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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린 나날들. 길가를 달리는 봄바람의 끝에 앉아서 하늘을 노래하는 아이처럼 흐름이 잔잔한 아침이었다. 그래서 햇살도 참 곱다고 생각하며 남자는 모닝커피를 부드럽게 마셨다. 이 카페의 모닝커피는 남자에게 잘 맞아서 매일 아침마다 들렀다. 하지만 이 카페에 오는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어느 날부터 이 카페에 나와 매일 아침 모닝커피를 마시는 한 여인 때문이었다. 그녀가 이 카페를 들러 모닝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늘 오전 8시. 남자는 혹시나 싶은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여인이 오는 시간의 10분 전에 카페에 들어와 신문을 보는 척 하면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것이 남자의 무엇보다 비교할 수 없는 낙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낙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쟈스민 향기였다.

    오늘도 남자는 여인이 오기 전에 카페에 들어와 그녀가 늘 앉는 자리의 대각선 윗자리에 앉았다. 물론 이렇게 앉으면 여인의 긴 생머리에 의해 얼굴을 볼 순 없었지만, 남자는 여인을 감싸는 쟈스민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더 이상을 바라면 그건 사치라고 생각했다. 몇 달째 그치지 않는 감기를 손으로 막아 작게 콜록거리며 남자는 모닝커피를 천천히 마셨다. 여전히 이 카페의 모닝커피는 변함이 없었다. 그것이 남자를 만족시켰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동안, 남자는 갑자기 흐르는 쟈스민 향기에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들어 여인의 테이블을 보았다. 여인의 긴 생머리가 보이자 남자는 커피 잔의 무늬처럼 미소를 지었다. 왠지 여인의 쟈스민 향기가 더 짙어진 거 같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그리고 갑자기 멍하게 여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쟈스민 향기가 더 짙어진 것은 사랑도 더 짙어진 거 같았다. 남자는 그만의 욕심을 생각했다. 여인의 쟈스민 향기를 자기 것으로 하고 싶다고……. 남자는 처음으로 여인보다 먼저 카페를 나섰다. 밖은 조금 싸늘한 바람과 함께 불완전한 붉은 별이 남자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연신 기침을 내 뱉으며 집을 나섰다. 나무가 허전한 날이었다. 스며드는 추위에 몸을 움츠리며 남자는 어제부터 연습한 고백멘트를 중얼거렸다. 앞으로 여인과 함께 하얀 캔버스 위에 그릴 그림을 생각하니 절로 아이 같은 미소가 그려졌다. 처음으로 여인의 쟈스민 향기를 자기 것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한 날부터 어제까지 남자는 여인보다 먼저 카페를 나섰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해서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결정을 내린 오늘 남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남자는 의사 선생님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볍게 부딪친 거라서 타박상만 있다고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남자는 여인에게 고백을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곧 퇴원할 것에 다시 기대를 가지며 의사 선생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의사선생님은 병실에서 나가지 않고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이상한 분위기에 대답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의사 선생님을 보았다. 의사 선생님은 눈을 차분히 감으면서 AIDS에 오래 전부터 감염됐다고 말했다. 남자는 일각의 시간이 지난 후에 오열했다. 자신은 지금까지 한 번도 성생활을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자신은 AIDS에 걸릴 이유가 없다고.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의사 선생님은 작게 한숨을 쉬며 AIDS는 성생활이 아니더라도 감염자의 피가 자신에게 스며들 경우 발생 할 수 있다고, 예로 목욕탕에서 걸린 환자를 설명해 주었다. 남자는 의사 선생님이 나간 후 더욱 더 오열했다. 어쩐지 병실이 독실이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니…….

    남자는 그 날 이후 아침마다 가던 카페를 금하고 있었다. 자신은 감염자이기 때문에 함부로 사람 가까이에 가는 건 죄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AIDS라는 병보다 더 가슴이 아픈 건 이제 그 여인의 쟈스민 향기를 맡을 수 없다는 거였다. 그것이 남자의 가슴을 짓눌렸다. 마치 바스라진 꽃잎처럼. 하지만 남은 삶을 위해서라도 먹을 것을 구입해야 했다. 회사에서도 해고되어 수중에 남아있는 돈은 얼마 없었지만, 상관은 없었다. 자신의 목숨은 얼마 남지 않는 것을 남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추운 바람에 코트를 꾹 누르며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라면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남자는 단정한 옷을 입은 여인을 보았다. 그리고 곁에는 자신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잘됐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이제 없어도 여인의 쟈스민 향기를 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겼기에.

    남자는 따스한 기운을 받는 방 안에서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점점 숨이 막혀왔다. 이제 갈 때가 되었구나. 어차피 삶에 미련을 가지고 있지 않던 남자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아였던 남자에겐 자신의 죽음을 볼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서글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마지막, 으로, 여인의, 쟈스민 향기, 를, 맡고 싶다고, 소망했, 다.


“자기야. 나 왔어.”

“그래. 오늘 예쁘네. 평소 지키지 않던 약속 시간도 지키고 말야.”

“피! 그래도 많이 늦지는 않았잖아!”

“그래, 그래. 알았다. 근데, 너 오늘 쟈스민 향수 뿌리고 왔어? 쟈스민 향기가 나네.”

“아니, 나 몸에 뿌리는 향수 같은 거 싫어해서 절대 뿌리지 않는 걸 자기가 제일 잘 알잖아.”

“그렇긴 한데… 너 몸에서 쟈스민 향기가 나는걸. 향기 좋다. 코를 자극하지도 않고, 너무 자연스러운데?”

“그래? 난 모르겠는데. 뭐 좋으면 좋은 거겠지! 자기야 어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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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방학의 마지막 날이라서 단편 한번 써보자! 라고 바로 타이핑
한 즉석 단편입니다; 요즘 머리가 아파서 정확한 퇴고는 잘
하질 못했습니다. 오타가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덧: 처음으로 써 본 단편이었습니다.


"재미보단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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