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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스크롤 압박의 예감.
리뉴얼의 장점인 연재속도의 베리 패스트.
그 기세에 줄창 쓰다보니 생각보다 양이 많아졌습니다. 왠지 모르게 다듬을 생각은 전혀 하지도 못하고 대충 훑어봐도 큰 문제거리는 없어뵈기에 그대로 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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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화 그대의 붉은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언니, 언니, 그건 제가 할게요."

"어머. 이거 미안하네... 오늘 막 왔는데 바로 이런 걸 시켜서..."

"괜찮아요~ 제가요~ 맛~ 나는 걸 만들어 드릴게요오~"

...이런 식으로 두 여자는 지들 멋대로 신났다.
나? 나는 내 방에 틀어박혀서 내가 아직도 개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닌가 여전히 고민때리는 중이다.
기억조작의 마법에 의해 아무런 의심없이 르 시아, 아니 류 수아라는 인간을 새로운 가족의 일원으로 인식해버린 나의 존경스러운 누이, 무도인 이 선희씨는 그저 행복하기 그지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그도 그렇지. 맨날 입버릇처럼 날보고 니가 여동생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니.
여동생 같은게 튀어나왔으니 얼마나 좋겠어.
덕분에 존경스러운 누이의 안그래도 좁은 메모리 뱅크에서 나의 존재감은 더욱 흐려졌다.
특별히 할 일도 없이 눅눅한 침대위에 누워 뒹굴뒹굴거려 보았지만, 괜스레 짜증만 더할 뿐이었다.
...그래! 나가자! 밝은 태양의 빛이 날 기다린다!
......기다릴리가 없군.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소나기다. 어제보다 비는 더 그 기세를 키워 어느새 소나기로 변해 있었다.
......젠장맞을 것. 그냥 자빠져 있자.
그러나 그런 나의 소박한 희망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벌컥!

노크도 없이 나의 생츄어리(성역. 즉 내 방.)에 침범해 온 저 극악무도한 이교도 르 시아, 아니 류 수아는 침대위에서 구르는 내 곁에 다가와서는 내 몸을 흔들었다.

"광현 오빠야~ 일어나~ 밥먹자~"

만면에 띄운 미소. 남이 보면 틀림없이 귀엽다고 하겠지.
하지만. 나는 다르다. 왜냐? 이유는 간단하다. 찜찜하니까.
누이의 기억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꾼 녀석이다. 내 기억도 분명 네 녀석의 형편에 따라 멋대로 조작하는건 식은죽 먹기겠지!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뚱한 표정으로 답했다.

"싫어."

그러나 녀석은 웃는 얼굴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보았다. 녀석의 웃는 얼굴 저편으로 보이는, 저 살기를.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 이마에 한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가볍게 외쳤다.

"마나 쇼크!"

"후꺅!!!!!"

그렇게 나는 품위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비명을 지르고는 침대위에 힘없이 늘어졌다.
그것을 내려보며 녀석은 말했다.

"자아... 인나야지~?"

"으... 네..."

나는 곧 녀석에게 이끌려 후들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겨우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에 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제대로 된 아침식사다...!
적어도 새카맣게 탄 생선구이 같은게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이건 틀림없이 제대로 된 아침식사다!
하지만... 이걸 만든 사람은 틀림없이 이 녀석이다.
뭘 탔을지 모르겠...지만.
안 먹는다고 했다간 아까의 그 마나 쇼크인지 뭔가에 또 당할지도 모른다.
얌전히 먹자.
조심스럽게 잘 구워진 함박 스테이크 조각을 입으로 옮겨본다.
모양새 만큼은 정식 레스토랑에 내 놓아도 손색은 없겠다.
그리고 입안에 들어간 그것을 씹어본다.
...................................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무도인 이선희 씨와 그 동생 이광현이 식사시에 아무말 없이 식사에 열중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오로지 식기가 가끔 달각 달각 하는 소리를 제외하곤 기분나쁘리만치 조용한 아침식사였다.
식탁 위에 먹을 수 있는 것이 모두 없어지고나서야 누나와 나는 입을 열었다.

"...맛있다."

