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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 선생님, 우리 아빠는 어디의 선생님이에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제니 웰스는 둥그런 안경알 너머로 한쪽 눈썹을 슬쩍 밀어올렸다. 태블릿에 떠오른 진료 차트에서 머무르던 시선이 짧게 소녀를 스쳤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글쎄. 아버지께 직접 여쭤보는 게 어떠니? 통화를 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아빠는 바빠요.”

“신기한 우연이구나. 나도 그래.”

 투명하고 선명한 녹보석의 눈동자가 자신에게 향하는 걸 시야 가장자리로 느끼면서, 제니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래, 이거지.’

 한낮, 뉴욕 어퍼이스트사이드, 요크빌의 중앙병원. 크리스마스까지 사흘 앞으로 다가온 이때, 병원 특실의 창문 너머로는 흐린 구름이 펼쳐져 우중충한 하늘이 보였다. 고급스러운 호텔마저 연상시키는 장소에 쌓여있는 책들, 게임기기들, 벽에 걸린 TV……. 그리고 커다란 침대에 기대어 누운 채 창밖만 내다보는 소녀. 쏟아지는 햇빛에 새하얗게 빛나는, 흘러내리는 벌꿀 같은 머리카락. 올해로 10살 하고도 3개월. 제니는 지난 몇 년 간 이 특실과, 더불어 이 특실에서 살고 있는 소녀를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료 차트와 소녀의 상태를 육안으로 확인하면서, 또 무엇보다 소녀가 먼저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에 어째서 유쾌한 기분이 드는지는 그녀 자신도 알지 못했다.

“요 며칠,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네. 하지만 절대로 뛰거나 하면 안 돼.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걸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제니는 표정을 능숙히 갈무리하고, 흘러내리는 안경을 고쳐쓰며 눈썹을 모았으나 더 이상 말을 계속하진 않았다. 제니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눈치챈 소녀는 오른쪽 손등을 드러내도록 펴 보였다.

 물방울 형태의 반점이 둘, 그 사이로 휘도는 문양이 한 가닥. 합계 3획으로 이루어진 그것은 검붉은 피멍이 든 것도 같았다. 전체적인 모습은 허파와 심장으로 상징되는 구조도를 간략히 그려낸 것을 어딘가 떠올리게 했다.

 일주일도 전에 그 손등에는 피가 배어나오는 상처가 나 있었다. 소녀 본인도 언제 다쳤는지 모르는 것을 링거를 맞추려던 간호사가 처음 발견했는데, 상처가 우연히 그런 모양으로 벌어졌다고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당연히 특실을 한번 청소하면서 위험한 물건이 없는지 찾아야 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오후, 손등에 그림이 놀랍도록 선명하게 떠오른 걸 신체 검사 도중 발견했을 때, 애니가 먼저 떠올린 것은 소녀가 상처를 따라 손등에 낙서를 그렸다는 짐작이었다. 이맘때의 아이들은 종종 손목에 시계를 그려넣는 식으로 놀기도 했기 때문에 그 생각은 설득력 있게 다가왔고, 어린아이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면서 문신 따위를 보고 배워 흉내내며 일종의 자해 행위를 한 것이 아닌지도 의심스러웠다. 당연히 위험한 일이었고, 소녀의 몸은 2차 감염을 특히나 더욱 주의해야 되는 상태였다.

 제니는 옅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오늘은 더 이상 이 얘기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 새하얀 가운이 유독 거치적거렸다. 침울하고 병약한 얼굴을 보는 건 물론 기운 빠지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몸에 힘이 나서 들뜬 어린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것도 짜증나는 업무였다. 지금까지 소녀는 그녀가 전속 의사로 일하는 동안 도무지 아이처럼 보이지 않도록 침착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은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제니는 한 번도 자신이 눈앞의 소녀를 혼낸다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그 나이대에 어울리는 질문을 들었을 때도 대답하는 게 한 발짝 늦었다.

“올해는 아빠랑 엄마랑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을까요?”

“……말했지만, 그런 문제는 부모님과 직접 통화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좋겠구나.”

 잠시 말을 끊었던 제니는 느릿하게 덧붙였다.

“아니면 산타 할아버지한테 부탁해 보던가.”

“산타는 없어요. 인터넷에 나와 있던데요.”

 ‘아, 빌어먹을 스마트폰. 요즘 애들이란.’ 제니는 문득 귀찮아져서, 태블릿으로 결과를 기록하며 대충 대답했다.

“그럼 천사님께 기도라도 해 보렴. 네 이름처럼 말이야, 엔젤라.”

“와.”

 갑작스러운 소리에 제니는 파묻었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았냐고?”

 그 의미를 헤아릴 여지는 없었다. 제니는 갈색 머리카락을 귓바퀴 뒤로 넘기며, 문진표에 기록된 ‘엔젤라 로맨티카’라는 이름을 눈길 한 번으로 일별했다.

“뭐든지 알지. 의사니까.”



 †

“의사 선생님은 누구랑 크리스마스를 보내실 거예요?”

“우리 가족들은 나 빼고 전부 노스캐롤라이나에 산단다, 꼬마야. 자, 오늘 검진은 여기까지. 다시 말하지만, 절대로 뛰거나 달리지 마. 무리한 운동은 금지야.”

 그녀가 어떤 남자와 크리스마스를 보낼지 어린 소녀에게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왜?”

“아뇨. 힘내 볼게요.”

 ‘뭘?’ 구름 낀 하늘. 오후의 석양마저 게으른 회색빛에 먹힌 때, 퇴근 중에 핸들을 잡고 신호를 기다리던 제니는 불현듯 그 짧은 대화를 떠올렸지만, 이윽고 상념은 뭉게뭉게 흩어져 사라졌다. 그녀는 지쳤고, 휴식이 필요했다. 문득 가슴이 답답해졌다.

 콜록!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급하게 터져나온 기침에 제니는 깜짝 놀랐다. ‘감기인가? 독감?’ 환자를 상대하는 직종에겐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다행히 그 한 번으로 끝이었고,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어째서인지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차 안쪽에 먼지가 쌓여 있었기 때문에? 바깥의 매연이 독해서? 하지만 과중한 업무로 피로해진 그녀는 생각을 오래 하지 못했다. 자신에 숨결에 배어나오는, 검은 연기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

 어둠을 실은 채로 제니 웰스의 승용차는 어퍼이스트사이드의 거리를 달렸다.



 †

 엔젤라 로맨티카. 천사의 이름을 지닌 소녀.

 그 천사의 의미가 아즈라엘<죽음의 선고자>인 사실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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