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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장편] 쿵후보이 친미 1-2

2006.03.16 22:21

풀피리 조회 수:259

"요센도사님~!! 제발 절 제자로 받아주세요. 예?"


저잣거리에서의 소동이 있은 후 친미는 계속해서 요센도사를 따라다니며 졸랐다. 단순한 술주정뱅이의 모습으로만 비쳐졌던 요센도사의 진면목이 드러나자 잠시나마 불손한 생각을 했던 친미는 자신을 꾸짖으며 마음을 고쳐 먹은 것이었다.


"에잉~ 이녀석 정말 귀찮구나. 난 제자 같은거 안둔다는데 왜 자꾸 귀찮게 구는게야? 앙? 수행은 대림사에서도 충분하 하고있었지 않았느냐. 내 밑에서 배울 만한 건 술 마시는 것과 주정피우는 것 뿐이다. 그런걸 배울 생각이 아니라면 썩 돌아가!"

"요센도사님!!"


친미가 아무리 졸라대도 요센도사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은근히 친미의 대림사 수행을 비웃기 까지 했다.


"대림사라고? 그런 여태 그런 도장권법을 배워놓고 이제와서 실전권법을 배우겠다고? 끌끌, 정말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 이 꼬맹이 녀석아 다치고 싶지 않으면 그만 대림사로 돌아가. 거기서 계속 도장권법이나 배우며 살라고."


대림사 권법을 무시하는 듯한 말에 친미는 조금 화가 났지만 그정도로 물러설 그가 아니었다.


"저 역시 대림사 권법을 배우는 것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전권법을 배우려는 거예요. 요센도사님 밑에서요!"

"실전권법은 너 같은 코찔찔이가 배울 만큼 쉬운게 아니야."

"어렵다는 건 각오하고 왔어요. 가르쳐만 주시면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발 부탁드려요!"

"무슨 일이든? 헤헹~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요센도사가 코웃음을 쳤지만 친미는 더욱 열심히 설득하려 들었다.


"할 수 있어요. 청소든 빨래든 수련이든 뭐든 다 할께요."

"그런거야 누구나 할 수 있지. 난 네가 실전권법일 배울 수나 있느냐 하는 말이다."




친미는 그 날부터 동림사의 온갖 궂은 일을 도 맡아서 했다. 얼마나 입었는지 더러운 때가 찌든 요센도사의 빨래부터 동림사 절간의 청소까지 정말 요센도사의 눈에 띄기 위해 열심히 했다. 요센도사는 그런 친미를 눈여겨 보지는 않았지만 친미는 그래도 언젠가 제자로 받아주겠지 하는 생각에 조금도 요령 피우지 않았다.


"어디 가시나요, 요센도사님?"

"너 아직도 돌아가지 않았느냐? 그만 포기하고 대림사로 돌아가라."


요센도사는 그렇게만 말하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친미도 이를 놓칠새라 한참 나르던 땔감을 한쪽 벽에 쌓아두고 요센도사를 쫒았다.

마을은 여전히 붐볐다. 외국 상선이 입항을 한 것인지 부둣가에서 소 일거리를 찾는 일꾼들이 몰려들었다.

저잣거리로 나온 요센도사는 어김없이 주점을 찾았다. 어디서 난 돈인지 동전 몇개를 점소이에게 건내며 싸구려 화주를 댓병 시켜놓고 잔을 따르기 시작했다.


"화주는 독해서 좋긴한데 맛이 너무 싸구려란 말씀이야."


요센도사는 능청맞게 웃으며 술을 들이켰다.


"도사님. 그런데 돈은 어디서..."


친미가 보기에 요센도사가 돈이 날 곳은 전혀 없었다. 요센도사가 어디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텃밭을 일궈 작물을 키우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항구에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어디서 돈이 나온단 말인가.


"누가 아침에 불공을 드리고 갔더구나. 그 돈이지 뭘."

"세상에..."