속까지 까맣게 탄 생선구이와는 다르다! 정말로 맛있다!
일류 요리사가 만든 요리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 그에 손색없을 만큼 맛있다!
어쩌면 그저 내 누이의 요리가 지나치게 맛 없어서 상대적으로 수아 녀석이 만든 요리가 맛있게 느껴진 것인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맛있는 아침식사는 10년전 그 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리고 녀석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띄운채 자, 어떠냐~ 라는 듯 웃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가볍게 무시하고 식기들을 한데 모아 싱크대로 향했다.
언제나 그랬듯, 설거지 당번은 나였으니까.
그리고 누나는 도장에 나갈 준비를 한다.
오늘도 어딘가의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온다고 했다. 정말로 인정하긴 싫지만, 누나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무도가다. 이미 여성 무도가로서 누나의 상대가 되는 자는 단 한명도 없으며, 남자 무도가들도 가볍게 누르는 실력의 소유자가 바로 이 존경스러운 나의 누이, 무도가 이선희씨다. 일부 여성 잡지에서는 여성의 자존심, 이선희. 라는 싸구려틱한 타이틀명으로 집으로 취재하러 온적이 있다.
나는 그저 잔뜩 굳은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일 뿐, 별다른 코멘트는 하지 않았다.
아무튼 누나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멋진 여성]이다. 눈이 하나 없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무도가로서 정점에 올라서려 하는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멋져 보일 것인가.
그녀의 열광적인 팬들도 있다고는 하지만, 나는 우선 그들에게 나의 존경스러운 누이가 만든 요리를 한번 먹여주고 싶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다. 꿈 깨라고.
이런저런 잡념에 빠져 설거지를 하는 내 등뒤로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광현아. 나 갔다올게~"

그런 누나에게 눈길도 안주고 닦고 있는 그릇에 집중하며 답한다.

"예이~ 다녀오슈~"

철컥. 탕.

현관의 철제문의 육중한 소리와 함께 누나가 나가는 것과 동시에 부엌 식탁의 의자에 기대어 앉아 내가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던 수아 녀석이 입을 열었다.

"자아... 그거 끝나거든 레슨이 있으니까. 마음의 준비를 해."

"하아?"

레슨? 뭔 소리야?
그릇을 닦던 손길을 멈추고 뒤 돌아본 내게 그녀는 재차 설명했다.

"마법 말야~ 마법 가르쳐주기로 했잖아~ 광현 오빠. 그런 중요한건 잘 기억해 둬야지~"

아아. 그러고보니 그런 조건으로 우리집에 살게 해줬던가.
어차피 이것만 닦으면 끝이니 바로 시작해도 별 상관 없겠지.
주책없이도 마법을 배울수 있다는 생각에 약간 들뜬 나는 그릇을 대충 닦고는 설거지를 마쳤다.
그러자 수아는 의자에서 일어나서는 거실쪽으로 걸어나가 커튼을 쳤다.

"커튼은 왜?"

그런 내 질문에 수아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마법 쓰는 광경을 건너편 주민이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어? 당장에 경찰이 올걸. 그리고 우선 마나가 안 새어나가게 결계도 쳐야되니까. 결계 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무슨 사이비 종교 집단이 의식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보일걸."

그야 그렇군.
왠지 모르게 납득하는 내게 수아는 설명을 추가했다.

"결계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공간 대체 결계, 마나 차단 결계, 속박 결계 등등이 있어. 지금 할것은 마나 차단 결계. 이걸 안하고 마법을 발동 시켰다간 [추적자]들이 대번에 알아채고 여기로 들어닥칠걸. 마나 쇼크 같은 경우에는 마나를 직접 대상에 주입하는 경우라 마나의 누출이 없으니 상관 없지만서도."

그건 싫다. 아까도 말했듯이, 나의 생츄어리에 침범해 오는 사악한 이교도는 이 녀석 하나로도 족해!
내 약간은 적개감이 실린 시선에 전혀 눈치 채지 못한채, 그녀는 거실의 네 귀퉁이에 한번씩 손을 짚었다.그리고는 그 중앙에 서서는 두 손을 모았다.
집중. 그렇게 잠시간을 미동도 않고 가만히 서 있던 수아가 이윽고 두 손을 풀었다.
...과연. 남이 보면 무슨 사이비 종교 의식 하는 것 처럼 보일법도 해.
그런데 특별히 아무런 변화도 없는데? 결계를 치긴 친건가?

