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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하 2018.07.15 20:41 조회 수 : 30

 

 

   코토미네 키레는 드물게도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신실하고도 남에게 선을 베푸는 사람이었으나, 그와 별개로 타인과 깊이 엮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이 '일' 이라면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하는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으나 호불호까지 숨기기는 어려운 법이었다.

 

 

   "키-레! 뭐해애?"

 

 

   까불까불거리는 목소리. 통통 튀는 발소리.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기 전, 코토미네 키레는 이미 방문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크리샨테."

   "죄송합니다. 코토미네 신부. 크리샨테 님께 예의를 좀 갖추시라고 몇 번이고 말씀을 드렸지만, 도무지 들어먹지를 않아서."

   "아니다. 린 군. 그런데, 무슨 용건인지?"

   "부우. 그냥 심심해서 놀러왔을 뿐인데? 거기다 샤오샤오도, 내 앞에서 그렇게 태연하게 막말을 해도 되는 거야?"

 

 

   분홍빛으로 물들인 머리칼에선 희미한 복숭아 향기가 났다. 약간의 이목구비와 체격을 제외하면, 완연한 동유럽계 여자 아이로 보이는 소녀는 입을 비죽였다. 크리샨테 아르코풀로스. 코토미네 키레가 부친의 인연으로 인해 성년이 될 때까지, 혹은 그가 홍콩에 머무르는 동안 후견을 보아주기로 한 그리스 선박왕의 "작은집 따님" 이었다. 

 

   그런 소녀의 뒤를 따라 들어온 소년은, 분명 동양인임에도 전혀 그리 보이지 않는 - 국적도, 민족도 정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용모. 아직 어린 티가 남아 있음에도, 도무지 속내를 파악하기 어려운 매혹적인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사회에서 크나큰 도움이 될 능력을 지닌 소년은 린샤오라는 이름이었다. 사생아에게도 호화로운 펜트 하우스에 이어 또래의 말동무 겸 집사까지 붙여주다니. 대대로 부자였던 유서 깊은 가문은 과연 씀씀이도 남다른 것이라 코토미네는 한때 생각했다.

 

 

   "그나저나, 키레는 왜 이렇게 또 표정이 죽상이야?"

   "크리샨테 님. 죽상이라니.. 그건 재시험을 통과 못 했을 때의 크리샨테 님이 짓는 얼굴 따위를 말하는 거구요."

   "시끄러, 샤오샤오. 헤-에. 이게 뭐야? 특수 공안 파견에 대한 안내...? 와.. 키레는 혹시 뒤에서 뭐 범죄자 검거라도 하고 있어?"

   "그런 게 아니다. 크리샨테. 서류를 섞지 말아라. 손자국을 내지도 말아라. 지금 네가 발로 밟은 건 행정관이 보낸 친필 편지다."

   "어머나~ 미안해라."

 

   

   코토미네는 한숨을 내쉬고는 서류를 톡톡 정리했다. 특수 공안. 언뜻 듣기로는 흉악 범죄자 혹은 정치범을 잡을 때 동원하는 공안 부대 같지만, 특수 공안 제3과는 다른 곳이었다. 소위 말하는 신비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 일반인이 신비를 알지 못하게 숨기고, 필요할 경우 그것이 누구든 입을 막는다. 

 

   '성배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전 도시적으로 큰 소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는, 십수년 전 일본의 도시에서 증명된 바였다. 이미 중국 본토의 중앙 정부는 홍콩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정보를 검열하여 본토에 방송중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이 나라를 포함한 극소수의 국가만 가능한 짓이었다. 아마 여기서 건물이 무너진대도, VPN을 쓰며 편법으로 정보를 얻는 소수의 젊은 층과 지식인 층, 그리고 애당초 정보가 허가된 극소수의 상류층을 제외하고 대다수 민중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알지 못하겠지.

 

   작은 소란을 일으키며, 크리샨테는 서류철 가장 앞 페이지를 읽었다. 

 

 

   "류이 옌리(劉姸麗)? 전혀 공안 같은 거 할 것 같은 이름이 아니잖아!"

