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르시아 프롤로그 제 1 화 그녀의 이름은 르시아 - 完
2003.12.21 17:13
제 1 화 그녀의 이름은 르시아 - 完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순간 코 아픈거고 뭐고 다 잊고 비명을 질렀다.
그에 허공의 얼굴은 화들짝 놀라 덩달아 비명을 지른다.
괴기... 괴기 영화다! 그것도 싸구려 귀신영화!
비 부슬부슬 내리는 날에 허공의 얼굴이라니... 저게 말까지 하면 더 무서워 질거다.
"#$$^@%^##%...!"
......말하고 있네.
그나저나 무슨 말이 저래? 내가 지금껏 단 한번도 접한 적이 없는 괴상한 언어로 그 얼굴은 지껄이기 시작했다.
아니. 어느새 얼굴이 아닌 한 명의 여성으로 그 모습은 바뀌어있었다.
허공속에서 온 몸을 꺼낸 그녀는 마치 모든 것이 낯설다는 듯, 연신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윽고 내게로 그 시선을 굳혔다.
여성이라고 하기도 좀 뭐한 약간 앳된 느낌의 그 토끼처럼 귀만 기다란 소녀는 무릎을 굽히고는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뭐라고 지껄였다.
물론 난생 처음 듣는 말이니 내가 그걸 알리가 없었다.
자신의 말에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제멋대로 내 이마에 양 손을 갔다댔다.
"어이. 야, 뭐하는 짓이야?!"
당황하여 그 손을 뿌리치자 그녀는 불쾌하기 그지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세계의 정보를 조금 얻어내려고 했건만. 결국 얻어낸건 당신의 국가의 언어와 당신의 기억의 일부로군요. 저를 불러냈으면 그에 합당한 협력은 해주셔야죠."
뭐야? 우리말 할줄 알잖아. 그나저나, 불러내? 누가? 누구를? 그리고 합당한 협력? 따지고 보면 네 녀석은 내 안면을 발로 걷어찼다고! 그런데도 마치 지가 피해자인 것 처럼!
"아무튼 방금전의 당신의 비명소리에 사람들이 이쪽에 눈치 챈듯 싶군요. 일단 몸을 감추지요."
"에? 에? 내가 왜? 어이! 이거 놔!?"
결국 그녀는 나를 억지로 지하 주차장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매우 단도직입적으로 내게 물었다.
"왜 저를 부르신거죠?"
...뭔 소리야. 아까부터.
"나는 아무도 부른 적이 없는데."
그런 나의 심드렁한 대답에 그녀는 한쪽 눈썹을 움찔한다.
좀 진정하고 보니 상당한 미인이다. 완전미를 추구한 얼굴의 균형. 세필붓으로 그은 듯, 가느다라면서도 선명한 두 눈썹. 푸른 두 눈동자. 창백해 보일정도로 새하얀 피부. 완벽한 서양미인이었다. 다만.
아까부터 저 놈의 귀가 신경이 쓰인다. 보통사람의 3배는 될성 싶은 기다란 귀. 아무리봐도 뭔가 붙인건 아닌듯 싶다.
내가 그녀의 귀에 전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재차 물어왔다.
약간은 화난 듯 싶었다.
"분명 저는 당신의 마나의 간섭에 의해 여기로 묶여 왔어요! 도대체 왜? 왜 불러왔죠?"
"아 글쎄!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
"......"
잠시간의 침묵. 눈앞의 금발 여성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럼... 마나의 마자도 모르는 보통 인간이 우연히 마나를 행사해서 저를 불러냈다? 황당하군요."
"마나?"
나의 반문에 그녀는 머리를 감싸쥔다.
"정말로 모르시나본데... 마나라는건 비인격적, 초자연적인 힘의 관념이에요. 뭐어, 정령, 사람, 생물, 무생물, 기물 등 이 세상의 그 어떤것에도 존재하며, 강한 전이성과 전염성을 가지지요."
뭔 소리야?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는 하? 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간단히 말하자면, 모든 존재의 생명이자, 영혼. 그리고 의지이자 힘. 즉, 저는 당신의 의지에 의해 이쪽 세계로 날려져 온거에요."
흐음. 과연. 마나라는게 그런건가? 아니... 잠깐!
