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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수필] 손톱

2004.08.03 21:46

격랑 조회 수:285






  언젠지는 모르겠지만, 한 여름날의 일요일. 구름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날이었다.
  막 목욕을 마치고 소파에 앉아있던 난 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큰방으로 갔다. 무슨 일로 부르는 건진 잘 알고 있어서 반문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누워라.”

  어머니는 날 힐끔 쳐다보고는 말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어머니 앞에 놓인 베개에 머리를 기대 누었다.

  “살살 해줘요.”

  난 어릴 적부터 주근깨나 잡티 같은 것이 많이 나는 체질이었다. 뭐, 무슨 체질이라고 해도 별 상관은 없었다. 가렵거나 아프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내 태도가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이신가 보다. 일요일 목욕을 마치면 늘 이렇게 나를 부르니 말이다.

  “아야!”

  어머니는 미리 준비했던 손수건으로 능숙하게 여드름을 짰다. 하지만, 능숙하다고 해서 아픔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끝까지 짜기 때문에 더 아플지도.

  “후음.”

  한 20분 정도 계속 내 얼굴에 손을 대던 어머니는 대충 끝냈는지 내 무릎을 쳤다. 일어나라는 의미였다. 어머니는 과묵한 편은 아니지만, TV드라마를 보실 때는 굉장히 집중하는 스타일이셨다. 그래서 이렇게 조용하신 거겠지.

  “…….”

  뚫어지게 드라마를 보고 있는 어머니를 보자니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아아, 방해꾼인 아들은 나가드리지요.

  “혁아.”

  “응?”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할 때 갑자기 어머니께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뒤돌아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손톱깎이를 들고 계셨다.

  “너 손톱 많이 기네. 이리 와라. 손톱 깎아 줄 테니.”

  “그다지 깎고 싶지 않은데…. 그냥 드라마 계속 보고 있는 게 어때?”

  어머니는 내 말을 듣고 인상을 찡그렸다.

  “시끄러. 이리 와라.”

  “쳇!”

  나는 어머니 앞에 앉아 오른손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엄지손톱부터 깎기 시작했다.

  또각, 또각.

  “후. 옛날에는 손톱을 하도 물어뜯어서 아들 손톱 한번 깎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버릇 고치니까 깎질 않으니…. 너 그렇게 손톱 기르고 싶냐?”

  어머니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 모습에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왠지 깎으면 아깝잖아.”

  또각, 또각.

  “…….”

  어머니는 다시 내 손톱을 깎기 시작했다. 별 할 말도 없으신 듯 했다. 난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미소를 짓고 드라마를 보았다.

  또각, 또각.

  “악!”

  갑작스럽게 왼손 엄지에서 아픔이 느껴졌다. 난 인상을 쓰면서 왼손을 바라보았다. 살이 크게 도려 내져 있었다.

  또각, 또각.

  꽤 깊숙한지 곧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저 한번 피를 닦아내고는 다시 다음 손톱을 깎을 뿐이었다. 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왜 아무 말도 없어?”

  내 말에 어머니는 고개를 들어, 무심한 표정으로 날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숙이면서 말했다.

  “그럼 내가 호들갑을 떨면서 ‘아이고! 우리 아들. 이걸 어쩌나!’라고 해줄까? 그거 한번 베였다고 까다롭게 놀기는.”

  “하하하하!”

  그리 웃긴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웃음이 나왔다. 왠지 그때가 생각났다. 8년 만에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을 고치고 어머니 앞에 가서 자랑스럽게 손톱을 깎아 달라고 했던 그날을 말이다. 그때 어머니께선 무척 기뻐하셨다. 환하게 웃으면서 마치 유치원 때처럼 정성스럽게 손톱을 깎아주셨다.

  ‘있잖아. 엄마. 고3인 내가 지금까지도 손톱이나 피부를 손보지 않는 건 어쩌면 엄마 때문인지도 몰라. 아무리 바빠도 손수 해주는 그 손길이 너무나 좋았거든. 그리고 환하게 웃던 그때가 생각나서 말이야. 솔직히 엄마가 그때 그 정도로 기뻐할 줄은 몰랐어. 미안해, 엄마. 난 아직도 어린아이인가 봐. 아직은 혼자보다 엄마가 하는 게 더 기분 좋은 거 보면 말이야. 이기적이지만, 부탁할게. 언제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완전히 어른이 될 때까지는 계속 해줄래?’

  또각, 또각.

  내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는 양, 손톱 깎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나는 고개를 다시 돌려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그때보단, 더 늘어난 흰 머리카락. 주름살. 그리고 여전한 아들생각.

  당신은 제가 어른이 될 때까지 등에 태워주시고는 길을 안내해주시겠지요. 그리고 언젠가 내가 한 걸음 나아갈 때 당신의 어깨를 밟고 가야겠지요. 그때 당신은 당연하다는 듯이 어깨를 내어주실 겁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 의해 내 어깨를 밟혔을 때, 그때 당신은 저를 안아주시면서 나 때문에 상처받은 어깨로 제 고개를 떠받쳐 주시겠지요.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언제나 저를 위해.

  ‘…사랑합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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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쓰고 난 다음에 상당히 부끄럽게 생각한 글입니다. 이런 부끄러운 글은
제가 처음으로 쓴 글 다음으로 두번째군요.
가볍게 쓰고 싶어서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글을 쓰진 않았습니다.
조만간 아버지에 대한 수필도 쓸 예정입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덧: 개인 홈페이지 atregain.com 리녈을 끝냈습니다.


"재미보단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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