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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아직도 모르겠어?"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하지만 절대 즐거워 하는 표정이 아니다. 지금 막 이 곳에 와서 저 모습을 보는 사람이라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눈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입가에 한껏 비웃음을 머금은 채로 내게 쏘아붙이듯이 말한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보면 단순한 비웃음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고통스러워 보이기도, 후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복잡한 미소. 그 안에 담긴 감정이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내가 아는 것보다도 훨씬 복잡한 감정일 것이다.

"좋아. 그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이야기 해 줄께."

콧방귀를 뀌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을 잇는다. 그 목소리에는 지금처럼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얼굴에는 조금 전처럼 비웃는 듯 보이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네 룸메이트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자 단 하나뿐인 가족."

마치 책에 있는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무덤덤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진 얼굴.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저 것은 단순한 비웃음이 아니다. 고통? 후회? 그 것들 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역시 저 모습은,

"내가 그를 죽였어."

그 어긋나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은 지독하게도 슬퍼보였다.







Team Clavolt  - 고전적인 반란  -     Project. 잊혀진 자들
        외전    천로역정~☆ - Ave, Spirit of the Departed! -
                                              
                                                   - 도깨비 반장님 Jinsan -
                                                    오전 : 아리사리의 연구실








다시 한 번 검사를 하는 것 같다. 다시 한 번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머리 위로 내려오는 투구같은 측정기. 하지만 여전히 결과는 마찬가지인듯 하다. 기계는 조금 전과 똑같이 '삐삐삐삐~!' 거리는 시끄러운 소리를 낼 뿐이었다.

"이상하네요오~ 어째서 에러 메세지가 뜰까요오~?"

그 소리를 들으며 아리사리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다시 기기를 조작한다. 한참동안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옆에 있는 두꺼운 책을 뒤져본다. 하지만 이번에도 별다른 이상한 점은 찾지 못한 것인지 결국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버린다.

"죄송해요오~ 측정기 상태가 조금 안 좋은가봐요오~"

두손을 앞으로 모으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난처한 웃음. 그 모습에 결국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에요. 어쩔 수 없는거죠 뭐."

선생님의 말에 답하고는 다시 한 번 내 손을 바라본다. 하지만 역시나 별다른 변화는 느껴지지 않는다. 뭐, 생각해보면 어찌되건 외견상의 변화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서도.

"능력을 사용했던 것이 분명한가요오~?"

"그거야 그렇지만..."

다시 한 번 물음을 던지는 선생님의 눈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긁적이며 답한다.



오늘 수업 시간은 주술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이미 주술을 한 번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주술 담당 아비시니언 선생님은 한참 이것저것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약간 히스테릭하게까지 느껴지는 물음. 심문이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많은 질문을 던졌던 아비시니언 선생님은 갑자기 한숨을 푹 쉬더니

'당장 가서 검사 받고 와.'

라고 하며 불문곡직하고 이리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나온 결과는...

"이상하네요오~ 보통은 무리가 가도 몸에 무리가 갈 뿐인데에~ 주술 능력에 변화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거든요오~ 그런데 어째서일까요오~?"

끙끙거리며 아리사리 선생님은 계속 이런저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몇 번이고 반복된 검사와 그 때마다 나오는 경고음. 그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지만 생각외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 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안되겠어요오~ 이거 도움을 좀 받아야 겠는데요오~"

한참을 고민하던 선생님은 결국 포기한 듯 자신의 책상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 앞에 있던 전화기를 들고 버튼은 꾹꾹 눌렀다.

"아, 아비시니언 선생니임~? 아직 수업 중이시죠오~? 그럼 산이 좀 보내주실 수 있으세요오~?"

아무래도 전화를 한 곳은 내가 수업을 받던 아비시니언 선생님에게로 인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더니 웃는 얼굴로 전화를 끊었고, 내 쪽을 바라보며 싱긋하고 웃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오~ 산이가 오면 곧 해결될 거에요오~"

"산... 이라면... 혹시 반장을 말하는 건가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물어본 내게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리고 양팔을 벌려 쭈욱~ 하고 방을 감싸 안을 것 처럼 크게 벌리면서 말을 이었다.

"여기 이 기계들은요오~ 저언부 산이가 만든거에요오~ 그러니까아~ 산이가 오면 이상해진 이유를 알 수 있을 거에요오~"

선생님의 말에 주변을 둘러본다. 방 안을 가득 채운 복잡한 선과 기계들. 대충 보아도 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초대형 컴퓨터들 부터 시작해서 별의별 기계들이 잔뜩 놓여져 있었다. 이름은 커녕 대체 뭐에 쓰는 기계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고, 어느 선이 어느 곳으로 이어져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복잡한 방 안의 내부.

"이 것을 전부 다 반장... 그러니까 진산이 만든거라구요?"

