 목이 갈라진 듯한 텁텁한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지만, 그가 말하는 내용은 매우 그럴듯한 것이었다.
아무저항도 반응도 없자, 목소리는 또다시 나연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겨우 지각을 면해봐야 뭐해..?’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보이는 거라곤 오직 마지막 승객을 태우고 막 문을 닫는 버스....
저 버스를 놓치면 이번에야 말로 지각. 하지만 나연은 그런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버스는 정류장에 멍하니 서있는 나연을 홀로 남겨두고 떠나갔다.
‘저것 봐.. 너도 버림받았어....누가 같이 타자고만 했어도 같이 탈수 있었는데.... 친구는 있어..? 학교엔 가서 뭐할 거야...?’
목소리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설교했다.
학교에 가봐야 지겨운 공부와 과제, 얼마 남지 않은 수능. 집에 있는 건 잔소리 밖에 할줄 모르는 부모님.... 그의 말은 그녀에게 전부 옳은 말로만 들렸다.
솔직히 잘 생각해보면 나연에겐 정말 친구라고 부를만한 특별한 관계의 아이도 없는 것 같았다. 며칠 전 고열로 결석 했을 때, 전화 한번 해준 아이도 없었다.
학교, 집, 친구 그의 말대로라면 나연의 편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의 소곤대는 말소리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나연의 믿음과 희망을 하나씩 갉아먹는 듯한 느낌에 귀를 막아보았지만, 소용없는 일............ 태어나서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극심한 절망과 고독이 나연의 전신을 휘감았다.
버스가 떠나고 다음 버스가 왔지만, 그녀는 탈 생각이 없었다.
타봐야 지각은 확실한 것.
“그래........이제 모두 늦어버렸어...........”
‘되돌릴 수도 없지.’
뜨거운 물줄기가 두볼을 타고 흘렀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 곳을 보아도 절망뿐, 이제 와서 돌이키기엔 너무 늦어버렸다는 생각에 나연은 멍하니 서서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 멀리서 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1장. 사망전이.

1-0.

“야! 너희 이거 알아?!”
오늘 아침도 대동중 2-3반 아이들의 하루는 언제 나처럼 우진이 알리는 새 소식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뭔데? 오늘은 뭐야?”
“너희들 일주일전에 삼화여고 3학년이 요 앞 사거리에서 자살한거 알아?”
“......................”
역시나, 하는 생각에 아이들은 등을 돌렸다.
그 사건은 이 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나 다 알만한 일이었다. 그일 때문에 교통안전이니, 자살방지 설문조사니 하는 걸로 일주일 내내 들볶였으니 그걸 이제 와서 새삼스레 대단한 듯 떠들어대는 우진은 뒷북이라고 하면 엄청난 뒷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야. 야..........타임머신이다. 타임머신. 언젯적 얘기냐?”
아이들 중 그나마 우진과 친한 아이 하나가 면박을 주었지만, 우진은 전혀 기죽는 기색 없이 활발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그렇지?! 여고생 죽은 지 일주일 지났잖아?!”
“그렇다니까...........”
관심이 없던 아이들마저 온반을 쩌렁쩌렁 울리는 우진의 목소리에 슬슬 불만을 표시하려 할 때였다.
“나. 그 여고생 봤다.”
“뭘?”
“죽은 여고생.”
“꿈에서?”
“진짜로.”
우진은 조금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자, 들뜬 목소리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죽은 여고생은 우진의 집에서 가까운 이웃이었는데, 그건 우진과 친한 아이들은 익히 알고 있는 일이었다.
아무튼 덕분에 우진은 사고소문을 들었을 때, 그 당사자가 누군지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제, 그날도 떠든 일 때문에 벌 청소를 하느라 어둑어둑해질 무렵 동네에 도착한 우진은 자기 집 대문을 열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었다.
그날따라 이상한 것이 그 동네엔 도둑고양이가 많아서 이렇게 어두워지면 고양이와 개소리로 시끄러운 것이 정상인데, 유독 그날은 조용했다.
하지만 조용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막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우진의 귀에 태어나서 처음 듣는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몸이 오그라드는 기분 나쁜 소리...... 그것은 아주 작았지만 똑똑하게 들렸다.
그리고 미처 현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굳은 우진은 볼 수 있었다.
자기 집 대문 앞을 지나쳐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는 그림자를...............
분명 그곳은 대문하나 없는 막다른 골목.
