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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Antares[0.5막] -Follow me 03 -

2006.03.04 13:48

히이로 조회 수:157

"도착한건가."

"네 그렇습니다. 단장님."

필립의 질문에 옆에서 말을 몰던 부관이 즉각 대답한다. 회의장에서 소동이 일어난 후, 출발해서 약 이틀만에 도착한 카세리네 협곡의 도입부였다. 하늘빛을 보니 슬슬 안타레스가 허공에서 모습을 감출 저녁 시간. 인간의 혈액을 연상케 하는 붉은 빛의 구체가 주변의 노을과 대비를 이루며 한껏 자신의 모습을 뽐낸다. 더불어 아직은 쌀쌀한 기운을 담고 있는 초여름 저녁의 바람이 시원하게 그들의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익시드 나이츠는?"

"약 10분 후면 이곳에 도착할 것입니다. 아직 발사로크의 상퀼로트도 도착하지 않았으니 아마 오늘밤은 그들도 이곳에서 야영을 하고 내일 새벽에 이동할 듯 합니다만."

"제대로 쉬지도 않고 행군했으니 그들도 휴식이 필요하겠지. 그럼 먼저 야영준비를 해두도록 하게. 난 주변 지형을 둘러보고 돌아올 테니."

"예. 알겠습니다. 발사로크군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하나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기사단장님."

부관의 말에 대답대신 고개를 한번 끄덕인 그는 말을 몰아 앞으로 전진한다. 길의 폭이 약 30m 남짓한 비좁은 협곡. 양옆으로는 가파른 절벽이 버티고 있는 형상이다. 날카롭게 튀어나온 바위들 사이로 힘겹게 생명을 이어가는 작은 식물들. 이런 식물들이 많았던 탓인지 협곡의 절별은 우중충한 바위 색 보단 파릇파릇한 연두색이나 녹색으로 덮인 곳이 더 많았다.
주변의 경관을 둘러보면서, 필립은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가파른 절벽이 있으니 협곡 내로 들어와서 포위만 당해준다면 우리의 승리이겠군. 일단 돌이 많은 곳이고 나무들은 없으니 화공은 가능성이 없고, 이런 절벽 위로 기어올라 매복하는 미친놈들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아군의 안전은 확실히 보장된 셈인데…….'

생각을 멈추고 다시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는 필립.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땅에 비친 울퉁불퉁한 지면이었다. 카세리네 협곡이 있던 위치는 오래 전에는 나름대로 규모가 있는 하천이 흘렀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물줄기가 주변 땅을 깎아 들어갔고, 그 결과로 이런 거대한 V자 형태의 협곡이 만들어 진 것이다.
지금 필립이 서 있는 자리는 예전에 물이 흘렀던, 가장 수심이 깊었던 곳이다.

"난감한데……."

폭이 좁아 수비를 하는 자신들의 입장에서 유리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울퉁불퉁한 깨끗하지 못한 지면. 가끔씩 산사태도 일어났는지 길을 막는 장애요소들이 상당히 많았다. 기병인 기사가 움직이기는 확실히 어려운 곳이다.
대표적인 예로 얼마 되지 않는 거리, 보통 말을 타고 달려 10시간 정도면 도착했을 이곳을 그와 그의 기사단은 이틀이 가깝게 시간을 소비하며 도착했다. 더군다나 자신들이 이동해 온 협곡의 끝 부분과 달리 도입부는 가면 갈수록 길이 험해지고 있었다. 보병에 비해 전투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기사지만 이런 지형에서 말을 타고 싸운다는 것은 오히려 짐을 더 진 채로 행동하는 것과 같았다.

"시간이 약간 있으니…전투가 벌어질 장소의 길을 내일부터 서둘러 정비해야겠군."

어느새 카세리네 협곡이 끝나고 드넓은 평지가 나오는 것이 눈에 보이자, 혼자서 중얼거리던 필립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위해 말머리를 돌린다. 어느새 주변은 어두컴컴해지고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앞다투어 자신의 광채를 뽐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휘익∼!

"끼히히힝!"