친미는 기가 막혔다. 불공으로 기부한 돈은 본래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배푸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동림사에 들어오는 불공은 전부 화주가 되어 요센도사의 뱃속으로 들어가고있다니 친미로서는 기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에 불공으로 들인 돈을 술값에 쓴단 말이에요?"

"뭐, 문제라도 있느냐?"

"하, 하지만 그건 부처님께 올린 불공으로 다른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비로서..."

"멍청하긴. 이 근방에 나만큼 어려운 사람이 어딧단 말이더냐. 그러니 내가 조금 쓴다 하더라도 부처님께서 뭐라 하시겠느냐 이놈. 잔말 말고 술이나 따라보거라."


요센도사는 억지 주장을 펴며 친미 앞으로 술잔을 드리밀었다.


"하지만... 결국 술 마시는데 쓰는 거잖아요...."


친미는 조그맣게 불퉁거리며 술을 따랐다. 지독한 화주 냄새가 코 끝을 자극했왔다. 요센도사는 그걸 단숨에 들이켰다.

독한 술이 들어가자 또다시 얼큰하게 취기가 오르는 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한잔이 두잔이 되고 두잔이 넉잔이 된다. 취기가 오르면 오를 수록 요센도사는 자신 앞의 빈 술병 갯수를 점점 늘려만 갔다. 도중에 친미가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해가 중천일때 마을로 내려왔는데 어느덧 저녁 노을이 지고있었다. 마치 술고래마냥 끊임없이 술잔을 들이키던 요센도사도 잔뜩 취했는지 탁자에 엎어져 코를 골며 자고있었다. 탁자에는 하나같이 빈 술병들이 대 여섯 병이나 굴러다녔다.


"요센도사님, 일어나세요. 해가 진다구요. 동림사로 돌아가야죠."


친미가 흔들어 깨워보려 했지만 요센도사는 깊이 잠에 든 듯 도무지 깨어날 줄을 몰랐다. 하는 수 없이 친미가 축 늘어진 요센도사를 등에 업고 주점을 나서야 했다.

등에 업힌 요센도사는 그저 병약한 노인 처럼 가볍기만했다. 이런 노인이 어떻게 그 거한들을 물리쳤는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지경이었다.


'큰일이구나. 대림사를 떠나온지 벌써 1주일이 넘어가는데 난 아직 제자로 들어가지도 못했으니. 요센도사님은 받아주실 생각도 없는 것 같고, 이걸 어쩌지?'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혜안이 떠오르질 않았다. 오늘도 이렇게 술취한 요센도사나 들쳐업고서 동림사로 돌아가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때 그 점혈법이라던가 기공술은 정말 요센도사님 밑이 아니면 배울 수 없는 것들인데... 더 참고 졸라야 하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덧 저잣거리 뒷편의 골목길로 들어섰다. 동림사로 가는 지름길이었는데 일전에도 몇번이나 술에 골아 떨어진 요센도사를 업고 지나다닌 적이 있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지나 어느 집 담벼락 입구에 들어서려는데 어느새 일어난 요센도사가 친미의 등을 툭툭 쳤다.


"친미야. 잠깐 기다려라."


입에서는 지독한 화주냄새가 풍겼지만 방금 전 까지만 하더라고 술잔을 들이키던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취기를 찾아 볼 수 없는 목소리였다.

친미의 등에서 내린 요센도사는 놀랍도록 냉정한 표정으로 담벼락에 다가섰다. 무얼 하는 것일까 친미가 궁금해 하던 차에 요센도사가 손바닥을 벽에 갔다 대었다.


"핫!"


요센도사의 일발의 기합성과 함께 놀랍게도 담벼락 뒷편에서 무언가 튕겨져 나가는 듯 한 소리가 들렸다. 요센도사는 지체하지 않고 연달아 장법으로 담벼락을 가격했다. 그럴때마다 욱- 하는 신음소리가 벽 뒤에서 연달아 터져나왔다.


"통배권?!!"


친미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통배권이란 기공술의 극치에 이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장법이었다. 기공을 극대화해 사물에 불어넣음으로서 그 건너편에 있는 사람을 쓰러뜨릴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것도 사물은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은체...


