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SERAPHIM. 제1서 - 아리아드네의 실
2003.12.27 21:20
*아리아드네 =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크레타의 왕 미노스의 딸로서, 미노타우르스를 없에려는 영웅 테세우스에게 실을주어 그가 미궁에서 탈출하는 길을 찾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
"그리고 난 정신을 잃었다..."
글은 이곳에서 멈춰져 있었다.
짖궂은 시간의 장난으로 인해 누렇게 빛이 바래버린 한장의 노트.
지금 나의 손에 들려있는 이 보잘것없는 물건이 나타내는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
바로 어제, 아버지의 기일인 어제 , 아버지의 이름앞으로 한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이미 13년 전 이 세상을 떠난 아버지.
그러니 그분은 나에게 있어 존재감이 너무도 부실한 인물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나로서는 궁금한 점이 많았고,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조개마냥 입을 다무시는 어머니 또한 이해하기 힘들 뿐 이였다.
어머니외에 혈연이라곤 아버지의 죽음과 동시에 행방불명이 되었다던 작은아버지 뿐인데, 그분에게 물을 수 있는 노릇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이유로, 늘 아버지에 대해 궁금해 하던 나로서는, 13년 전 이날에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에게 편지가 도착했다는 것이 나에게 커다란 호기심을 유발시킨 것 이다.
하지만 무슨 일기 비슷한 형식으로 씌여진 이 글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혹시 주소가 잘못 쓰여진 동명이인에게 보내는 편지?
아니, 그럴리는 없다.
아버지의 성함이 그리 흔한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아버지의 기일에 이런 편지가 도착했다는 사실부터가 석연찮다.
짖궂은 누군가 보낸 장난의 편지?
아니.. 여태껏 살아오며 아버지의 친구라 칭하는 자는 단 한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우리 아버지의 성함을 알고 있는 자는 없었으며, 다른사람 아버지의 기일에 장난으로 이런 편지를 보내올 만한 인간은 성격이 삐뚤어져도 여간 삐뚤어지지 않으면 안될 것 이리라.
무엇보다 놀라운것은, 이 편지에는 발신인의 정보따윈 전혀 없다는 사실이였다.
봉투에 나란히 써 있던 것은 우리 아버지의 성함과 이곳의 주소.
하지만 도저히 그래서는 배달이 안될탠데..
우선 기분나쁜 마음을 가다듬고 구깃구깃한 종이를 다시 펼쳐들었다.
차분히 가라앉히고 다시 천천히 읽어보면 무언가 나올수도..
편지의 첫 단어가..
"세라핌..."
편지의 가장 위에 Seraphim 이라 영어로 적혀 있고, 그 두줄밑에 세라핌 이라고 한글로 적혀있었다.
세라핌.. 세라핌이라..
세라핌이라 하면.. 떠오르는 것이..
음.. 그것은 바로 성스러운 천사의 존칭이 아니였던가.
기독교에서 흔히 말하는, 빛나는 세쌍의 날개를 지녔다고 하는 성스런 존재.
중세시대 기독교의 아홉 천사중 첫째,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던 그 인간의 모습을 한 천사.
그러나.. 잠깐만.
나의 기억이 맞다면 분명히 그것의 이름은 세라프(seraph)
세라핌(seraphim)은 다름아닌 세라프의 복수형이 아니던가.
히브리어로 '타오르는 자들'...
음..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들다..
아무래도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있어야 하는데..
이래선 신학전공인 나의 채면이 말이 아니군.
다시 그 쪽지를 펴들었다.
오 최후의 성스런 천사여..
어쩌구 저쩌구... 용서하소서..
... 그대의 성스런 혈액을..
... 양도 하라니.. 이거 원..
무슨 3류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도 들고..
괜히 사람 기분을 더럽게 하는 종류의 글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 내용은 마치 신문의 기사처럼, 미궁에 싸인 하나의 살인 사건을 대강 설명하고 있는 듯 했다.
붉은 글씨로 쓰여졌다는 의미불명의 글은 아마도 저것을 가르키는 것인 듯.
