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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하늘의 달조차도 얼려버릴 것 같은 추운 날씨엔,
  어디까지고 목소리가 전해질듯 한 느낌이 든다.

  또한 산책을 하다 보면─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대범해지기도 하고─.

  하지만─
  가능하면 그런 일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무언가가 달라붙어 버리니깐──』


  ‘지옥 사건’이 있고, 며칠 뒤였다(그놈의 볶음밥은 나의 위장과 뒤틀고, 꺾고, 부러뜨리는 K-1경기를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덕분에 이틀은 고생했다).
  나는 반에서 가장 늦게나오는 학생의 속한다. 고등학교라면, 당연히 늦게 끝나는 거지, 라고 몰상식한 행동을 보여주는 몇몇 사람들도 있지만, 요즘 고등학교는 대부분 야자가 없다. 그렇다고 공부를 안 한다는 건 아니지만. 물론 나 같은 경우엔 공부 때문은 아니고, 역시나 ‘부활’이려나─. 그놈의 수련이 뭔지, 하아─.
  시계를 보니 7시. 아직 여름인지라, 서늘한 더위가 온몸을 촉촉이 젖혔다. 대충 가방에 교재를 챙기고, 한손에 죽도를 들고 교실 문을 열었다. 복도 풍경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낮의 복도와, 저녁의 복도를 비교하는 일은 고등학교 때부터 생긴 희한한 버릇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구경 이였지만, 어느 샌가 나의 현실에 끼어들고만, 내 자신이 눈치 채고만, 그런 것. 밝은 일상과, 어두운 일상. 그 일상 속에는 밝게 떠들고, 장난치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라지만 그건 밝은 일상의 그림자. 어두운 일상에게 그런 모습은 볼 수 없다. 단지, 볼 수 있는 거라곤, 저물고 있는 황혼이 비추는 그림자와 그림자에 비추는 적막감뿐. 빛과 어둠의 한복판을 천천히 걸었다. 매일 걷기도 지겹도록 변함없는 풍경이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계단이 보였다.

  ‘이제 내려가서 나가기만 하면 되는군. 오늘은 저번처럼 늦을 일도 없고, 후우.’ 라는 것은 단순한 바램이었다. 위화감은 어디서든지 찾아온다. 위화감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니, 그것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기겁을 했다. 계단의 사각으로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는 그림자를 보면, 누구나 기겁할 테지만─, 내가 진짜로 놀란 것은, 『그것』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것은 ‘여럿’이었다.

  내 주위를 두르고 있었다.
  내 공간을 잠식하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인간이여. 우리의 시간으론 예상보다 긴 시간이었다……. 그대에 대한 궁금함으로 나는 자주 초조했다.”
  “그, 그런가? 그런 것 치곤, 꽤나 천연덕스러운걸─?”
  “그렇게 보이는가.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급하게 그대를 만나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생겼다.”

  그것의 말이 끝나는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처음에 조용히 다가온 것과 다르게, 그들이 내뿜는 기운은 분명, ‘살기’라고 불리는 수준이었다. 중하급 정도의 내 검도 실력으로는 도무지 실현할 수 없는─. 다시 한 번, 경고가 울리기 시작했다.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치아가 부딪히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굽어보는 그것의 시선에 온몸이 휘청거렸다.

   그러나,
  결코 굽힐 수 없었다.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인간이 겁을 먹는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 굽히는 일도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아니었기에, 인간은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겁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겁을 먹을 수는 없다. 절대로─, 결코 그렇게 돼서는 안 된다. 이것이 나의 의지인지, ‘무언가’의 의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결코 굽히지 않았다. 손끝마저 떨리는 상황에서, 전신이 땀으로 목욕을 한 상태에서, 나는 그것에게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러자, 그것이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그대는 인간인가?』
  ‘─그런 의미에서, 그대는 우리와 같다.’

  그것의 질문에서, 나의 기억은 과거를 현실로 끌어들였고, 순간 차가운 마음이 심장을 타고 가슴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 그게 무슨 헛소리야! 나는 인간이라고! 생물학적으로도, 존재하는 마음으로서도, 분명히 나는 인간이야!”

  그것에 당혹스러운 질문은, 내게 공포라는 감정을 몰아내고, 조금씩 분노를 일으켰다. 그때의 기억마저 떠올리게 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것이 왜 내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지─. 어째서 그들이 처음부터 내게 접근했는지─. 그러한 이유 따윈 잊어버리고, 덜덜 떨고 있던 자신마저 잊어버렸다. 분노. 그것만이 나의 감정을 지배했다. 그것은 나를 수족으로 움직였다. 분노. 나는 자신의 처지조차 망각한 채, 격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나는 인간이야──!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모르겠지만, 네가 무슨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그런 헛된 망상 속으로 밀어 넣지 말란 말이야! 이, 이 괴물들아!!”
  “…….”

