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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와 채원이 중앙계단으로 내려가자 조용했던 교실 앞에 한 소년이 홀연 듯 나타났다.

“채원인 녀석. 벌써부터 시작인 거냐.”

슬며시 등장한 안경 낀 소년의 갈색 겉옷 위에는 전진명이라는 이름이 수놓아져 있었다.

․        ․        ․

창밖은 어느새 깜깜한 저녁이 되어있었다.
언제 꽂아 두었는지 책꽂이에는 2학년 교과서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있었다.

“채원이라…. 훗.”

분홍색 펭귄인형을 끌어안으며 피싯 웃은 소라는 좀 전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고 있었다.
준수한 외모에 친절함이라니.

“아잉~♡ 나한테 반했으면 어쩌지?”

혼자만의 나락으로 빠져버린 그녀를 말려 줄 사람은 이 집에 아무도 없었다.

“하아~. 어쨌든 혼자 있으니까. 심심하네.”

펭귄인형을 들어올린 소라는 서서히 감겨오는 눈꺼풀에 외로움도 덮어두기로 했다.

천애고아….

3년 전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상실감에 빠졌던 그녀 곁에는 자신을 부양해 줄 친인척은 없었다. 하지만 운이 좋았달까? 헐값에 매입한 이집과 전에 살던 집을 판 돈은 그녀 혼자 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한가지 채워지지 않는 것도 있었다.

“왜 나만 두고 가버린 거야…. 싫어! 이런 괴로움은….”

소라의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이 조용히 침대시트를 적시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아직 5시정도 밖에는 안 되었지만 소라는 잠에서 깨어나 있었다.
어느새 소라의 물방울무늬잠옷은 축축이 젖어 있었고 뭔가 놀라운 꿈이라도 꾼 듯이 연신 헛바람을 들이키고 있었다.
잠시 뒤 분홍색 가디건을 걸친 그녀는 창가에 걸터앉아 창문을 열어 젖혔다.
차가운 공기가 여린 피부를 스쳐지나갔지만 소라는 무덤덤하게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파란색 별….

어느 때부터인지 소라의 눈에는 하늘에 떠있는 파란색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달리 빛나 보이는 그 별을 보고 있으면 왠지 복잡했던 생각이나 슬픈 옛 기억도 잠시 잊혀지곤 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다시 잠자리에 들려고 일어나는 순간,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어지러움이 눈앞에 펼쳐졌다.
암흑…. 그래 그것은 블랙홀과도 같은 암흑이었다.
소용돌이치며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마는 어둠.
어느새 몸은 창틀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소라의 눈 또한 차츰 감겨가고 있었다.

“소라야!!”

어디선가 들린 목소리에 소라는 정신을 차리고 손을 뻗었지만 처음 내뻗은 왼손은 허공을 짚었을 뿐이었다.
가까스로 다시 내뻗은 오른손이 창틀을 잡았지만 그것뿐이었다.
소라의 오른손도 떨어지는 모래알처럼 차츰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순간 한 사내의 외침이 들렸지만 이미 그녀의 손은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났을? 희미하게 떠진 소라의 눈에 흐릿하게 붉은색이 아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내 피인 걸까?’

드디어 죽는구나하며 조용히 눈을 감던 그녀의 몸을 누군가 흔드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지끈거리는 통증과 함께 눈을 뜬 소라는 자신을 껴안고 있는 한 사내를 보게 되었다.
붉은색 전통무복에 길게 뻗은 머릿결, 마치 꿈에서나 볼법한 선비님의 모습이었다.

“아름답다~.”

“정신 차리세요. 이봐요!!”

심하게 앞뒤로 흔들리는 몸과 함께 그녀의 머리도 그녀를 흔드는 사람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딱’거리는 소리와 함께 소라의 눈이 번쩍 뜨였다.

“어라? 여기는 내 집 앞뜰?!”

정신을 차린 소라는 자신 앞에 쓰러져있는 사내를 보고 황급히 뒷걸음쳤지만 다시금 조용히 다가가 손가락으로 찔러보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꿈틀거리는 것으로 보아 죽지는 않은 것 같았다.