"이 봐, 잠깐! 지금 중요한건 그런게 아니고! 넌 대체 뭐야? 아까부터 신경쓰였는데, 그 귀는 또 뭐고?"
내 질문에 그녀는 답했다.
"최후의 하이엘프. 르 시아. 뭐어, 여기 말로 표현하자면 르 시아라는건 운명의 이단자. 쯤 되려나. 아무튼 그래요."
"하이엘프? 그게 뭐야? 너! 이상한 말로 둘러대지마! 확실히 답해! 남의 면상을 있는 힘껏 걷어차놓고 얼렁뚱땅 넘길 생각따윈 하지도 말아!"
내 거센 항의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대고는 중얼거렸다.
"흐음... 이쪽 세계에는 그런 개념이 없는걸까? 잠깐 실례."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또 내 이마에 양손을 가져다 댔다.
이상한 녀석. 정말로 이상한 녀석. 너무나도 이상한 녀석.
너무 기가 막혀 이제 이 이후로 더 무슨짓을 할까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잠시 후 내 이마에서 손을 뗀 그녀가 말했다.
"당신의 이름은 이 광현. 나이는 17세. 학교는 스스로 나가고 있지 않음. 마나의 폭주로 동급생을 소멸시킨 이후 학교 등교 거부중. 마나의 경향은 마이너스. 혈육은 누이 하나뿐. 누이는 유명 무도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음. 에... 그리고 이쪽 세계에는 엘프라던과 이런 저런 괴물에 대한 개념은 거의 없군요."
"뭐... 뭐?!"
나는 그런거 한마디도 너한테 말한 적도 없어! 어떻게...! 그리고 마나의 폭주라는 건 또 뭐야?! [그 녀석]이 내 눈앞에서 사라진 그 사건을 이 녀석이 어떻게 아는거지?
"마치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표정이군요. 이게 마나의 힘입니다. 원한다면 상대방의 기억속의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도 할 수 있죠. 덕분에 이 세계의 정보도 함께 취득했습니다. 일단 감사는 해두죠."
"......"
멍하니 입만 뻐끔거리는 내게 그녀가 다시금 말했다.
"그나저나 어떻게 해줄거죠? 이 사태를."
"...무, 무슨 말이야? 사태라니?"
"저를 여기에 불러들인 사태 말에요. 안 그래도 쫓기는 몸인데다가 그 추적자들도 운 나쁘게도 이쪽 세계에 와 있는 듯 싶군요. 당신의 기억에서 봤어요."
"추적자?"
내 질문에 그녀는 매우 심플하게 답했다.
"아까 그 파란머리."
"아. 아까 그 파란머리."
그런 [얼빵한] 녀석이 추적자?
뭐라고 할까. 뭔가 나사가 하나 풀린 듯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런 느낌이었는데. 마지막에 사라질때의 그 늑대의 형상은 예외지만. 대체 그건 뭐였지?
"마르카덴의 쌍둥이 늑대. 쥬라와 유라."
느닷없이 그녀의 입에서 늑대라는 단어가 나오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버렸다. 저 녀석 혹시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건가?
그러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저를 쫓아오는 추적자들. 그녀들의 이름. 당신이 본 건 아마도 유라쪽이군요. 꼭두각시 유라."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는 내 표정을 무시한채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해왔다.
"이렇게 된 이상, 당신에겐 협력을 얻어야 겠어요."
"내가 왜?"
0.1초도 안 걸렸다. 이 대답나오는데. 정말로.
"당신 때문에 내가 여기로 불려들여져서 쓸데없이 쫓겨 다니게 생겼잖아요!"
아직도 그 소리냐!
"아 글쎄 나는 모른다니까! 니 멋대로 온거잖아!"
그녀의 표정이 한 순간 험악 그 자체로 일그러졌다.
"아까... 그만큼 마나에 대해서 설명을 해도 눈꼽만치도 믿을 생각이 없나보군요. 말로 가르쳐서 안되면... 몸으로 가르쳐드리지요!"
느닷없이 그녀의 오른손이 내 머리를 잡았다. 어림잠아 키가 대략 175정도 되는 그녀의 키로 176인 내 머리를 잡는 데는 별 무리도 없었으리라. 내가 어떠한 액션을 취하기도 전에 그녀는 외쳤다.
