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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m Clavolt  - 고전적인 반란  -     Project. 잊혀진 자들
        외전    천로역정~☆ - Ave, Spirit of the Departed! -
                                              
                                          - 아지랑이 나래 Prologue -


이 쪽으로 걸어오는 것은 검은색 일색의 소녀였다.

보는 것 만으로도 더워 보이는 옷차림이다. 따뜻한 봄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검은 색의 코트를 입고 검은 색의 챙이 넓은, 마치 만화에서 볼 듯한 해골 장식이 달린 마녀 모자로 얼굴을 푹 가리고 있었다. 필시 그 코트 앞섶이 열려있지 않았다면 성별을 알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었겠지. 코트 아래에 보이는 여자 교복만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여성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키는 150cm 정도일까? 굉장히 작은 편이었다. 코트의 주머니 속에 손을 찔러넣고 다른 한 손에는 작은 물병을 든 채로 걸어오고 있었다.

"왜 방해하는거냐? 마녀."

그 소녀를 보며 가라호가 그르렁 거린다. 낮게 울려퍼지는 목소리. 마치 맹수가 노려보는 것 같다. 하지만 남자의 사나운 눈총도 소녀에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고양이가 아니라 붕어였군."

한심하다는 투로 중얼거린다. 남자는 그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마녀라 불린 소녀는 아예 무시해 버린 채 풍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연극은 그만 하시지, 바람돌이. 컨셉이라면 별 수 없지만."

"... 쳇, 눈치 채셨나?"

"어설프니까."

소녀의 말과 동시에 풍월의 몸이 흐릿하게 변해간다. 마치 주변에 녹아 사라지는 것 같다. 어느샌가 가라호의 손에서 사라진 풍월의 모습 뒤에는 한 줄기의 푸른색 기운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 마저도 바람이 부는 것과 동시에 사라져 버린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어느샌가 풍월은 내 옆에 서 있었다.

"놈! 무슨 수작인거냐!"

"역시 붕어로군. 아직도 이해 못한건가?"

목소리를 높이는 남자와 어이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는 여자. 그 사이에서 풍월은 여유만만한 미소로 입을 열었다.

"맨손으로 바람을 잡을 수는 없지. 안그래, 네로?"

소리 죽여 웃는다. 하지만 그 것은 명백한 비웃음이다. 네로. 아니, 가라호에게 보란 듯이 웃는 풍월의 모습에 가라호는 몸을 낮추었다.

"설마 못 잡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풍월?"

가라호의 말에 풍월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 가라호의 커다란 몸 주변의 광경이 일렁이는 것 처럼 보인다. 아니, 마치 연기라도 피어나는 것 처럼 검은색의 기운이 가라호의 전신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풍월 역시 팔을 들어올린다. 양 손에 푸른색의 기운이 소용돌이 치듯이 몰려들고 있었다.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의 눈에서 불꽃이 일렁이는 것 같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무서웠다. 역시 그냥 바로 자퇴서 내러 갈 것을 그랬나?

"거기까지. 더 이상 귀찮게 하면 평생동안 발기가 안되게 해주지."

하지만 그 순간 끼어든 소녀의 한 마디 말에 거짓말처럼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물을 끼얹어 버린 것 처럼 싸늘하게 식어버린 공기. 단 한마디의 말로 이렇게까지 분위기를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한 느낌이었다.

.... 그런데 뭐가 안되게 한다고?

"그게 싫다면 15초를 넘기지 못하는 조루로 만들어줄 용의도 충분히 있는데. 어느 쪽이 좋은가?"

조금 전에 발기 어쩌고 한 것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던거냐!

소녀는 양손을 들어 가라호와 풍월을 가리킨채로 그렇게 말한다. 그 양손 앞에는 복잡한 형태의 붉은 도형들이 그려져 있는 상태였다. 모자 아래에 보이는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어렵지않게 알 수 있었다. 저 것은 진심이다.

