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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For One Day - 0

2004.07.25 15:18

느와르 조회 수:240

For One Day.


  <늑대와 제비꽃>

  “있지, 제로비아.”

  자신을 부르는 조금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유스티니는 고개만 조금 돌렸다. 베게에
턱을 올리고 불만스러운 눈으로 눈앞의 물건을 바라보는 우윳빛 머리칼의 여인. 그
녀는 유스티니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말을 이었다.

  “이거 얼마짜리야?”

  “금화 두 닢.”

  짧게 대답하는 목소리에 여인은 흐응, 하고 짧게 대꾸하며 들고 있던 한 쌍의 보라색 귀
걸이를 상자 안에 집어넣고 조용히 뚜껑을 닫았다. 자세를 옆으로 돌아누운 여인은 다시 원
래 자세로 돌아가 반듯하게 누운 채 눈을 감고 있는 유스티니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물
었다.

  “얼마나 깎았는데?”

  “금화 두 닢.”

  방금 전과 똑같은 대답에 여인은 이상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유스티니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다시 입을 열어 그녀의 궁금증에 답했다.

  “아는 친구가 하는 보석상에 갔다가, 꿔준 돈 이자대신 받아왔어.”

  “뭐야, 너 친구한테 꿔 준 돈에도 이자를 받아?”

  대답대신 음, 하고 짧게 내뱉는 유스티니. 여인은 어이 없는듯한 표정으로 뭐라고 중얼거
렸다. 유스티니는 여전히 반응 없음. 자신의 주근깨투성이 볼을 쓰다듬던 여인은 몸을 움직
여 그에게로 다가갔다. 이불 밖으로 손을 빼 유스티니의 마른 뺨을 쓰다듬는다. 유스티니는
그제야 눈을 뜨고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차분한 보라색의 눈동자. 역마살을 타고난다
는 그 눈동자를 바라보던 여인은 갑작스럽게 물었다.

  “근데 저걸 나한테 주는 이유가 뭐야?”

  “난 귀걸이 있어.”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자신의 귀를 가리켜보인다. 거기에 보라색 뱀 모양의 귀걸이가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여인은 굳이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나도 귀걸이 있어.”

  “키르켈은 여자니까 장신구 정도는 많이 있어도 돼.”

  당연하다는 투로 대답하고는 다시 눈을 감는 유스티니. 키르켈이란 이름의 여인은 다시
어이가 없단 표정을 지었다. 유스티니와 같은 빛깔의 눈동자에 기가 차다는 표정을 띄우고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덧니가 살짝 비쳐 보인다. 고개를 들어 상자를 잠시 바라보던 키
르켈은 곧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목덜미에 닿는 숨결이 기분 좋은 듯 조금 입매를 들어 올
리는 유스티니. 키르켈은 그런 그의 몸에 조금 더 가까이 몸을 붙이며 투덜거리듯이 물었
다.

  “근데 왜 색이 저래?”

  “난 원래 보라색밖에 안 사.”

  “……어련하시겠어.”


  <인형>

  조금은 어지러운 집무실. 어지러이 놓인 서류와 장부들을 익숙한 손놀림으로 뒤적이며 펜
을 움직이던 현우는 바닥에 앉아 붉은 색의 종이를 구겼다가 폈다하고 있는 영의 모습을 발
견하고 고개를 조금 갸우뚱했다.

  “영. 그거 어디에서 났니?”

  “……났니?”

  까아만 구슬 같은 눈동자를 현우에게로 돌리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현우는 쓴웃음을 짓고
는 책상위의 서류를 뒤적거리다가 누락된 것을 찾아냈다. 아마 영이 가지고 있는 너덜거리
는 종이가 그것이리라. 현우는 안경을 벗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영. 그거 이리 주렴,”

  “……주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현우를 따라 시선을 움직이는 영. 현우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조용히 손가락을 펴들어 그녀의 눈앞으로 가
져간 그는 영의 시선을 붙잡아 둔 채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무슨 신기한 것을 보는 양 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던 영은 손가락이 멈추자 다
시 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현우는 잿빛의 눈동자에 따듯한 미소를 담고 그녀에게 속삭
이듯 말했다.

  “이거. 나에게. 주겠니.”