"마나 쇼크!"
떠엉~
종이 쳤다. 그래. 분명 종 소리다. 머리 속에서 종이 쳤다.
그리고 종 소리에 뒤이어 온 몸의 혈관을 몽땅 들어내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후꺅!"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양 눈에서 불이 튀는 듯한 통증.
그 모든 통증이 가시고 나자, 나는 전기쇼크를 먹인 개구리처럼 그 자리에 길게 뻗어버렸다.
신기하게도 의식만큼은 멀쩡했다. 왠지 모르게 오히려 머릿속이 맑아진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바닥에 길게 누운 내게 그녀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아. 이걸로 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몽땅 막혀 있던 당신의 마나회로를 [강제로] 다 열었어요. 그 두 눈으로 마나라는 것을 한번 보시죠."
"크으... 그런다고 안 보이는게 보일리가... 에?"
순간 시야의 모든 것이 변했다. 온통 붉은 빛. 눈 앞의 르 시아라는 여자는 심홍빛의 덩어리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사방의 벽, 기둥, 자동차들은 엷은 분홍빛의 파장에 뒤덮혀 있었다.
"이게... 다 뭐야..."
그 붉은 덩어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대충 어림잡아 입이 있을 위치에서 그녀가 한마디 한마디 할때마다 붉은 파장 같은 것이 내게로 전해져 온다.
"그게 마나. 아마 지금도 나의 의지. 말이라는 형태로 바뀐 마나가 당신에게 [전이]되는 것이 보일 터."
...이해하기 어렵다. 솔직히 이해 할수가 없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내가 꿈을 꾸고 있지 않은 한, 이건 현실이다. 느닷없이 나타난 이 르 시아라는 여자도 현실이며, 이 여자가 억지로 내게 협력을 요구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현실이다.
그나저나 이거 어떻게 안되나? 이렇게 온 세상이 빨간채로는...
"이 봐. 이거. 안 보이게는 할 수 없어?"
"그냥 간단히 의식하지 않으면 안 보이는 거에요. 그건 실제로는 당신이 눈으로 보는게 아닌, 당신의 몸으로 느낀 것을 당신의 뇌에서 이미지 화 시켜서 눈에 보이게 하는 것 뿐. 실제로 당신의 눈에 보이고 있는건 아니니까요."
간단히 말해서 신경끄면 된다 이거아닌가...
...그런게 그렇게 쉽게 되냐! 솔직히 신경 쓰이잖아!
아무튼 신경끈다. 신경끈다. 신경끈다. 신경끈다.......................!
대략 5분간의 집중으로 그것은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정확히는 신경 끈다기보다는 보고 싶다, 보기 싫다는 내 의지에 의해 보이고 안보이고 하는 것이었다.
헤에. 의외로 재미있는걸. 보였다, 안 보였다.
그런 날 한심하다는 듯한 눈초리로 내려다보던 르 시아라는 여자가 말했다.
"어쩔 수 없군요. 당신이 이 사태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한, 저도 당신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묻기도 좀 그렇군요. 협력을 받는 대가로, 저는 당신에게 [마법], 즉 마나의 운용법에 대해 가르쳐 드리죠. 마침 저와 마찬가지로 마이너스 성향의 마나니까요."
"마법... 이라."
생각해보면 웃기는 얘기다. 제 멋대로 나타나선, 이래저래 말도 안되는 얘기를 늘어놓은 끝에, 마법을 가르쳐주겠다. 정말 어이없는 얘기지만, 그녀에겐 충분히 그런 능력이 있다. 이젠 그건 인정한다.
게다가 마법이라는건 매력적이기도 하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지만, 내게 무슨 협력을 얻고 싶은거지? 보시다시피 나는 일개 시민에 불과한데."
"몸을 숨길 곳. 즉, 당신의 집에서 살겠습니다."
"어 그래? ......잠깐! 어째서 얘기가 그렇게 되는건데?!"
누나는 어떡하고, 게다가 네 녀석의 그 외견! 아무리 봐도 너무 수상하잖아!
그런 내 생각을 읽은 듯, 그녀는 말했다.
