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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Beautiful Mind -Another Story 재현(1)-

2004.07.16 21:24

HALKEN 조회 수:272

"다녀오겠습니다아~"

익숙한 목소리가 잠에서 방금 깬 나의 귓전을 울렸다.
하나뿐인 내 형의 목소리.
그런데, 대체 어딜 다녀오겠다는 거지?
분명히 방학이었을... 아, 형은 오늘 개학이구나.
잠시 있고 있었네.
여기서 잠깐 내 소개를 하자면 난 17살난 대한민국의 건전한 청소년이다.
원래대로라면 고1로 진학해 눈썹 휘날리며 학교로 달려가야할 나이지만 중학교 졸업하고나서 고교진학을 포기했기 때문에(!) 올해부터 지긋지긋한 학교에 안 나가도 되는 녀석이랄까.
쉽게 말해서, 난 소위 일반인들이 말하는 '양아치'다.
조금 고급어휘를 구사하자면 '문제아' 정도?
형이야 원래 공부에 소질(?)이 있어 학교의 기대주로 각광을 받으며 공부해 왔지만 공부에 재능도 없고, 흥미까지 없을뿐더러, 가는 곳마다 사고를 치기까지 하는 나는 애저녁에 공부를 때려치웠다.
덕분에 형과 꽤 비교당하기는 했지만, 전혀 상처 입지 않았다.
우리 엄마나 형이 신경 안 쓰고, 나 자신도 신경 안 쓰는데 남들의 시선이 무슨 상관이람?
아니, 애초에 공부 외에는 인생역전의 기회가 로또 대박밖에 주어지지 않는 우리 사회구조가 문제라고.
사실 '문제아'라는 것도 높으신 어른들끼리 지들 기준에 맞지 ㅇ낳는 사람들을 싸잡아 칭하는 말 아냐?
...불평불만은 이 정도에서 그만 두고(그러고 보니 난 어디의 누구에게 지껄이고 있는 거냐!) 잠도 깼겠다 세면을 위해 몸을 일으켰다.
화장실로 향하는 중에 문이 열려 있는 안방을 흘낏 쳐다봤다.
잠버릇 심한 우리 어머니께서 침대 위에서 뒤척이고 있는 게 눈에 확 들어왔다.
제길... 침대 위를 발정난 암캐 뛰어다니듯이 굴러다니는 건 이해하겠는데, 그렇게 잠 자는 중에 윗도리 벗고 자지 말라고.
내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도 있었으면 댁은 벌써 끝났어. 쳇.





"재현아. 이모네 좀 갔다 와라."

씻고 나서 수건으로 머리를 터는 내게 엄마가 말했다.
뭐야, 오늘 휴무 아니었어?

"엄마 오늘 휴무 아냐? 엄마가 갔다 오지 그래?"

"자식 놈 새끼가 어디서 부모말씀하시는데 말대꾸야! 오늘 VIP 고객 예약이 있어서 아쉽게도 휴무가 파토났단다. 안 그래도 저기압인데 더 이상 자극하지 말고 닥치고 이모네 집에 가서 옷 좀 받아오렴."

...과격해.
진짜 엄마 때문에 여자에 대한 환상이 다 깬다.
대체 아빠는 뭐가 좋다고 저런 여자랑 결혼한 거야?
아빠가 요절한 건 다 엄마한테 시달려서 일거야. 틀림 없어.

"쳇. 핑계도 그럴싸하네. 갔다오면 될거 아냐, 갔다오면."

"응... 그래. 말 하는 내용은 좋은데, 그 제스쳐는 뭐니? OK라고?"

"아니. 돈 달라고. 세상은 Give & Take 아니겠어? 아무리 부모 자식 사이라도 맺고 끊을 건 확실해야지. 특히 돈 문제 같은 민감한 사안에 있어서는."

엄마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입꼬리는 말려 올라가고, 분명히 화사하게 웃고는 있는데 밝아지는 표정에 비례해서 관자놀이에 십자형 혈관마크가 늘어갔다.
위, 위험하다 이거.

생가갛고 있는 사이 엄마가 목침을 던졌다.
뭐야, 왜 목침 같은 걸 베고 자는건데?
베개는 어디다 팔아먹고?
아냐, 그것보다 저 흉기가 자기 배로 낳은 자식에게 향할 거야?

"피, 피했다."

"피할 줄 알고 던진거야."

"웃기지 마쇼! 살기가 담겨 있었다고! 분명히 저건 날 죽이려고 던진 거야. 다른 이유가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어! 대체 맞았으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랬던 거야?!"

엄마는 거제서야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 맞았으면 내가 언니네 집에 갔어야 됐구나. 피해서 다행이네."

...댁은 그게 걱정이쇼?
하아... 기운이 다 빠졌어.
이 이상 엄마의 페이스에 말려들면 나까지 바보가 될 것 같아.





그런 이유로, 자의(自義) 무(無), 모의(母義) 전(全)으로 이모 댁에 가서옷을 받아오게 됐다.
양손에 보따리를 잔뜩 들고 오는 내 모습은 올해 들어서 두번째로 추한 모습이었다.
첫번째는...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자.

"Oh Honey~ Oh baby~ 어쩜 아름답기도 하지~ 나를 믿지~ 내게 오지~ 절대 후회할리 없지♬"

아무 노래나 흥얼거리며 집으로 향하는 길에 낯 익은 얼굴이 보였다.

"여어, 오랜만이다?"

"응? 아, 재현이구나!"