이 사건의 발생 후 7개월이 흐르고 범인이 잡혔으며, 또 다시 7개월 후 그자는 이 글을 쓴 것인가.
하지만 어째서 완성도 되지않은 이런 글따위를 아버지의 이름앞에 보내온 것인가.
무슨 깊은 사연이라도..
누런 빛을 띄고있는 그 의문의 편지를 들고 탁자 스탠드 가까이 비추어 보았다.
스탠드에서 쏟아져나오는 강렬한 빛이 낡은 편지를 뚫고 나가듯 쬐었다.
아무것도 없다..
탐정소설 따위에서 자주 등장하던 "글 속에 숨겨진 암호"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뭐.. 무슨 용액따위를 종이위에 풀어 확실한 조사를해 볼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 편지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 편지의 내용이 너무도 강렬... 하기에...
기분나쁨.. 역겨움.. 구토.. 끔찍.. 핏빛.. 어두움.. 그리고 성스러움.. 신비스러움.
어찌보아서는 그저 한 미친놈의 농간으로 보여질 수도 있는 단어들..
그러나 그 단어들이 이 글에서 가지런히 정리되어 그 비밀스런 침묵속으로 나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무언가 나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호기심.
도저히 참고는 못 배길 듯한 갈증이 나를 휩싸버렸다.
나조차도 어찌 할 수 없을정도의 힘으로..
난 알아야만 했다. 그 편지의 정체를.
그날따라 어머니는 다른날보다 늦게 돌아오셨다.
피곤하신 몸으로 안방을 향하던 어머님의 표정이 나를 발견하고 미소지었다.
감정이 없는 미소. 허공뿐인 미소.
평상시엔 그렇게나 인자하신 분의 미소가 그날따라 왜이리 어색해 보인건지.
"출출하니? 뭐라도 만들어 주리?"
"...아니오 어머니, 잠시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서요.."
"이시간까지 뭔데 그러니?"
지치신 듯한 몸을 부엌으로 옮기며 어머니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분이 왜이리 더 피곤해 보이신건지.
이미 50대에 가깝다고는 믿기 힘들정도의 젊음을 지닌 어머니지만, 역시 나이는 속일 수 없었던걸까.
지치고 힘이드신 어머니에게 이런걸 캐묻고 싶진않지만, 진실을 찾아 해매이는 나의 갈증은 이미 너무도 커져있었다.
"너, 혹시 또 돈예기는 아니겠지?"
"아니.. 그딴건 아니니까요"
왜 그런식의 불량한 말투가 내 입에서 나왔는지는 나도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나는 무언가에 홀려있었다.
싱크대에 쌓여있는 설거지가 서로 부대끼며 달그닥 거리는 소리가 듣기에 매우 거슬렸다.
"그럼 도대체 뭐길래 그래?"
"..."
잠시 입이 열리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주저한 것일까...
"... Green Night 이라고 아세요?"
우선은 그 편지에 적혀있던 클럽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당연히 그 편지에 관련된 이야기를 직접하는 것은 피해야겠지.
아버지와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일이라면 갑자기 입을 다무시는 성격이니, 역시 입을 조심해야 했다.
"그린.. 뭐라고? 그린 나이트?"
"예... 그린 나이트요"
"그게 뭔데? 요즘 유행하는 가수 이름이냐?"
"아.. 아닙니다"
제길.. 헛짚은건가..
어머니의 표정을 살펴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듯 싶진 않았다.
그럼 조금만 더 해보자...
이런 클럽의 이름따윈 그다지 중요한듯 싶지도 않았으니 말야..
"그럼 어머니, 혹시 이 단어의 뜻을 아시나요?"
"뭔데, 말해보렴"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제길.. 나까지 왜이리 불안한거냐
"... 세라... 핌"
"...!"
잠시동안 이지만 어머니의 몸이 경직되었음을 난 느낄 수 있었다.
싱크대 안에서 부딪치던 사기그릇들의 짧은 울음도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 그.. 그야 잘 알지.. 그.. 저기..
그.. 성경에 나오는 천사 이름 아니니.. 그거 말야.."
둘러댄다고 둘러대신 듯 하지만 저정도면 거의 자백이나 다름 없었다.