"젠장, 들켰다!!"


벽 뒤의 누군가가 욕지껄이를 내뱉으며 우르르 몰려나왔다. 하나같이 험상궂은 외국인들이었는데 게중에는 몇일전 저잣거리에서 요센도사에게 혼쭐이 났던 녀석들도 엿보였다.


"헤헤헤... 니들은 이제 끝장이야. 아예 죽여버릴테다."

"개새끼들, 감히 이상한 술수를 써? 아주 뼈를 으스러뜨려버리겠어!"

"이 동양원숭이들 몇일전에는 아주 건방을 떨었지? 어디 맛좀봐라."


외국 선원들의 입에서 하나같이 험악한 욕설이 더러운 탁류처럼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아주 단단히 준비를 하고 온 모양인지 전보다 더 살기충천해 있었다. 가장 앞에 선 선원이 손뼈를 으드득 꺽으며 징그럽게 웃었다.


"도망갈 생각은 아예 하질 마라. 어디까지고 쫒아가서 사지를 부숴놓을테니까. 너희들 동림사라는 절간에 산다며? 오늘 늬들은 여기서 다 죽이고 그 절에도 불을 질러주마. 감히 건방지게 까부는 동양원숭이들은 그렇게 조련을 시켜야되는거니까."


선원의 눈이 잔인하게 번뜩였다. 정말 이 녀석들은 아무것도 거릴게 없는 모양이었다. 이대로 놔두면 친미나 요센도사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 주민에게도 해꼬지를 할 것이 뻔했다.


"이 녀석들!! 그때 혼이 나고도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다니!"


친미가 화를 참지 못하고 나섰다.


"이 꼬맹이가 죽으려고 나서나. 나서길. 이 새꺄, 넌 저 영감 다음에 죽일꺼야. 가만히 찌그러져 있어. 엉?"

"이것들이 정말..."


선원들이 마치 산체로 잡아먹으려는 듯 으르렁 댔지만 요센도사는 느긋한 표정이었다. 그러던 요센도사가 갑자기 뭔가 재밌는 생각이 들었는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친미야, 이번엔 네가 녀석들을 상대해라. 만약 저 세놈을 상대해서 전부 쓰러뜨리면 내 제자로 받아주마."

"정, 정말이세요?"


조건이 달린 얘기였지만 친미는 벌써 제자가 되기라도 한 듯 뛸 듯이 기뻐했다. 이를 지켜본 선원들이 반은 기가막히고 어이없다는 표정, 반은 더더욱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이제 곧 죽을 녀석들이 왠 헛소리를 지껄이나 하는 모습들이었다.


"이 원숭이 자식들이 아까부터 자꾸 헛소리를 지껄여? 아주 잘근잘근 밟아버리겠어!"


커다란 덩치의 털복숭이가 화가 난 듯 발을 쿵쿵 굴렀다. 그러나 그런 그의 반응은 신경 쓰지도 않은 듯 친미는 자세를 고쳐잡고는 서서히 녀석들과의 거리를 재었다.


"차아앗~!"


가장 앞에섰던 선원이 거칠게 덤벼들었다. 예의 그 강한 악력으로 붙잡은 다음에 흠씬 패주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친미는 쉽게 걸려들지 않았다. 굵직하고 강인한 손을 이리저리 피하며 상대의 배와 가슴을 연달아 차고 질렀다.


"허윽..."


조그만 꼬맹이의 공격이 뭐 대단할까 싶어서 가드를 소홀히 했던 녀석이 가슴을 싸쥐며 뒤로 뒤뚱뒤뚱 물러섰다. 가슴을 걷어자이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고통이 엄습했던 것이었다. 타격을 입은 녀석이 뒤로 물러선 사이에 털복숭이가 뒤에서 친미를 덥쳤다.


"잡았다! 이녀석!!"