"자, 그러면 [눈]을 열어서 마나를 봐봐."

눈을 연다? 아. 마나를 보는거군.
온통 붉은색으로 물드는 시야속에서 나는 괴이한 것을 발견했다. 뭔가 짙은 붉은 빛의 막 같은 것이 거실을 둘러싸고 있었다.
마나의 막인가? 하지만 이건 오히려 마나를 볼수 있는 [추적자]가 보면 딱 눈에 띄지 않나?
그런 내 마음을 읽은 듯, 수아는 설명했다.

"아마도 마나로 이루어진 막이 보일텐데, 저 막은 이 안쪽에서만 보여. 결계라고는 해도 이 마나 차단 결계는 마나 차단 뿐만이 아니라, 위장의 역할도 해. 밖에서 보면, 지금 이 결계 안의 마나의 형태는 아무도 없는 보통의 거실로 보일거야. 아까 내가 기억해 뒀던걸 이미지한거거든."

...어렵다. 무슨 소린지 솔직히 모르겠다.

"......간단히 말해서 머릿속에 그린거로 위장시킨다는건가?"

그런 내 질문에 수아는 씩 웃으며 말했다.

"바로 그거. 마법의 기본 원리. 이미지. 상상이 바로 마법의 원동력. 마나라는건 기본적으로 의지야. 그리고 그 의지의 구현. 그게 마법이고. 오늘 오빠한테 가르쳐 줄건, 마법의 구동 원리와 평소 마나의 방출을 일반인 수준으로 억제하는 법."

흠. 과연. 예를 들어 내가 불을 상상하고 그것이 여기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

"으악!! 이게 뭐야!"

순간 내 바로 앞에 조그마한 불 덩어리가 나타났다가 곧 픽 꺼져버렸다.
그것을 본 수아 녀석이 놀랍다는 표정을 하고는 말했다.

"오오~ 쫌 하네. 자세히 안 가르쳐줘도 잘 하네. 단순히 마나 회로를 열은것 만으로도 이 정도라니. 대마법사의 소질이 있는걸? 광현 오빠는."

칭찬 들어도 그다지 기쁘지 않은건 왜일까.
아마도 떫떠름한 표정을 하고 있을 내게 수아는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그러고보니 이쪽 세계 사람들은 마나 회로자체가 거의 없더라? 강제로 열 마나 회로 조차도 없어. 그런 의미에서 광현 오빠는 이쪽 세계 사람하고는 꽤나 동떨어진 인간인데? 대충 봐도 우리쪽 세계의 마법사들의 5배 이상의 마나 회로를 가지고 있어. 우연이라도 날 불러낸것도 아주 가능성 없는 얘기는 아닌 것 같아. 아, 그 이전에 오빠. 정말로 인간 맞아?"

이게 밥 잘 먹고 무슨 헛소리래.

"당연히 인간이지. 괴물로 보이냐?"

"응."

...패주고 싶다. 지금 맹렬하게 패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딱!

그 순간, 경쾌한 소리와 함께 수아녀석이 머리를 감싸잡고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 박자에 나도 놀라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무척이나 아픈듯 낮은 신음소리를 흘리고 있다.

"아으으으으..."

얼레? 잠깐. 난 아니야.
실제로 내 손은 꼼짝도 안했고, 무엇보다도 저 녀석과 나 사이의 거리는 무려 3m나 된다고.
내 팔이 아무리 길어도 3m 밖에 있는 녀석의 머리통을 쥐어박을 수는 없다고.
서... 설마... 마법이 발동되서 저 녀석의 머리통을 쥐어박은건가? 그런거야?
그렇게 머리를 감싸잡고 있던 수아가 조금씩 얼굴을 들어올렸다.
살의. 아니. 저건 투지에 가득찬 눈이다.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는 흘러나오는 살의. 아니, 투지에 가득찬 목소리.

"어쭈우... 해보겠다는 거야? 제법 아프...은데?"

성큼성큼 다가오는 악마가 내 앞에 한마리.
그리고 그녀는 무언으로 내 이마에 그 작은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마나쇼크. 마나쇼크마나쇼크마나쇼크마나쇼크마나쇼크..........................."