그래.. 어쩌면 어머니로부터 알아 낼 수 있을 듯 하다, 이 편지의 뜻을.
대충 조금 더 찔러보고 어머니의 반응을 보자.
"아니.. 그게 아니고.. 어머니도 잘 아시잖습니까.."
"... 뭐.. 뭘 말이니?"
"... 바로 아버지의..."
- 쨍끄랑!
바닥위에 퍼지는 유리파편.
그리고 어머니는 형언할 수 없을정도로 공포에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아.. 아.. 너.. 너.. 편지를.."
어머니의 겁에질려 반쯤 다물어저 있는 입술로 흘러나오는 바람소리..
허나 그것도 잠시, 갑자기 눈 깜짝할 사이에 빠른 두쌍의 발이 잘개 부셔저버린 유리를 밟아 건너 어머니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바로 그 뒤를 적시는 붉은 물감.
쾅 소리와 함께 어머니의 방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퍼득 정신이 들었다.
아..안돼! 겨우 이 사건의 실마리를 잡은 듯 한데, 지금 놓쳐버리면 안된다.
이 기세를 몰아 계속해서 질문을..
굳게 닫혀져있는 어머니의 방을 향해 달렸다.
잠깐만..
이 사건의 실마리라니..
실마리..
사건의 실마리 말인가?
그 편지속의 끔찍한 사건의 실마리?
그걸 알아서 난 도대체 어쩔셈이었지?
이.. 이딴 기분나쁜 사건의 실마리를 알아서..
부엌마루에 붉게 물들어있는 유리파편이 아름답게 빛났다.
이 편지의 내용이 아버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몰라도, 지금 어머니의 저 행동은 뭐였지..
나.. 난 왜 그런걸 물어본거지..
정말 이 기분나쁜 살인사건과 아버지와 관련이 있음을 밝혀낸다?
저.. 절대로 그러고 싶진 않다.
.... 피
속이 메스꺼워 구토가 나오려 한다.
이 편지가 지닌 현실감이 갑자기 나를 흔들어 깨웠다.
어머니의 문 앞에서 나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래.. 어찌보면
이 편지는 무엇이지..
왜.. 내가.. 왜.. 어머니가..
...
하지만 아직도 나의 머리에선 어머니의 그 표정이 떠나지 않았다.
여지껏 한번도 본 적 없었던만큼의 공포.
도대체 그것은 무엇일까..
이.. 갑자기 일어난 이 상황은..
이런 나의 갑작스런 광기서린 행동은.. 어머니의 공포에질린 반응은..
우선 어머니의 방문을 두들겼다.
"어... 어머니... 나... 나오세요"
"..."
"유... 유리를 그렇게 밟으시면 어떻해요, 빨리 병원에라도 가야죠. 네?"
"... 세라핌... 이야"
"예?"
한순간 당황했다.
지금 뭐라고 하신거지?
"어..어머니! 이상한 소리 마시고 빨리 문 열어요!"
"... 아니, 어미는 괜찮다. 어서 나가봐.."
"예? 무슨.."
"... 문 밖에 손님이 와 계시잖니.."
"예... 예? 도대체 그게 무슨..."
-딩동
나의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울린 초인종..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는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 어머니! 저... 저건 누구예요? 네? 누구죠?
이... 이시간에 누가 온단 말이예요!
어머니! 예? 어머니! 제발 대답좀 해 보세요!"
그러나 돌아온것은 침묵 뿐.
"어..어머니.. 대.. 대답좀 하세요!"
하지만 침묵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나를 덮친 알수없는 불안감.
끔찍한 공포가 나를 뒤덮음과 함께 알수없는 위화감이 내 주위를 둘러쌌다.
모든것이 다르다... 무언가 이상하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문 열어 주시지 않았지요?"
나의 뒤에서 들려온 차분한 목소리.
나는 놀라 펄쩍 뛰며 뒤를 돌아보았다.
"..."
나를 마주하고 서 있는 사람은 검은 옷을입은 여자.
무서우리만큼 창백한 얼굴에서 빛나고있는 차가운 금빛의 눈동자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한번도... 나로서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여자였다.
