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할 이야기라는 것이 뭐야?”

약속한 11시 30분. 날개는 정확한 시간에 약속 장소로 나왔다. 학교 자체가 상당히 외딴 곳에 위치해 있기에 기숙사 문이 닫힌다면 학교 내의 유동 인구는 거의 제로가 되는 대학  답지 않은 학교가 바로 이 곳이기에 주변에는 날개를 제외한 그 어떤 사람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뭐 일거라고 생각해?”

그녀는 나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벤치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되물었다. 솔직히 그 때까지만 해도 아닐 것이 뻔한 기대를 어느 정도 하고 있었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하겠다. 그녀의 주위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마력이나 살기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그 망상은 꽤나 오래갔을 것이다.

그래. 잠시 나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고 있었을지도....... 그녀는 성배 전쟁에 참가한 마스터. 나의 적이었다는 것을.

“죽여.”

아무런 망설임 없이 토해지는 그녀의 말. 그와 함께 난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튀어 오르듯 몸을 일으킨 뒤 그녀가 있는 곳의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린다. 그와 동시에 벤치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마치 커다란 몽둥이로 짓뭉개 버린 것처럼.

“역시나 생각대로였군요.”

그와 동시에 나와 날개의 사이를 가로막으며 캐스터가 실체화 되었다. 내게 등을 돌린 채 캐스터는 오른손의 검을 들어 앞으로 내세웠다. 그와 함께 벤치를 부순 장본인 역시 캐스터를 향해 몸을 돌린다.

핏기가 완전히 빠져버린 것 같은 창백한 피부. 그 것은 순수하기 그지없는 깨끗한 눈 같다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그와 함께 가로등의 불빛 아래 비추어지는 화려한 금발과 붉은 눈.  특이한 것은 그 붉은 눈에는 초점이 있지 않다는 점일까? 이성을 잃고 있는 듯한 눈을 가진 전사는 자신의 키보다도 큰 거대한 검은색의 대검을 들고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기에 전투할 준비를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별다른 도구나 마술을 위한 촉매도 없는, 그런 맨몸으로 어떻게 싸우겠다는 겁니까?”

“미안.”

“미안하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체 ‘갔다 올게’가 뭡니까? 제가 마음대로 뒤를 따라오지 않았으면 어떻게 할 뻔했습니까?”

캐스터는 꽤나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날 꾸짖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평소의 모습을 되찾은 뒤, 다시 한 번 검을 고쳐들었다. 그리고 입 끝을 말아 올리고 비웃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날개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야기는 나중에. 일단은 적과 싸웁니다.”

“당신은 저 녀석과는 달리 제대로 된 서번트 같네? 가람이 녀석. 오늘 보니까 마스터라는 자각도 없이 학교에도 혼자 온 것 같았는데. 당신이 근처에 없었으면 손을 썼을지도 몰라.”

“물론 앞으로도 기회는 없을겁니다.”

날개와 캐스터는 당사자를 바로 눈앞에 둔 채 그런 가슴 찔리는 대사를 서슴없이 내뱉었다. 물론 그 것들은 모두 맞는 말이기에 할 말은 없었지만....... 금방이라도 앞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그녀의 서번트를 만류하며 날개는 캐스터를 천천히 뜯어보았다.

“검을 쓰는 서번트라. 일단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세이버, 버서커, 라이더, 어쌔신 정도인가? 버서커는 아닌 것 같고. 흐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날카로운 눈으로 캐스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겉모습만으로는 캐스터의 클래스를 짐작하기는 힘든 것 같았다. 사실 캐스터가 검을 사용한다는 것도 상상하기 힘들테니까. 게다가 내 기억으로는 그 어떤 영웅도 지금 캐스터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의 영웅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 역시 캐스터가 자신의 클래스를 알려주기 전 까지는 캐스터의 클래스를 몰랐었다.

풀어헤칠 경우 상당히 길게 내려오는 검은빛 머리카락은 틀어 올려 천으로 감싸듯 묶어 놓았다. 투박하면서도 얇은 캐스터의 검은 실용성 보다는 의장용 검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도복 같은 느낌의 흰 옷을 입은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날개의 시선에 부담을 느끼는지 시선을 날개의 서번트에게로 돌렸고, 결국 날개는 그녀의 정체를 생각하는 일을 포기한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뭐. 죽인 뒤 알아내도 상관은 없겠지?”

