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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m Clavolt  - 고전적인 반란  -     Project. 잊혀진 자들
        외전    천로역정~☆ - Ave, Spirit of the Departed! -
                                              
                                                     - 푸른 늑대 Chanrang-
                                                          점심시간 : 옥상




점심을 같이 먹자며 연희가 날 끌고 온 곳은 다름 아닌 학교의 옥상이었다. 보통의 옥상은 잠겨있지 않던가? 하는 의문에 연희는 말 없이 웃으며 커다란 열쇠 뭉치를 꺼내보일 뿐이었다.

"학교 열쇠도 가지고 있는거야?"

"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며 잠겨있는 커다란 자물쇠에 열쇠를 꽂아 넣고 돌린다. 연희의 말에서는 왠지 위험하게 들리는 뉘앙스가 팍팍 풍겨나오고 있었지만 차마 확인할 염두는 나지 않았다.

"보통 만화 같은 것을 보면 옥상에서 밥 먹는 일이 많지 않아? 왜 항상 잠가 놓는 것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건 저기 바다 건너 섬나라 이야기겠지 라고 중얼거리며 연희가 연 문을 통해 옥상으로 나선다. 적어도 지금까지 다녔던 학교 중에서는 옥상을 열어 놓는 곳이 없었으니까 이 나라와는 관계 없는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커다란 철문을 지나 옥상에 발을 내딛는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옥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보다도 우선 아무 것도 없었다.

"어디서 먹는거야?"

아무 것도 없어서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공간. 차라리 아래쪽에 있는 벤치에서 밥을 먹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대로라면 그냥 맨바닥에 앉아서 밥을 먹어야 할 것 같기도 한데... 하고 중얼거리며 물었다.

"이쪽. 벤치가 있거든."

그 물음에 연희는 간단하게 답하며 내 팔을 잡아 이끈다. 보아하니 이 쪽이 아니라 뒤로 돌아가야 하는 것 같다.

"벤치?"

그렇다고 해서 의문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옥상에 일부러 그런 휴식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면 굳이 잠가 놓을 필요는 없잖아. 아니, 그보다 먼저 이렇게 반쪽만 떼어서 그런 만들어 놓았을리는 더더욱 없을 것 아닌가?

"응. 예전에 하나 떼어다가 올려 놓았지. 들고 올라오는데 약간 힘들었다고."

예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당신 대체 뭐하는 분입니까?

"알면서~ 아지랑이 나래의 관리인."

쿡쿡거리며 웃는다. 역시 당해낼 수 없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연희에게 끌리다시피 하며 옥상 뒤쪽으로 걸어간다. 연희는 바닥에 벤치를 고정하는 것이 힘들었다느니, 작은 정원처럼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이 있는데 어떠냐느니 등의 이야기를 재잘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 나 보다 그녀들을 발견하는 것이 늦어진 것 같다.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춘다. 따스한 햇살 아래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지만, 단지 갈색의 나무 벤치만이 전부인 곳이었지만 그 것 만으로도 그림이 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끊임없이 꺼내며 연신 웃음 짓는 하얀 소녀와 그 옆에서 말없이 대꾸도 하지 앟은 채 묵묵히 밥을 먹고 있는 검은 소녀. 그 대조적인 흑과 백의 모습은 정 반대의 모습이면서 이상할 정도로 잘 어울렸다.

"어라? 왜 그래 형부?"

말없이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연희가 몇 번이나 날 부르고 난 뒤의 일이었다. 부우~ 하고 볼을 부풀리는 연희의 모습에 재빨리 사과했지만 연희는 툴툴거리는 것을 그치지 않는다.

"미안해. 선객이 있는 것 같아서."

"그렇다고 그렇게 반쯤 넋이 나갈리가 없잖아."

투덜거리며 고개를 돌린다. 선객이 있건없건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태도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자 어느 정도 기분이 풀린 것인지 '다시는 그러지 마!' 라고 말하며 고개를 돌린다.

"어라? 마고랑 태려네?"

그리고, 그제서야 먼저 온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인지 놀랐다는 몸짓을 취한다. 무언가 한 박자 느리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연희가 싸늘한 표정으로 이 쪽을 노려보며 물었다.

"설마 저 둘의 모습을 보고 넋이 나갔다든지?"

... 저기요. 그 화염방사기는 일단 턱 밑에서 치워주시면 안될까요? 아니, 그 이전에 그건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것입니까?

연희의 말에 맹렬히 고개를 흔든다. 하지만 연희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않는다. 흐음~ 하며 이 쪽을 노려보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켜버렸다.

"아, 아니. 그러니까. 여기 잠겨있는데 들어온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을 뿐이라니까. 정말이야."

필사적으로 항변해본다. 하지만 연희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느다. 잠시 내 쪽을 노려보며 식은땀을 한바가지나 쏟게 만든 뒤에야 겨우 눈길을 거두어 선객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뭐야? 어떻게 올라온거야?"

둘에게로 접근하며 연희는 다짜고짜 그 말부터 꺼낸다. 태려씨는 그 말을 듣고서야 연희가 온 것을 눈치챈 것인지 이 쪽을 보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어라? 연희씨군요.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신지?"