떵! 땡! 땡! 땡! 깡! 땡! 깡...!

수없이 울려퍼지는 종소리와 함께 밀려오는 엄청난 고통.

"후꺅!!!!!!"

그 이후 내가 원상태로 회복하는데는 30분이라는 장장한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은 이 쯤에서 용서해주겠어."

벌써 할만큼 다 해놓은 주제에...
그 증거로 네 녀석의 표정! 그, 아~ 속 시원하다~ 라는 표정은 대체 뭐야!
으으... 머릿속에서 아직도 그 종소리가 울리는 듯 하다.
아... 그러고보니 이 녀석. 마나 쇼크를 쓸때만 마법 이름을 입에 담았었지. 왜지?

"잠깐. 다른 마법은 아무말 없이 하면서 마나 쇼크만 직접 부르는 이유는 뭐야?"

그 질문에 수아는 너무 당연하다는걸 묻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야 가장 자주 쓰는 마법이니까 말이랑 이미지를 연결시켜서 언제든지 쓸 수 있게 해놓은거지."

"......................................"

가장... 자주 쓴다......?
......이 녀석의 본성이 왠지 모르게 짐작이 가려고 한다.
이미지와 말을 연결 시킨다? [불]하면 뜨겁다가 연상되듯 그런식으로 연결하면 되는건가?
간단히 내가 저 녀석을 [때리고 싶다]를 [꿀밤]이라는 말이랑 연상시켜서...

"꿀밤."

따악!!!

꽤나 경쾌한 소리와 함께 수아 녀석은 머리부터 거실 바닥에 처박혔다.
......된다. 라고 기뻐하기 전에 내가 취한 행동은 [도주] 였다.
등 뒤에서 [캬악!!! 그래!! 제대로 한번 붙어보자아!!! ]라는 환청이 들린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거실 밖에서 마법을 쓰면 추적자에게 들키는 만큼, 녀석은 집 밖으로는 쫓아오지 않았다.
......이대로 녀석이 잊기를 빌자.
다행히, 때마침 비도 그친 상태였다.
적당히 동네나 돌아다니면서 시간이나 때우기로 하자.
...라고 생각한 순간, 그것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수아가 말했던 [추적자]와.
하지만 뭔가 다르다? 전에 본 추적자는 칼을 두 자루 차고, 허리까지오는 긴생머리였다.
그렇지만 지금 눈 앞에 있는 추적자는 보브컷트의 단발에 기다란 창을 등에 짊어메고 있다.
...그새 머리자르고 무기를 창으로 바꿨나? 갈수록 이상한 녀석. 무시하자. 괜히 신경쓰다간 수아 녀석과 내가 관계가 있다는 것만 들킬지도 모른다.
그 순간, 내 왼쪽 뺨을 뭔가 훑고 지나갔다. 칼날이다. 따끔한 감촉과 함께 어느새 내 등뒤에 누군가 서 있었다.
뒤 돌아보니 아까 봤던 그 긴머리쪽이었다.
그러고보니 수아가 한 말이 떠올랐다.
[마르카덴의 쌍둥이 늑대. 쥬라와 유라.]
그래. 쌍둥이었다. 둘이라는 얘기다.
...잠깐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아무튼 방금 내 볼을 살짝 베고 지나간 푸른빛의 머리칼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여성은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초점없는 붉은 눈은 나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다.
그와 반대로 내 정면에 선 단발머리의 여성은 편한 자세로 약간 미소를 띄우고 있다.
그리고는 말했다.

"$@%%@$%^%#...?"

"에?"

수아 녀석이 썼던 말과 같은 말이다. 물론 내가 알리는 없다.
내 반응을 보던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내게 다가와 내 이마에 손을 짚었다.
...이것들은 왜 이렇게 한결 같이 똑같다냐...
그리고 잠시후 손을 떼고 나와 일정한 거리를 잡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으흠. 실례. 너. 르 시아의 개지?"

엉? 뭐... 뭐? 개?

"개? 무슨 소리야?"

