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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수필] 왜, 왜 그때 내게?!

2004.08.29 17:50

격랑 조회 수:205






  언젠지는 잘 모르겠지만, 갑자기 아버지의 발자국이 남기고 간 자취를 찾으려고 발버둥쳤던 적이 있다. 내게 있어서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던 아버지였기에, 그리고 너무나 미워했던 아버지였기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아버지를 미워했던 이유라면 다양하다. 비록 이 수필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남기지 못하겠지만, 아무튼 내게 있어서 아버지란 존재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다. 단지 돈을 벌어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려주는 그런 존재로 생각하고, 그렇게 난 살아왔다.
  그런데 인제 와서 아버지의 좋은 점을 찾으려고 난리 치는 내 모습도 우습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상의 아버지가 부러워서 이러는 걸까? 아님, 자라서 생각이 더 깊어졌는지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이러는 것일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하루하루, 아버지의 흔적을 되짚을 때쯤, 난 아버지가 자주 열고 다니시는 장롱에서 한 상자를 발견했다. 그 상자는 매우 오래됐는지, 색이 다 헤질 정도였는데, 별 특별함도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 이상해서 방바닥에 놓았다.

  "……."

  상자 속에는 빈 화장품이 들어있었다. 스킨과 로션. 아주 오래전에 아버지가 사용한 화장품인가 보다. 나는 빈 화장품을 꺼내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역시 특별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빈 화장품일 뿐이었다. 원래 제자리로 해 놓은 뒤, 상자를 덮으려고 뚜껑을 잡는 그 순간 나는 뚜껑에 뭔가 희미한 자국을 보았다.
  아버지 생신을 축하합니다. 채혀기.

  "…… 내가 7살 때 드렸던 생일선물?"

  이제 생각이 났다. 이 물건은 아직 아버지를 미워하기 전, 아버지 생신선물을 사 드리기 위해 돈을 모아서 샀던 오디세이 화장품이었다. 그때 시가가 5만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머니는 너무 비싼 걸 산다고 5천 원 정도 하는 속옷을 사드리라고 했지만, 억지로 어머니 선물을 속옷으로 하게 하고 나는 이 화장품을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1학년이 사기엔 너무나 부담이 컸던 선물. 아버지는 이 선물을 받고 기뻐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지금 내 나이는 18살. 10년이 더 된 이 물건이 왜 아직까지 이 장롱에 남아있는 걸까? 그것도 빈 화장품으로 말이다. 생신선물이라는 거 이외엔 아무 가치가 없었을 텐데…….

  "……!"

  아버지가 언제 방에 혼자 계실 때, 화장실로 가면서 문틈으로 스쳐보았던 걸 기억했다. 그때 아버지는 상자를 곁에 두고 무언가를 매만지고 계셨다. 그것이 바로 이 빈 화장품?

  "왜? 왜?"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성보다 감성이 먼저 뭔가를 깨달은 듯,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내가 우는 이유를 찾았다. 답은 금방 나올 수 있었다. 내가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선물해준 것이 이 화장품이란 것을!
죄책감이 휩쓸리듯이 나를 몰아쳤다. 아버지는 나를 볼 면목이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용기를 내어 나에게 말을 걸어도, 난 아버지의 과거에 눈에 띄게 냉대했으니까. 아버지는 이 빈 화장품을 만지면서 나와 대화를 했던 거다.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했던 7살 때를.

  "끄윽! …끄윽!"

  난 더러운 놈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진작 그 말이 필요한 당신에게 이렇게 대한 것일까? 눈물이 뚝뚝 떨어져 화장품을 적셨다. 아버지가 매만졌던 화장품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아버지! 아버지!"

  기억하고 싶지 않아 언제인지 모르는 어느 날. 아버지의 잘못에, 화가 잔뜩 난 나는 아버지의 방에 찾아가서 아버지를 야단치셨던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는 자식에게 야단을 맞으면서도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내 말을 들으셨다. 시간이 지난 지금, 이제야 알 수 있다. 그때, 아버지는 얼마나 괴로웠는지를. 얼마나 힘드셨는지를. 아버지가 살인자라고 해도 자식만큼은 사랑해야 할 것을. 왜 난 잊고 아버지에게 삿대질을 하였는가?!

  "흐윽! 하악!"

  왜 나는 당신의 사랑을 집어던졌던 걸까요? 아버지! 왜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셨나요? 그때, 당신이 자식 주제에 아버지에게 화를 낸다고 차라리 내 뺨을 때리셨으면 괜찮았을 것을!  아버지, 당신이 바보인 줄 알았을 때, 왜, 왜 그때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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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쓸말이 있지만, 눈물이 나와 쓰기를 그만두고 끝을 내린
작품입니다.
내가 쓰면서 가장 부끄러움을 느겼던 3작품 중에 하나입니다.
거의 습작입니다. 오래 전에 완성됐지만, 이제와서 슬그머니
공개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재미보단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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