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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m Clavolt  - 고전적인 반란  -     Project. 잊혀진 자들
        외전    천로역정~☆ - Ave, Spirit of the Departed! -
                                              
                                          - 아지랑이 나래 Prologue -





"뭐, 지금 고민해 봤자 답은 나오지 않는 법! 나가자!"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으니 풍월이 웃으며 어깨를 두드린다. 이미 5분도 안되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대충 풍월의 성격을 눈치챘기에 별 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만약 안나간다면 들쳐 업고 나갈 성격이겠지. 이 녀석은..

"그래서, 어디가는데?"

"식당. 점심 먹어야지."

당연하다는 투로 답한다. 그 말에 손목시계를 바라본다. 10시 50분. 아직 점심 시간이라고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너무 빠른 것 아냐?"

"아니, 이 시간이 맞아. 11시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이거든."

.... 뭐하는 곳이냐. 이 학교는...

"참고로 말하자면 오전 일과는 8시에서 10시 30분까지. 오후는 2시부터 4시 30분 까지야."

"뭐랄까... 공부란 것... 제대로 하는 거 맞아?"

풍월의 말에 머리를 긁적이며 묻는다. 어떻게 보면 바깥에서 다니던 학교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 곳에서는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주술이나 체술 같은... 그래, 잘못된 존재들과 싸우기 위한...

"당연하잖아. 제대로 배우고 있지."

그 말에 당당하게 답하는 풍월.

"오전 시간은 분명한 수업시간이라고."

....

"오후는?"

"동아리 활동... 이라고 하는 편이 이해하기 쉬우려나?"

뭐야 그게!

"그러니까.. 정작 수업은 하루 세시간이 다라는 이야기?"

"응, 무슨 문제라도 있는거야? 표정이 안 좋은데?"

고개를 끄덕이며 되묻는다. 그 말에 가볍게 관자놀이를 누르며 중얼거렸다.

"아니, 막상 꿈에서도 바라는 수업 시간표를 직접 대하니까 왠지 모르게 한숨만 나와서."

내 말이 안 들렸던 것인지 풍월은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고개를 갸웃하다가 다시 웃었다. 그리고는 내 팔을 잡아 이끌며 발걸음을 옮겼다.

"뭐, 상관 없겠지. 곧 익숙해 질테니까."

"10년 가까이 몸에 밴 시간표가 그렇게 쉽게 잊혀질리가..."

입 안에서 조용히 투덜거리며 풍월을 따라 걷는다. 그러다가 문득,

조금 이상한 것을 느꼈다.

"어라? 그러고보니 10시 30분까지가 수업시간이라고 하지 않았어?"

"응? 아, 그런데. 왜?"

"넌 그보다 빨리 들어왔잖아."

발걸음을 멈추고 풍월을 바라보며 물었다. 분명 정확한 시각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10시 30분 이전에 방으로 들어왔던 것은 분명했다.

풍월은 내 물음에 '아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수업 안들었으니까."

라고 너무나 당연한 듯이 말했다.

"어이어이, 그런 표정 짓지 마. 단지 작년에 다 들었던 수업이니까."

풍월은 장난스레 웃으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며 말을 잇는다.

"그렇다고 해서 유급 당한건 아냐. 단지 시험이 없었을 뿐이지."

"시험이.. 없어?"

도무지 진위를 알 수 없는 이 학교의 수업 방침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며 묻는다. 풍월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다가.

씨익 하고 웃었다.

"시험 전날에 아비시니언 선생님하고 같이 하루종일 침대에서 뒹굴었거든. 시험날 안 오더라고. 그래서 초급반은 전원 유급."

.....

뭐하는 학생인가. 자네는?

"... 설마 믿는거야?"

응. 당연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 풍월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농담이야. 농담. 이 곳은 본래 1년짜리 수업이 3년동안 반복된다고. 정확히는 시험이 3년에 한 번 있는 것이지만."

아니, 농담으로 안들리는데요.

"그래서 수업을 제대로 못 들었으면 다음 해에 다시 들으면 장땡. 안들어도 된다 싶으면 그냥 자기 공부하면 그 걸로 끝. 단지 그거야."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뭐랄까... 정말 이상한 학교에 온 것 같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서 맴돌 뿐이었다.

"...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한숨을 쉬며 풍월의 뒤를 따른다. 고민하고 있어봤자 내 머리만 아플테니까.








식당은 아지랑이 나래와 연결되어 있는 1층짜리 건물이었다.

새하얀 내부는 먼지 하나 없는 것 처럼 깨끗하다. 그 안에는 벌써 몇 명인지, 사람들이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기본적으로 식당에서는 자기가 할 일은 자신이 하면 돼. 원하는 것을 택해서 먹고, 식기를 반납한다. 그 것뿐."

"요컨데... 카페테리아 같은 느낌인가?"

"그렇게 설명하는게 편하겠지? 뭐, 기본적으로 공동의 소유. 그러니까... 식탁 위에 놓인 조미료나 기타 이런저런 것들은 도우미 분들이 챙겨주겠지만 어디까지나 네가 알아서 먹으면 그만인거지."

"흐음..."

고개를 끄덕이며 식기 보관함에 있는 쟁반과 접시를 챙긴다.

"오늘 한식은 동태찌개 백반인가... 양식은 돈까스... 중식은..."

천천히 메뉴판을 살피는 풍월. 그 뒤를 따라 걷는다. 보아하니 한식부터 양식, 일식, 중식까지 종류별로 구분되어 있는 것 같았다. 카페테리아 보다는 뷔페쪽 느낌이랄까...