  현우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멈춘 곳은 영의 손안. 영은 다시 그의 손가락을 바라보다가 들
고 있던 종이를 현우에게 내밀었다. 조용히 종이를 받아들어 책상 위에 올려놓은 현우는 빙
긋이 웃으며 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잘했어. 착하구나.”

  “……착하구나.”

  현우의 목소리를 되뇌이던 영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의 품으로 안겨 들어왔다. 곱슬거리
는 영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는 손을 풀지 않는 영의 모습에 난
감한 듯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영?”

  “현우, 따듯해.”

  더듬더듬 중얼거리고는 만족한 듯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부비는 영. 현우는 놀란 얼굴로
영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곧 쓰게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었다.

  “호진.”

  “예, 예!”

  지금껏 계속 창가에 선채 현우와 영의 모습을 생각 없이 지켜보던 호진은 갑작스럽게 이
름이 불리자 황급히 자세를 바로잡고 대답했다. 등허리에 매달린 박도가 철컥 소리를 낸다.

  “좀 쉬지. 차 좀 부탁해도 되겠나.”

  “아, 예.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황급히 문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뛰어나가는 호진. 현우는 쓰게 웃으며 흔들리는 문을 바
라보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냥 나가서 아무 하인이나 붙잡으면 될 것을. 왜 자기가 간단 말인가.”


  <인형 - 곁지기>

  잠시 개인적인 용무를 마치고 저택으로 돌아온 자경은 헐레벌떡 별채로 뛰어가는 호진의
모습을 발견하고 서둘러 그의 뒤를 따랐다. 등허리에 찬 박도 손잡이를 움켜쥐고 재빨리 호
진의 곁으로 따라붙은 그녀는 그에게 빠르게 물었다.

  “호진씨! 무슨 일이에요?”

  “아, 예! 차를 가지러 갑니다!”

  “차?”

  조용히 그 단어를 되새기던 자경은 그 자리에 멈추며 호진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꾸엑,
하고 볼품없는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처박히는 호진. 자경은 흘러내려온 머리칼을 뒤로 넘
기며 한심한 눈으로 호진을 내려다보았다.

  “차를 가지러 부엌에 가는 거예요?”

  “콜록, 예에. 가주님이 차를 부탁하셔서…….”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리는 호진. 자경은 이마를 감싸며 그런 그에게 중얼거렸다.

  “그런 건 지나가는 하인한테 맡기면 되잖아요. 곁지기인 호진씨가 가주님 곁을 벗어나면
어떡해요?”

  “……아!”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왔던 방향의 반대쪽으로 달려가려는 호진, 그리고 그런 그의 행
동을 예상했던 자경은 래리어트로 그런 그의 목을 걸어 넘어트렸다. 후두부 통타. 자경은
당장 핀폴에 들어가도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자세로 쓰러져버린 호진을 바라보며 한심하다
는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차는 가져가야 할 것 아니에요. 사람이 왜 이리 정신이 없담.”

  “……죄송합니다.”

  결국 다과상을 받쳐 든 호진과 차 쟁반을 든 자경은 후원을 느긋하게 걸어 현우의 집무실
쪽으로 향했다. 앞을 걸어가는 자경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호진은 조심스럽게 그녀
에게 물었다.

  “저기 자경씨.”

  “예?”

  “가주님과 천영이 말입니다만. 그냥 저렇게 놔두어도 될까요?”

  자경은 그를 슬쩍 돌아보고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며 지나가는 말처럼 대담했다.

  “나쁠 것 없잖아요. 가주님이 뭔가 나쁜 일을 하시는 것도 아니고.”

  “그렇긴 그렇지만 아무래도 주위의 눈이란 게.”

  “우와, 호진씨가 그런 말하니까 엄청 안 어울려요.”

  과장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며 말하는 자경. 호진은 얼굴을 찡그렸고, 자경은 다시 앞을
돌아보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어차피 우린 곁지기에요. 가주님이 가시는 길을 지킬 수는 있어도, 그 길을 바꾸는 건
못해요.”

  무게감을 담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그 목소리. 어렸을 때부터 단지 곁지기로만 키워진
그녀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리라. 마치 꼬리처럼 흔들리는 그녀의 주황색 포니테
일을 바라보던 호진은 조용히 손을 들어 자신의 뺨에 길게 자리 잡은 흉터를 쓰다듬었다.