갑작스럽게 앞발을 쳐들며 울부짖는 말 덕분에 필립은 하마터면 말 위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 온 힘을 다해 말을 진정시킨 후 재빨리 검을 뽑아들고 주변을 경계하는 필립. 갑작스런 습격이었기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주변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그에겐 불도 없는 상황. 적의 정체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설마, 상퀼로트가 벌써 진군해 온 건가. 아니지.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보고되었어야 하……."

휘익∼!

"끼히힝∼!!"

"크윽! 대체 뭐야!"

다시 한번 거칠게 앞발을 쳐드는 말 덕에 필립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상대는 엄청난 빠르기를 보유하고 있다. 정체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지만 말이 놀랄  때마다 일어나는 상당한 풍압을 필립역시 느끼고 있었다.

'확률은 두 가지. 적의 마법사. 아니면 몬스터. 다행스러운 건 적도 나와 같이 단신이라는 것!'

주변은 앞을 분간하지조차 어려울 정도로 어둠이 깔려있었다. 이쯤 되면 나인발트 기사단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자신을 찾으려고 이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을 터. 조금만 시간을 끌면서 버틴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하지만 필립은 검의 손잡이를 더욱 꽉 움켜지며 온 신경을 예민하게 곤두세우고 있었다. 다음 습격 때 끝장을 볼 생각인 듯 했다. 적의 공격을 방어해내면서 아군의 지원을 기다리는 것은 생각처럼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런 상황이 된다면 그 자신은 물론 나인발트 기사단 전원에게 오명을 씌울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

"가뜩이나 익시드 나이츠의 헤이딕이 내 흠을 잡아내려고 안달이 나 있을 텐데 나 스스로 흠집거리를 만들어줄 수는 없지. 내 손으로 결말을 지어야겠는걸…어디 숨어있는진 모르겠지만……나와라!"

필립의 외침에 반응이라도 하듯 어둠으로 칠해진 주변에서 갑자기 어떤 물체가 튀어나와 그를 향해 돌진했다. 이것으로 상대의 정체는 몬스터라는 것이 확실해 졌다. 마법사가 스스로 돌진할 이유는 왠만해서는 존재하기 않기에. 시야가 터무니없이 좁은 현재의 상황에서 그는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기사가 되기 전부터 연습해 온,  셀 수 없을 정도로 반복했던 동작. 기사가 된 후에도 게을리 생활하지 않은 필립에게 지금의 동작은 신체의 일부분인 마냥, 자연스럽고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상대가 움직일 때마다 생겨나는 거센 바람을 전신으로 느끼면서 방향을 짐작하고 휘두른 필립의 검은 정확히 상대에게 명중했다.

까아아앙∼!

"큭!"

검을 잡은 양손에 상당한 충격이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울려 퍼지는 굉음. 필립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쳐지나갔다. 방금 접촉으로 그가 느낌 감각은 철과 철이 맞부딪칠 때의 그 느낌과 똑같았다. 얼얼한 양손의 통증을 느끼면서 제3의 공격에 대비하는 필립. 그러나 이미 상대는 또다시 기척을 감춘 상태였다.

"깨끗하게 부러졌군. 표면에 철갑을 두른 짐승은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인데. 도대체 정체가 뭐지?"

중얼거리며 부러진 검을 던지는 필립. 말에서 내림과 동시에 등뒤에 메여있던 검 집에서 또 다른 검을 뽑는다. 은은한 녹색 빛을 뿜은 델라임(月중의 하나)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검 날. 상당한 기교가 필요한 세밀한 디자인에서부터 흠집하나 없는 깨끗함까지. 보통의 검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블레이드였다.

"가보……어 그러니까…이름이……아! -마르니에- 였던가……."

감상에 젖은 듯,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목소리. 아버지 필로스 후작이 자신에게 남긴 유품 2개중 하나이지 대대로 내려오던 가보. 세월의 거친 풍광 위에서 선대들의 손을 거치며 늙어온 검은 오랜만에 본 달빛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껏 녹색의 빛을 머금고 있었다.
필립 자신도 이 검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뽑은 것은 처음이었고, 검 집에 숨겨져 있던 내부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넋나간 사람처럼 검이 반사하는 빛과 자태에 매료되어 있었다.