“■■■■■■■■■■!”

거대한 포효와 함께 검은 빛의 대검이 한 밤의 학교를 뒤덮었다.






무식하다고 밖에 표현하기 힘든 커다란 검과는 대조적으로 연약해 보이기까지 한 날개의 서번트는 단 한번의 도약으로 캐스터의 앞에 다달았다. 땅에 착지하는 것과 함께 휘둘러지는 대검. 스치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완전히 부서져 나갈 것 같은 대검을 캐스터는 재빨리 몸을 옆으로 움직이며 피해냈다. 검의 위력이 너무 강해서일까? 캐스터는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여유로운 거리까지 물러났고, 첫 번째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붉은 눈의 광전사는 화가 났는지 다시 한 번 울부짖었다.

“■■■■■■■■■■!”

그리고 이어지는 세 번의 참격. 고막이 터질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의 큰 소리로 검이 울었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검풍만으로 주변의 땅이 패이고 나무가 꺾여져 버린다. 단 세 번 털어진 검격에 벤치 주변은 단숨에 초토화 되어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캐스터는 그 공격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녀는 세 번 털어진 검을 몸을 흔들어 피해낸 뒤 다시 이어지는 일격을 검으로 직접 받아내었다. 캐스터의 검과 검은 빛의 대검이 만나고 귀가 멀 것 같은 쇳소리가 하늘로 울려 퍼진다.

“흐음. 그런가? 일단은 뒤로 물러서.”

중간에 끼어든 날개의 말에 그녀의 서번트는 군소리 없이 캐스터에게서 떨어져 그녀의 앞에 가서 섰다. 갑작스레 전투가 중단되었고, 캐스터 역시 그녀의 상대처럼 내 앞으로 돌아온 뒤 검을 고쳐 쥐었다. 가늘게 떨리는 팔. 그리고 흐트러진 호흡. 단 한 번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지만 그 것만으로도 캐스터는 상당히 버거워 하는 것 같았다.

“캐스터가 검을 쓰다니. 확실히 예상 못했어.”

“!”

자신의 클래스를 정확히 집어낸 날개의 말에 캐스터는 약간 동요하는 것 같았다. 그런 캐스터의 반응을 즐기는 듯 날개는 입가에 작은 웃음을 머금고 말을 이어나갔다.

“검을 쓰는 것을 보니 완전 초짜더군. 검을 흘리는 것도 없이 그저 검을 그대로 받아내는 것뿐이야. 아마도 검과 함께 전신에 강화를 두르고 싸우고 있는 것 같은데.”

“꽤나 날카롭군요.”

캐스터는 날개의 말에 긍정을 표하며 다시 검을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전처럼 양손으로 검을 잡지 않았다. 오른 손에 검을 잡고, 왼손을 들어 앞으로 내민다. 검지와 중지를 펴고 오른 손의 검을 가로로 뉘인 뒤 검 날에 가져가 댄 뒤 눈을 감는다.

“의상도 그렇고, 중국 쪽의 주술사인가?”

“상상은 마음대로.”

캐스터는 그렇게 말하며 무언가 알지 못하는 말을 중얼거렸다. 아마도 그녀가 사용하는 주문의 영창일 것이다. 하지만 그 것을 그대로 두고 싶지는 않았던지 그녀의 영창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날개는 자신의 서번트를 가로막던 팔을 치웠다.

“어차피 그래봤자 소용없어. 강화로 검을 받아낼 수는 있을지 몰라도 몸에 전해지는 충격은 줄어들지 않아.”

“■■■■■■■■■■!”

날개의 말과 함께 광전사는 다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몸을 날렸다. 포효하는 소리에 귀가 멍멍해진다.

“천뇌격! 天雷擊!”