내 반문에 상대방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딴청부리지마라. 르 시아의 개. 네 놈의 몸에서 풀풀 풍기는 심상치 않은 마나가 그걸 증명하고 있어! 네놈을 족쳐서 르 시아가 숨어 있는 곳을 알아내겠다!"

그야 우리 집에 있지.
그나저나... 내 몸에서 마나가 풀풀 풍긴다고?
그 말에 [눈]을 열어본다.
......과연. 말 그대로 풀풀 풍기고 있군. 사방팔방으로 뻗쳐나가는 내 마나. 그러고보니 수아 녀석이 분명 [마나 방출량을 일반인 수준으로 억제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지금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다. 상대는 앞 뒤로 날 공격해올 태세다.
좀전에 힐끔 뒤를 본 바로는 등 뒤의 긴 머리는 어딘지 모르게 헛점 투성이다. 분명 내 왼쪽 볼을 벴을때의 공격은 보이지도 않았지만... 허리가 텅 비었어!

나는 우선 앞으로 뛰었다. 앞의 단발은 내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을 수 있는 자신이 있다는 듯, 여전히 그 자세 그대로였다.
하지만 내 표적은 댁이 아니네요!
앞으로 도약한 내 뒤를 따라 긴머리가 쫓아오는게 [느껴졌다.]
10여년 동안 계속된 누이와의 아침 운동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난 곧바로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였다.
내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커다란 대검과 그에 비해 작아 보이는 칼날이 교차로 지나갔다.
등뒤의 상대의 허리는 완전히 비었다.
그대로 몸을 일으키며 뒤로 힘차게 도약했다.
간단히 말해 등으로 태클했다는 얘기가 된다.

퍽.

그리 강하진 않았던 듯, 상대는 잠시 주춤대다가 다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젠장. 이 정도로는 약한가...
그리고는 긴머리는 내게 칼을 겨눈다.
잠시 내 모습을 보던 단발이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르 시아의 개 치고는 제법 하는군. 어디. 내 꼭두각시, 유라와 한번 놀아보시지."

그 말과 함께 마치 총탄 같은 기세로 긴머리, 유라라고 불린 여자가 내게 달려들었다.
거대한 검이 내 정수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누이의 발꿈치 떨구기보다도 빠른 기세로.
가까스로 그것을 피하고 그 거대한 검이 땅에 처박히고 생길 틈을 노린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거의 내 키와 비슷한 길이의 대검이 위에서 아래로 일직선으로 내려쳐지다 느닷없이 공중에서 그 궤도를 홱 꺾더니 내 허리를 베어 들어온 것이다.
저 거대하고 묵직한 검을 아무렇지도 않게 손목을 비틀어 궤도를 바꾼것이다. 급히 옆으로 크게 뛰어 피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 길이가 내 키 정도 되는 검이다. 그걸 피해내기엔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
왼쪽 팔을 얕게 베였다. 불에 타는 듯한 통증. 그리고 흘러나오는 붉은 피.
이 정도로 끝난게 다행이었다.
영점 몇 콤마초만 늦었어도 팔자체가 잘려나갔다.
그나저나, 왜 아무도 오지 않는거지?
점심시간이 지났을 무렵이다. 지나가던 주민이 우리를 보고 경찰을 불러야 정상이지만, 주민은 커녕 참새 한마리도 안보인다.

"후훗. 왜 아무도 안 오나. 그게 궁금한가? 르 시아의 개."

"......"

저 단발이 말하는 동안은 유라는 이상하게도 움직이지 않는다. 꼭두각시라더니 단발이 조작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건가?
마르카덴의 쌍둥이 늑대 쥬라와 유라라는 이름에서 추정하건대, 쥬라로 추정되는 단발여성은 자신을 노려보는 내 눈빛을 즐기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결계를 쳤거든. 공간 대체의 결계를. 보기엔 평소의 길로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여기는 내 마나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공간이야.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여기엔 아무도 없는 것 처럼 보이겠지."

젠장... 수아가 썼던 결계와 비슷한 것인가. 당연히 수아 녀석도 내가 여기서 이 녀석들과 맞장 뜨는것 따윈 알지도 못하고 씅질만 팍팍 부리고 있겠군.
제길... 이렇게 된 이상, 자꾸 말을 걸어서 빈틈을 찾자...!