무서웠지만, 우진은 대문을 열고 쫓아갔다.
그리고 그림자가 사라진 골목에 도착했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온 우진은 좀 전의 상황을 곰곰이 되새겨 보았고, 자기 집 앞을 지나쳤을  때, 그림자의 모습을 생각해 내었다.
그 모습은 분명 죽은 여고생 이었다는 것을.............

그러나 우진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아이들의 반응은 기대 이하였다.
“야, 야, 아직 봄이야. 전설의 고향 나오려면 멀었다.”
“아주 소설을 써라, 임마. TV에 제보해봐~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거~”
“진짜 봤다니까?!!”
“니뻥을 돌로 쌓으면 만리장성이다! 자식아!!”
“구라 아냐!!!!!!”
“뭘 믿고~?”
아이들은 어느새 우진을 놀리는 일에 재미가 들었는지, 우진을 무시하던 종전의 태도 대신, 녀석의 말에 하나하나 꼬투리를 잡기 시작했다.
결국 골이 날대로 난 우진. 녀석은 참다못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주위 아이들에게 마치 선언이라도 하는 양, 당당히 한쪽 발로 의자를 밟고 외쳤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그렇게 못 미더우면 내기 하면 될 거 아냐?!”
“뭘로? 사진이라도 찍으시게?”
한아이의 말에 우진은 녀석을 내려다보았는데, 그 표정이 제법 진지했다.
“그럼 믿어 줄 테냐?”
교실은 잠시 침묵 했다.
너무나 진지한 분위기의 우진은 놀리던 아이들의 기세를 잠시 꺾어 놓았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잠시. 찬물을 끼얹은 마냥 조용했던 교실은, 곧 폭소의 장으로 돌변했다.
“우... 우진이가 귀신 사진을 찍겠데!~!!! 하하하하하하하!!!”
“야, 관둬라, 너 그러다 귀신한테 끌려갈라, 푸히히!!”
“귀신이 널 또 만나준데? 약속 잡았어?”
“얼~ 귀신이랑 날짜도 잡고, 뻥만 잘 치는 줄 알았는데 능력 좋다~?”
“장난 아니야!!!!!!!!!!!!”
또다시 화가 난 우진이 소리를 버럭 지르자, 아이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잘 들어! 이번 주 토요일까지 찍어온다!! 진짜로 찍어오면 모두 만원씩 내기다?!”
“못 찍어오면?”
한 녀석의 질문에 우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내가 한 사람당 2만원. 더불어 앞으로 입도 안 연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환성을 질렀다.
우진이가 귀신을 본 것도 믿을 수 없는 지경이다.
만약 진짜로 봤다고 해도 사진을 찍을 확률은 더더욱 희박한 것.
아이들로선, 오랜만의 유흥거리면서, 언제나 시끄럽게 떠들던 우진을 조용히 시킬 좋은 기회였다.
아이들은 앞 다투어 내기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
교실은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다 되서야 겨우 평온을 되찾았다.
그것도, 쉬는 시간 마다 우진이 자신의 결백함과 내기를 거듭 강조 하는 등, 소동에 소동을 반복한 후에야 잠잠해진 것이다.
“정말........ 남자애들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모르겠다니까... 유치하게 귀신이 뭐니... 귀신이..”
급식 뚜껑을 열며 소연이 못마땅한 듯 말했다.
“맞아. 맨 날 떠들기나 하고 저런 애들은 한번 그렇게 좋아하는 귀신한테 잡혀가야 조용해진 다니까~”
“아마 잡혀가도 떠들 걸~ 우진이는~”
아침부터의 소란에 가장 불만이 컸던 것은, 공부 좀 한다는 우등생들. 특히 소연을 주축으로 한 여학생들이 가장 심했다.
물론 우진 일당은 조용하라고 말해봐야 듣지 조차 못하니, 불만이 있어봐야 이렇게 모여서 투덜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없다고 남 얘기 하는 거. 참 안 좋은 버릇이다...”
소연에게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소연은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언제나 설교하는 투의 딱딱하고 무뚝뚝한 목소리. 초등학교 때부터 동창인 영준이었다.
영준은 소연의 옆자리에 걸터앉아 급식뚜껑을 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왜 그래....?”
“반찬이 좋지 않군..........”
“왜...........?”
“영양소의 균형이 전혀 맞질 않아...”