-이 검은 나중에 네가 물려받아야 할 가보 '마르니에'란다. 여렸을 때부터 보았으니 자질구레한 것들은 생략하마. 원칙적으로는 내가 죽지 직전에 물려주어야 할 검이지만…상황이 상황인 만큼 지금 네게 주도록 하마. 이 검을 받는 순간, 네 후계자, 그러니까 내 손주가 태어나기 전까지 절대로 뒈지지 않겠다는 맹세와 시덥잖은 이유를 대며 솔로부대에 눌러앉지 않겠단 다짐을 하는 것이다. 성교육 잘 독학(?)해서 알겠지만 아이는 너 혼자서 만들 수 없지 않으냐 헛헛. 자 어서 가라. 나인발트 나이츠가 주둔하고 있는 곳은 위험할뿐더러 거리도 멀다. 어서!-


아버지 필로스 후작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그날.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검을 물려받은 필립은 그때 생각이 떠올랐는지 피식 미소를 짓는다. 자신의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웃기지도 않는 유머까지 구사해가며 노력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떠올랐던 것. 동시에 자신에 대한 자책감도 밀려들어왔다. 그때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성에 남았다면……같이 죽는 한이 있어도, 철저한 무력감만을 느끼며 아버지를 적의 손에 잃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휘익∼! 두두두두두두!

"생각해보니 원칙적으로 잘 물려받았네. 죽기 직전에 넘겨받는 거니까……그나저나 너 말이야. 이번엔 제대로 지나갈 수 없을걸."

한동안 자취를 숨겼던 상대가 다시 그를 향해 달려온다. 말의 엉덩이를 슬쩍 때려 안전한 곳으로 보낸 다음, 가보를 잡고 응전 태세를 취하는 필립. 마르니에가 반사하는 빛 덕분인지 그 주변이 상당히 밝아져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숨을 고르며 팔에 모든 힘을 집중시킨다.
그리고……벤다!

촤아아아악∼!

"꾸익∼! 꾸엑! 꾸엑!"

"좋아."

주위에 떨어지는 액체의 경쾌한 음과 살을 베고 지나가는 오싹하지만 짜릿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말 위에서 내리쳤을 때 검이 부러진 것을 감안하며 아랫부분을 노린 것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치명적인 타격만 입혔을 뿐, 숨통을 끊지는 못했기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확실히 끝을 보겠다고 다짐한 그는 다시 한 번 자세를 잡고 적을 기다렸다.

그러나…….

"…뭐, 뭐야…설마 도망친 건가?"

긴장한 채 약 15분 가량을 같은 자세로 서 있던 그는 허탈감이 가득 베어 나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구석에 가서 태평스럽게 응아를 하고 있는 말을 찾아 올라타고는 제대로 낚였다는 생각을 하며 진영으로 돌아가는 필립의 뒷모습이 유독 처량해 보이는 밤이었다.


-같은 시각 익시드 나이츠 진형-

"으르릉∼!"

"뭐, 뭐야! 저 피투성이 돼지 새끼는!"

"이런 멍청한, 넌 저것도 모르냐! 절벽에서 생활한다는 희귀 몬스터 '락피그' 아냐!"

"락피그고 나발이고 어서 잡아봐!"

필립이 없는 사이 나인발트, 익시드 나이츠가 야영을 하는 공터는 한 생명체의 등장으로 쑥대밭이 되어있었다. 필립이 상대한 몬스터 락피그가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도망치다 그들이 주둔하고 있던 야영지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것도 익시드 나이츠의 신참 기사들이 있던 외곽부근에 출몰했던 터라 혼란은 더더욱 가중되었다.
급기야는 나인발트 나이츠까지 출동하여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달려온 상황. 어느 누구도 필립의 부재 따위는 걱정하고 있지도 않았다…….

"기사 된 자들이 저런 미물에게 겁을 먹다니 대체 뭣들 하는 짓이냐! 어서 숨통을 끊어!"

