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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하아…」

소녀는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다.하늘은 여느때와 같이 맑았고, 햇빛은 사정없이 내리쬐고 있었다.소녀의 옷은 물에 엉망으로 젖어있었고, 그녀의 오른손에는 너덜너덜한 붕대가 감겨 있었다.

「하아…」

그것으로 다시 숨을 가다듬는다.
주방에서 뛰쳐나오느라 굉장히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아아, 정말!」

짜증난다는 듯이 내뱉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는 이 성의 메이드인데다가, 아직 주방보조를 맡고있다.주방보조라는것은, 요리할때에 이것저것 도와준다거나, 설거지 등등.말이 ‘주방보조’지 실질적인 일은 ‘잡일, 심부름꾼’정도의 일밖에 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어제 물에 닿지 말렜는데……

「따가워라아~」

두손을 펼치자, 그곳에는 엉성하게 감겨진 붕대 사이로 새빨갛게 달아오른 손바닥이 있었다.아무레도 잡혀있던 물집이 오늘의 일로 터져버린 탓이겠지.하루만에 누렇게 변한 붕대를 꼼지락 거린다.

「나도 쫌 더 편한일을 하고싶은데…」

따갑다 따갑다 따갑다…
정말로 짜증나게 따갑다.어린것도 서러운데 어리다고 이렇게 힘든 일이라니, 만약 램프가 세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면 제일 첫번째 소원을 ‘어른으로 만들어 주세요!’라고 빌어야 겠다.

이번에도 조용히 나무그늘을 찾아 앉으려 할 때, 그 목소리는 들려왔다.

「얼레?또왔네?」

목검을 손에 쥐고 땀을 흘리며 나타난 금발의 소년.어제 만난 발렌타인의 도련님.베냐민은 천천히 나무 그늘 아래로 다가오며 그렇게 말했다.

「아, 으응…」

그런 그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소녀, 아네스.그녀는 재빨리 너덜너덜한 붕대가 감겨진 손바닥을 등 뒤로 감췄다.왜일까.이런모습, 이 아이에게 만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까.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소년은 말했다.

「그러고보니, 손은 괜찮아?」
「아, 아아, 으응…」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녀의 손은 숨을려고 옷깃속으로 숨는다.보여주고 싶지 않아, 이 아이에게만은…절대로…

「응, 손 줘봐.그 연고, 매일 발라두지 않으면 안돼~」

무서운 소리를 한다.

「아니, 그래도…」
「괜찮아!」

그러면서 그의 손이 소녀의 손목을 잡자, 소녀는 일순간 표정을 일그러 뜨렸다.아프다…그런 생각이 온몸을 뒤덮고, 힘없이 그에게 손바닥을 보여줬다.그곳에는, 너덜너덜한 붕대가 감겨있는…

「……」
「아니, 저기……」

소녀는 변명을 하기 위하여 입을 연다.아니, 어쩌면 화를 낼지도 모른다.어쩌면 화를 내지 않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그 표정은 얼어있는 것을 보니, 소년은 분명히 놀란것이겠지.그 이유가, 뭔지는 몰라도……

「구급상자 가지고 올게!」

하지만 금발의 소년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그저 그렇게 말하고서는 등돌려 다시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렸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고, 베냐민은 어제와 같이 상자에서 연고를 손바닥에 묻혀 그녀의 손바닥에 천천히 발라주고 있었다.

「따, 따가워…」
「물집이 터졌으니까 말이야.조금은 아플거야.」

오른손에 연고를 골고루 발라준다.새빨갛게 달아오른 손바닥은 소년의 손길이 닿음과 동시에 움찔거렸고, 그것이 걱정되어 소년은 소녀의 손바닥을 쓰다듬는 속도를 천천히 하고 있었다.
그리고 손바닥에 부드러운 무언가가 닿았을 때, 소년은 소녀의 손에 새 붕대를 감겨주고 있었다.

「아, 고, 고마워……」
「괜찮아.」

붕대를 감아주는 그 손길은 너무나도 부드러웠다.
소녀는 천천히 붕대가 감겨진 두 손을 꼬옥 잡으며 조용히 품속으로 넣었다.
소년은 구급상자를 챙기고서는 다시 조용히 소녀가 앉아있는 나무그늘 옆에 앉는다.소녀는 붕대가 감긴 두손을 품속에 안고서는 가만히 앉아있었다.눈도 마주치지 않았다.그저,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내가 아버지한테 말해놓을게.」
「…응?」

갑작스럽게 말을 꺼낸건 소년이였다.

