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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For One Day - zero

2004.08.10 23:56

느와르 조회 수:288


  
  <둘이 앉은 식탁>

  “형수님.”

  “응?”

  갑자기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든 아이리사는 빈 스튜그릇을 스푼으로 찌르고 있는 칼린
츠의 모습을 발견하고 고개를 조금 갸우뚱했다.

  “딱히 불만인건 아니지만. 아침도 점심도 계속 스튜네요.”

  불만이 조금 섞인 목소리지만, 그리 강하게 내비치지는 않는다. 가느다란 턱선을 쓰다듬
으며 감자는 싫은데 정도의 어투로 말하는 청년. 이상하게도 그의 형제들은 모두 저 버릇을
가지고 있다. 큰형인 아인츠도, 막내인 칼린츠도. 그리고 죽은 그녀의 남편인 슈발츠도.

  “어쩔 수 없잖아. 집에 있는 재료가 그것뿐인 걸. 애초에 오늘은 혼자서 보낼 줄 알았으
니 대충 때우려 했었고. 사흘 있다가 돌아온다고 해놓고는 하루 만에 와버린 도련님이 전적
으로 나빠요.”

  “그게 생각보다 작업이 빨리 끝나서……아니, 솔직히 잘못은 아니잖습니까.”

  말의 끝에서는 어이가 없다는 투로 변한다. 아이라사는 그 모습에 후훗, 하고 작게 웃고
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그녀도 식사는 끝낸 상태. 그대로 탁자위에 몸을 눕히듯 팔을
뻗어 슈발츠의 그릇을 끌어당긴다.

  “어랏. 형수님……그냥 달라고 하시……지.”

  목깃이 넓은 블라우스 사이로 모양 좋은 가슴이 슬밋 비친 탓일까. 칼린츠는 멋쩍은 듯
시선을 돌리며 말꼬리를 흐렸다. 아이라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쿡하니 웃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칼린츠는 가만히 탁자에 턱을 괴고 앉아서 설거지를 하는 아이라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
다. 아름다운 몸매와 긴 금발이 어깨의 움직임에 맞춰 조용히 움직인다. 익숙한 음을 허밍
하며 설거지 하는 아이라사를 향해 칼린츠는 넌지시 물었다.

  “저녁에도 스튜를 먹을 거라면 차라리 제가 하고 싶은데요.”

  “어머, 그럴래? 오랜만에 남자가 해준 음식이나 먹어볼까?”

  고개를 돌려 칼린츠를 바라보고는 기대된다는 투로 웃는 아이라사. 그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장이라도 봐 올게요. 집에는 재료가 없으니까.”

  “아, 나도. 내일 아침 먹을 재료도 사야하니까. 잠깐만, 준비하고 나올게.”

  설거지를 끝낸 손을 털며 다가온 아이라사는 자기보다 높은 곳에 있는 칼린츠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그대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걸어 나가 현관문에 기대선 그는 조용히
아이라사의 신발을 바라보았다. 상당히 낡은 붉은 구두. 지금은 죽은 그의 형이 자신의 아
내에게 남긴 몇 안 되는 선물.

  “기다렸지! 어서 가자.”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방에서 나온 아이라사는 자신의 신발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칼
린츠의 모습에 조금 고개를 갸우뚱했다.

  “칼린츠?”

  “형수님. 구두……하나 사드릴까요?”

  “구두? 아아, 좀 낡았지?”

  빙긋이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신발에 발을 넣는다. 조금 굽이 있는 구두인 탓에 갑자기
그녀의 키가 커지는 것 같은 느낌. 칼린츠는 조금 뒤로 물러섰고, 아이라사는 조금 발을 디
뎌 그의 팔에 팔짱을 껴왔다.

  “형수님?”

  “낡아도 괜찮아. 아직 신을만 하니까. 아줌마 선물 사느라 돈 쓸건 없어.”

  “무슨 그런 말을…….”  

  난감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슈발츠. 아이라사는 쿡, 하고 웃으며 그런 그를 끌어당
겼다. 그 갑작스러운 동작에 칼린츠의 몸이 휘청하며 넘어질듯 끌려온다. 아이라사는 그런
그의 모습에 장난스럽게 옆구리를 찌르며 중얼거렸다.

  “뭐야. 남자가 이렇게 부실해서 어디다 써먹어? 칼린츠, 밤에만 강하구나?”