헤이딕의 고함소리에 몇몇 기사가 -그럼 겁 안 먹은 니가 잡아라-라는 표정을 지으며 주춤주춤 앞으로 나간다. 하지만 전신에 피를 뒤집어쓰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야생몬스터의 모습에 이미 기세가 꺾여있었다.
락피그 역시 상대가 접근하자 위험을 느꼈는지 더욱 사납게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기사들이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가기 직전, 락피그가 먼저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나이스 타이밍.

"우, 우왁!"

당황한 기사들이 피하는 데 급급하여 길을 열어주자 그 사이를 헤집는 사이 어느새 몬스터의 표적은 우연이 일치인지 고의적인지…헤이딕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 역시 생각지도 않던 상황에 락피그가 자신을 향해 돌격해오자 미처 검을 뽑지도 못한 채,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어!…어! 안, 안돼!"

말도 잘 안나왔는지 더듬더듬 거리는 그의 앞으로 이미 락피그가 쇄도해 들어온 상황. 검을 뽑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설령 뽑는다 해도 공격할 시간이 있을 리 만무했다. 좌측이나 우측으로 몸을 날려 공격을 피해야 했지만 비대한 몸집을 가진 헤이딕의 머리 속은 이미 새하얗게 변해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기에 그런 현명한 생각을 기대하는 것은 기적과도 같았다.
적어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우아아아아아악!"

"저 잡것 때문에 잠을 못 자잖아! 에잇!"

헤이딕의 고함(비명)소리와 같이 울려 퍼지는 앙칼진, 익숙한 고함소리. 모든 이들이 눈을 질끈 감는 순간 무언가가 살갗을 꿰뚫고 지나갈 때의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푸슉!

"타아아앗!"

"꾸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찢어지는 듯한 괴성을 내며 쓰러지는 락피그. 더불어 뒤엉켜서 쓰러지는 헤이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몸스터의 왼쪽 몸에 박혀 있는 한 자루의 롱소드를 뽑는 가느다란 손도 눈에 띄었다. 검과 손의 주인인 한 기사가 투구를 벗으며 치렁치렁한 금발을 정리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네르바 폰 비슈로프.
그녀가 헤이딕의 생명을 본의 아니게(?) 구한 것이다.

"우으으…뭣들 하고 있는가! 어서 이 시체를 치워라."

"아, 네엣!!"

락피그의 시체에 깔린 헤이딕이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고함치자 그제서야 주변의 기사들이 달려들어 시체를 들춰내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부기사단장인 그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데 들어간 몇 분 가량의 시간이 흐른 후, 헤이딕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접한 익시드 나이츠는 함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물론 그 함성 속에는 위기의 상황에서 몸을 날려 상관의 목숨을 구한(?) 네르바의 공을 칭송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네르바경 그대가 나를 구해주었군. 정말 고맙네."

"아닙니다. 단지 잠을 방해……가 아니고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지요.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부기사단장님."

"실력도 출중한데 이렇게 겸손한 모습까지 보이다니! 정말 타의 모범이 되는 기사로군 네르바경은. 그것도 나약한 '여자의 몸'으로 말이야 와핫핫핫!"

갑옷과 얼굴에 튄 락피그의 피를 닦아낸 후 네르바에게 다가와 정중히 고마움을 표시하는 헤이딕. 네르바 역시 본심이 새어나오는 것을 간신히 감추고 정중한 태도로 그를 대했다. 명색이 자신의 상관이었기에 동료나 필립에게 구는 것처럼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헤이딕의 말 중, 그녀를 자극하는 부분이 있었는지 도중에 사납게 눈을 치켜 뜬 그녀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상대는 눈치를 채지 못한 듯 했다.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군.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아침에 자네의 오늘 활약에 대해 포상을 하도록 하겠네. 그럼."

"옛! 알겠습니다. 푹 쉬십시오."