친미의 한쪽 팔을 잡은 털복숭이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만 그것은 오래 가지 못했다. 친미가 뒷발로 녀석의 명치부근을 걷어차고 반대 발로 빙글 회전하며 턱 언저리에 강한 일격을 가했다. 턱에 큰 충격을 받은 녀석이 이빨이 부러진 듯 피를 튀기며 뒤로 쿵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이번엔 친미가 방심을 하고 말았다. 물러섰던 녀석을 노려보느라 방금 쓰러진 녀석을 신경쓰지 못한 것이었다. 비록 크게 당한 녀석이었지만 악착같이 친미의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잡았어, 죽여버려! 죽여!"


털복숭이가 외치지 않아도 물러섰던 녀석은 이미 친미에게 들이닥치고 있었다. 친미가 당황해하는 사이 커다란 발바닥이 친미의 복부를 강타했다.


"우우욱..."


덩치에 걸맞게 묵직한 일격이었다. 배를 얻어맞는 순간 내장이 뒤틀리고 점심에 먹은 것을 몽땅 쏟아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녀석의 주먹이 연달아 날아들었다. 그럴 때마다 퍽퍽 하고 친미의 얼굴이 이리저리 홱홱 돌아갔다.

상황을 지켜보던 요센도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사실 요센도사는 친미가 이길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제 겨우 15살에 곱상하기만 한 녀석이 그깟 도장권법으로 저 거친 외국 선원들을 당해내리라곤 처음부터 염두해 두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제자로 받아주겠다는 조건까지 재미삼아 걸었는데 역시나 이런 꼴이었다.

장난은 이쯤해야겠다는 듯 요센도사가 나서려는데 의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한참을 얻어맞던 친미가 마치 악바리처럼 달려들어 발목을 붙잡고 늘어진 녀석들 짓밟고 앞에서 덤비는 녀석의 목젖을 수도로 친 것이었다.

요센도사가 의외의 전개에 놀란 듯 가만히 지켜보는 사이 친미는 기새를 몰아 녀석의 허벅지를 걷어차고 정권으로 명치를 쳤다.


"허윽!"


목젖과 명치를 강타당한 녀석이 숨 쉬기 힘든 듯 몸을 굽히는 사이 발목을 빼낸 친미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도약을 했다.


빠아아악-


친미의 무릎이 선원의 턱을 부숴버린 것이었다. 뼈가 부서지는 소름돋는 소리가 골목에 울려퍼졌다. 이미 엉망으로 두들겨 맞았던 친미가 씩씩 거리며 분을 삭였다.


"재법인걸?"


친미가 선원 둘을 쓰러뜨리고 나서야 뒤에서 지켜보던 마지막 한명이 여유롭게 끼고있던 팔장을 풀고 나섰다. 녀석은 바닥에 굴러다니던 병을 하나 집어들어 담벼락에 툭 쳐서 깨뜨렸다. 병은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고 친미를 위협했다.


"...!!"


상대가 흉기를 꺼내들자 위축된 친미가 몸을 주춤거렸다. 친미의 기새가 한풀 꺽이자 녀석은 잔인하게 웃으며 깨진 유리병을 휙휙 휘둘렀다.


"이 꼬맹이자식. 어디 지금껏 잘도 까불었겠다?"


유리병을 휘두르던 선원이 느닷없이 바닥의 모래를 걷어차 친미에게 날렸다. 순간적인 술수에 모래가 눈으로 들어간 친미가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싸쥐는 사이 다시금 유리병이 휙 하고 날아들었다.

친미는 반사적으로 피하긴 했지만 유리병의 날까로운 끝이 친미의 팔을 스치고 지나가며 선혈을 뿌렸다.


"하아, 하아..."


친미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입에선 단내가 났다. 날카롭게 세워진 유리병 탓에 위축이 되어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자꾸 신경이 분산이 되었다.

다시금 유리병이 날아들었다. 이번에 미처 피하지 못해 왼쪽 팔을 찔리고 말았다.


"아아악."


친미의 고통에찬 비명과 동시에 선원의 징그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녀석은 아예 친미를 죽일 생각이었다.


"그만, 이젠 내가 상대하마."


