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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Beautiful Mind (3)

2004.06.23 23:56

HALKEN 조회 수:316

"다녀왔습니다아."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없는 거실에 인사를 하며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는 언제나처럼 달랑 쪽지 한 장 뿐.
바보 어머니. 오늘도 바쁜 모양이다.

-아들, 엄마 나갔다 올테니까 밥 알아서 잘 챙겨먹고, 오늘부터 고3이니까 말 안해도 공부 열심히 하렴.
사랑한다 재윤&재현아.
P.S : 집에 들어가서 알람시계가 그 꼴이 된 것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나누자꾸나.

어머니 들어오면 죽을지도.
그래도... 이 글은 너무 유아틱하잖아!
늘 생각하는 거지만 우리 집 사람들의 유아적 사고는 따라갈 수 없어.
나까지 유아기로 퇴행해버리는 것 같다구.
'포옥'하고 한숨을 내쉰 나는 옷을 갈아입고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무의식 중에 지갑으로 손이 갔다.
그러고 보니 이 지갑, 현희가 생일선물로 사준 거였지.
그 전에 한 3개 정도 잃어버렸는데.. 이번 거는 꽤나 오래 가네.
궁시렁 거리면서 지갑 안에서 꼬깃꼬깃 접힌 편지를 꺼내들었다.
3년 전 그 날 이후 단 한 번도 펴보지 않던 편지를 지금 펴보는 이유는 뭘까..
에라, 나도 몰라. 내키는 대로 하지, 뭐.
다 펴진 편지에는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고재윤 오빠, 아니 선배...
뭐라고 불러야 할 지 애매하네요. 그냥 선배라고 할게요.
우선, 고맙습니다. 저 같은 애 좋아해주셔서.
저도 선배를 좋아해요, 하지만..
그 차이는, 그래요. 아마도 love와 like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배를 love보다도 like로 생각하고 있어요. 마치 친오빠처럼.
선배도 시간이 좀 지나면 아실 거에요.
저를 이성이 아니라 여동생으로 좋아하셨다고.
love가 아니랑 like였다고.
혹시라도, 아니 반드시 그러시겠지만,
제가 미워지신다면 마음껏 미워하셔도 좋아요.
다만 제 바램은,
내일부터 평상시처럼 웃으며 인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시 한 번 고마우신 선배 마음에 상처를 입혀 죄송합니다.
현희 올림-

다 읽고 나서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잊고 있었네, 마지막에 적혀있던 말은.
아마 차인 것에 모든 신경이 쏠려서 마지막까지 눈이 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음.. 그러면, 아까 전 상황이 이해가 가는 걸.

그러니까, 몇 시간 전에...





"아, 재윤 선배?"

현희 역시 놀란 표정이었지만 이내 표정을 수습하고는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재윤 선배. 오랜만에 뵙네요."

"으, 응."

뭐야, 이건? 나는 이렇게 뻘쭘한데 얘는 왜 이렇게 밝아 보여?

"그런데 선배 밴드부셨어요? 전혀 몰랐어요. 옛날에는 공부만 하시는 이미지였는데.."

쉴 새 없이 계속될 듯한 현희의 수다에 곤혹스러워졌다.

'여기는 밴드부실, 게다가 지금은 오디션 중이고, 거기에 덧붙여서 넌 지각까지 한 몸이라고. 좀 자신의 처지에 대해 자각을 하는 게 어때?'라는 말은 입이 찢어져도 못하지.
나는 구원의 눈빛을 록영이에게로 향했고, 록영이는 그런 내 요구를 무시하지 않았다.

"자자, 어떤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만난 회포는 나중에 풀고, 일단 당장 오디션부터 진행하자고. 음... 이름이?"

"권현희입니다. 드럼을 좀 치고요."

"그래, 현희야? 일단 연습한 곡 시작해보고. 음.. 어쨌든 정해진 시간에 늦었으니 감점을 피할 수 없다?"

"에엑~. 너무해요."

...
저것들, 너무 화기애애한데? 괜스레 짜증나는 걸..

현희의 차례가 끝나고 곧바로 채점에 들어갔다.
객관적인 채점의 결과, 현희의 점수는 3위였지만 멤버들의 주관적인 견해의 개입으로 인해 만장일치로 정규팀의 드럼을 맡기로 했다.
나는, 무의식 중에 찬성해버렸고(안 그럼 어쩌란 말인데!), 록영이는 내가 찬성하니까 찬성, 나머지 놈들도 여자드러머의 희소성 때문에 공연에서의 이점을 기대하고 찬성했다.

"선배?"

"와악!"

으아.. 깜짝 놀랐다.
그렇게 뒤에서 갑작스럽게 다가오지 말라고.
뺨 맞을까봐 무서우니깐.

"왜 그렇게 놀라세요?"

생글생글 웃으며 앞에 서있는 현희.
여전히 밝아 보인다, 현희는. 변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아냐, 아무 것도. 그런데 왜 불렀어?"

"그냥.. 저 어떻게 됐나 궁금해서요. 저 이전에 했던 애들을 못 봤잖아요? 이래서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없으니까요."

...뭔가 마지막 말의 어감이 이상하게 미묘했다.

"아, 저기... 내일쯤 밴드부실에 게시할 테니까 그 때 보면 안될까? 너만 먼저 알려줄 수는 없잖아. 나도 입장이라는 게 있어서.."

내 말 끝에 웃으며 가만히 서 있는 현희.
이윽고 입을 연 현희의 말은..

"선배는 하나도 안 변한 것 같아요."




...회상 끝.
생각해보니 현희의 태도는 차이기 전 친했을 때처럼 완전히 '평상시'모드다.
음... 나만 바보된 것 같아서 괜히 화나는데?
근데, 좀 걸린다. 마지막에 안 변했다는 거는 무슨 말일까?
한창 현희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이 수신번호는... 정아언니네?
이보세요. 지금은 저녁밥 자실 시간이라고.
낮잠을 즐기는 게으른 성격도 아닌데 대체 왜 전화한 거야?

"여보세요, 정아 언니?"

-으응. 재윤이구나아.

발음이 좀 꼬이는데?

"언니, 술 마셨어?"

-으응. 조금. 정말 쪼오~금.

"조금 얼마나?"

-한 2,000cc 정도?

...불안해.

"맥주..겠지?"

-아아니. 이슬이. 헷.

"...미쳤군."

-헤에... 응. 그런 것 같아.

오늘 반응이 왜 이럴까.
진짜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지난 날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런 경우 십중팔구 나한테 안 좋은 일이 생기는데?

-재윤아아.

"응?"

-이번 주 일요일에 좀 보자아.

일요일이라면... 일단 잡혀 있는 스케쥴은 없다.
노처녀가 히스테리 부리며 자습하라고 학교에 부르지 않는 이상.

"알았어. 몇 시쯤?"

-3시에. 우리 집으로.

"음.. 귀찮은데. 가면 뭐 해줄건데?"

...끊겼다.
뭐야,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에이. 몰라. 언니 일은 일요일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은 당장 현희가 문제다.
...아무래도, 그냥 '평상시'처럼 대하는 게 좋겠지?
하아... 심란한데 잠이나 일찍 자자.
알람시계는... 재현이가 알아서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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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를 끝내고 집에 들어와서 컴퓨터를 켜면,

방대한 양의 방명록의 글들과,

업데이트 되어있는 소설의 양에 한동안 멍해집니다.

각설하고.. 다행스러운 건, 오늘부로 업데이트 되어 있는

소설들을 다 읽었다는 것..

하아, 힘들었다.. 이제 댓글을 달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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