풍월은 잠시 소녀를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쉰다. 고개를 돌려보니 가라호 역시 어깨에 힘을 빼고는 '쳇'하며 무언가 투덜대는 모습이 보인다. 하긴, 방금 온 나라도 알 수 있을 정도인데 가라호와 풍월이라면 더 심하겠지.

.... 역시 남자한테는 최악의 협박인 것 같다... 라고 감탄할 내용이냐! 이게!

"이제서야 말이 좀 통하는 것 같군."

하지만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는다. 팔을 내리더니 다시 주머니에 찔러넣는다. 발걸음을 옮기더니 건물 입구 쪽에 있던 벤치에 가서 앉는다.

한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멍하니 서 있는 우리를 바라보더니 짜증이 물씬 배어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냐? 더 볼 일이라도?"

"...."

소녀의 물음에 가라호는 아무 말 없이 소녀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소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양이. 네 녀석 동정이지?"

"... 뭐?"

"여자는 그런 쓸데없는 미련 때문에 고민하는 남자를 싫어한다는거다. 그러니까 저 곰탱이 하나 못 자빠트리고 지금까지 동정인 거겠지."

"크윽..."

숨을 삼키며 분한 듯이 고개를 떨군다. 아, 분명히 상처받았다. 그 것도 매우 크게.... 왠지 모르게 지금까지 본 위협적인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가라호가 불쌍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쪽은?"

"...에? 나?"

잠시 가라호를 향해 속으로 묵념하고 있는 사이 소녀는 고개를 이 쪽으로 돌렸다. 그 눈초리에 나도 모르게 뜨끔했다. 그... 그러고보니...

"동정이냐고 묻는게 아니다. 동정은 맞는 것 같다만."

"윽..."

정곡. 가슴 한 가운데를 칼로 후벼파는 느낌이었다.

.... 비가 오는건가. 내 눈에 맺힌 뜨거운 무언가는 분명 비인 것이지?

"... 멍청하긴."

그리고 다시 한 번 커다란 칼이 날아와 가슴에 꽂혔다. 뭐랄까... 왠지 모르게 울고 싶어졌다.

"아직도 볼 일이 있냐는거다."

"... 아니, 별로."

풍월을 따라 몸을 돌린다. 평범함을 가장하고는 있지만 입 안에서는 여전히 투덜투덜 거리는 것이 어지간히 기분 나쁜 모양이었다.

하하, 예상 외네. 풍월이 물러나는 여자가 있다니...

"제길... 두고보자. 언젠가 침대 위에서 내 등을 실컷 할퀴게 만들어 주겠어."

.... 가 아니라 역시나인가...

풍월 답다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그 것도 잠시, 뒤에서 들려온 말에 풍월의 발걸음이 멈춘다.

"제대로 서지도 않는 녀석이 뭘 어쩐다고?"

순간 풍월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린다. 방금 전까지 보였던 자신만만한 모습과는 정 반대의 모습. 진짜 뼛속까지 당황하고 있다는 것이 여과없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뭐라고 한거지?

"무... 무슨 소리야?"

말까지 더듬고 있었다. 당황하고 있다! 그 풍월이 당황하고 있어!

꿈에서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풍월의 모습에 놀라고 있는 사이 그 소녀는 싸늘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다. 요즘 실적이 뜸하더군. 발기부전에 걸린 것 처럼. 안그래? 바람둥이씨? 그 밑에 깔리느니 차라리 혼자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데?"

"...너!"

소녀의 말에 풍월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화를 내는 것 같기도, 당황하는 것 같기도 한 표정이었다. 그 반응을 보니 어째 소녀의 말이 사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어이, 설마...

"뭐, 그래봤... 윽!"