친미가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요센도사가 그제서야 나섰다. 선원도 구석에 몰려 스르르 쓰러지는 친미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예의 날카로운 유리병을 요센도사를 향했다.

요센도사는 여유롭게 손을 쭉 내밀어 유리병을 손바닥으로 시야에서 가렸다. 선원은 요센도사가 이상한 행동을 하자 경계하며 빈틈을 노렸다.


'경험이 많은 녀석이야. 친미가 당한것도 당연하군.'


요센도사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선원의 움직임에 따라 자신도 유동적으로 견재했다. 선원은 계속 요센도사의 빈틈을 노렸지만 무술고수가 그렇게 쉽게 틈을 보일리 만무했다. 계속된 움직임에도 전혀 빈틈을 찾을 수 없자 내심 참고있던 선원의 화가 폭발했다.


"이 영감탱이가!!"


선원이 유리병을 일직선으로 찔러왔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조심해요!!"


친미의 날카로운 경고와 함께 날카로운 유리병으로 요센도사의 정권이 마주 날아간 것이었다. 자칫하면 손이 날카로운 유리조각에 박살이 날 판이었다. 하지만 그런 친미의 걱정은 기우였다. 놀랍게도 요센도사의 정권은 깨진 유리병의 중앙에 쏙 하고 들어가서 선원의 주먹과 함께 유리병을 산산히 부숴놓고 말았다.


"으아아아악~ 아악, 내손. 내 손이..."


선원은 비명을 지르며 부러진 손을 감싸쥐고 바닥을 뒹굴었다. 실로 놀랍고도 무서우리만치 정확한 일격이었다.


"맙소사..."


친미는 얼이 빠진 듯 그 광경을 멍 하니 지켜봤다. 날카로운 유리병의 중앙에 주먹을 지르는 것은 보통 평범한 사람으로는 생각치도 못할 대담함 그 자체였다. 자칫 실수라도 했다간 손이 날아가 버릴만큼 위험 천만한 짓이었던 것이다.

나머지 선원을 마저 제압한 요센도사는 너털 웃음을 흘리며 주저앉아있던 친미를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거라. 언제까지 그렇게 앉아있을 참이냐?"

"죄, 죄송합니다. 요센도사님."


요센도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도 제법 악바리 같더구나. 실전권법을 배우려면 하긴 그정도 성질머리는 있어야 겠지. 좋아, 약속대로 세 놈을 모두 쓰러뜨리진 못했지만 제자로 받아주마. 생각보다 아주 잘 했어. 하지만 각오해 두는게 좋을게다. 내가 하는 수행은 아주 고된 거니까."

"가... 감사합니다 요센도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친미는 유리병에 찔린 팔이 아픈 것도 잊고 업드려 절했다. 이런 대단한 고수의 제자로 들어가다니 정말 꿈만 같았다.


"그보다 네 상처를 치료해야겠구나. 흥림사로 돌아가자."


그렇게 친미는 요센도사의 제자로 들어가게 되었다. 대림사를 떠나온지 1주일이 되던 날의 일이었다. 어느덧 저녁 해가 뉘엇뉘엇 저물어 땅거미 사방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싸우긴 전과는 정 반대로 이번에는 친미가 요센도사의 등에 업혀있었다.







그때의 일을 회상한 친미는 인근 마을에서 유리병 하나를 구해왔다. 돌맹이로 가볍게 깨뜨린 유리병을 빈 법당 대들보에 매달아놓고는 그대로 주저않아 가부좌를 틀었다.


'일격필살. 일격필살이다...'


이것은 하나의 고행의 관문이었다. 처음으로 친미에 닥친 시련, 도장권법을 탈피하고 실전권법으로 들어서기위한 관문. 친미는 조용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두려움을 떨치고 정신을 집중해야했다. 신중하게 한번 두번 숨을 몰아쉰 친미는 조용하게 명상에 빠졌다.


'일격으로 저 병을 깨뜨린다. 일격필살... 일격필살....'