"그보다도... 꼭두각시 유라라고? 이 긴머리 여자 말야. 쌍둥이 아닌가?"

"아아. 그래. 내 쌍둥이 여동생이야. 우리 마르카덴 가의 규칙에 따라 쌍둥이 중에 동생은 10살이 되면 먼저 태어난 쪽의 서포트를 위한 전투용 패밀리어로 만들기 위해 영혼을 봉인하니까. 지금은 내 마나로 인한 원격 조작으로 움직이는 말 그대로 꼭두각시 인형이지."

...그런건 이상해. 자매라고? 그런 자매관계가 어디있어? 규칙이라고 해도, 나라면 동생에 대한 일말의 동정을 품을거야.

"그러... 그러고도... 언니냐. 너는."

"언니? 말을 잘못 썼어. 나는 이 돌(doll)의 마스터야."

"너 같은 건 벌을 받아야 돼."

내 말에 쥬라는 히죽 웃었다.

"흥, 잘도 나한테 벌을 줄 수 있겠다. 한낱 르 시아의 개인 주제에!"

아까부터 그 호칭이 거슬렸다고. 사람더러 개라느니.

"......말해두지만. 나랑 르 시아는 분명 관계가 있어. 하지만, 나는 그 녀석의 개가 된 기억은 콧털 만치도 없네요!!!"

나의 [콧털]이라는 발언이 심히 거슬렸는지, 쥬라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저속한 남자. 콧털이라니."

"아무튼 너 같은 녀석한테는 벌이다."

뒤에서 유라가 움직이는게 느껴진다.
쥬라는 내게 결정타를 날릴 속셈이다.
하지만 내게도 비밀병기는 있다.

"이거나 먹어라!"

"?!"

"꿀밤."

따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쥬라는 머리부터 땅바닥에 처박혔다.
걸려들었다. 쥬라가 땅바닥에 처박힘과 동시에 등뒤의 유라도 움직임을 멈췄다.
여기는 용서없이 처절하게...! 수아 녀석을 본 받아!

"꿀밤. 꿀밤꿀밤꿀밤꿀밤꿀밤꿀밤......"

따악! 딱! 퍽! 딱! 따악! 딱! 딱...

오. 왠지 모르게 신나는 걸. 라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쥬라가 벌떡 일어났다. 그 몸 주위에는 희미하게 푸른 빛으로 빛나는 막이 보였다. 설마... 방어막?
그녀는 잔뜩 구겨진 얼굴로 말했다.

"애송이가......! 적당히 괴롭히다가 르 시아의 은신처를 밝혀낼 생각이었지만, 이젠 그딴 건 어찌됐든 상관없다! 죽인다!"

......정말 뭐 됐다.
다시금 등 뒤에서 유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왠지모르게 열 받는다.
자신을 동생이라고도 생각치 않는 언니의 멋대로 꼭두각시 인형처럼 움직이고.
얼간이. 멍청이. 쪼다.
나는 대뜸 홱 돌아서서 유라의 목에 둘러진 머플러 채로 그녀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쥬라도 나의 그 행동은 전혀 예상 못한듯, 별 다른 저항 없이 나는 유라의 멱살을 잡아 당겨 그녀의 눈을 노려보았다.
초점 없는 두 눈이 내 두 눈을 향해 있다.

" ...이건 아니다. 저 근성 썩어빠진 언니가 말하는대로 날 죽일거냐. 어디 지껄여보시지. 네 의지로 말야!"

뒤에서 쥬라가 기가 차다는 듯,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 돌발적인 행동에 맥이 빠졌는지, 방금전의 살의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하, 웃기는군. 마치 나무나 돌멩이에 말거는 꼴이야. 유라한테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무나 돌멩이? 왜 이 녀석이 나무나 돌멩이와 동격이 되는거냐? 뭔가를 볼 수 있는 두 눈이 있어. 말을 할 수 있는 입이 있고. 그래.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어. 그러면 이 녀석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녀석이어야 한단 말이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이 녀석이 쥬라의 꼭두각시라는 사실을 부정하려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열 받을 뿐. 이유는 없다.
그래 당장 죽더라도 철저히 부정해주마. 어차피 죽을거.

"어디 말해보라고! 날 죽이고 싶냐고!"