  아차!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방금 내가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이성을 잃고만 내 자신을 제어하지 못했다는 좌절감보다는, 다시금 마음속의 공포가 자리 잡았다. 차가운 마음은 한순간의 공포에게 저지당했다. 『그것』이 괴물이든 아니든 간에, 한 가지 확실한 건, ‘강하다’는 것이었다. 미지의 존재인 그것에게, 인간인 나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강하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었다.

  “…역시, 그대는 인간이다. 하지만, 그대는 인간이 아니다. 그대는 무엇인가? 그대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그것이 지금─ 우리가 품고 있는 의문이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그대를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었다. 다시 만나서, 그대의 존재를 재확인하고 싶었다.”
  “…….”

  그것은 내게, 진심으로 물었다. 그것은 나를 탓하지 않았다. 괴물이라고 모욕한 나를─ 탓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의 관점에선 그것이 욕이 아닐지라도─. 분노라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뿜어져 나오는 화를 참고 있는 것일지라도──. 한순간, 나는 그들에게 호감을 느꼈다. 단순히 뭉클한 감정 이상의, 무언가를. 단순히 탓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느껴지는 시시콜콜한 감정이 아니었다. 그건 아마, 나와 그것과의 관계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다.
  갑자기 그것에 이마-라고 생각되는 부위가, 내 이마로 와 부딪혔다.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서려던 내게, 나의 사고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어두운 구름 속에서 유영하는 기분이 들었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덩어리에, 마음이 잠식당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어둠이었다. 내가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들과, 기억들과, 생각들이 쉴 틈 없이 흘러나왔다. 어두운 길이 보였다. 구름속의 길이 보였다. 천천히 따라 걸어보았다-더 정확하게 묘사하자면, 끈적끈적하지 않은 늪에 빠져서 천천히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그 길에 끝에서, 그 속에서, 나는 보았다. 그것의 본질을 보았다. …아! 그렇다. 그것은 내가 전에도 느낀 적이 있는 현실이었다.

  그것은 나의 거울, 나의 어두운 거울.
  나는 그것의 거울, 그것의 밝은 거울.

  내가 밝은 일상이라면, 그것은 어두운 일상. 난 꿈을 꾸고, 그것은 꿈속에서 살아간다. 반대로, 그것이 꿈속에서 살기에, 나는 꿈을 꾼다. 그것은, 나의 운명. 그리고─ 그것에게 나는 실현자. 나와 그것은, 하나이자 둘이었다. 같은 마음의 조각이었다. 같은 영혼을 공유하며, 같은 것 같지만 다른, 그런 현실을 살아가는 주인이었다.
  그제야, 그들이 내게 다가온 이유를 알았다. 나와 그것의 관계를 알았다.

  “그대는, 나다. 그리고─ 나는, 그대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개체중 하나가 그대와 같을지라도, 우리와 그대는 엄연히 다른 존재이니─.”
  “하지만, 그대에게 드러나 있는 어둠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그대는 어째서, 그런 어둠을 두르게 되었는가.”
  “보이지 않는 어둠을, 어떻게 밝은 세계의 인간이 만지게 되었는가.”
  “그대에게선─ 우리와 같은 냄새가 난다. 어떠한가…? 그대는 우리와 함께 하지 않겠는가?”

  그것의 대답과 함께, ‘여럿’은 한꺼번에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건 정말로 ‘잠시’라고 부를 수 있었다. 나의 온갖 감정들-그것은 인간의 대한 것이며, 인간의 감정이었다-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는 나의 대답을 막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어머니를 생각했다. 삼촌을 생각했다. 돌아가신 아버지마저 생각이 났다. 그리움-그건 일종의 향수라고 부를 수 있다. 그것이 나의 발목이 되어, 그리고 소용돌이의 무기가 되어, 나의 대답을 방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숨을 멈추고, 다시 깊게 들이셨다. 그리움은 잊혀져갔다. 그리고─, 대답했다.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원리를,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대답을─.

  “그대는, 나다. 그리고─ 나는, 그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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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지 완결이야, 이 샤반쿱아! 라고 신나게 놀려주세요.
 네, 억지 완결입니다. 사실 시간도 없고(그럼 다음에 올렸으면 되잖아?), 마음도 아프고(뭐가 OTL)─. 여러모로. [...]

 33.8℉는 단순히 '下'의 의미. 전편을 보신 분이라면, 대충 왜 '상, 하'가 되는 것인가, 라는 것이 이해가 될 겁니다. 섭씨와 화씨의 차이지요.

 뭐, 어중간하게 끝내고 말았습니다. 만족하는 것도, 만족하지 않는 것도 아닌 그런 이상한 기분. 후기치고는 상당히 개운치 못합니다.
 역시, 더 제대로 썼어야 할까나요. 나중에 리뉴얼합죠, 뭐. [...]
 (여하튼 개념이 없어요, 개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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