기사들의 부축과 호위를 받으며 자신의 막사로 돌아가는 헤이딕 부기사단장의 뒷모습을 향해 경례를 하는 그녀의 모습. 그의 언행중간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포상이라는 말 덕분인지 네르바의 표정은 상당히 격양되어 있었다.
헤이딕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주변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그녀의 동료기사들이 다가와 순식간에 네르바를 중심으로 둥근 원을 형성했다.

"역시 네르바경. 익시드 나이츠의 여왕이라는 칭호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한 실력이었어!"

"정말 대단해. 같은 여자지만 어떻게 그 몬스터를 향해 달려들 생각을 했니?"

"부기사단장을 구하다니. 네르바경 출세하겠네. 이거야 원 부러워서……."

모두가 그녀를 향해 감탄과 존경이 뒤섞인 말을 한마디씩 건네자 네르바는 기분이 좋았는지 기들을 향해 가벼운 미소로 답례한다. 솔직히 네르바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한 일이 별로 없었다.
단순히 시끄럽게 울어대서 숙면을 취하고 있던 그녀의 행복을 건드린 락피그를 향해 무작정 달려든 것이었을 뿐. 락피그 또한 헤이딕을 향해 돌진하던 상태였기에 그녀의 검을 볼 수 없었고 이미 상당한 출혈로 지쳐있던 상태. 어떻게 보면 공격이 먹히지 않는 다는 것이 이상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운 좋게 내 검으로 숨통을 끊어 대박을 터트린 것 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군. 그나저나……이미 락피그에게 상처를 낸 자는 도대체 누구지? 분명 그건 검으로 베고 지나간 검상이었어.'

동료들의 축하에 건성건성 답례를 하며 생각에 잠기는 그녀. 분명 락피그가 나왔을 때는 이미 상처를 입은 상황이었지 익시드 나이츠 중 누군가가 치명타를 가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두 가지. 하나는 미리 이곳에 도착한 나인발트 나이츠의 기사 중 하나이거나 두 번째로는 발사로크군의 상퀼로트!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는 순간 네르바는 등골이 오싹해 짐을 느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잖아!'

나인발트 나이츠의 정찰병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아직 상퀼로트는 협곡 주변에 조차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계산된 시간에 의하면, 최소 5일 정도는 더 기다려야 했지만 변수는 충분하다.
이미 아군의 정보가 적에게 노출되었을 수도 있었고, 모르는 사이 가까운 근방에 매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물증은 없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두 기사단 전체가 궤멸된 위기에 놓여있는 일이었기에 급하게 기사들 사이를 빠져 나와 지휘 수뇌부가 머물고 있는 막사 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네르바.
이런 그녀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한 그림자가 있었으니…….

"……내가 다 잡아 논건데…안구에 습기가 찬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휴우……."

비통함(?)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탄식과 더불어 한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락피그를 다 잡아놓고도 놓친, 거기에다 막판에 그 모든 것을 천적(!)에게 가로채인 그는 머리를 북북 긁으며 익시드 나이츠의 기사들이 시체를 옮기는 모습을 애처롭게 쳐다보다가 어둠 속으로 슬그머니 사라져갔다.



-익시드 나이츠 기사단장의 막사-



"하고 싶은 말은 그것뿐인가 네르바경."

"옛."

"알았다. 이제 나가보게."

"하지만……."

두 개의 양초가 뿜는 빛을 이용해 열심히 무언가를 써 내려가던 깃펜이 멈춘다. 몸은 여전히 부동이었지만 얼굴을 들어 상당히 경직되어있는 네르바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갈색의 눈동자. 특별히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드는 눈. 무의식적으로 상대와 눈을 마주하는 것을 피하고 싶었는지 그녀는 슬그머니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잠시 후 들려오는 상대의 목소리. 조용하고 차분했지만 약간은 불쾌하다는 듯한 기색도 스며들어 있는 분위기였다.

"왜? 더 할 말이라도 있나?"

"아, 아닙니다! 기사단장님."