"걱정마시길. 당신의 누이의 기억과 이 나라의 기록을 약간 조작하면 됩니다. 당신의 누이의 친구의 동생이라는 설정으로 삼지요. 기록 조작은 간단하기 짝이 없는 얘기고. 그리고 외견은 제 종족을 바꿔버리면 될 일이고."
"...헤?"
종족을 바꿔?
"아까도 말했듯이, 저는 하이엘프입니다. 종족을 당신들 인간으로 바꿔버리는 겁니다. 마나의 행사에는 상당한 제약이 붙습니다만, 오히려 마나의 흔적을 안 남겨서 지금의 제게는 마침 좋군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두 손을 모으고 두 눈을 감았다.
그 다음 순간, 그녀의 몸을 빛이 감쌌다. 그 상태로 그녀는 불만스럽다는 듯 한 마디 덧붙였다.
"......다 좋지만. 인격까지 바뀌어 버리는건 싫군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눈이 멀 듯한 환한 빛이 어두침침한 지하 주차장을 밝혔다.
그리고 빛에 놀란 눈이 원상태로 돌아오자 그녀가 서 있던 곳에는 낯설은 흑발의 [쪼그만한]소녀가 서 있었다.
키는 대충 155쯤 되려나. 발랄한 느낌의 바람머리를 한 쾌활한 인상을 주는 소녀.
그 녀석은 어디가고 이런 꼬맹이가?
설마... 인간으로 바뀐다더니... 이렇게... 된건가?
게다가 옷은 어째서인지 내가 다니던 학교 여자 교복이다.
잠시 자기 몸을 이리저리 살피던 소녀는 나를 보더니 씨익 웃었다.
"헤헷, 어찌되었건간에, 잘 부탁해! 광현 오빠!"
"어? 어, 어..."
갭이 너무 크다. 도저히 동일 인물이라고 보기가 힘들다.
"저기... 네가 르 시아?"
"오키! 물론! 한국 식으로는 류 수아! 잘 부탁혀!"
"....................................."
나는 뭔가 격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지는 이른 바 [개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카루나군. 미안하지만 카테고리를 만들어줬으면 하는데...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순간 코 아픈거고 뭐고 다 잊고 비명을 질렀다.
그에 허공의 얼굴은 화들짝 놀라 덩달아 비명을 지른다.
괴기... 괴기 영화다! 그것도 싸구려 귀신영화!
비 부슬부슬 내리는 날에 허공의 얼굴이라니... 저게 말까지 하면 더 무서워 질거다.
"#$$^@%^##%...!"
......말하고 있네.
그나저나 무슨 말이 저래? 내가 지금껏 단 한번도 접한 적이 없는 괴상한 언어로 그 얼굴은 지껄이기 시작했다.
아니. 어느새 얼굴이 아닌 한 명의 여성으로 그 모습은 바뀌어있었다.
허공속에서 온 몸을 꺼낸 그녀는 마치 모든 것이 낯설다는 듯, 연신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윽고 내게로 그 시선을 굳혔다.
여성이라고 하기도 좀 뭐한 약간 앳된 느낌의 그 토끼처럼 귀만 기다란 소녀는 무릎을 굽히고는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뭐라고 지껄였다.
물론 난생 처음 듣는 말이니 내가 그걸 알리가 없었다.
자신의 말에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제멋대로 내 이마에 양 손을 갔다댔다.
"어이. 야, 뭐하는 짓이야?!"
당황하여 그 손을 뿌리치자 그녀는 불쾌하기 그지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세계의 정보를 조금 얻어내려고 했건만. 결국 얻어낸건 당신의 국가의 언어와 당신의 기억의 일부로군요. 저를 불러냈으면 그에 합당한 협력은 해주셔야죠."
뭐야? 우리말 할줄 알잖아. 그나저나, 불러내? 누가? 누구를? 그리고 합당한 협력? 따지고 보면 네 녀석은 내 안면을 발로 걷어찼다고! 그런데도 마치 지가 피해자인 것 처럼!
"아무튼 방금전의 당신의 비명소리에 사람들이 이쪽에 눈치 챈듯 싶군요. 일단 몸을 감추지요."
"에? 에? 내가 왜? 어이! 이거 놔!?"