"...... 누..... 누구.... 시죠..."
그러나 그 말을하며 다시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 대문은 아직 잠귀어저 있었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난 정신을 잃었다..."
글은 이곳에서 멈춰져 있었다.
짖궂은 시간의 장난으로 인해 누렇게 빛이 바래버린 한장의 노트.
지금 나의 손에 들려있는 이 보잘것없는 물건이 나타내는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
바로 어제, 아버지의 기일인 어제 , 아버지의 이름앞으로 한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이미 13년 전 이 세상을 떠난 아버지.
그러니 그분은 나에게 있어 존재감이 너무도 부실한 인물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나로서는 궁금한 점이 많았고,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조개마냥 입을 다무시는 어머니 또한 이해하기 힘들 뿐 이였다.
어머니외에 혈연이라곤 아버지의 죽음과 동시에 행방불명이 되었다던 작은아버지 뿐인데, 그분에게 물을 수 있는 노릇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이유로, 늘 아버지에 대해 궁금해 하던 나로서는, 13년 전 이날에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에게 편지가 도착했다는 것이 나에게 커다란 호기심을 유발시킨 것 이다.
하지만 무슨 일기 비슷한 형식으로 씌여진 이 글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혹시 주소가 잘못 쓰여진 동명이인에게 보내는 편지?
아니, 그럴리는 없다.
아버지의 성함이 그리 흔한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아버지의 기일에 이런 편지가 도착했다는 사실부터가 석연찮다.
짖궂은 누군가 보낸 장난의 편지?
아니.. 여태껏 살아오며 아버지의 친구라 칭하는 자는 단 한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우리 아버지의 성함을 알고 있는 자는 없었으며, 다른사람 아버지의 기일에 장난으로 이런 편지를 보내올 만한 인간은 성격이 삐뚤어져도 여간 삐뚤어지지 않으면 안될 것 이리라.
무엇보다 놀라운것은, 이 편지에는 발신인의 정보따윈 전혀 없다는 사실이였다.
봉투에 나란히 써 있던 것은 우리 아버지의 성함과 이곳의 주소.
하지만 도저히 그래서는 배달이 안될탠데..
우선 기분나쁜 마음을 가다듬고 구깃구깃한 종이를 다시 펼쳐들었다.
차분히 가라앉히고 다시 천천히 읽어보면 무언가 나올수도..
편지의 첫 단어가..
"세라핌..."
편지의 가장 위에 Seraphim 이라 영어로 적혀 있고, 그 두줄밑에 세라핌 이라고 한글로 적혀있었다.
세라핌.. 세라핌이라..
세라핌이라 하면.. 떠오르는 것이..
음.. 그것은 바로 성스러운 천사의 존칭이 아니였던가.
기독교에서 흔히 말하는, 빛나는 세쌍의 날개를 지녔다고 하는 성스런 존재.
중세시대 기독교의 아홉 천사중 첫째,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던 그 인간의 모습을 한 천사.
그러나.. 잠깐만.
나의 기억이 맞다면 분명히 그것의 이름은 세라프(seraph)
세라핌(seraphim)은 다름아닌 세라프의 복수형이 아니던가.
히브리어로 '타오르는 자들'...
음..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들다..
아무래도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있어야 하는데..
이래선 신학전공인 나의 채면이 말이 아니군.
다시 그 쪽지를 펴들었다.
오 최후의 성스런 천사여..
어쩌구 저쩌구... 용서하소서..
... 그대의 성스런 혈액을..
... 양도 하라니.. 이거 원..
무슨 3류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도 들고..
괜히 사람 기분을 더럽게 하는 종류의 글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 내용은 마치 신문의 기사처럼, 미궁에 싸인 하나의 살인 사건을 대강 설명하고 있는 듯 했다.
붉은 글씨로 쓰여졌다는 의미불명의 글은 아마도 저것을 가르키는 것인 듯.
이 사건의 발생 후 7개월이 흐르고 범인이 잡혔으며, 또 다시 7개월 후 그자는 이 글을 쓴 것인가.
하지만 어째서 완성도 되지않은 이런 글따위를 아버지의 이름앞에 보내온 것인가.
