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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雜談. 11시

2006.02.22 06:09

Lunate_S 조회 수:174

 어쩐지 기분이 우울해지는, 유난히도 어두운 그런 하루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언덕길은 더없이 어두웠다. 나의 마음속에 어두컴컴한 심연을 자극하는 어둠이었다. 천천히 언덕을 올라갔다. 천천히, 평소보다도 천천히…….


 고 3이 되고나서 항상 11시 넘어서까지 학교에서 자율 학습을 하다가 집으로 귀가했다. 그렇기에 어둠이란 녀석은 이미 내 마음에 자연스럽게 배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열심히 버텨나가려고 노력했다, 노력하고 싶었다. 남들은 저만치 앞서서 달려가는데 혼자 뒤쳐지고, 넘어지는 게 무서워졌다. 아니, 너무 무서웠다.
 '남들보다 오래 남아야한다.' '남들보다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 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찰 무렵, 조금이라도 더 공부하려고 남들이 다 가고 난 뒤에도 계속 공부했다. 그러다보니 학교에서 가까웠음에도 집에 도착하면 항상 11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남들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자만하고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남아서 공부를 계속해도 성적은 그대로, 되려 같이 놀던 친구 녀석은 나를 점점 앞질러 나갔으니 말이다.

 그동안에는 후문 쪽으로 가는, 같은 방향의 집이 있는 친구와 함께 항상 같이 남아서 귀가를 했다. 집으로 돌아갈 때, 지나야하는 코스엔 ‘바람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후문까지의 ꀥꀦ모양의  아스팔트 언덕길이 있었다. 11시가 넘으면 학교에 방침 상, 교내 가로등이나 교실의 불등, 불이란 불은 전부 꺼버리기에 굉장히 어두웠다. 안개 낀 길을 걷는 것처럼, 앞이 안보일 정도로.
 특히 우리학교는 숲이 두르고 있는 모양새라서 길목마다 굉장히 많은 나무들이 있었다. 물론 언덕길 중턱 옆 언덕에도 나무가 하나 있었다. 으스스해 보이면서도 왠지 모르게 빠져버릴 것 같은 그 나무를 모두가 ‘당산나무’라고 불렀다. 악마 같은 그것은, 어느 샌가, 나의 마음 속, 깊은 심연에 자리 잡았다. 가끔씩 귀가하면서 그것에서 무언가 보았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내 눈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그 나무는 기분이 나빴다. 쳐다만 봐도 기분이 나빴다. 더군다나 학교에는 그 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도 있었다. 예전에 이 학교에 다니던 어떤 학생이 일종의 이지메를 당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목매달아 자살한 뒤로, 샐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자살을 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현상에 관한 괴기스러운 소문도 많았다. 예를 들자면, 밤에 홀로 그 나무 밑을 지나면 나무의 혼령들이 달라붙는다던지, 달빛도 없는 암흑천지의 그 밑을 지나가면 반드시 죽게 된다든지 하는 소문 말이다.

 아직 꽃샘추위가 가시질 않은 봄의 초입이라 그 나무는 아직도 벌거숭이였다. 내가 왜 그 나무에 신경을 썼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기분 나쁜 그 나무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천천히 지나갔다. 겨우내 묻혀있던 새싹이 안간힘을 쓰며 땅으로 튀어나오고 있던 무렵, 그 나무도 천천히 잎사귀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잎사귀들은 그 나무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감춰주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욱 기분이 나빴다.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몇 일전부터 친구 녀석은 벌써 귀찮아 진건지, 남아서 같이 공부하자고 하면 “감기 걸린단 말야! 네 놈이 약이라도 사줄 거냐!” 하면서 먼저 가버려서, 언덕의 그 나무와 어둠이 무서운 나로서는 그동안은 자율이 끝나자마자 같이 가버리고 말았지만, 오늘은 공부가 왠지 잘 되서 녀석이 가고 나서도 혼자 남고 말았다.
 길은 역시 어두웠고 나무는 검은 그림자의 잔상처럼 흐릿하게 보였다. 갑작스레 예전에 들은 소문이 떠올랐다. 그래도… 가야겠지.

 생각해보니 그런 일이 있었다. 작년 이었나… 우리 학급에서도 그 나무에 목매달아 죽은 녀석이 있었다. 분명 옆 반이었지… 가끔 본 얼굴이기도 했다. 사실 알지도 못했지만, 그렇게 자살한 이유는 대충 알 것 같았다. 그 나무는 보고만 있어도 뭔가 충동적으로 죽음을 부추기는 것 같으니까. 세상을 비관하고 있었으면 더욱 그것이 충동을 불어 일으켰을 것이다.

 오싹. 순간적으로 등 뒤가 싸늘했다. 조금 템포를 높였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저것은 내 발걸음 소리인가, 아니면 나 아닌 다른 존재일까.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뒤를 돌아볼까. 그렇게 생각하고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
 역시나 아무것도 없다.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다. 내가 예민한 거다. 다시 앞을 쳐다봐… 흠칫. 재빨리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
 이번에도 아무것도 없다. 너무 예민해져버렸나…. 느낌이 이상하다. 생각하며 후문을 향해서 질주했다.

 탁. 탁. 탁.
 탁. 탁. 탁.

 왜 발자국 소리가 두개로 들리는 걸까? 아…, 후문이 보인다. 가로등의 불빛도 보인다. 하지만 상점들은 모두 닫혀있다. 셔터가 쳐진 상점의 입구들은 창백해 보인다. 무언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지만 조금씩 걸었다. 우리 집은 언덕 아래쪽이기에 걸었다.