결국 그녀는 나를 억지로 지하 주차장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매우 단도직입적으로 내게 물었다.
"왜 저를 부르신거죠?"
...뭔 소리야. 아까부터.
"나는 아무도 부른 적이 없는데."
그런 나의 심드렁한 대답에 그녀는 한쪽 눈썹을 움찔한다.
좀 진정하고 보니 상당한 미인이다. 완전미를 추구한 얼굴의 균형. 세필붓으로 그은 듯, 가느다라면서도 선명한 두 눈썹. 푸른 두 눈동자. 창백해 보일정도로 새하얀 피부. 완벽한 서양미인이었다. 다만.
아까부터 저 놈의 귀가 신경이 쓰인다. 보통사람의 3배는 될성 싶은 기다란 귀. 아무리봐도 뭔가 붙인건 아닌듯 싶다.
내가 그녀의 귀에 전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재차 물어왔다.
약간은 화난 듯 싶었다.
"분명 저는 당신의 마나의 간섭에 의해 여기로 묶여 왔어요! 도대체 왜? 왜 불러왔죠?"
"아 글쎄!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
"......"
잠시간의 침묵. 눈앞의 금발 여성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럼... 마나의 마자도 모르는 보통 인간이 우연히 마나를 행사해서 저를 불러냈다? 황당하군요."
"마나?"
나의 반문에 그녀는 머리를 감싸쥔다.
"정말로 모르시나본데... 마나라는건 비인격적, 초자연적인 힘의 관념이에요. 뭐어, 정령, 사람, 생물, 무생물, 기물 등 이 세상의 그 어떤것에도 존재하며, 강한 전이성과 전염성을 가지지요."
뭔 소리야?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는 하? 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간단히 말하자면, 모든 존재의 생명이자, 영혼. 그리고 의지이자 힘. 즉, 저는 당신의 의지에 의해 이쪽 세계로 날려져 온거에요."
흐음. 과연. 마나라는게 그런건가? 아니... 잠깐!
"이 봐, 잠깐! 지금 중요한건 그런게 아니고! 넌 대체 뭐야? 아까부터 신경쓰였는데, 그 귀는 또 뭐고?"
내 질문에 그녀는 답했다.
"최후의 하이엘프. 르 시아. 뭐어, 여기 말로 표현하자면 르 시아라는건 운명의 이단자. 쯤 되려나. 아무튼 그래요."
"하이엘프? 그게 뭐야? 너! 이상한 말로 둘러대지마! 확실히 답해! 남의 면상을 있는 힘껏 걷어차놓고 얼렁뚱땅 넘길 생각따윈 하지도 말아!"
내 거센 항의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대고는 중얼거렸다.
"흐음... 이쪽 세계에는 그런 개념이 없는걸까? 잠깐 실례."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또 내 이마에 양손을 가져다 댔다.
이상한 녀석. 정말로 이상한 녀석. 너무나도 이상한 녀석.
너무 기가 막혀 이제 이 이후로 더 무슨짓을 할까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잠시 후 내 이마에서 손을 뗀 그녀가 말했다.
"당신의 이름은 이 광현. 나이는 17세. 학교는 스스로 나가고 있지 않음. 마나의 폭주로 동급생을 소멸시킨 이후 학교 등교 거부중. 마나의 경향은 마이너스. 혈육은 누이 하나뿐. 누이는 유명 무도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음. 에... 그리고 이쪽 세계에는 엘프라던과 이런 저런 괴물에 대한 개념은 거의 없군요."
"뭐... 뭐?!"
나는 그런거 한마디도 너한테 말한 적도 없어! 어떻게...! 그리고 마나의 폭주라는 건 또 뭐야?! [그 녀석]이 내 눈앞에서 사라진 그 사건을 이 녀석이 어떻게 아는거지?
"마치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표정이군요. 이게 마나의 힘입니다. 원한다면 상대방의 기억속의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도 할 수 있죠. 덕분에 이 세계의 정보도 함께 취득했습니다. 일단 감사는 해두죠."
"......"
멍하니 입만 뻐끔거리는 내게 그녀가 다시금 말했다.
"그나저나 어떻게 해줄거죠? 이 사태를."
"...무, 무슨 말이야? 사태라니?"
