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오늘 밤의 공포극을 시작하지."
"삼류 같은 각본이다만, 배우가 좋다."
"그럼 여러분, 부디 기대에 부응해주기를."
/01.
어디 보자... 오오, 경관 나으리. 것 참, 흉흉한 물건을 지니고 계시는구만. 여기 있는 대부분의 마술사 나부랭이들이 맞으면 뼈도 못 추려내겠어. 광인 중 가장 무서운 것이 냉정한 광인이라 하지만, 이런. 그 치들이 아닌 다른 민중에겐 저리 절도 있고 믿음직스럽고 훌륭한 이웃이 없겠구만 그래.
저 정도라면 흐응. 아아, 그렇지. 가족의 원수라도 있는 건가? 원한에 불타 남을 해치려는 자들이 저런 눈을 하고 있지. 수많이 봐 왔어. 무울로온, 나는 선량한 시민이자 즐거운 광대, 고견의 학자이자 풍류를 즐기는 귀족으로만 살아 왔으니 따악히 남에게 저 정도의 원한을 살 일은 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다들 좀 조심해야겠구만. 만만하게 보다가는 큰코 다치겠어. 옛 동방의 그림에나 나올 것 같이 생겼다지만, 아름다운 꽃에는 가시가 숨은 법이지. 이 경우엔 그냥 가시도 아닌 독침이란 게 좀 다르긴 하다만.
서번트? 서번트, 좋지. 뭐어, C급의 서번트 정도야 가뿐히 싸워볼 것 같지만 여기 계신 여러분이라면 순식간에 목과 몸을 분리해버릴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저 종류의 집념은 죽으면 더욱 강해지는 사념이니. 오히려 섣불리 죽이려 들면 독이 될 걸세. 살을 내주고 뼈를 지키는 것이 나아. 살은 머잖아 차오른다만, 뼈는 자칫 잘못하다간 글쎄.
그러므로, 여러분의 친절한 감시자로서 한 마디 해 준다면,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게 좋을 터다. 아프기야 하겠지만, 며칠 참으면 낫는 것들. 인내심과 침착함을 가지고, 여유롭고 우아하게 모범을 보이도록.
/02.
그럼 또... 이런, 이런. 고매하신 성녀님 아니신가. 사람을 위해 사람을 죽인 것 뿐인데 성인이라 칭송받다니. 정말이지 인간이란 존재는 알 수가 없군. 물론 그녀의 마음가짐은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정결하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것 따위 알지 못할 텐데. 참으로 우스꽝스러워.
흠, 빈민가인가. 이야, 거 참 신도의 모범과 같은 자세로군. 살신성인의 자세도 좋으나, 성녀님, 그리 다른 것에 몰두하다가는 자신의 목이 떨어져 나갈지도 모르네. 물론, 적의 따위 없는, 성배에 향한 욕구 없는, 굳이 죽일 필요가 없는 상대를 죽이려 드는 것만큼 어리석고 비효율적인 짓도 없다만.
아니면, 어지간한 자로는 흠집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의 표현인가?
어느 쪽이든, 로랑의 처녀. 오를레앙의 구세주.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를 죽여,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성녀가 아니었던 아가씨, 그 선성과 신심에 최대의 경의를 표하며 네가 이번에는 '진짜' 성녀가 될 수 있기를 바라지.
── 물론, 화형의 고통 따위는 가벼운 불장난일 만큼 아픈 가시밭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다만...
/03.
호오. 이건 또... 예상치 못한 분이 아닌가. 성배의 의지인지, 아니면 세계의 의지인지. 아무래도 그건 너희들을 여기서 죽게 하고 싶지 않은 게 분명하군. 어쩐지, 이런 낡고 번잡스런 도시, 향락의 바다에서 시작된 싸움으로서는 이례적일 정도의 거물들이 온다 싶더만, 다 의도된 배치였던 건가..? 물론 그 의도까지 내가 다 파악할 수는 없네만.
아무튼, 고결하신 분. 숭상받으며 온화한 표정만 지을 것 같은 도련님까지 이 세상에 불러내는 건 좀 예상 외였다. 이미 좀,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지만.... 아마 분명, 최소한, 이 도시는 구할 수 없어. 물론 인구 수십만의 땅을 희생해서 수십억의 생명을 구한다면 그것은 옳은 행위겠지만.
그나저나, 저건 좀... 후후. 저 높으신 분이라기보다는 마치 첫 잠행을 나온 왕자님 같은 모양새군. 물론, 저리도 아름다우니 그런 것 정도 애교로 보이겠지만.
귀하께서 어떤 위용을 보여주실지, '한낱' 인간인 나로서는 그저 기대할 뿐이라네. 그 전설이 눈 앞에서 현실이 되는 그 순간을.
/04.
그나저나... 첫 날부터 참으로 요란하구만. 그나마 센트럴이 아닌 점이 다행이다만. 너무 첫날부터 스퍼트를 올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야. 물론 보는 나는 즐겁지만. 신나게, 마음 가는 대로 뛰어놀아주길 바라네.
그럼, 이제... 슬슬 손님을 맞이해 볼까.
"이런, 그쪽의 귀부인께서는 내게 무슨 용무이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