  “……형수님. 제발 그런 농담은 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어이라사에게 끌려가다시피 걷던 칼린츠는 즐겁게 웃는 그녀의 목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다만, 시선만은 아직 그녀의 낡은 구두에 못 박힌 채로.  

  
<푸른 신부>

  일을 끝내고 막 돌아가려던 프로스트는 동료인 엑스의 말에 걸음을 멈추었다. 얼굴을 찌
푸리고 특유의 실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지금 뭐라고?”

  “벌목장 입구에 그 아가씨가 와 있더라고. 파란 머리칼에 파란 눈동자. 널 찾으러 왕국에
서 왔다는 그 아가씨 맞지?”

  “…….”

  대답대신 입술을 짓씹은 프로스트는 땅에 꽂아 놓은 자신의 장병기를 툭툭 치다가 팔목에
묶어두었던 붉은 천을 풀어냈다.

  “엑스, 너 아직 일 덜 끝났지?”

  “뭐? 어, 그렇지. 알다시피 우리 조에는 그 거북이 놈이 있잖냐. 그까짓 나무 베는 걸 뭘
하루 종일…….”

  “니네 조는 내가 봐줄테니 넌 이거 가지고 내려가라.”

  호랑이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오른다. 프로스트의 무기보다도 큰 키의 반신족은 당황한 표
정으로 목의 갈기를 긁으며 그에게 되물었다.

  “어. 대신 해주겠다는 거야?”

  “왜, 싫어?”

  “아니, 나야 좋지만. 네 색시가 아래에서 기다린다니까.”

  색시라는 말에 창으로 뻗던 손이 멈춘다. 복잡한 표정으로 바닥을 노려보던 프로스트는
거칠게 바닥에서 창을 뽑아내고는 짜증난다는 투로 엑스에게 외쳤다.

“빨리 바꾸기나 해!”

  마지못해 내미는 엑스의 두터운 손가락에서 붉은 천을 풀어낸 프로스트는 자신의 것을 그
의 손바닥에 내팽개치듯 던지고는 그대로 산을 다시 올라갔다. 혼자 남은 엑스는 손에 남은
천을 보며 버릇처럼 갈기를 긁고는 그대로 뒤로 돌았다.

  “나야, 뭐 나쁠 건 없지만……. 그 아가씨 꽤나 오래 기다린 것 같던데.”

  중얼거리며 산을 내려가는 엑스. 손도끼 같은 날의 거대한 단도가 그의 허리에 매달린 채
덜렁거렸다.


  “어이. 아가씨. 아가씨 남편은 조금 늦을 것 같은데.”

  벌목장 입구에 서서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던, 주하는 갑자기 그림을 드리운
거대한 반신족을 올려다보았다. 남자 반신족치고는 꽤나 긴 갈기 끝에 붉은 노리개를 매달
고, 웃옷은 입지 않은 채 그들 특유의 얼룩무늬 털을 드러낸 남자. 주하는 꽤 익숙한 그의
얼굴을 보며 빙긋이 웃었다.

  “엑스씨죠? 지난번에 서방님이랑 같이 집에 오셨던.”

  “오, 기억하고 있어? 머리 좋은 아가씨군.”

  아주 쉬어갈 요량인지 그대로 그녀의 곁에 와서 주저앉는다. 주하는 장중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는 그를 다시 웃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푸른 머리칼에 미소를 머금은
푸른 눈동자. 아직 여자라기보다는 소녀에 가까운 귀여운 얼굴의 주하를 바라보던 엑스는
툭 하고 내뱉듯이 물었다.

  “그런데 아가씨. 프로스트 같은 녀석이 어디가 좋아?”

  “다 좋아요.”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해버리면 아무리 뻔뻔스러운 반신족도 당해낼 요량이 없다. 엑스는
갈기를 벅벅 긁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긴 그 정도로 좋으니까 천만성벽을 넘어왔겠지.”

  “응, 정말로 그래요. 아, 서방님!”

  갑자기 터져 나온 커다란 외침에 흔들거리던 핼버드가 멈춘다. 다가오던 걸음을 멈추고
얼굴을 찡그리는 프로스트의 얼굴을 바라보던 엑스는 큭큭, 하고 장난꾸러기처럼 웃으며 자
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는 이만 갈 테니까 서방님이랑 잘 돌아가라고.”