"그만해. 마고. 여자가 조신하게 행동해야지."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싸늘한 웃음과 함께 풍월을 다시 한 번 몰아붙이려던 소녀의 말문이 막힌다. 갑자기 소리없이 그녀의 뒤에서 나타난 한 명의 여성이 그대로 모자를 푹 눌러버린 것이었다.

"놔! 백여우! 저 녀석의 버릇을 고쳐놓겠..."

"화낸다?"

"... 쳇."

소녀는 화를 내 보려 하지만 아무래도 그 등 뒤의 여자는 이길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대로 침묵. 모자를 벗고 구겨진 부분을 펴며 연신 투덜거린다.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보이는 소녀의 얼굴. 햇빛이 눈부신 것인지, 아니면 단지 짜증이 난 것인지 인상을 찌푸린 채로 모자를 고쳐쓴다.

그리고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여자가 고개를 들더니 이 쪽을 보며 입을 열었다.

"미안, 풍월. 그리고..."

"....."

".... 하아. 이 쪽은 나영웅. 오늘 입학한 내 룸메이트."

"아, 네. 나영웅씨. 미안해요. 보다시피 마고가 조금 장난이 심해서요."

"...."

무언가 말을 해 보려 했지만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뭐랄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햇빛에 빛나는 백금발의 머리카락은 땅에 끌릴 것 처럼 길다.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는 그 움직임은 너무나 부드러워 만져보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 정도였다. 그 아래 미소짓고 있는 얼굴. 완벽한 미모의 여성이었다.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와 대조적으로 핏빛처럼 붉은 새빨간 입술은 단지 그 것 만으로도 일곱번 사람을 죽여버릴 수 있을 만큼 매혹적이다. 가느다란 몸의 곡선 역시 감탄할 정도로 균형잡혀 있는 모습. 마치 신이 조각한 것 같은 완벽한 미의 소유자가 눈 앞에 서 있었다.

학원에서 분명 수 많은 미녀들을 만나 보았지만 단번에 그 사람들의 얼굴을 잊어버릴 것 같은 모습. 이 것은 이미 첫 번째니, 두 번째니 하고 순위를 매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만큼 벌어져 있었다.


- 촤아악!


갑자기 차가운 물이 온 몸을 적신다. 정신이 든 것은 그 이후에도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의 일.

"아앗! 마고! 그만하라니까!"

"또 백여우에게 홀린 것 같아서 정신차리라고 한거다."

고개를 돌려보니 당황하며 마고라는 소녀를 말리는 백금발 미녀의 모습이 보였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미녀와 한심하다는 투로 날 바라보는 마고.

그 둘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무슨 이야기를 건넸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멍한 상태로 대충 대답하기 바쁠 뿐이었다. 말 그대로 그 미인의 얼굴을 쳐다보기에도 바쁠 정도였으니까.

"... 어이, 그만하고 가자."

그리고, 그 둘이 시야에서 완전히 멀어지고 난 뒤에야 풍월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고 있는 풍월의 모습이 보였다.

"... 풍월."

"누구냐고?"

고개를 끄덕인다. 풍월은 피식 하고 웃더니 말을 이었다.

"검은 쪽은 마고. 학원 최고의 주술사. 보다시피 성격은 참 안 좋아서 별명이 마녀."

"... 그 사람 묻는게 아니잖아."

"알아. 흰 쪽이지? 그 쪽은 천태려. 보아서 알겠지만 자타공인 학원 최고의 미인이야. 참고로 여우족. 그러니까 디퍼런티언."

간단한 설명. 하지만 그 것으로도 충분했다.

주머니에 있던 봉투를 꺼낸다. 이미 푹 젖어있는 상태였지만...

망설임 없이 찢어버린다.

"... 자퇴 취소?"

"학교 다닐래."

생명의 위협이라는 단어 따위... 이미 저 구석에 처박힌지 오래였다.

"네 녀석 목숨도 나름 싸구려구나."

풍월이 그런 말을 내뱉은 것 같았지만 이미 귀에 들어올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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