이 여자의 이름은 권현희.
우리 형과 모증의 관게...에 있지는 않고 그냥 우리 형이 짝사랑하는 애다.
글쎄, 형이야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맘에 안 든다.
성격, 외모, 뭐 특별이 하자될 부분은 없는데, 그냥 나만 보면 갈군달까.
이런 여자가 내 형수가 되는 건 참을 수 없어!
난 신에게 기도를 했고 신은 그 바램을 너무 일찍 들어줘서 형은 현희에게 차였다(이 때 형한테 무지 미안했다).

"무슨 생각해?"

"응? 아, 교복 잘 어울린다고. 어디서 많이 본 교복인데..?"

"뭐야, 넌 너희 오빠 다니는 학교 교복도 몰라?"

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
우리 형네 교복이잖아.
그렇다는 건, 형이랑 학교에서 만났을 수도 있다는 소린데?

"아, 나 학교에서 너네 오빠 만났다?"

"어? 그래?"

바로 만나냐!
이렇게 예상이 들어맞으면 왠지 모르게 허탈해지잖아.

"응. 밴드부 오디션 보러 갔다가 만났어."

"으응. 우리 형 그대로지?"

"응. 하나도 안 변했어. 우유부단한 거."

그게 지금 그 사람 동생인 나한테 할 소리냐.
왠지 모르게 열받는다.

"그래서 찬거냐?"

현희는 고개를 한 번 갸우뚱하더니 되물었다.

"그걸 왜 네가 관심 갖는데?"

그렇게 톡 쏘아 붙이면 무안하잖아. 할 말도 없고.
대답하는 사람 처지도 좀 헤아려 줄 수 없나?

"뭐, 우유부단해서 우물쭈물하고, 그런 점은 나름대로 귀여워."

그럼 왜 찬거냐.
우리 형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고 우유부단한 거랑 키 작은 거 빼면 딱히 단점이 없는 사람인데.
장점이 훨씬 많지.

"그럼 Why?"

"오랜만에 만나서 좀 집요하다 너? 일단 벤치에라도 앉아서 말하자. 그거 들고 길거리에 서서 말할 순 없잖아?"

그제서야 난 망각하고 있던 내 처지에 대해 자각했다.
좋아, 일단 앉자고.
그리고.. 왜 집요하냐니.
그거야 일단 내 형이고, 너 오랜만에 만났으니까(형만큼은 아니겠지만) 궁금하기도 하고, 약 3년만에 형을 만난 네 첫 감상이 '우유부단하네'여서 열받아서 그런다.

"그러니까, 다시 물을게. 이유가 뭐냐?"

현희는 머리를 한 번 쓸어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첫번째는 결혼 문제."

"결혼?"

"응. 나 어렸을 때 아는 언니랑 약속했거든. 가장 먼저 사귄 사람이랑 결혼하기로. 그래서 좀 신중해져서 말야. 난 나보다 네다섯살 많은 어른스러운 사람이 좋거든."

"그 말은 우리 형이 어려보인다는 말로 들리는데?"

"솔직히 얼굴도 동안이고,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키도 큰 편은 아니고, 행동도 어른스럽지는 않잖아?"

형. 형은 정신연령이 무지 어린 이 꼬마한테 어려보인다는 취급을 받고 있었어.
나 죽을 때까지 이 일 비밀에 부칠게.
이걸 형이 알면 우주 밖으로 날아갈 정도의 정신적 데미지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어쨌든... 일단 궁금한 걸 물어볼게.

"방금 첫번째라 그랬는데 다른 이유는?"

"음... 말로 표현하기는 힘든데, 굳이 말하자면 열등감."

"열등감?"

이건 또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내 17살 평셍에 열등감 때문에 못 사귀겠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

"응. 열등감. 이건 어떻게 말로 표현이 안 돼. 그냥, 너네 오빠한테 비추면 왠지 모르게 내가 많이 모자라보이는 것 같아서."

그게 이유냐.
첫번째 건 그렇다 치고 두번째 건 너무 어이 없잖아.
그런 이유면 너한테 차여서 좌절하던 우리 형이 너무 불쌍하다고.

"그랬는데.."

"응?"

"오늘 오빠를 봤을 때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어른스러워 보였어."

형. 형 지금 가능성 있는 한 마디를 들은 거 알아?
형이 밀어붙이면 현희 넘어올지도 몰라.
우유부단한 성격 좀 고치면 어떻게든 될 것 같다고.

"...이랄까."

"응? 뭐라고 했어?"

딴 생각하느라고 놓쳐버렸다.

"그냥, 못 들은 걸로 쳐. 그럼 난 갈게. 오늘, 내가 너무 많이 손해봤으니까 다음에 보면 밥이라도 한 끼 사."

"어? 어..."

인사할 겨를도 없이 집 쪽으로 달려갔다.
그럼 난 형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볼까나.
뭐, 일단 형이 사귀는 건 사귀는 거고, 결혼만 안 하면 형수님이라고 부를 일은 없으니까.

"형, 나 왔어! 좋은 소식 있는데~"

하지만 집 안에서는 규칙적인 숨소리와 함께 간혹 코 고는 소리만이 들렸다.
형, 자는구나...
형을 깨워서 기쁜 소식에 대해 온몸으로 표현하려던 나는 이내 떠오른 생각에 하려던 일을 멈추었다.
저 우유부단한 성격에, 가능성이 99%라고 해도 1%의 확률 때문에 불안해 하며 도전하지 않을 게 틀림 없어.
그것보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게 훨씬 재미있을지도 몰라.
형, 내일부터 학교 생활 정말 재미있겠어,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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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썼던 소주 5병 말씀인데요,
일단은 상당히 주관적이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주량이 3병 정도이고,
저희 어머니가 5병 정도를 마시니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해서 써버렸네요.
양해 부탁드립니다아.
그러고보니, 저희 어머니랑 대작하는 사람을 못 봤어요오..[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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