"뭐 먹을래? 나야 아무거나 상관 없지만."

"그럴 것 같았어."

풍월의 말에 대꾸하며 양식 코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앞으로는 이 곳에서 살테니 굳이 이것저것 모조리 집어먹을 것 까지는 없겠지. 그래도 바로 오늘 아침까지만해도 먹던 한식보다는 다른 쪽에 눈이 돌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돈까스 하나와 샐러드 약간을 챙긴다. 풍월은 내 접시를 힐끗 바라보더니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 거로 충분해?"

"응."

간단히 답하며 비어있는 식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사실 평소와는 달리 이른 시간이라 딱히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풍월이 내 앞자리에 쟁반을 내려 놓으며 앉았다. 보아하니 나와 같은 메뉴인 것 같다. 게다가 그 양은...

"그 거로 충분해?"

"응. 난 원래 소식해."

조금 전에도 비슷한 대화가 오갔던 느낌이 들지만 딱히 신경쓸 일은 아니겠지.

뭐 어때.

"잘 먹겠습니다~"

음식을 만들어 주신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

"....."

막 입에 음식을 집어넣으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 옆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 것이 누구인지 아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라? 가희니.... 양? 무슨 일로?"

풍월 역시 의외인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언가 어색한 목소리였지만 가희씨는 풍월을 깨끗히 무시한 채 내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소스.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소스?

생각해보니 확실히 그랬다. 돈가스 위에 소스가 없었다. 분명히 노릇노릇하게 잘 튀겨져서 군침도는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뭔가 허전하다 싶더니 소스를 빼먹은 모양이다.

"아, 네. 깜박했네요. 고마워요."

내 말에 가희씨는 예의 무표정한 얼굴로 돈가스 위에 솜씨 좋게 소스를 뿌렸다. 그리고 가볍게 고개를 숙이더니 종종걸음으로 멀어져갔다.

음, 이런 면에서는 확실히 좋은 곳이구나, 이 곳은. 알아서 다 챙겨주는 도우미도 있고.


역시 하녀복 이라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다른 것이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던 모양이었다.

"자, 잠깐! 너 대체 뭐야?"

"응? 뭐가?"

눈에 띄게 흥분해 있는 풍월을 바라보며 묻는다. 풍월은 흥분을 감추지 않으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이었다.

"대체 네가 어떤 사람이길래 저 절대 온도 0도, 섭씨 온도로는 영하 273도의 얼음 공주 가희께서 저런 것 까지 일일히 챙겨주는 거냐고!"

"... 왜? 뭐가 잘못된 거길래?"

"아직도 이해 안돼? 아까도 말햇듯이 저 도우미 분들은 공동의 소유에 관한 것만 챙겨주지 너처럼 개인적인 것에는 절대 관여를 안한다니까?"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가희씨의 뒷모습을 쫓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식당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가희씨. 하지만 확실히 오래 지켜보지 않아도 풍월의 말대로 특별히 다른 사람의 식사에 관여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무관심하다고 보는 것이 무방할 정도다.

그러고보니.. 왠지 모르게 식당 안에 웅성이는 소리가 커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게다가! 게다가 어째서 가희님께서 널 보고 웃는건데? 대체 뭐야? 무슨 관계야? 어디까지 간거야? 설마 바로 침대 위인거냐? 이 배신자아아아아!"

점차 풍월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아니, 그 이전에 어째 알 수 없는 내용으로 폭주해 나가는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그에 맞추어 주변에서 웅성이는 소리도 커진다.

황급히 풍월의 입을 막으며 소리 낮추어 물었다.

"웃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알 수 없는 소리만 지껄이지 말고 차근차근 설명 좀 해봐."

아무리 봐도 처음 봤을 때와 다름 없는 무표정인데 말이지. 하지만 풍월의 눈에는 그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웃었어! 웃었다고! 그 절대온도 0도, 섭씨 온도로는 영하 273도의 얼음공주 가희님 주변에 있던 냉기의 오오라가 엷어졌단 말이다! 절대 온도 2도, 섭씨 온도로는 영하 271도 정도로 올랐다고! 그 모습을 볼 수 있다니 이건 내 일생 일대의 감동이야!"

부들부들 떨면서 눈물까지 흘린다. 뭐랄끼, 왠지 모르게 풍월하고 같이 다니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겠다는 생각에 한숨이 새어나왔다.

"응. 그건 확실히 맞는 것 같은데? 이제보니 눈치가 굉장히 빠르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누군가가 옆에서 다시 말을 건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돌리니,


옆에 하녀복을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나이는 나와 비슷할까? 역시나 하녀복을 입고 있는 미녀였다. 가희씨와 다른 점이라면 머리카락이 타오르는 듯한 붉은 색을 띄고 있다는 것이나 트윈테일을 하고 있다는 것. 커다란 눈에 힘이 팍 들어가 있어 상당히 활달해 보이는 인상이라는 것. 그리고.. 뭐랄까.. 그 특정 부분이 좀, 아니 상당히... 그.... 크다는 것?

자신도 모르게 붉어지는 얼굴을 감추려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풍월은 그 것이 아닌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으앗! 불꽃의 공주 연희님까지 이 곳에 오시다니!"

풍월은 더 이상이 한계인 것 같았다. 곧 쓰러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완전히 눈이 풀려있는 상태였다.

코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티슈로 막는다. 그리고는

"나 기절할께. 감격해서 죽을 것 같아."

라고 말하고는 식탁 위에 쓰러져 버렸다.

..... 머리가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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