안경까지 고쳐 쓰며 조목조목 따지는 영준을 보며 소연과 여자아이들은 머리가 피곤해지는 것을 느꼈다.
“영준아.........”
“왜?”
“그냥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해.”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냐!!!”
자존심이 상한 듯 버럭 화를 내는 영준. 이대로 두면 점심시간이 식사에 필요한 영양 강의 시간이 될지도 모르는 판이었다. 소연은 말실수를 한 희수에게 무언의 면박을 준 후 영준을 달래기 시작했다.
“알았으니까.......... 그냥 밥이나 먹자....”
“..... 하긴, 이렇게 따진다고 밥이 다시 나오진 않으니까.........”
‘그럴 거면서 왜 투정을 해!!!!!!!!!!!!!!!!!!!!’
여자아이들은 차마 내뱉을 수 없는 이 말을 속으로 삼켜야만 했다.
“참 그런데.. 영준이 넌 귀신 믿어?”
“왜?”
한 여학생의 말에 영준은 잠시 숟가락을 멈췄다.
“그냥. 넌 아침에 우진이 말 어떻게 생각해?”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흥미 있는 이야기지.”
영준의 안경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마침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듯, 영준은 수저를 내려놓고 깍지를 꼈다.
“사실 우진이의 말이 전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만은 아냐.”
“너 또 삼촌한테 무슨 말 들었구나?”
오랜 친구인 덕에, 영준의 가족관계를 잘 아는 소연이 말했다.
영준의 삼촌은 지방 신문의 기자여서, 주위에 뭔가 사건이나 일이 있으면 언제나 영준에게 말해주곤 했었다.
영준은 소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맞아. 우진이 말한 그 사건 알지..?”
“응.”
“죽은 사람이 누구지?”
“여고생이 자살한거잖아.”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어보이며 영준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지만 곧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내가 이렇게 재미있어 할 리가 없잖아....?”
“대체 뭔데...? 너도 이상한 얘기하면 우진이랑 동급으로 취급한다?”
답답해진 여자아이들의 독촉에 영준은 손가락으로 4개를 표시했다.
“뭐야?”
“4명.”
“?”
선뜻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들... 영준은 손가락 4개를 흔들어 보이며 설명했다.
“그때 죽은 사람은 4명이야.”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08 [the Cruise]白月短歌 : 스카라무슈 Scaramouche [4] Lunate_S 2006.05.17 196
» [몽환록]1장-사망전이-(1-0) [3] 울프맨 2006.05.17 156
606 [the Cruise]Bright Fire ; 근원 - 0˚ Prelude [4] Lunate_S 2006.05.16 270
605 싸구려 용사 전설 [4] 느와르 2006.05.15 232
604 realize 11화 - 스쿨 라이프 [등교 직전] - [4] 연향 2006.05.15 155
603 [몽환록].현세의 장.0(-사냥-) [3] 울프맨 2006.05.15 160
602 [단편][完]마지막 전사~이름 모를 카나키나스~(로딩시간쀍) [4] 고쿠 더 히트 2006.05.13 178
601 realize 10화 - 연애강의 휴강, 그리고 선생님의 휴가 - [4] 연향 2006.05.10 166
600 [단편]<마지막 전사> ~ 이름 모를 카나키나스 ~ The first part [6] 고쿠 더 히트 2006.05.08 166
599 Antares[0.5막] - Follow me 08 - [5] 히이로 2006.05.07 183
598 [사일런스] - Silence 2 [ 꼬맹이 구출작전 - 1 ] [3] 리오 2006.05.06 164
597 Realize 9화 - 강의. [3] 연향 2006.05.02 143
596 [사일런스] - Silence 1 [ 빛, 어둠, 혼돈, 그리고 침묵 ] [3] Rio 2006.05.01 157
595 한자루 칼을들고, [2] -춤추는음악가- 2006.05.01 172
594 Antares[0.5막] - Follow me 07 - [3] 히이로 2006.04.30 174
593 [단편]하늘의 마녀 [8] -Notorious-G君 2006.04.25 305
592 雜談. Trenail [7] Lunate_S 2006.04.25 156
591 한자루 칼을들고, [3] -춤추는음악가- 2006.04.24 158
590 realize 8화 - 삼위일체 신검합일 동봉조극 - [3] 연향 2006.04.22 175
589 realize 7화 - 재등장 - [2] 연향 2006.04.20 144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