무슨 깊은 사연이라도..
누런 빛을 띄고있는 그 의문의 편지를 들고 탁자 스탠드 가까이 비추어 보았다.
스탠드에서 쏟아져나오는 강렬한 빛이 낡은 편지를 뚫고 나가듯 쬐었다.
아무것도 없다..
탐정소설 따위에서 자주 등장하던 "글 속에 숨겨진 암호"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뭐.. 무슨 용액따위를 종이위에 풀어 확실한 조사를해 볼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 편지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 편지의 내용이 너무도 강렬... 하기에...
기분나쁨.. 역겨움.. 구토.. 끔찍.. 핏빛.. 어두움.. 그리고 성스러움.. 신비스러움.
어찌보아서는 그저 한 미친놈의 농간으로 보여질 수도 있는 단어들..
그러나 그 단어들이 이 글에서 가지런히 정리되어 그 비밀스런 침묵속으로 나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무언가 나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호기심.
도저히 참고는 못 배길 듯한 갈증이 나를 휩싸버렸다.
나조차도 어찌 할 수 없을정도의 힘으로..
난 알아야만 했다. 그 편지의 정체를.
그날따라 어머니는 다른날보다 늦게 돌아오셨다.
피곤하신 몸으로 안방을 향하던 어머님의 표정이 나를 발견하고 미소지었다.
감정이 없는 미소. 허공뿐인 미소.
평상시엔 그렇게나 인자하신 분의 미소가 그날따라 왜이리 어색해 보인건지.
"출출하니? 뭐라도 만들어 주리?"
"...아니오 어머니, 잠시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서요.."
"이시간까지 뭔데 그러니?"
지치신 듯한 몸을 부엌으로 옮기며 어머니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분이 왜이리 더 피곤해 보이신건지.
이미 50대에 가깝다고는 믿기 힘들정도의 젊음을 지닌 어머니지만, 역시 나이는 속일 수 없었던걸까.
지치고 힘이드신 어머니에게 이런걸 캐묻고 싶진않지만, 진실을 찾아 해매이는 나의 갈증은 이미 너무도 커져있었다.
"너, 혹시 또 돈예기는 아니겠지?"
"아니.. 그딴건 아니니까요"
왜 그런식의 불량한 말투가 내 입에서 나왔는지는 나도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나는 무언가에 홀려있었다.
싱크대에 쌓여있는 설거지가 서로 부대끼며 달그닥 거리는 소리가 듣기에 매우 거슬렸다.
"그럼 도대체 뭐길래 그래?"
"..."
잠시 입이 열리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주저한 것일까...
"... Green Night 이라고 아세요?"
우선은 그 편지에 적혀있던 클럽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당연히 그 편지에 관련된 이야기를 직접하는 것은 피해야겠지.
아버지와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일이라면 갑자기 입을 다무시는 성격이니, 역시 입을 조심해야 했다.
"그린.. 뭐라고? 그린 나이트?"
"예... 그린 나이트요"
"그게 뭔데? 요즘 유행하는 가수 이름이냐?"
"아.. 아닙니다"
제길.. 헛짚은건가..
어머니의 표정을 살펴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듯 싶진 않았다.
그럼 조금만 더 해보자...
이런 클럽의 이름따윈 그다지 중요한듯 싶지도 않았으니 말야..
"그럼 어머니, 혹시 이 단어의 뜻을 아시나요?"
"뭔데, 말해보렴"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제길.. 나까지 왜이리 불안한거냐
"... 세라... 핌"
"...!"
잠시동안 이지만 어머니의 몸이 경직되었음을 난 느낄 수 있었다.
싱크대 안에서 부딪치던 사기그릇들의 짧은 울음도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 그.. 그야 잘 알지.. 그.. 저기..
그.. 성경에 나오는 천사 이름 아니니.. 그거 말야.."
둘러댄다고 둘러대신 듯 하지만 저정도면 거의 자백이나 다름 없었다.
그래.. 어쩌면 어머니로부터 알아 낼 수 있을 듯 하다, 이 편지의 뜻을.
대충 조금 더 찔러보고 어머니의 반응을 보자.