“거참 이상하네. 분명히 난 침대에서 자고 있었는데…. 뭐야?! 당신 도둑?!!”

벌떡 일어났던 그녀는 조금씩 쓰러져있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빼꼼히 내민 두 눈에 쓰러진 사람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까 전에 봤던 사람과 닮긴 했지만 머리는 짧았고 붉은색 무복(武服) 대신 적갈색 교복을 입고 있었다.

“이건 우리학교 교복인데…. 에잇, 모르겠다.”

양손으로 두 어깨를 붙잡고 있는 힘껏 거실로 옮긴 소라는 소파에 소년을 올려놓고 차갑게 적신 수건을 이마에 올려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은 신음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우, 머리야.”

지끈거리는지 부어오른 이마를 붙잡으며 일어난 소년의 가슴 근처에 수놓인 이름 세글자가 보였다.

“나지용? 하하하. 너 이름 참 웃긴다, 얘.”

배꼽 잡으며 웃는 소라와 달리 지목당한 소년은 이름표를 황급히 가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내 이름이 뭐 어때서 그래! 치, 너 같은 계집애는 뭐 잘난 줄 아냐!”

순간 화내는 소년의 얼굴이 어찌나 귀엽던지 여자인 자신도 모르게 ‘귀여워’란 말을 내뱉고 말았다.

“용무가 끝났으니 난 그만 가보겠어.”

자리에서 일어난 소년은 무릎 옆에 떨어져있던 수건을 소파 옆에 두고 현관 쪽으로 향했다.

“도둑 아저씨, 식사라도 하고 가시죠?”

악의는 보이지 않았고 마침 아침 먹을 시간도 되었기에 소라는 현관문을 나서는 소년에게 외쳤지만 소년은 어느새 현관문을 나섰다.

잠시 뒤, 자전거 벨 소리와 함께 열린 현관문에는 발갛게 달아오른 소년이 서있었다.

“아…아침만 먹기다!”

“풋…. 그러면 내가 널 잡아먹기라도 하니?”

밥그릇에 밥을 덜던 소라는 소년의 모습에 왠지 꽉 껴안아 주고 싶은 충동이 들고 말았다.

달그락 달그락.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숟가락을 보며 소라는 벌어지는 입을 다물려고 노력했다.

어느새 3공기나 비운 소년은 ‘꺼억~ 잘 먹었다.’라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 설거지나 좀 도와주고 가!”

3공기나 되는 밥을 투자한 이상 조금이라도 부려 먹어볼까하고 말했지만 안하겠다고 해도 별수 없었다.

“이것만 하면 돼?”

“부탁할게.”

어느새 고무장갑을 낀 소년의 모습에 전업주부가 떠오른 건 무엇 때문일까? 2층으로 올라간 소라는 간단하게 씻고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니까 오늘 시간표는… 물리, 수리, H. R,….”

시간표대로 책가방에 책을 넣은 소라는 애용하는 손목시계를 차자마자 서둘러 내렸다.

“서둘러!! 벌써 8시라고.”

2층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면서 한말이 주방까지 들렸는지 순간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쨍그랑 으로 바뀌고 서두러 현관으로 향하는 소년이 보였다.

“으앙~. 저거 내가 젤 아끼는 거란 말이야.”

싱크대 옆에 흩어져있는 접시 파편과 함께 시작된 소라의 절규는  손목을 낚아챈 채 밖으로 향하는 소년 덕분에 중단되고 말았다.

“군말 말고 빨리 뛰어나와. 지각담당 체육 쌤은 벌점 5점에  화장실 청소라고! 난 벌써 벌점 15점이란 말이야!”

화장실청소란 말에 눈이 뒤집힌 소라는 서둘러 현관문을 잠갔다.

어느새 대문 밖에서 벨을 울리는 소년의 자전거에 잽싸게 올라타자 자전거 체인이 팽팽히 당겨지기 시작했다.

촤르르륵~.

전에도 들어 봄직한 체인 감기는 소리와 함께 자전거는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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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에... =_=; 글마루에서 왔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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