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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 'Doubtless' -진월담 월희


新月 The Crescent Moon -Bloody Nachtanz-


"하아..하.."


거친 숨소리와 날카로운 신음이 서로 순서를 앞 다투며 흘러나왔다. 눈 앞을 뿌옇게 흐리는 더운 입김이 몸에 흐르는 땀을 감쌌다.
다리는 마치 바람에 흔들리듯이 떨려오고 점점 몸이 뻣뻣해지는것이 느껴졌다.


'이 이상 뛰는건 무리야..'
속으로 이렇게 체념하고 녹초가 된 몸을 벽에 기댔다.


'얼마나 오래 뛰어다녔지..?'


더 이상 뛰었다간 가슴이 터질듯한 고통이 올 것 같았다.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뛰어다닌지라, 심장은 금방이라도 폭발해버릴듯 고동쳤다.


몸을 움직이는것이 매우 불편할정도로 힘들었지만 어지러운 머리를 벽면쪽으로 억지로 기울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요한 정적. 칠흑같은 어둠. 달이 뜬 밤이었지만 건물들로 인해 고립된 곳이라 주위를 분간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인기척같은것은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오직 자신의 거친 숨소리만이 귓가에 맴돌 뿐이었다.


'이제 안보이네.. 가버린걸까..'


다시 차가운 벽면에 지쳐버린 몸을 기대고 가쁘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데체 날 뒤쫓아온 이유가 뭘까.. 나는 왜 도망을 친거지?.. 그사람은 누구인거야?..'


온갖 질문이 머리속에서 뒤섞여졌다. 혼란스러움 그 자체.. 로 느껴졌다.

처음 누군가가 자기를 쫓아오고있다는 느낌을 받았을때, 그 땐 이미 늦은 뒤였다.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왠지모를 살기를 느끼고 전력을 다해 질주했다.
그녀의 몸집이 작은터라 건물사이로 몸을 숨기는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하지만 그녀를 쫓던 자는 아랑곳하지않고 그녀를 찾아냈다.
비록 어두운 건물 그림자때문에 그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그 후로 몇번이고 도망쳤으나 번번히 발견되어 이곳까지 왔다.


순간 그녀의 난잡한 머리속을 단 하나의 의문점으로 채워버리는 한 문장이 떠오른다.


'난 누구지..?'


이상할 노릇이다. 그녀는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 여자라는 것, 말을 하는 법, 몸을 움직이는 법, 세상에대한 지식. 모든것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이름을 모른다.. 그녀의 가족도, 친구도..  
답답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신들만의 기억을 가지고있는데.. 그녀만 그런 기억이 없다는것이 답답했다.

사실.. 그녀는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는점을 안 것도 언제부터인지 몰랐다. 어디서부터 기억이 나질 않는것인지도 몰랐다.
마치.. 방금 태어난 것과 같이.


순간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그녀가 기대던 벽의 저만치가 무너져내렸다.
목이 메일듯한 연기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나는 검은 그림자... 그녀의 몸이 어떤 상태이든 그건 중요치 않았다. 뛰어야한다.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 뛰지않으면 안돼' 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조금은 몸을 쉬게 했던 덕분인지 그녀는 다시 뛸 수 있었다.


"하아..하.."


잘은 모르지만 그 사람이 쫓아오는게 느껴졌다.
마치 바로 뒤에서 그녀를 따라뛰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불안감은 점점 더 고조되어갔다.

산을 접한 시골의 작은 도시인지라 새벽에는 사람이 전혀 돌아다니질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이런 곳에 와본게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우스운 일이다. 자신이 모르는 곳에 어떻게 온것일까?

뒤에서 빠른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좀더 빨리 달려야한다는걸 느꼈지만 더이상 그녀의 몸이 허락하지못했다.

급기야는 돌부리에 발이 걸리고말았다.


"아앗..!!"


다행히 옆으로 넘어져 상처는 없었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었다.

넘어져있는 그녀의 팔 바로 옆 길바닥에 커다란 금속같은 물체가 박힌다.