"네에~ 산이는 기계에 관해서라면 세상에서 제에일~ 뛰어나다구요오~"

아리사리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엄지 손가락을 치켜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말에 솔직히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반장에 대해 기억나는 것은 뿔테 안경을 쓴 모습과 말 없이 제 할일만 똑바로 하던 모습뿐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말 없이 공부만하는 그런 모범생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작업복을 입고 기름때를 묻힌 채 기계와 씨름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지만 역시 매치가 잘 되지 않는다.

"역시, 첫 인상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건가.... 하지만..."

고개를 저어 진산(With 몽키스패너 & 작업복) 모습을 지워버린다. 역시 반장에게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말 없이 도서실에 앉아서 원문으로 된 특수 상대성 이론에 관한 논문을 읽는 모습 같은 것만이 그려질 뿐이었다.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나란 녀석도 꽤나 다른 사람을 틀 안에 가두기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쿵쿵쿵

"...."

  오늘 이 곳에 오면서도 느꼈던 것이고, 지금도 새삼스레 기억나는 것이지만 역시 여기는 문 부터가 살벌한 곳이다. 저걸 노크라고 하는 사람 있다면 대체 그 사람 사는 집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구경 좀 해보고 싶을 정도다. 저건 거의 주먹으로 [두들기는] 수준의 강도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선생님은 밖에 서 있는 것이 진산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거의 뛰다시피 문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코!"

....

그리고, 왠지 당연한 듯이 아래쪽의 전선에 걸려 넘어져 버렸다. 그 것도 얼굴부터 정통으로.

"... 들어가겠습니다."

선생님의 비명 소리를 들은 것일까? 서슴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진산은 몸을 낮추며 선생님께 손을 내밀었고, 선생님은 그 손을 잡아 몸을 일으켰다.

"하오오~ 산아, 고마워어~"

"그러니까 뛰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 드렸잖습니까."

연신 코를 문지르는 선생님의 모습을보며 진산은 무덤덤하게 답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선생님은 진산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지만 진산은 그런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바로 선생님께 사무적인 태도로 말을 걸었다. 아니, 눈치 못챘다기 보다는 그런 사적인 대화를 아예 시작도 못하게 막아버리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무슨 문제이신가요?"

"아, 으응~ 측정기가 자꾸 오류가 나는 것 같아서어~ 뭔가 이상이 있나 하고 불렀어어~"

선생님은 진산의 말에 문득 정신을 차린 듯 황급히 대답했다. 선생님의 말에 진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앉았던 측정기 쪽으로 다가간 후, 뒤에 이어지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이것저것 만지기 시작한다.

몇 번 기계를 조작해보던 진산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다가 몇 가지 버튼을 조작했다. 그러자 '퓨슉~' 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를 덮고 있던 하얀색의 외장이 열렸고, 진사은 그 안에 머리를 거의 집어넣다시피 하며 이것저것을 만져보기 시작했다.

"우으~ 괜찮을까아?"

초조한 듯이 진산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모습. 하지만 진산의 입가에는 선생님의 표정과는 정반대로 작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조금 전의 사무적인 태도와는 달리 눈은 말 그대로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반짝반짝이라는 의성어는 바로 이럴 때 쓰는 것이겠지.

....

솔직히 조금 놀랐다.

평소에는 지흑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말이 없는, 더불어 표정의 변화도 보기 힘든 진산이다. 이렇게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말 그대로 처음 있는 일 같았다.

"확실히... 잘 하는 것 보다도 먼저 좋아하는 걸까나..."

그 모습을 보며 가만히 중얼거린다. 계속 기계를 만지고 있는 진산의 모습은 실제로 꽤나 즐거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돌이켜보면 진산이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 어디에도 이상이 있는 곳이 없는데요?"

한참 동안 기계를 손보던 진산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리고는 당황해하는 선생님을 지나쳐 측정기를 조작하는 컴퓨터 앞에 앉는다. 키보드에 손을 올린 뒤 잠시 눈을 깜박이다가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린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타자 연습 프로그램을 돌리면 1000 타는 능히 나올 것 같은 빠른 손놀림이었다.

그렇게 얼마동안 키보드를 두드리던 진산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역시, 소프트 쪽에도 별다른 문제는 없군요."

"우에에~? 그럼 어째서어~?"

진산의 말에 선생님은 눈에 띄게 당황하며 허둥대기 시작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한 채로. 그 모습에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어 진산을 바라보자 진산은 언제나 보아왔던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에러 메세지가 뜨는 경우는 둘 중 하나입니다. 기기 자체에 문제가 생겨 측정이 잘못되는 경우나,"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말을 끊는다. 그리고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무표정한 얼굴을 맞대는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선생님도 그 것을 느낀 것인지 양손을 가슴 앞으로 모은 채 꿀꺽 하고 침을 삼킨다. 진산은 잠시 그렇게 내 눈을 바라보다가...

"측정 대상에게 주술적인 능력이 전혀 없을 때 뿐입니다. 이 기계는 어디까지나 측정 대상에게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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