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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루의 검이 시야에 잡힐 때부터 나의 바로 앞 까지 날아오는 것은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알아채지도 못한 채 받아야
만 했을 검의 잔상은 말 그대로 한줄기의 날카로운 바람. 폭풍을 베어놓을 것 같은 바람은 캐스터의 충고에 의해 ‘감응’으로 증폭된 시력이 아니었
다면 영문도 모른 채 날 이승에서 떠나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감응으로 몇 십, 몇 백배나 그 성능이 올라간 나의 감각기관들은 그 검의 주인이 발을
내딛을 때의 작은 움직임, 발이 땅을 디딜 때의 작은 떨림과 그 주변의 공기의 흐름을 감지해 낼 수 있었고, 그 것은 내가 요행히도 미리 몸을 숙여
검의 궤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내가 피할 수 있는 것은 처음부터 단 한번 뿐이었다. 10분 이상 ‘감응’을 사용하고 있던 나는 이 공격이 오기 전부터 긴장에 의해 온 몸
이 뻣뻣하게 굳어있을 정도로 무리를 하고 있었으며, 설혹 몸이 멀쩡했다고 하더라도 공격이 계속 올 경우 내 몸은 그 것을 피할 운동 능력을 지니
고 있지 않았다. 즉 ‘머리’에서 그 공격을 받아들이기는 하되 ‘몸’에서는 그 것을 피할 수 없다는 의미. 다시 말해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
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혼자였다면.

“예상대로군요.”

일격이 실패한 뒤 우리와의 거리를 벌린 서번트에게 캐스터는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검은 서번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검은 옷을 입
고, 검은 천으로 눈 아래를 가리고 있는, 틀림없이 어쌔신의 서번트일 그는 날카로운 검을 다시 들어올렸다. 그리고 발을 놀린다. 마치 그림자 속으
로 빨려들 듯이 길 옆의 가로수 뒤로 숨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캐스터는 손을 들어 그 행동을 저지했다. ‘파앗!’ 하는 소리와 함께 어쌔신의 바로
옆의 땅에서 불빛이 인다. 작은 폭발. 그 폭발에 잠시 움직임을 멈춘 어쌔신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미리 이 곳에 설치를 해 둔건가?”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듯한 어쌔신의 목소리는 놀랄 만큼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가느다란 느낌이 드는 목소리. 여성의 목소리라고 착각할 정도로 아
름다운 목소리가 아직 변성기도 지나지 않은 소년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신의 마스터와 저의 마스터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해 두었습니다. 분명 이 쯤에서 공격해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이 되어 말이죠.”

“대단하군. 내가 공격할 것을 미리 알고 준비를 해 두었다? 그 것도 내가 공격할 곳을 정확히 집어서? 예지 능력이라도 지니고 있는 것인가?”

어쌔신은 그렇게 물으며 검을 검집 안에 집어넣었다. 스르릉 하는 맑은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캐스터는 나와 어쌔신의 사이를 가로막으며 손을 들
었다. 그와 동시에 귀가 아파질 정도의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 더 이상 감응을 유지하고 있기 힘들었기에 주문을
해제한 나는 그 소리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어쌔신이 그 짧은 순간 내게 공격을 가해왔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비겁한.......”

“암살자에게 그런 말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어쌔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방금 들려온 목소리도 꽤나 멀리서 들려온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스터는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 사방을 둘러보며 어쌔신의 공격이 들어오는 순간을 잡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라진 건가?”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지만 캐스터는 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긴장의 강도를 높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어쌔신
이 아직 이 근처에 숨어있을 것이라 확신한 나는 다시 한 번 ‘감응’의 사용을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거의 바닥이 나 버린 마력을 박박 긁어모아 마
력회로에 쑤셔 넣는다.

[감응 개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마력회로에서 파생된 ‘마술’을 신체의 단 일점으로 보낸다. 전신으로 나뉠 감응의 마술은 오로지 양쪽의 귀로 향해 청
각을 증폭시켰다. 가볍게 바람이 이는 소리에 고막이 크게 진동한다. 그와 함께 내 등 뒤에 땀이 흘러내리며 그 곳의 솜털들을 스치는 소리가 들려온
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이 것이 아니다. 더욱 더 정신을 집중해야한다. 이미 긁어모을 만큼 긁어모은 마력은 곧 있으면 바닥날 것이다. 그 전
에 찾아내야 한다.

어쌔신의 호흡 소리를.

하지만 정작 들려온 것은 호흡소리가 아니었다. 발걸음 소리. 마치 바닥을 딛지 않고, 그 위에 떠 있는 먼지를 딛고 걷는 것처럼 감응으로 증폭된
내 귀에도 잘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 그 발걸음 소리는 천천히, 하지만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발소
리의 주인이 노리는 것은!