「너, 주방에서 일한다고 했지?」
「으응…」
「내가 아버지한테 말해서 죠젯트 누나 밑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할게.아아, 죠젯트 누나 알지?」

끄덕.
소녀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 죠젯트 누나하고 같이 일하는거야.마담한테도 다 이야기 해놓을 테니까.오늘부터는 나를 위해 일해.」

그 이야기는 소녀에게는 잘 이해가 가지않는 이야기였다.

「이젠 넌 힘든일 할 필요 없으니까!이제 물같은거 만지지 않아도 되고, 무겁거나 힘든일 할 필요 없어!이제는…」

소년이 말을 이었다.

「나랑 함께하자!」







「죠젯트, 빨리가자~」

소녀는 아름다운 여성의 손목을 잡고서는 성의 뒤뜰로 뛰쳐나왔다.날씨는 오늘도 좋다.적당히 구름이 낀 하늘에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상쾌하다.그렇게 덥지도, 쌀쌀하지도 않은 바람.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아앗!안돼~ 아네스~」

손목을 잡혀 끌려가는 포니테일의 여성, 죠젯트는 어쩔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그녀의 손에 이끌려 간다.그것은 단순히 행복해 하는 두 여성의 모습이였다.

「베냐민이 기다린단 말이야~」
「아앗!아네스!도련님 이름 함부로 부르는거 아니렜지?아무리 친구라곤 해도 도련님과 아네스는 주인님과 시종이라고.함부로 이름 부르는게 아니야!」
「응~ 그래도 베냐민이 이렇게 불러도 된다고 했단 말이야~」
「그래도 안돼!다른 구역을 맡은 메이드라거나 마담 같은 나이드신 분들이 보며는 버릇없다고 수근거린다고!」
「흥, 그런건 아무레도 좋잖아.난 어찌되었든…」

이야기를 하면서 걷고 있었다.
잔디에는 나무그늘따윈 그렇게 크지 않는다, 구름이 그늘이 되어 햇빛을 가려주고 있었다.시원한 바람끝이 머리칼을 흔들고, 잔디들은 춤추고 있었다.
그렇게 걸었을 때, 저 멀리 나무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탁!

「아, 다왔다!죠젯트, 이런 이상한 이야기 하지말고 죠젯트도 같이 베냐민이랑 놀자~」
「아, 아니…아네스.나는 도련님의 메이드이고…」

건물의 벽을 돌아, 그곳에는 성 뒤뜰의 숲이 보였다.우거진 숲, 하지만 그곳은 그늘이 많은 대신 군데군데 햇빛이 비춰들어오고 있었다.
구름이 조금씩 걷혀져 간다.그리고, 소년의 금발은 햇빛을 받아 더욱 빛나고 있었다.

「아, 왔구나.아네스.」

열심히 나무 밑둥을 목검으로 내리치고 있던 금발의 소년, 베냐민은 발소리가 들린곳으로 뒤돌아 봤다.그곳에는, 메이드복을 입고있는 한명의 여성과 한명의 소녀가 서있었다.

「나왔어 베냐민~」
「조, 좋은아침이네요 도련님.」
「응, 좋은 아침이야.죠젯트.오늘도 잘잤어?」

네, 라고 여성은 청초하게 대답한다.햇빛은 그다지 따갑지 않았다.은은한 햇빛이 숲을 비추고, 나무껍질이 모두 벗겨진 나무는 초라하게 서있었다.
소년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아내고서는 천천히 두명의 소녀가 서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음, 아네스는 손바닥 괜찮아?」
「응!괜찮아.이젠 신경 안써도 되.」
「그래?그거 참 다행이네.」

그 이후로 몇주.
그녀는 이 ‘도련님’과 친해지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뭐, 그 시간중에는 발렌타인의 ‘주인님’의 힘이 약간은 개입되어 있었지만, 아네스는 주방보조를 그만두고 매일 소년의 검술훈련을 구경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지금도, 그런 아네스의 업무중 하나였다.

「그런데…베냐민은 검술 배워서 어디다가 써?」
「응?」

죠젯트는 나무그늘 아래로 가서 가지고 온 바구니에서 도시락을 꺼내기 시작했다.그것은 굉장히 먹음직스러운 도시락들이였다.먹기가 아까울정도로 맛있을 것 같은.아무레조 죠젯트 작(作)인듯 하다.
소년은 말했다.