익시드 나이츠 기사단장인 하이만이 언짢아한다는 것을 느꼈는지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강하게 부정한다. 기사단 내에서도 미모나 용맹, 자존심 강한 성격으로 알 사람은 다 알고있는 그녀였고, 백작 가의 외동딸이라는 출신성분까지 더해져 어느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대하는 네르바 이지만, 계급 차가 나는 상관들에게는 이름 없는 한낮 신참기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는 하이만 드 칸타빌레 익시드 나이츠 기사단장과 헤이딕 폰 서머릿 부기사단장. 헤이딕의 경우 네르바 스스로가 그런 성격을 싫어해서 자연히 멀리하는 것이었지만 하이만 기사단장은 달랐다. 특별한 거부감도 없지만 친근함을 가지고 신뢰하기에는 부족한 이질적인 느낌. 한 기사단의 총 지휘자이지만 직책에 비해 형편없는 존재감등 어려운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말과 속마음이 틀리지 않은가. 본인을 기만하는건가 네르바경."

"당치도 않습니다! 다만……."

"다만?"

"제 보고에 대한 아무런 말씀이 없으셔서……."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그랬나. 난 반복하는 것은 싫다. 앞으로는 주의하도록."

"옛! 주의하겠습니다!"

뜨끔한 네르바가 황급히 경례를 붙이고 나가려는 순간 이번에는 하이만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단순히 이름을 호명한 것뿐이지만 당사자인 그녀는 중대한 명령을 받았을 때와 같은 무거움을 느꼈다.

"네르바경."

"넷 기사단장님!"

"이곳에서 대기하라. 그대의 의문을 곧 해소시켜 줄테니. 알겠는가?"

"알겠습니다!"

하이만의 명령에 다시 서 있던 자리로 돌아온 네르바는 어색한 분위기가 풍기는 막사 내에서 부동자체를 취한 채 대기한다. 그렇게 서 있은 지 약 5분 여 가량이 지나자, 그녀의 표정에는 난감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시 깃펜을 놀리는 하이만에게 묻기에는 그녀의 얼굴이 두껍지 못했고, 이런 숨막히는 듯한 분위기는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기에 더욱 고통스러운 네르바였다.

'곧 해소된다고 하더니…도대체 얼마나 더 이러고 있어야 하는거야!'

속으로 하이만에 대해 씹으면서도 명령이었기에 대기하는 그녀. 여전히 하이만은 서류작성에 정신이 없었고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었다.
마침내, 15분 정도가 지난 후 참다못한 네르바가 그에게 한마디를 던지려는 순간, 천을 걷으며 한 인물이 막사내부로 걸어 들어왔다.

"어라?"





1.델라임: 소설 세계 내에서의 달(月)이며 델라임 외에도 2개의 위성이 더 있다. 이들 역시
        같은 달이지만 일정한 간격(몇개월간)을 두고 번갈아서 등장하는 것이 특징.
         델라임의 경우 녹색의 은은한 빛을 뿜어 밤을 밝혀준다.

2.락피그: 말그대로 돌돼지;;; 작가의 지독한 네이밍 센스가 보이는 급조 몬스터.
         멧돼지의 외모에 등판에는 철갑을 두르고 있다.
         서식지는 절벽이며 절벽에 스스로 구멍을 뚫은 동굴에서 생활.
         희귀몬스터로써 희소가치가 높다.
         번식기에는 입에서 액체를 분비하는데 이 액체는 절벽의 돌도 부식시키는 강력한
         성능을 가지고 있어서 동굴을 만드는데 이용.
         이 시기에 잡힌 락피그는 말 그대로 로또 대박. 대신 그만큼 보기가 힘들다.
         멸종위기종. 바르디아 제국 실용성 있는 몬스터보호 협회 지정 천연 기념물 23호


동시 연재 사이트




소설 커뮤니티 꿈꾸는 사람들 www.thedreams.wo.to   필명- 히이로



애니메이션 및 동인의 저택 노나메  www.no-name.wo.ro    필명- 히이로



조아라     www.ujoa.com          필명- 데스데모네                                
조아라 작가의 뜰           http://yard.joara.com/tktlsdlfu -설정 및 세계관 수록..


소설 커뮤니티 마루닷컴    http://maru.ibbun.com 필명- 히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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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에구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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