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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수필] 봉사활동

2004.06.26 18:50

이부키 조회 수:243

중학교에서 학생들은 1년에 15시간씩 의무적으로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뭐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서 어쩌구 하기는 하는데, 이런 강제적인 봉사활동으로는 교육이 될 리가 없다. 선생님의 본명을 친구 이름 부르듯이 하고, 졸다가 맞고 나면 뒤에서 쌍소리나 해대고, 선생님에 인사하는 것을 웃음거리로 여긴다. 남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자기와 다르면 무조건 자기와 같도록 강제한다. 이런 녀석들을 강제적인 봉사활동 따위로 훈육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이상주의의 극치일 것이다. 하지만 전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 우리세대는 그렇게까지 썩지는 않았다. 하여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거니, 하긴 해야겠지.

친구와 함께 간 곳은 성동구와 광진구의 모든 우편물을 처리하는 곳이었다. 뭐 오래 전의 일이어서 정식명칭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넓은 부지에 버섯 군무처럼 서있는 건물중의 하나에 들어가고, 계단을 올라 2층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기다리는 곳으로 도착했을 때 나는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우편물을 가득 담은 카트를 끌고 가는 수많은 사람들,네다섯 명씩 무리 지어 길다란 상위에 우편물들을 흩어두고 그것들을 분류하는 사람들, 그들 사이로 무슨 일인지 급하게 뛰어가는 사람들. 그들 모두가 노랗고 하얗기만 한 밋밋한 벽지가 발라진 거대한 방(그것을 방이라 부를 수 있다면) 안에서 왁자하지도 고요하지도 않은 묘한 소란스러움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안내원은 저 앞을 거침없이 가고있었다. 우리는 얼른 그를 따라갔고, 우리는 어느새 그 소란스러움의 중심에서 그들과 함께 우편물을 분류하고 있었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를 제외한 봉사활동을 온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우편물 분류라는 게 말 그대로 보낼 지역에 따라 분류해서 정리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므로 일은 간단하고, 쉽고, 힘들지 않고 거기에 재미까지 있었다. 친구와 함께 편지를 분류하며 잡담-이사람, 정말 가수 조성모 일까? 오, 우리나라에도 제갈 씨가 있구만-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친구의 자당께서 여기의 직원이신지라 우리는 상당한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었고 그것은 우리를 더욱 편하게 만들었다. 내심 고아원이나 양로원 봉사활동을 생각하며 큰 각오를 하고 왔지만, 우리의 노동(?)환경은 나의 각오가 허무할 정도로 좋았다. 일을 시작한지 한시간도 안되어 나는 다음 번엔 반드시 고아원이나 양로원으로 봉사활동을 가야겠다고 다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랬다. 솔직히 시시했다. 단순한 반복 노동이었고, 기분 나쁘거나 짜증나지도 않았고, 더럽거나 혐오스럽지도 않았고, 어떤 불만스러운 점도 없었다.그것이 나의 불만이었다. 그때의 나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참된 노동을 해보고 싶어했고, 그 참된 노동을 행함으로써 얻어진다는 깨달음을 얻고싶어 했다.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오는 유치한 발상이지만, 그때의 나는 그랬다. 그랬기에, 봉사활동을 모두 마치고 나서 실제보다 2배는 더 과장된 봉사활동 인증서를 보고도 나는 가만히 있기만 했다. 평소 때라면 분명히 길길이 날뛰었을 나지만, 나는 가만히 있기만 했다. 친구들의 동그란 시선을 외면한 체, 나는 계속해서 생각-어느 고아원이 좋을까, 어느 양로원이 좋을까-하고 있었으니까.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은 분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때의 봉사활동이 나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나의 갈 길에 어떤 표지판이 되어줬는지, 지금은 분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꼭 고아원이나 양로원만이 전부가 아니다. 아무리 작은 어린아이도 소중한 생명이듯이,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도 귀중한 자원이듯이 아무리 쉽고 단순한 일이라도 신성한 노동인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 사실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고, 가르침을 얻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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