"아니.. 그게 아니고.. 어머니도 잘 아시잖습니까.."
"... 뭐.. 뭘 말이니?"
"... 바로 아버지의..."
- 쨍끄랑!
바닥위에 퍼지는 유리파편.
그리고 어머니는 형언할 수 없을정도로 공포에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아.. 아.. 너.. 너.. 편지를.."
어머니의 겁에질려 반쯤 다물어저 있는 입술로 흘러나오는 바람소리..
허나 그것도 잠시, 갑자기 눈 깜짝할 사이에 빠른 두쌍의 발이 잘개 부셔저버린 유리를 밟아 건너 어머니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바로 그 뒤를 적시는 붉은 물감.
쾅 소리와 함께 어머니의 방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퍼득 정신이 들었다.
아..안돼! 겨우 이 사건의 실마리를 잡은 듯 한데, 지금 놓쳐버리면 안된다.
이 기세를 몰아 계속해서 질문을..
굳게 닫혀져있는 어머니의 방을 향해 달렸다.
잠깐만..
이 사건의 실마리라니..
실마리..
사건의 실마리 말인가?
그 편지속의 끔찍한 사건의 실마리?
그걸 알아서 난 도대체 어쩔셈이었지?
이.. 이딴 기분나쁜 사건의 실마리를 알아서..
부엌마루에 붉게 물들어있는 유리파편이 아름답게 빛났다.
이 편지의 내용이 아버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몰라도, 지금 어머니의 저 행동은 뭐였지..
나.. 난 왜 그런걸 물어본거지..
정말 이 기분나쁜 살인사건과 아버지와 관련이 있음을 밝혀낸다?
저.. 절대로 그러고 싶진 않다.
.... 피
속이 메스꺼워 구토가 나오려 한다.
이 편지가 지닌 현실감이 갑자기 나를 흔들어 깨웠다.
어머니의 문 앞에서 나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래.. 어찌보면
이 편지는 무엇이지..
왜.. 내가.. 왜.. 어머니가..
...
하지만 아직도 나의 머리에선 어머니의 그 표정이 떠나지 않았다.
여지껏 한번도 본 적 없었던만큼의 공포.
도대체 그것은 무엇일까..
이.. 갑자기 일어난 이 상황은..
이런 나의 갑작스런 광기서린 행동은.. 어머니의 공포에질린 반응은..
우선 어머니의 방문을 두들겼다.
"어... 어머니... 나... 나오세요"
"..."
"유... 유리를 그렇게 밟으시면 어떻해요, 빨리 병원에라도 가야죠. 네?"
"... 세라핌... 이야"
"예?"
한순간 당황했다.
지금 뭐라고 하신거지?
"어..어머니! 이상한 소리 마시고 빨리 문 열어요!"
"... 아니, 어미는 괜찮다. 어서 나가봐.."
"예? 무슨.."
"... 문 밖에 손님이 와 계시잖니.."
"예... 예? 도대체 그게 무슨..."
-딩동
나의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울린 초인종..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는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 어머니! 저... 저건 누구예요? 네? 누구죠?
이... 이시간에 누가 온단 말이예요!
어머니! 예? 어머니! 제발 대답좀 해 보세요!"
그러나 돌아온것은 침묵 뿐.
"어..어머니.. 대.. 대답좀 하세요!"
하지만 침묵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나를 덮친 알수없는 불안감.
끔찍한 공포가 나를 뒤덮음과 함께 알수없는 위화감이 내 주위를 둘러쌌다.
모든것이 다르다... 무언가 이상하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문 열어 주시지 않았지요?"
나의 뒤에서 들려온 차분한 목소리.
나는 놀라 펄쩍 뛰며 뒤를 돌아보았다.
"..."
나를 마주하고 서 있는 사람은 검은 옷을입은 여자.
무서우리만큼 창백한 얼굴에서 빛나고있는 차가운 금빛의 눈동자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한번도... 나로서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여자였다.
"...... 누..... 누구.... 시죠..."
그러나 그 말을하며 다시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 대문은 아직 잠귀어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 보았습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천사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해 봅니다.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