“캐스터!”

스스로의 귀가 얼얼해 질 정도로 있는 힘껏 고함을 지른다. 그와 함께 어쌔신이 어둠을 찢으며 달려드는 소리. 방향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검은 그
림자가 이 쪽으로 오는 것을 어찌어찌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마침 캐스터가 바라보고 있던 곳은 어쌔신이 다가오는 방향의 반대편. 캐스터가 고개
를 돌리기도 전에 어쌔신은 거리를 좁혀왔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검을 밀어넣었다.



순식간에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캐스터의 목을 관통해 나온 어쌔신의 검에는 그녀의 것이 분명한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캐스터의 목 뒤를
찢으며 검이 삐져나올 때, 튄 몇 방울의 피가 한쪽 눈 안에 들어갔는지 눈이 쓰라려오기 시작했다.

“아.......”

말할 자유조차 없는 그녀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이미 ‘말’ 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앞을 볼 수는 없었겠지만 이미 그녀의 입 안에는 붉은
선혈이 가득 차 있으리라. 어쌔신은 ‘칫’ 하는 소리와 함께 내가 무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손목을 비틀었다.

무언가 듣기 싫은 소리가 들려왔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일까? 아니면 살점이 뭉개지는 소리일까? 캐스터의 목에 꽂혀있던 검이 90도로 회전하면서
그녀의 목에 커다란 구멍을 내버렸다. 그와 동시에 검으로 막혀있던 그녀의 목에서는 엄청난 양의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내 얼굴을, 가슴
을 물들이며 뿜어져 나오는 피에 나는 실신할 지경이었다.

죽었다. 그녀가 죽었다. ‘나’ 라는 어줍지 않은 마스터를 살리기 위해 몸을 던져 어쌔신의 검을 받아내었다. 본래 내 심장으로 향해야 했을 검은
그녀의 목에 꽂혀있었다. 그리고 그 검은 천천히 무너지는 캐스터의 목에서 뽑혀 다시 한 번 원래 노렸던 목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굳이 먹이를 두고 떠드는 취미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을 죽인 상대는 알아야겠지. 소개하마. 어쌔신의 서번트, 현복이라고 한다. 그럼.”

어쌔신은 다시 검을 들어올렸다. 붉은 피가 검날을 타고 흘러내린다. 캐스터의 피. 아마 몇 초 뒤에는 저 곳에 나의 피도 섞이게 될 것이다. 그 후
에 어쌔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검에 묻은 피를 닦고 유유히 사라지겠지. 무언가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도, 싸워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죽는다’는 것이 눈앞에 다가온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라고는 이를 물고 고통 없이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마치 며칠이 지난 듯한 느낌이 드는 몇 초 뒤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죽지 않았다. 이미 내 눈앞에 있던 어쌔신은 저만큼 뒤로 물러서 있었
다. 그리고 검을 든 채 조심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하아앗!”

흰 옷의 서번트는 커다란 기합과 함께 엄청난 양의 마력을 발산해 내었다. 마치 폭풍이 부는 듯한 마력의 소용돌이는 눈을 뜨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몸이 저만큼 뒤로 날려 보내질 것 같은 엄청난 마력은 주인의 제어 아래 곧 사그러 들었고, 그제서야 난 눈을 뜰 수 있었다.

“네 녀석! 무슨 수작이냐!”

어쌔신의 목소리는 확실히 그가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 어쌔신에게 내 눈앞에 있던 흰 옷의 서번트는 특별한 말을 건네지 않
은 채 손을 들어올릴 뿐이었다. 펄럭이는 커다란 오른쪽 소매 안에 엄청난 마력이 모여든다. 차갑기까지한 마력의 느낌에 절로 오한이 드는 것 같았
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힘은 적어도 텐 카운트 이상의 대마술. 무언가 중얼거렸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 것은 주문의 영창이라
고는 생각되지 않는 이상한 언어였다.

“치잇.”

어쌔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와 함께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어둠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져갔다. 그와 함께 주변을 메우고 있던 살기가
완전히 걷혀졌고, 해방되는 듯한 느낌에 나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어느새 다리에는 힘이 풀려버렸는지 난 완전히 주저앉은 채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
정시키기 위해 거세게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괜찮습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손을 뻗어왔다. 틀림없는 그녀다. 언제나와 같은 목소리. 언제나와 같은 무표정한 얼굴. 단지 바뀐 것이라면 군데군데 자
신의 피로 붉게 물든 그녀의 흰 옷이라는 것뿐. 나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일단은 접어두기로 하고 그녀의 손을 맞잡아 몸을 일으켰다. 그래. 일
단은 돌아가서 좀 쉬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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