「음, 그건 생각해본적 없는걸.그냥, 아버지도 검같은거 잘하고.일단 배워놓으면 좋다고 생각해서 말이야.생각보다 재밌거.」
「흐응~ 베냐민은 도련님이니까 싸울일 없을 것 아냐?」
「아니야, 나도 나름대로 싸울일 있다고.음, 동생을 지켜준다거나.아!가끔 샤를하고도 검술 하니까.저번에 샤를하고 대결해서 이겨가지고 리샤르 아저씨한테 칭찬받았지롱~」

리샤르 드 옥시타니아 대공.
그것은 검성의 이름이였다.그당시 대륙 최강의 검을 가진 사내.피의 발렌타인 이후 약 3~4년동안까지만 국왕의 검이 되었다가, 반역자를 감싸줬다는 죄로 파직당해 쿠데타를 꾀하고 있는 사내.
두명의 소년과 소녀는 천천히 죠젯트가 깔아놓은 돗자리로 걸어갔다.그곳에는 먹음직한 도시락들이 있었다.

「일단은 먹자.맛있겠는걸~」
「응, 맛있겠다아~」

시원한 바람이 소년의 이마를 휩쓸고 넘어가고, 소녀의 머리카락을 흔들고 지나간다.






「한놈도 놓치지 마라!!」
「발렌타인 가(家)의 식객 및 시종들까지 붙잡으라는 국왕 폐하의 명령이시다!!」

얼마전까지 그 거대한 권위를 나타내던 성은 초라하게 변해 있었다.병사들은 성문을 부수고 공작의 성으로 쳐들어 왔고, 성 안의 식객들은 놀라 도망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중에는, 발렌타인의 두 어린 남매와 메이드들도 있었다.

「도련님!」
「무슨짓이야 죠젯트!이거 놔!집사!!집사가 위험하단 말이야!!」

어린 발렌타인의 공작을 품에 안은 메이드, 죠젯트는 필사적으로 성으로 돌아가려는 소년을 막고 있었다.

「오빠!위험해!어서 도망가자!」
「민아!」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
베냐민은 그런 그들의 재촉을 무시하고 성으로 되돌아 가려 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를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죠젯트의 힘은 어린 베냐민이 뿌리치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웠다.

「죠젯트!저 안에...집사가……그리고 메이드들이!!그리고…그리고……」

베냐민은 도저히.
아네스가 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왜일까.그 이름을 불러서는 안되는 느낌이였다.그 이름을 입밖으로 내는것과 동시에, 소년은 자신을 붙잡고 있는 메이드를 어떻게 해서라도 성으로 뛰어들어갈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이내 사라졌다.

「베냐민!!」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뛰어오는 조그만한 소녀는, 분명히 메이드복을 입고있는 소녀였다.푸른빛이 도는 검은머리는 짧게 삐쳐 내려졌고, 메이드복은 아무렇게나 헤어져 깁어놓은 자국이 수두룩.그런 그녀, 아네스는 초라한 성에서부터 뛰쳐나오고 있었다.

「가지마, 베냐민!!」

그것은.
아직, 이라는 의미를 담고있는 말이였겠지.소년은 조용히 소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베, 베냐민…」

하아, 하아.
드디어 소년에게 도착한 소녀는 조용히 소년의 앞에 서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그 모습은 연신없는 어린아이의 모습.하지만, 그들에게 시간은 없었다.

「베냐민, 나도 데려가…」

소녀는 말했다.

「나도 데려가줘…베냐민.」

베냐민은 도저히 생각치도 못한 상황에, 잠시 멍하니 소녀의 얼굴을 볼수밖에 없었다.

「나도 죽기 싫단 말이야!분명히 저사람들 한테 잡히면 옛날처럼 또 노예가 될꺼라고…노예가 될 바에는 차라리 죽는게 더 나아!!응?베냐민!우리 친구지?그러니까 나도 데려가줘.우리 같이살자?응?베냐민…」
「무슨말을 하는거니 아네스!죄, 죄송합니다 도련님.이애가 조금…」
「싫어!난 죽기 싫단말이야!응?베냐민!나도 데려가줘…」
「아네스!적당히 해!」

소년은 그저 소녀를 내려다볼 뿐이였다.그저 아무말도 않고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소녀의 눈동자는 진심이였다.그 눈동자는 간절한 애원을 담고 있었고, 강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하지만, 그 의지는 이내 곧…

「알았어…」

소녀는 그렇게 말했다.

「베냐민네가 도망가는데...남남인 내가 끼며는 민폐겠지?」

소녀는 묘하게 웃고있었다.

「그런데…하나만 약속해줘, 베냐민.」

간절함을 담은 소녀의 눈동자는 이내, 의지가 커져갔고.이후로는 희망이라는 것이 서려있었다.
그것은 미래를 보려는 소녀의 눈동자.그 눈동자는 눈물에 젖은 것 마냥 반짝반짝하고 빛나고 있었다.

「꼭 돌아와.」

젖은 눈동자는 그 한마디만을 전했다.
그리고, 소녀를 멍하니 내려다 보고 있던 금발의 아름다운 소년은.

「그래!」

소년은 흔쾌히 대답하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과는 다른 소녀의 흑발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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