   "크리샨테 님. 사람의 이름을 갖고 뭐라고 하는 저급한 짓거리는 그만하세요.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크리샨테 아가씨의 이름도 척 봤을 땐 손에 물 한 방울 안 뭍히고 얌전히 앉아서 보석과 드레스를 수집하고 조용히 책과 악기를 즐기는 귀족댁 따님 이름이에요."

   "나 정도면 요조숙녀 맞다고!"

 

   

   재잘대는 크리샨테의 목소리를 대강 흘러들으며, 코토미네 키레는 냉정하게 생각했다. 공안 같지 않은 이름 운운 하지만, 크리샨테가 방금 말한 류이 옌리라는 자는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특수 제 3과의 과장으로, 이미 수십은 가볍게 넘는 마술 사용자 및 마술사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은 마술사 살해자. '마술'이라는 존재 자체에 극심한 혐오와 분노를 안고 있는, 그렇기에 마술을 사용하는 본인 자신조차 혐오하는 마술 사용자. 

 

   일견 흑발의 단려한 미인으로 보이며, 상대가 민간인일 경우에는 그 부류의 인간으로서는 드물게도 절도 있는 예의를 보이지만, 상대가 마술과 관련된 자 혹은 범죄자일 경우에는 망설임 없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잡아 죽이는 마녀. 그녀를 비롯한 3과의 인간은 대부분 비슷한 부류였으나, 그녀는 유독 잔혹한 방식으로 악명이 높았다. 다른 이들은 '일이기에 한다'는 경향이 그래도 어느 정도 있는 반면, 그녀는 마술사를 죽인다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쪽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그녀가 여기에 온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미쳐 날뛰는 모습밖에 생각이 나지 않지만... 허용되었을 때 고삐 풀린 소처럼 날뛸 뿐, 최소한 상명 하복의 개념에는 충실한 타입이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 응? 키레, 내 말 들었어?"

   " ..음? 아아. 미안하군. 무슨 말이었지?"

   "오늘 저녁엔 모처럼이니까 앰버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하고 싶다고!"

   ".... 좋을 대로. 대신, 내일은 이렇게 함부로 들어오지 않도록."

 

 

   만다린 오리엔탈의 고급 레스토랑보다는, 로컬 식당의 고약한 취두부 쪽을 선호하는 코토미네 키레는 한숨을 내쉬었다.

 

 

 

 

 

 

 

 

 

   "...와아, 저길 보세요! 거리가 반짝거려요!" 

   "..그렇네. '도착' 하자마자 보이는 풍경이 이런 환한 밤하늘이라니 현대도 나름대로의 멋이 있구나."

   "저는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리는 처음 봐서..!"

 

    금발을 땋아내린 소녀는 드물게도 들뜬 목소리였다. 금발의 소년, ... 청년이라고 해야 할까? 나잇대를 가늠할 수 없는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고보니, 혹시 여기 사람들과 이야기할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하죠?"

   "글쎄. 보통으로 얘기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데. 시시콜콜한 것까지 말할 필요는 없을 거야. 어차피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그래도, 통성명할 일이 생기면요!"

   "그거야.. 아, 나는 좀 곤란하려나. 그럼 너와 일행인 것처럼 보이려면 프랑스인의 이름인 편이 좋겠지. 가브리엘, 도미니크, 로랑, 미셸, 아드리안, 알랭, 올리비에, 클로드, 파비앵... 뭐, 앞으로 생각해 보자. 급한 건 아니니까."

 

   청년은 여전히 온화하고 부드러운 무표정이었다. 나잇대에 맞게, 다소 설렘을 숨길 수 없는 듯한 소녀를 보고 살짝 어깨를 으쓱하고,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자아, 이제 관광객의 흉내는 그만하고. 준비 되었니? 아르크의 잔."

 

 

   이름이 불린 소녀는 천천히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걸음을 멈추었다. 짤랑, 하고 이마를 가린 갑주의 끝에서 종과 같은 소리가 났다. 소녀는 고개를 돌렸다. 상냥하지만 흔들림 없는 의지를 담은 저녁빛 눈동자가 단호했다.

 

 

   "네에. 그럼, 가겠습니다. 주의 인도 아래, 이 땅이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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