"저를 여기에 불러들인 사태 말에요. 안 그래도 쫓기는 몸인데다가 그 추적자들도 운 나쁘게도 이쪽 세계에 와 있는 듯 싶군요. 당신의 기억에서 봤어요."
"추적자?"
내 질문에 그녀는 매우 심플하게 답했다.
"아까 그 파란머리."
"아. 아까 그 파란머리."
그런 [얼빵한] 녀석이 추적자?
뭐라고 할까. 뭔가 나사가 하나 풀린 듯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런 느낌이었는데. 마지막에 사라질때의 그 늑대의 형상은 예외지만. 대체 그건 뭐였지?
"마르카덴의 쌍둥이 늑대. 쥬라와 유라."
느닷없이 그녀의 입에서 늑대라는 단어가 나오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버렸다. 저 녀석 혹시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건가?
그러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저를 쫓아오는 추적자들. 그녀들의 이름. 당신이 본 건 아마도 유라쪽이군요. 꼭두각시 유라."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는 내 표정을 무시한채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해왔다.
"이렇게 된 이상, 당신에겐 협력을 얻어야 겠어요."
"내가 왜?"
0.1초도 안 걸렸다. 이 대답나오는데. 정말로.
"당신 때문에 내가 여기로 불려들여져서 쓸데없이 쫓겨 다니게 생겼잖아요!"
아직도 그 소리냐!
"아 글쎄 나는 모른다니까! 니 멋대로 온거잖아!"
그녀의 표정이 한 순간 험악 그 자체로 일그러졌다.
"아까... 그만큼 마나에 대해서 설명을 해도 눈꼽만치도 믿을 생각이 없나보군요. 말로 가르쳐서 안되면... 몸으로 가르쳐드리지요!"
느닷없이 그녀의 오른손이 내 머리를 잡았다. 어림잠아 키가 대략 175정도 되는 그녀의 키로 176인 내 머리를 잡는 데는 별 무리도 없었으리라. 내가 어떠한 액션을 취하기도 전에 그녀는 외쳤다.
"마나 쇼크!"
떠엉~
종이 쳤다. 그래. 분명 종 소리다. 머리 속에서 종이 쳤다.
그리고 종 소리에 뒤이어 온 몸의 혈관을 몽땅 들어내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후꺅!"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양 눈에서 불이 튀는 듯한 통증.
그 모든 통증이 가시고 나자, 나는 전기쇼크를 먹인 개구리처럼 그 자리에 길게 뻗어버렸다.
신기하게도 의식만큼은 멀쩡했다. 왠지 모르게 오히려 머릿속이 맑아진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바닥에 길게 누운 내게 그녀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아. 이걸로 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몽땅 막혀 있던 당신의 마나회로를 [강제로] 다 열었어요. 그 두 눈으로 마나라는 것을 한번 보시죠."
"크으... 그런다고 안 보이는게 보일리가... 에?"
순간 시야의 모든 것이 변했다. 온통 붉은 빛. 눈 앞의 르 시아라는 여자는 심홍빛의 덩어리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사방의 벽, 기둥, 자동차들은 엷은 분홍빛의 파장에 뒤덮혀 있었다.
"이게... 다 뭐야..."
그 붉은 덩어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대충 어림잡아 입이 있을 위치에서 그녀가 한마디 한마디 할때마다 붉은 파장 같은 것이 내게로 전해져 온다.
"그게 마나. 아마 지금도 나의 의지. 말이라는 형태로 바뀐 마나가 당신에게 [전이]되는 것이 보일 터."
...이해하기 어렵다. 솔직히 이해 할수가 없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내가 꿈을 꾸고 있지 않은 한, 이건 현실이다. 느닷없이 나타난 이 르 시아라는 여자도 현실이며, 이 여자가 억지로 내게 협력을 요구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현실이다.
그나저나 이거 어떻게 안되나? 이렇게 온 세상이 빨간채로는...
"이 봐. 이거. 안 보이게는 할 수 없어?"
"그냥 간단히 의식하지 않으면 안 보이는 거에요. 그건 실제로는 당신이 눈으로 보는게 아닌, 당신의 몸으로 느낀 것을 당신의 뇌에서 이미지 화 시켜서 눈에 보이게 하는 것 뿐. 실제로 당신의 눈에 보이고 있는건 아니니까요."