그 순간, 유라의 멱살을 움켜잡은 내 오른손이 희미한 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당황한 쥬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르 시아의 개! 네 놈! 무슨 짓을!"

그야 나도 모르지. 바보.
마법에 있어선 난 완전 초짜라고. 나한테 묻지마. 쪼다. 내가 알리가 없잖아.
하지만 뭐가 어찌됐든 뭔가 일어나고 있다. 그 증거로 내 손이 빛난 순간, 쥬라는 유라에게 나를 베라는 명령을 내렸을 터. 하지만 그에 불구하고 유라는 움직이지 않는다. 쥬라가 당황한 이유는 틀림없이 그것때문이리라.
이쯤되면 확신이 있었다. 그녀는 이미 꼭두각시가 아니라는.
나는 씩 웃으며 유라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의 두 눈은 초점을 가지고, 확실하게 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는 내 모습이 선명하게 비치고 있었다.

"...나를 죽이고 싶냐?"

"싫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기 목소리 같은, 주의깊게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안들리 정도로 가녀린 목소리로 유라가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웃어보이며 그녀에게서 손을 뗐다.

"그럼 됐다. 미안."

그리고 뒤돌아 쥬라를 보았다.
당혹, 분노 등등의 감정이 뒤죽박죽 섞인 표정.

"보아하니... 너는 이 녀석을 조종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줄 아는게 없는 모양이네. 뭔가 할 줄 아는게 있었으면 지금 당장 날 불태워 죽이든 어떻게든 죽였을텐데 말야. 그 등뒤에 찬 창은 폼이냐아?"

"어... 어떻게... 봉인된 영혼을......! 어떻게 봉인을 해제한거야!"

쥬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너무나도 심플하고 솔직하게 답했다.

"내가 아냐. 쪼다."

그리고 결정타로 한 마디 더.

"그리고 나는 르 시아의 개가 아냐. 나한테는 이 광현이라는 제대로 된 이름이 있다고. 부를거면 제대로 부르라고."

실제로는 한마디가 아니지만.

"이...... 광현... 좋아... 기억해두마."

빠득. 쥬라가 이 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분하지? 분하지? 열 받지? 때려주고 싶지?

퍼억!

"억!"

오른뺨에 호된 충격과 함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어느새 내 앞에 다가온 쥬라가 내 오른 뺨에 훅을 날린 것이다.

"네 놈도... 오른 뺨이 아플 때 마다 날 떠올리는게 좋을거야... 이 광현. 다음에 만나면 죽여주마. 반드시..."

그렇게 말한 그녀는 그 자리에서 뭔가의 종이를 꺼내더니 그것을 북 찢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모습이 허공으로 사라져 갔다.
그녀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는 뒤를 돌아봤다.
바닥에 주저 앉아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 보고 있는 유라.
왠지 골치가 아파지려고 한다. 솔직히 수아녀석 하나만으로도 골이 울릴지경인데.
뭐... 여기서 이러고 있어봐야 사람눈에 띄일 뿐이니까. 일단은 집으로 데려가자.
수아녀석한테 된통 깨질 각오정도는 해야 겠지만.
어느새 결계는 풀린 듯, 저편으로 사람이 몇몇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지끈 거리는 오른 뺨을 어루 만졌다.
피맛이 나는 거로 보아 입 안이 약간 터진 듯 싶다.
어지간히도 밉살스러웠나보군.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유라가 볼을 어루만지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얘는 도대체 왜 사람을 이렇게 빤히 쳐다본대. 쑥스럽게.

"아, 아무튼 간에. 일단 장소를 옮기자."

"..........워."

여전히 모기소리처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뭐라고? 잘 안들려."

"...고마워."

"에? 아... 뭐... 나는 별로 한 것도 없고. 뭘 어떻게 한지도 모르고. 그, 그러니까 별로 고마워 할 것 없어."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당황하는 내 모습을 보며 그녀는 환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눈부신 미소. 자신의 의지로 나오는 미소. 진정으로 감사의 마음이 담겨진 미소.
...그리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미소.
나는 그 미소에 대해 그저 멋쩍게 웃으며 집쪽으로 향했다.

제 2 화 그대의 붉은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 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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