 왠지 나무가 생각났다. 그림자 같지만 뚜렷하게 보인 그 나무의 잔상이 뇌리의 새겨진 듯 했다. 아무도 없는 거리. 아무도 없는 도로. 인적은 자취를 감춰버린 듯,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세상. 지금 내가 여기 존재하는 게 맞는지 조차 의문이 드는데…. 여기는 도대체 어디지…….

 부우우우웅.
 도로로 자동차가 스쳐 지나갔다.

 ‘후우….’
 안도의 한숨. 왠지 맥이 풀렸다. 바보 같은 공상이니 하니깐 공부가 안되는 걸까? 횡단보도 앞에 섰다. 10초. 20초. 30초. 신호등의 불이 바뀐다. 천천히 한걸음 내딛었다. 음…?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 횡단보도는 이미 건너져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건너편에 와 있어서 깜짝 놀랐다. 의문은 생겼지만 그냥 걷기로 했다. 이제 왼쪽으로 돌면……, 집이다.

 ‘텅.’
 공허하게 소리가 울려 퍼진다. 역시나 문은 잠겨있다. 열쇠가 어디 있더라…. 아, 찾았다.

 ‘덜컹.’
 열쇠를 가져가기 전에 자물쇠가 따지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먼저 와있나…. 문을 열면서 소리쳤다.

 ‘엄마! 나 왔어!’
 반응이 없다. 집안은 어두웠다. 아무도 없는 건가? 그렇다면 문은… 누가 열었지?

 ‘쾅!’

 크윽. 들어가려고 현관을 넘어 서는데 문이 갑자기 닫혔다. 몸이 밀려서 넘어지고 말았다.

   응…?

 ‘케…, 케켁.’
 무언가가 목을 조른다. 내 목을 조르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너무 어둡다. 앞이 컴컴해서 보이질 않는다.

 ‘켁…, 크겍, 케… 케켁.’
 온몸을 바둥거렸다. 이게 무슨 일인지, 누가 나를 목 조르는지 알 수가 없다, 도무지. 숨이 막힌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누구한테 이렇게 죽임을 당하는 것일까. 내일에 나는 어떻게 될까. 내가 죽고 나면 친구들이 많이 걱정할까. 아…, 정신이 혼미해진다. 아, 아. 아…….








 "꺄악…!!!"

 아…… 이게 무슨 소리지. 비명인가. 어느 쪽에서 들리고 있는 거지…
 시야가 흐릿하다. 무언가 보일 듯, 말 듯하다. 누군가가 목을 졸라서 고통을 견디지 못해 기절한 것 같긴 한데, 정신이 몽롱하다. 지금 내가 어디 있는 거지……? 으… 갑자기 오한이 든다. 춥다. 어째서 추운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로 춥다. 목의 고통은 아직 가시지 않은 걸로 보아 시간은 그리 많지는 않게 흐른 듯 하다. 여기는 어디지…….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납치라도 당한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목이 졸린 채로 살아있지는 않을 것이다.

 '…….'
 잠깐. 살아… 있다고……?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각은 정말 나의 감각인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저기 울려 퍼지는 비명소리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정말 살아있는 것일까……?

 '크큭.'

 갑자기 목의 충격이 가해진다. 강한 손아귀에 목이 움켜져서 꺾이고 있는 것 같다. 아파. 고통스럽다. 제발 벗어났으면…. 이제 그만… 쉬고 싶어…….



 푸드득. 커다란 소음이 아침의 자연을 깨우고, 새는 하늘로 날아갔다. '당산나무'라고 불리는 나무의 가지에는 무언가 검은 물체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흡사, 원래 있었던 것처럼.
 학교 측에서 급히 위원회를 소집했다. 교사들은 말이 없었다. ‘자살자가 또 나왔습니다.’ 침묵이 흐른 뒤, 조용히 누군가 손을 들었다. ‘나무를 잘라야 합니다. 아니, 아예 태워버려야 합니다.’ 무언의 동의가 흘렀다. 조용히, 조용히 그러한 분위기는 그들을 압도해갔다.


 위이이잉…!!
 기계음. 무언가 큰 소음이다. 전기톱의 소리 같긴 하지만, 정말 무슨 소리일까…? 어라……? 이제 목에 고통이 줄어든다.

 아찔.
 정신이 점점 혼미해진다. 무언가 눈앞을 가린다.
 검은 안개. 그것은 흡사 사신처럼 보인다. 난 정말 죽은 것이겠지…, 진짜로.
  아니, 살아있다고 쳐도…, 이젠 정말 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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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괴기호러든, 공포든 상당히 좋아하는 편입니다아. 그런 편이지요.
 대체로 성품도 괴팍하고, 성격은 음울하면서 비뚤어졌고, 우울한 공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 덕분에, 이런 식의 단편(호러)을 상당히 좋아한다고나 할까요. 아찔합니다.

 생각해보니,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을 때, 그 시절에 느낀 공포를 담아낸 글이지요.
 정말 저런 느낌이 있었다고나 할까요. [웃음]

 뭐, 저로서는 꿈사에 올리는 마지막 '써놓은 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대목에서, 마지막인 이유라면, 내일부터는 짐을 싸느라고 바쁠 것 같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앞으로 '써나갈 글'에 대해서는 장담을 못하겠군요.

 이미 자취를 하기로 결정되어서, 컴퓨터를 앞으로 이용 못하는 처지. 음.
  슬도 이제 슬슬 못하겠군요. 그저 안타까운 느낌입니다.

 P.S : PC방은 없냐고 묻는 당신, 가능하다면, 종종 들린다고 말해줄 수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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