  
  <푸른 나무 아래에서>

  “오늘은 여기까지. 숙제는 잊지들 말고 해오세요.”

  “네에에!”

  길게 꼬릴 끄는 아이들의 목소리. 곧이어 작은 방문이 부서질 듯 열리고 한 무리의 아이
들이 부산스럽게 튀어나왔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미소를 띄고 지켜보던 긴 머리칼의 소
년은 아직 방안에 남아있는 초라한 옷차림의 아이를 발견하고 그 이름을 불렀다.

  “준규군, 왜 집에 안가고 있나요?”

  “아, 그, 그게.”

  엉거주춤하게 몸을 일으킨 준규는 등 뒤에 감추고 있던 지저분한 자루를 소년에게 내밀었
다. 설명을 요구하는 까만 눈동자와 마주친 준규는 쭈뼛거리며 소년에게 변명이라도 하듯
중얼거렸다.

  “저, 엄마가, 그 수업료 대신 이걸…….”

  소년은 조용히 손을 뻗어 자루의 목 부분을 묶은 끈을 풀었고, 그 안에 자리 잡은 사과와
배 같은 과일들을 보며 빙긋이 웃었다. 조용히 손을 넣어 빠알간 사과 하나를 꺼낸 소년은
소매에 쓱 문질러 닦아 준규에게 내밀었다.

  “너무 많이 주셨네요. 어머님께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얼떨결에 그 사과를 받아든 준규는 황망히 고개를 꾸벅이고는 그대로 방을 뛰어나갔다.
소년은 자루를 다시 묶고는 조금 무거운 자루를 어깨에 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훈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얼마 전에 담가둔 술이 알맞게 익었는데 나중에 한잔 어떻습니까!”

  “선생님! 어머님이 있다가 저녁 먹으러 오시래요!”

  긴 댕기머리가 흔들리는 뒤로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명훈이라는 이름의 소년
은 과일자루를 어깨에 메고,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 하나씩 답해주며 대로를 걸었다. 그를
대하는 얼굴은 모두 웃는 얼굴 뿐. 그에게 다가와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명훈은 익숙한 자신의 작은 집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다녀왔습니다.”

  대답이 없는 방에 버릇처럼 중얼거리고 신발을 벗는다. 과일자루를 부엌에 놔두고 손과
얼굴을 씻은 그는 저녁노을이 들어오기 시작한 마루를 지나 안방으로 들어섰다.
  방 한가운데 핀 이부자리위에 미동조차 않고 누워있는 은빛머리칼의 소녀. 그 가녀린 팔
뚝에 꽃혀 있는 영양액의 관을 확인한 명훈은 속삭이듯이 그녀에게 말했다.

  “오늘 하루 잘 지냈어요?”

  물론 대답은 없다. 명훈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사과를 꺼내
깎기 시작했다. 노을에 물든 조용한 방안에 사과 깎는 소리만이 맴돈다. 하얀 속살을 드러
낸 사과를 예쁘게 조각낸 그는 조용히 한 조각을 집어 들어 입에 넣었다. 천천히, 침과 섞
어가며 잘게 부서지게 사과를 씹은 그는 조용히 소녀의 몸을 들어 올려 그 입술에 입을 맞
추었다. 힙없이 벌어진 입술사이로 사과를 집어넣어 목구멍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멋대로
움직인 소녀의 목 근육이 사과를 삼키자 명훈은 조용히 입을 땠다.
  조용히 감은 눈은 떠지는 법이 없고, 파리한 그 입술은 한 번도 자신의 의지대로 열린 적
이 없다. 명훈은 그녀의 눈동자는 과연 어떤 색일까를 막연히 상상해 볼 뿐. 탄식처럼 한숨
을 내쉰 그는 소녀의 몸을 받친 채 다시 한 번 사과를 입안으로 가져갔다.
  노을은 붉어 겹쳐진 소녀과 소녀의 실루엣을 길게 방바닥에 늘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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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받은 설정들로 가볍게 끄적인 글입니다.
회지에 제출해야 하는 글의 마감이 얼마 남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런짓이라니.;;
너무 오래 끄는 것도 좋지않으니, 여우꼬리 산신령을 다 쓸때까지만 설정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왠지 생각한것보단 색기 넘치는 커플이 적어서 조금은 아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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