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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늦여름#00

2005.01.10 00:54

T.S Akai 조회 수:168

“곧 네 장인 장모님 되실 분들이란다.인사하렴.”

그곳은 분명히 고급 음식점이였다.은은한 클레식이 흘러나오고 그저 따로 만들어진 방의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두 가족.분명히 비싸보이는 음식점에 그들 역시 비싸보이는 차림을 하고있었다.
말씀 그대로 부르쥬아의 만찬.
말은 꺼낸 남자는 분명히 40대 지긋한 중년이였다.검은 정장을 단정하게 빼입은 그는 분명히 이병인.현재 이공기업의 사장.세계 다섯손가락에 꼽히는 재벌기업의 사장님이시다.그런 그가 자신의 옆에있는 장남, 격인(나)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아버지의 제안으로 약혼을 하게 된것이다(솔직히 말하자면 약혼 전의 약속, 같은것이다.).하지만 그것에 내 의지가 들어간 것은 아니다.분명히 아버지의 강제적인 명령에 불가항력으로 무언의 대항을 했을뿐, 착한 아들로써는 고개를 숙일수 밖에 없었다.

‘정말 싫어..’

나는 그렇게 속으로만 중얼거릴수 밖에 없었다.이것이 첫번째만이 아니다.이번 약혼이 아닌 약혼이 첫번째라면 붙임성 좋은 나로써(솔직히 나 자신을 붙임성 있다고 말하는건 쑥쓰럽지만) 분명히 상대편의 여성과 충분히 원만하게 지낼수 있을것이다(결혼까지는 생각해봐야겠지만).하지만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몇번이고 이 약혼을 계속해왔다.
고등학교 시절때부터.
몇번이고 불려가 이런 고급식당에서 장인 장모, 그리고 미래의 신부감이 ‘될것 같은’사람들과 만났다.하지만 그것은 아버지의 사업전략이었을뿐, 상대편의 집안에서 뜯어낼 것을 충분히 뜯어냈으면 아버지라는 사람은 곧 그사람을 버렸다.

‘지금도 아버지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은 알고있어.’

아아, 분명히 그는 알고있다.머리를 숙여 거짓인사를 하는 지금마저도 알고있다.하지만 어쩔수 없다.난 그를 거역할수 없다.내가 살아남으려면, 절대로 거역할 수가 없다.
난 고개를 들어 상대편 여성의 얼굴을 바라봤다.어느 길에서나 볼수있는 평범한 얼굴의 여성.조금은 귀여움상이 있지만 그다지 예쁘지도, 그다지 못나지도 않은 얼굴.아아, 얼굴이 뽀얗다는 것은 분명히 나쁘진 않다.용의를 보니 저쪽 역시 귀하게 키운 딸아이인듯.하지만.
이런 이 소녀도 곧 우리에게 이용당하다가 버려지겠지.

“왜그러냐?격인?”
“아, 아뇨.그냥 생각을 조금.”

아버지의 거짓걱정을 단순히 무시한다.상대편은 우리나라에서 몇손가락 안에 꼽히는 제철회사의 사장이라는 소리를 들었다.이 이공기업은 안드로이드를 만드는 만큼 철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쪽에 손을 잡은거겠지.
그러고 보니 저번 약혼때는 실리콘 공장이였던가…

주문한 고급차가 서빙되고, 사장이자 각 아들과 딸의 아버지인 두사람은 회사에 대하여 이야기를 시작했다.아아, 역시 따분한 이야기겠지.거짓으로 무장된 아버지의 입은 분명히 나와 이 여자아이의 약혼을 기뻐하겠지.아아, 기뻐한다는 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자신의 기업에 큰 이익이 들어오니 말이다.이 일은 분명히 그에게 아주 편한 거래수단일 것이다.
한심스럽다는 얼굴로 아버지를 올려다 보고 나서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돌리자, 눈앞의 소녀가 소년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지만 이내 곧 당황하며 시선을 돌렸다.

‘하아…’

아무도 모르게 격인은 한숨을 짓는다.이 아이도 배신당한다, 라고 생각하니 절로 나오는 한숨이였다.이 아이도 분명히 행복하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을텐데, 어쩔수 없는 일일테지.
그렇게 소년은, 허공을 올려다 보며 시간가기만을 기다렸다.




이번건 그저 약속이였다.분명히 본격적인 약혼은 하지 않겠지.그것이 이 거짓무장인 아버지의 철칙이다.공식적으로 약속마저 하면 사회 사람들의 눈이 따가울 테니 말이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식당에서 나온 우리들은 오색찬란한 네온사인 아래에서 간단한 작별을 했다.아아, 또 만날일은 없을 듯 하지만, 안녕히.

두 모녀가 차를타고 떠나가는 것을 보고서는 다시 아버지를 올려본다.아무리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지만 아직은 자신보다 키가 큰 아버지.그는 핸드폰을 꺼내어 무언가와 연락을 하고 있었다.분명히 운전수를 부르는 것이겠지.

“격인아.”
“네?”

통화를 끝냈는지, 핸드폰을 포켓속에 집어넣고 아버지는 시선도 맞추지 않은채 나를 불렀다.솔직히 말하자면 그 목소리가, 의외로 다정했기 때문에 조금은 놀라버렸다.

“저 아이가 맘에 드느냐?”
“첫인상은 나쁘지 않아요.전형적인 귀하게 키운 외동딸이겠죠?”
“그래.저아이 이름은 윤지혜.아까 소개로 이름은 들었겠지?그리고 네가 알다시피 우리 기업에 큰 도움을 줄수있는 제철공장 사장 딸이…”
“또 이용당하겠군요.”

조용히 말을 읊조렸다.
내 입에서 나왔어도 나도 놀랄만치 아무런 감정도 없는 건조한 목소리.사막의 바람과도 같은 그 목소리는 오아시스를 찾는 바로 옆의 중년남자에게 직격했다.
아버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침묵만이, 우리 둘 사이를 지배할뿐.
네온사인이 태양을 대신하는 시내의 거리는 소란스러웠다.연인들의 소근거리는 소리와 주정뱅이의 고성방가.하지만 우리들의 이 사이에서는 숨소리 조차 들려오질 않았다.

“그러냐.”

아버지는 그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가 묘하게 쓸쓸한 느낌이 들어 다시 깜짝 놀랐지만, 아무레도 좋겠지.이 남자에게로부터 그런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치더라도 그 본성은 어디 가지 않는다.저 여자애와 그녀의 부친이 이용당한다는건 변하지 않는다.어차피, 그런 사람이니까.

“그럼 집으로 가자.네 엄마가 많이 기다리겠구나.”

하지만.
그 목소리가 아직도 쓸쓸하게 들리는 것은 내가 잘못들은 것일까.아니면 환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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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가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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