"꺄악!"


그녀는 반대쪽으로 몸을 웅크렸다.

순간 두려움이 그녀의 몸을 떨게만들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정말로.. 이젠 죽는걸까..'


그녀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여전히 건물 그림자가 사방에 드리워져 그 사람의 모습은 잘 보이지않았다.
다만 보이는것은 선명한 붉은색의 작고 둥근 빛..


'누구지? 누구인거야? 모습이라도 보이란말야!'


여전히 잘 보이지않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어둠속에서 보이는거라곤 아까의 선명하고 붉은 빛 뿐.

그녀를 위협하던 커다란 금속물체가 들어올려진다.


'정말로 죽는다...정말로 죽는다.....정말로 죽는다.....!!!'

"끼야아아아악!!!"




"......"


'응?'



괴이한 금속의 물체는 여전히 공중에 떠있었다.


'어째서..?'


그 사람의 얼굴에서 유일하게 보이던 붉은빛은 이제 그녀가 아닌 다른곳으로 향해있었다.




"이보게.. 위험하잖은가?"


그녀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마터면 숙녀분이 다칠뻔했군."
최소한 40은 넘어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
그녀를 쫓던 그 사람은 여전히 말이없었다.


그녀의 안그래도 복잡하던 머리속이 이제는 혼란에 휩싸여버렸다.
막 그녀에게 검-그녀가 그렇게 생각했을뿐 정확하게는 몰랐다.-을 겨누던 자는 누구이고 하마터면 그녀의 머리가 두동강이 날 뻔한 때에 나타난 저 중년의 남성은 누구인가?
생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반사적으로 그녀의 입이 열렸다.


"당신은.. 누구신.."


그녀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이 뛰어올랐다.
그 사람이 들고있던 검같은 물체는 더이상 그녀를 겨누고있지않았다. 귀를 에일듯이 강렬한 기세를 내는 괴물체는 순식간에 그의 팔에 휘둘려 중년 남성의 오른팔을 잘라버렸다.


"꺄아악!!"
그녀는 예상치도 못했던 살육의 현장의 목격자가 되어버렸다. 사람이 사람을 베는것은 난생처음보는 그녀이기에 비명과 함께 왠지모를 현기증이 몰려왔다.


하지만 순식간에 팔이 잘려버린 그 중년남성은 짧은 신음을 내면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로 그 사람의 검을 피하고있었다.

그녀는 이 자리를 피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넘어졌을때의 충격과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고있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그자리에서 굳어버리고말았다.

중년남성은 겉보기에도 꽤 늙어보이는 외모를 가졌지만 그 움직임은 보통 사람이라고 하기엔 믿을 수 없을만큼 빨랐다. 그가 계속해서 검을 피할때마다 윙윙거리는 바람소리가 그녀의 귀를 아프게했다.
하지만 놀라운것은 그 '검같이 보이는 물체'가 강렬한 금속음을 내며 벽을 긁고 도로를 쪼개는데도 아무도 나와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이가 없었다. 마치 아무도 없다는듯이.
두 사람의 싸움이 계속되었지만 그녀는 그 광경을 똑바로 볼 용기가 없어 두손으로 눈을 감쌌다.

얼마나 지났을까 순간 시끄럽게 울려퍼지던 금속음이 그쳤다.
그녀도 그녀의 눈을 가리던 두손을 살며시 거두었다. 중년남자는 2층짜리 상가의 옥상에 올라가있고 그를 쫓던 자는 아래에서 그를 올려다보고있었다.


"평소와 달리 거칠게 맞아주는군, 흑기사씨."


"......네놈을 알기때문이다..."
그녀를 쫓던 그 사람의 입이 드디어 열렸다. 그의 모습은 잘 보이지않았지만 목소리를 듣고서 젊은 남자라는것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오랜만에 입을 열고서 한다는 소리가 그정도인가.. 뭐.. 좋아.. 네놈에게는 이 모습을 해봤자 불편하기만 할 뿐이겠군."