  “예에. 다음에 뵈어요.”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는 프로스트에게로 달려가는 주하. 엑스는 허리에 손을 얹고 똑바로
선채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엑스는 빙긋이 웃으며 뒤로 돌았다.


<동행>

  숲은 많은 것을 감추고 있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하지만 그 많은 것이 무엇이지는 그말을
한 사람조차도 알지 못했을 터. 하지만 걷다 지쳐 커다란 나무 등걸 아래에 주저앉은 남매
는 적어도 숲이 감추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발견한 것 같았다.

  “오빠, 아무래도 길을 잃었나봐.”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

  커다란 나무 등걸에 등을 대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숨을 내쉬는 남매. 밤이 깊은 숲은
어둡고, 기괴하지만 그나마 가지와 잎을 비집고 들어온 달빛 때문에 아주 어둡지만은 않았
다. 여동생 쪽은 긴 은발을 손으로 빗어 내리며 비어져 나온 뿌리를 건드렸다.

  “그러게 날이 밝으면 마을에서 떠나자니까.”

  “미친 곰 때문에 거기 머물 수가 없었잖아.”

  “오빠, 그러니까 그건 오빠가 잘못한 거야. 괜한 반신족한테 시비는 왜 건 거야?”

  “그치만 그 자식이 널 괴롭히니까.”

  품에 안은 태도의 장식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중얼거리는 오빠 쪽. 그는 손을 옆으로 뻗
어 자신의 동생을 품으로 끌어당겼다. 매끄러운 동생의 머리칼을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트리
며 달빛을 바라보던 검은 머리칼의 오빠는 조용히 말했다.

  “그런 걸 어떻게 보고 있냐.”

  오빠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동생.

  “그러고 보니 여기 용의 숲에서는 귀신 나온다던데.”

  “으앗, 오빠 바보! 왜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하는 거야!”

  팍하고 일어나며 울상을 짓는 동생. 오빠는 그런 동생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며 손을 벌
렸다.

  “소복을 입은 귀신이 입가에 피를 흘리며 휘잉하고…….”

  휘잉.
  당돌하게도 그런 소리가 났다. 더 치명적인 것은 그 후에 무언가 눈앞에 나타났다는 것.
비명을 흘릴 새도 없이, 동생을 뒤로 끌어당기며 검을 뽑아낸다. 강맹하게 휘둘러진 오라비
의 검이 주저 없이 눈앞의 인영을 내리친다.
  까앙,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이 멈춘다.

  “에?”

  오빠와 동생 모두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얼빠진듯한 신음. 나무도 찍어낼 검을 맨몸으로
멈춰낸 인영은 검에 맞은 어깨가 아픈지 조금 얼굴을 찌푸리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길을 잃은 거냐?”

  “에?”

  상황이 상황인지라 연거푸 멍한 소리만 내는 남매. 누더기 같은 망토로 몸을 감싼 마른
체형의 금발 소녀는 이마에 쓰고 있는 왕관을 매만지고, 어깨를 누르고 있는 2미터짜리 태
도를 가볍게 밀쳐내며 한숨처럼 내쉬었다.

  “하아……. 섣불리 들어오면 길을 잃는 건 당연하지 않느냐.”

  한숨처럼 내뱉고는 조용히 손가락을 튕긴다. 그 동작에 어두운 숲이 갑자기 대낮처럼 밝
아졌다. 아니, 밝아진 게 아니다. 숲 곳곳에 잠들어 잇던 반딧불들이 일제히 불을 밝힌 것
뿐. 그녀는 조용히 손가락을 들어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리로 쭉 가면 길이 나올 것이다. 쉬지 말고 가거라. 여긴 사람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
도다.”

  남매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 그리고 어느샌가 정신을 차렷을 때.
이미 그들은 숲밖에 서 있었다. 달은 밝고 숲은 어둡다. 밤을 밝히던 반딧불의 빛도 이제는
없다. 남매는 조용히 뒤를 돌아보았다.

  “오빠?”

  “아. 응.”

  동생의 말에 반사적으로 대답한다. 오빠는 조용히 손을 뻗어 동생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숲은 많은 것을 감추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들을 숨기기 위해서가 아닌. 그것들을
알아내 주기를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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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캐릭터는 일곱.설정도 얼추 끝났습니다.
남은 건 이걸 18금 게시판이 나올때까지 기다리느냐 아니면, 무조건 연재하느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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