어느 순간 친미의 눈이 떠졌다. 벌떡 일어난 친미가 유리병을 새차게 흔들었다. 줄에 매달린 유리병이 포물선을 그리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후우~ 후우~"


심호흡을 여러번 한 친미가 유리병 앞에 나섰다. 이제 결행을 할 때였다. 날카로운 유리병이 포물선을 그리며 친미에게 날아들었다.


"야앗!!"


친미가 기합성과 함께 정권을 질렀다. 순간 날카로운 유리병이 주먹과 교차되어 보이며 섬뜩한 생각이 친미의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앗차! 실수!"


흠칫하는 순간 유리명을 그대로 친미의 주먹을 빗겨나가 어깨를 스치고 기나갔다.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선혈을 머금어 붉게 물들었다.


"침착. 침착해야해. 일격필살이라구."


대담하지 못한 자신을 내심 꾸짓으며 친미는 다시 유리병의 포물선 밖에 섰다. 심호흡을 여러번 하고 다금 자세를 고쳐 잡았지만 여간 기회를 포착하기가 힘들었다. 포물선으로 움직이는 병 속에 정권을 정확히 넣는 다는게 이렇게 힘들줄은 미처 몰랐다.

친미는 정확히 포물선의 바깥에 서서 유리병을 노려봤다. 유리병은 세차게 포물선을 그리며 친미의 코앞에서 멈춰 선 뒤 다시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다시... 반복된 유리병의 움직임이지만 그 기회를 찾기는 힘들다. 친미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유리병은 포물선을 그리며 움직인다. 그리고 난 그 기회를 찾아야 해. 일격 필살의 기회를.'


유리병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한번, 두번. 왕복해서 친미에게 날아오던 유리병은 어김없이 친미의 코 앞에서 힘이 다해 멈칫하며 친미를 위협했다. 순간 친미의 뇌리를 강렬하게 스치고 지나간 것이 있었다.


'찾았다!! 일격필살의 순간을!!!'


"이야아아아압!!!!!!"


생각이 미치자 결행은 빨랐고 친미의 기합성은 강렬했다. 유리병을 향해 날아간 정권이 그대로 유리병 안으로 빨려들어가 듯이 쑥 들어갔다. 조금 위치가 어긋나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등주먹의 피부를 조금 찟어 극심한 고통과 함께 선혈이 흩어졌지만 친미는 전혀 개의치 않고 정권을 내질렀다.


파아아아아앙~~


친미의 정권을 맞은 유리병이 마치 그때의 그 유리병처럼 산산히 부서지며 흩어졌다. 유리조각과 함께 친미의 아픔에 찬 눈물이 한방울 공중으로 흩어지며 반짝였다.


"해냈어!! 그게 바로 일격필살의 순간이었어! 유리병의 포물선의 한계점에서 멈추는 그 순간! 그게 바로 일격필살의 순간이었던 거야!!!"


기쁨에 찬 환희의 목소리가 절간 안에 울려퍼졌다. 이것은 평번한 수련의 성공이 아니었다. 이제 도장권법에서 벗어나고 실전권법으로 들어서는 아주 의미깊은 성공이었다. 친미에게 있어서는 권법에 대한 또다른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었다.


"드디어 찾았구나. 그 순간을."


언제부터인가 지켜보고 있었는지 법당의 문앞에는 요센도사가 서서 미소를 짓고있었다.


"도사님..."


친미는 감격한 나머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잘 했다. 쉽게 얻은 깨달음은 쉽게 잊혀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려움을 딛고 얻은 깨달음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 법이지. 그 주먹의 통증은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 통증이 네게 큰 깨달음을 준 거야."


요센도사는 진지한 조언을 해주었다. 친미의 다친 오른손은 간단한 약품으로 소독을 하고 붕대를 감아주었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 않았고 약간의 시간만 지나면 완치될 정도였다.

어느덧 해가 서산 너머로 뉘엇뉘엇 지려하고 있었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차갑기 그지없던 칼바람이 이제는 유난히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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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시고 감상평좀 남겨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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