간단히 말해서 신경끄면 된다 이거아닌가...
...그런게 그렇게 쉽게 되냐! 솔직히 신경 쓰이잖아!
아무튼 신경끈다. 신경끈다. 신경끈다. 신경끈다.......................!
대략 5분간의 집중으로 그것은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정확히는 신경 끈다기보다는 보고 싶다, 보기 싫다는 내 의지에 의해 보이고 안보이고 하는 것이었다.
헤에. 의외로 재미있는걸. 보였다, 안 보였다.
그런 날 한심하다는 듯한 눈초리로 내려다보던 르 시아라는 여자가 말했다.
"어쩔 수 없군요. 당신이 이 사태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한, 저도 당신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묻기도 좀 그렇군요. 협력을 받는 대가로, 저는 당신에게 [마법], 즉 마나의 운용법에 대해 가르쳐 드리죠. 마침 저와 마찬가지로 마이너스 성향의 마나니까요."
"마법... 이라."
생각해보면 웃기는 얘기다. 제 멋대로 나타나선, 이래저래 말도 안되는 얘기를 늘어놓은 끝에, 마법을 가르쳐주겠다. 정말 어이없는 얘기지만, 그녀에겐 충분히 그런 능력이 있다. 이젠 그건 인정한다.
게다가 마법이라는건 매력적이기도 하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지만, 내게 무슨 협력을 얻고 싶은거지? 보시다시피 나는 일개 시민에 불과한데."
"몸을 숨길 곳. 즉, 당신의 집에서 살겠습니다."
"어 그래? ......잠깐! 어째서 얘기가 그렇게 되는건데?!"
누나는 어떡하고, 게다가 네 녀석의 그 외견! 아무리 봐도 너무 수상하잖아!
그런 내 생각을 읽은 듯, 그녀는 말했다.
"걱정마시길. 당신의 누이의 기억과 이 나라의 기록을 약간 조작하면 됩니다. 당신의 누이의 친구의 동생이라는 설정으로 삼지요. 기록 조작은 간단하기 짝이 없는 얘기고. 그리고 외견은 제 종족을 바꿔버리면 될 일이고."
"...헤?"
종족을 바꿔?
"아까도 말했듯이, 저는 하이엘프입니다. 종족을 당신들 인간으로 바꿔버리는 겁니다. 마나의 행사에는 상당한 제약이 붙습니다만, 오히려 마나의 흔적을 안 남겨서 지금의 제게는 마침 좋군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두 손을 모으고 두 눈을 감았다.
그 다음 순간, 그녀의 몸을 빛이 감쌌다. 그 상태로 그녀는 불만스럽다는 듯 한 마디 덧붙였다.
"......다 좋지만. 인격까지 바뀌어 버리는건 싫군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눈이 멀 듯한 환한 빛이 어두침침한 지하 주차장을 밝혔다.
그리고 빛에 놀란 눈이 원상태로 돌아오자 그녀가 서 있던 곳에는 낯설은 흑발의 [쪼그만한]소녀가 서 있었다.
키는 대충 155쯤 되려나. 발랄한 느낌의 바람머리를 한 쾌활한 인상을 주는 소녀.
그 녀석은 어디가고 이런 꼬맹이가?
설마... 인간으로 바뀐다더니... 이렇게... 된건가?
게다가 옷은 어째서인지 내가 다니던 학교 여자 교복이다.
잠시 자기 몸을 이리저리 살피던 소녀는 나를 보더니 씨익 웃었다.
"헤헷, 어찌되었건간에, 잘 부탁해! 광현 오빠!"
"어? 어, 어..."
갭이 너무 크다. 도저히 동일 인물이라고 보기가 힘들다.
"저기... 네가 르 시아?"
"오키! 물론! 한국 식으로는 류 수아! 잘 부탁혀!"
"....................................."
나는 뭔가 격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지는 이른 바 [개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카루나군. 미안하지만 카테고리를 만들어줬으면 하는데...
그리고... 내가 그리던 수아와는 다른 이미지.. 어째서 저렇게 되었을까...
[궁시렁 궁시렁] - 더 이상 말하면 네타가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