보기만 해도 빠져버릴 것 같은 미소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짐짓 태연한 척 가볍게 인사를 건넨다. 내 인사를 받으며 다시 한 번 웃는 태려씨의 모습에 연희조차 할 말을 잊은 채 그녀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고 있잖냐, 불돌이. 너까지 여우에게 홀린거냐?"

그 침묵을 깬 것은 옆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던 마고씨였다.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이 쪽을 바라보는 마고씨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연희는 읏! 하고 잠시 숨을 삼키고는 짐짓 큰 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먼저 물었어. 여긴 어떻게 올라온거야?"

"몰라서 묻나? 내가 가지 못하는 곳은 없어."

연희의 물음에 마고씨가 피식 하고 웃으면서 답한다. 연희는 그 말을 듣더니 콧방귀를 뀌며 마고씨의 말을 받아친다.

"천국에는 못 들어갈 듯 싶은데?"

"천국? 하! 신이건 천사건 엎드려서 내 구두를 핥게 만들어주지. 그 따위 곳. 못갈 곳도 아니야."

종교인들이 들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마고씨였다. 그 자신만만한 태도에 살짝 기가 죽은 듯 연희는 한 발 뒤로 물러나는 듯 보였지만 이내 기운을 회복해 다시 공격을 퍼부었다.

"호오. 좋아. 그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 번 볼까?"

"멋대로. 하지만 꿈 깨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고 충고하지. 최소한 홍..."

"마고! 그만해!"

순간 마고씨의 말을 끊으며 태려씨가 고함을 질렀다. 그 비명같은 목소리에 정신이 든 듯 마고씨는 입을 다문다. 연희 역시 마고를 노려보다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이야?"

"아, 아무 것도 아니에요. 무슨 일로 오신거에요? 영웅씨?"

연희에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물어보려 했지만 태려씨가 그 말을 끊는다. 왠지 석연찮은 태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느낌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왠지 쓰게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태려씨는 마고씨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마고씨는 또 어린 아이 취급을 한다며 툴툴거렸지만 별로 제지할 생각은 없는 것인지 다시 도시락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어라? 저를 아세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문득 태려씨가 연희가 아닌 날 불렀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물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태려씨를 본 것은 단 한 번뿐. 그 것도 잠시 스쳐지나가는 듯한 느낌이었을 뿐이다. 통성명을 한 기억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풍월이 알려줬어요."

가볍게 웃으면서 답해준다. 풍월 이 자식! 간만에 옳은 일 한 번 하는구나!

입이 벌어지려는 것을 애써 막는다.

"풍월을 잘 아시나봐요?"

"소꿉친구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요?"

... 풍월 이 자식! 나 보고 매일 뭐라뭐라 떠들어 댔지만 네 녀석은 이미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잖냐! 이 녀석. 오늘 방에 돌아가는 순간 네 영정 사진이 기숙사 전면에 걸리게 될거다.

당장이라도 풍월에게 달려가 헤드락을 걸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겨우 억누른다. 이상하다는 듯이 날 바라보는 태려씨의 시선을 느끼며 재빨리 표정을 바꾸었다. 하아, 진정진정.

"그런데 무슨 일로 오신거죠?"

어느 정도 숨을 돌리자 태려씨가 그에 맞춰 질문을 던진다. 아무래도 조금은 티가 나는 것 같았다. 가볍게 머리를 긁고 있는 사이 연희씨가 재빨리 그 말에 대답했다.

"형부랑 상의할 것이 있어서 말이야. 먼저 온 사람이 있는지는 몰랐어."

"형부?"

연희의 말에 딸려나온 호칭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것인지 태려씨가 되묻는다. 그에 재빨리 아무 것도 아닌 연희의 장난이라고 대답해 주려 했지만 마고씨의 말이 더 빨랐다.

"결국은 데이트 하러 왔다는 거군."

"그, 그럴리가 없잖아!"

마고씨가 엄청난 말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즉시 되받아치는 연희. 하지만 마고씨는 재미있는 것을 본 어린 아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가희 핑계를 대고 끌어들인 것 아닌가? 형부라고 부르고 있지만 속으로는 '자기~' 라든지 '여보~' 라든지, 그 것도 아니면 '주인님~' 정도로 부르고 있겠지."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야!"

연희가 쿠악! 하고 화를 내며 마고씨의 말에 반박한다. 하지만 마고씨는 여전히 능글맞게 웃으며 계속 연희를 골려댈 뿐이었다. 옆에서 태려씨가 말리는 것 같았지만 이번에는 쉽게 그만둘 것 같은 눈치가 아니다. 한 번 물은 사냥감은 쉽게 놓지 않는다는 것일까? 왠지 그런 맹수의 분위기가 마고씨에게 물씬 풍겨나오고 있었다.

왠지 마고씨는 장난이라기 보다는 진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모습을 옆에서 보는 것도 어쩌면 즐거울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조금 즐겁기도 하다. 약간은 곤란한, 그러니까 얼굴 붉어지게 만드는 이야기가 오가는 면도 없지않아 있기는 하지만.

다만 문제가 있다면...

어째 오늘 점심 먹기는 그른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 뿐이었다. 그래. 단지 그 뿐이다.

...

... 제길. 배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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