그렇지만 캐스터는 당황하지 않고 주문을 완성시켰다. 거대한 대검을 들고 다시 한 번 도약하는 순간 그녀는 양 팔을 교차했다가 검 끝을 상대를 향해 뻗으며 크게 외쳤다. 그녀의 커다란 외침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전류! 서번트를 향한 검에서 쏟아지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전류는 만화에서나 볼 듯한 실체화되어 있는 전류였다. 아니, 단순한 전류 정도가 아니다. 그 것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텐 카운트 이상의 대 마술 정도. 그 근처에만 가도 왠만한 사람은 단숨에 목숨을 잃을 정도의 강력한 마술을 캐스터는 단순히 2,3 소절을 읊는 것으로 발동 시켰다.

“■■■■■■■■■■!”

날개의 서번트는 그 뇌격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내었다. 다시 한 번 터져 나오는 괴성. 단번에 소멸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강한 전류에 전신의 근육이 수축해 버린 것 같았다. 그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용케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고, 그런 상대의 모습에 캐스터는 바로 몸을 날렸다.

“훗.”

“!”

하지만 순간 시간이 정지했다. 캐스터의 주문이 그녀의 서번트를 감싸는 순간 바라본 날개의 얼굴에는 가느다란 미소가 서려있었다.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전신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그 순간 난 다른 생각은 하지도 않고 바로 몸을 날렸다!

“■■■■■■■■■■!”

그와 함께 날개의 서번트가 포효한다. 전진을 멈춘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팔팔한 모습의 서번트는 검을 높이 들었고, 캐스터가 검의 간격 안에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그 검을 휘둘렀다. 속임수! 이유는 모르겠지만 캐스터의 주문이 거의 효과가 없었던 것 같았다. 캐스터는 순간 당황한 듯 움직임이 일순 느려졌고 그 결과 그녀는 대검의 궤적에 빨려들고 있었다.

“위험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간발의 차이로 검에 맞지 않은 캐스터. 순간 귀청을 때리는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짓이야!”

캐스터는 검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댓가로 날개의 외침과 함께 캐스터를 밀어낸 나는 그 검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마스터!”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89 SRW DG - Fly to the Universe - 05화 : 늘어가는 골치덩어리 [7] 카루나 2004.02.09 428
288 SRW DG - Fly to the Universe - 06화 : 변태(?) 엔지니어 [4] 카루나 2004.02.13 612
287 기동악당전설 nightmare 17화(창공의 영혼 속에서) [2] 유민 2004.02.16 392
286 SRW DG - Fly to the Universe - 07화. 마녀와 광전사. 이상한 듀엣들... [7] 카루나 2004.02.16 429
285 기동악당전설 nightmare.. 에필로그..(완결) [3] 유민 2004.02.18 605
284 SRW DG - Fly to the Universe - 08화. 성장하는 소녀 [8] 카루나 2004.02.18 434
283 SRW DG - Fly to the Universe - 09화. 개전 [9] 카루나 2004.02.19 432
282 SRW DG - Fly to the Universe - 10화. 제왕 날다 [10] 카루나 2004.02.28 406
281 SRW DG - Fly to the Universe - 11화. 양날의 검 [6] 카루나 2004.03.09 527
280 SRW DG - Fly to the Universe - 12화. 龍과 虎 [13] 카루나 2004.03.18 1091
279 [Fate/Sticky night] 3/2 - 프롤로그 01편 [6] 카루나 2004.04.23 472
278 [Fate/Sticky night] 3/2 - 프롤로그 02편 [5] 카루나 2004.04.23 402
277 櫻道場 - 운명은 흩날리는 벚꽃처럼 - 1st sakura [3] 카루나 2004.04.23 694
276 [Fate/Sticky night] 3/3 - Open the gate 01편 [9] 카루나 2004.04.25 439
275 櫻道場 - 운명은 흩날리는 벚꽃처럼 - 2nd Sakura [6] 카루나 2004.04.25 635
» [Fate/Sticky night] 3 / 3 Open the gate - 02편 [6] 카루나 2004.04.27 501
273 櫻道場 - 운명은 흩날리는 벚꽃처럼 - 3rd Sakura [5] 카루나 2004.04.27 487
272 [Fate/Sticky night] 3 / 4 Partner - 01편 [7] 카루나 2004.05.05 471
271 櫻道場 - 운명은 흩날리는 벚꽃처럼 - 4th Sakura [4] 카루나 2004.05.05 484
270 SRW DG - Fly to the Universe - 13화. 프로페서 라디언트 [9] 카루나 2004.05.05 833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