중년남성의 입에서 놀랍게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린 소년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중년남성의 전신이 밤하늘에 동화될정도로 검어지다가 그 검은색들이 그의 왼팔로 모여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중년남성은 어느새 12~3세로밖에는 보이지않는 어린 소년으로 변해있었다.

마치 마술쇼처럼 기가막힌 광경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지고있었다.


"좋아. 인사는 이걸로 마치지.. 어차피 네놈에게 타협하고자하는 마음은 없을테니까. 처음에 내 오른팔을 잘라버린건 너의 실수야."
소년은 오른팔이 잘려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태연하다는 듯 말을했다.


순간 소년의 남아있던 오른팔이 어깨 바로밑으로 파열해버렸다. 안그래도 잘려있던팔이 더 날아가버렸는데도 소년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
소년을 올려다보던 남자는 대답도하지않고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박쥐? 아니 박쥐이기엔 너무나도 큰 괴물체가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
하지만 그 남자는 일말의 동요도없이 신속한 동작으로 그에게 날아오던 괴물체를 자신의 검으로 받아쳐냈다.

"캬악!"
커다란 괴성이 들려왔다.

"네놈의 술수따위..."
그남자는 다시 소년을 올려다보았다.

"이건 나의 인사야. 그리고 너와 싸울마음은 없어. 너를 잡아가는게 내 목적이 아니니까."

"교회의 개인 네놈에게 관심은 없어..."
그남자는 무섭게 쏘아붙였다.

"틀렸어. 나는 개가 아니야."
이렇게말하며 소년은 건물에서 가뿐하게 뛰어내렸다.


그녀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일이 하도 놀라워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숙녀분을 공격하는건 네 취미가 아닐텐데..?"
소년은 어느새 그녀의 옆에 와 있었다.

"어..어떻게..?"
소년의 부축을 받자 그녀는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뭐.. 내 본모습을 봐버렸으니 누나도 가만히 내버려둘 순 없어요. 일단 얌전히있으라구요."
소년은 상냥하게 대답하고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앉혔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그 남자도 이곳을 보고있었다.

"네놈의 속셈을 알리가 없지만, 너와 나는 적인만큼 네 목적을 방해하는것도 나름대로 나의 의무니까."

"......"
그남자는 다시 검을 사용할 자세를 취했다.

"이봐.. 정말 싸울 생각이야? 만약 그럴 생각이라면 재생하는데에 몇년이 걸리게 만들어 줄 의향은 있어. 물론 나도 그렇게되겠지만. 그거야말로 쓸데없는 짓 아닐까?"
타협을 위해 하는말이었지만 그 말에는 조금의 초조함도 없이 당당했다. 마치 협박을 하듯.

"......정말이지 쓸데없는 짓을 하는거다.."
그는 검을 거두었다. -그녀의 눈에는 검이 점차 작아지는것처럼 보였다.-


그리고는 그남자의 모습도 더욱 어둡게 변하더니 결국엔 사라져버렸다. 마치 그림자가 빛을 만나 사라지듯..


"그나저나.. 누나의 처리도 골치아프네.."
소년의 시선은 이제 그녀에게로 가있었다.

"뭣하면 없애버릴 수도 있고.. 그게 가장 편하겠군."
소년은 웃으면서 잔인한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아앗..!! 저기.. 부디... 살려주세요.. 그게.."
그녀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이제야 살았다 싶었더니 다른사람이와서 날 죽이겠다니..

"흠.. 뭐.. 난 그렇게 잔인한 사람은 아니니까.. 미스 누구누구와는 다르다구. 아, 내가아는 사람이야. 음.. 그럼 일단 나와 함께 가주실까요?"

"예.. 예에에? 저기.. 왓!"


소년은 자기 키보다도 훨씬 큰 그녀를 단숨에 들고는 사라졌다.



도로에서 조금 떨어지자, 그제서야 집을 나와 처참하게 황폐해져버린 자기집의 벽을 보고 수군대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마치 마법이라도 풀린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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