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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몽환록]1장-사망전이-(1-1)

2006.05.18 23:21

울프맨 조회 수:159

“그때 죽은 사람은 4명이야.”
“4명?!”
영준은 펼쳐진 4손가락 중 검지를 접어보였다.
“첫 번째. 자살한 여고생. 여기까진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
고개를 끄덕일 필요도 없었다.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그로인해 교통교육, 자살방지 교육 등 방과 후 제때 집에 가지 못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었다.
모르려 해도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 뿐. 그냥 아는 것이 전부, 충격을 받을 정도로 엽기적인 사건도 아니었고, 본인들과 관련된 일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교통사고를 당한다는 건 아이들에게 큰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영준은 단순한 자살, 교통사고 사건에 굉장한 비밀을 보여주고 있었다.
천천히 영준의 중지가 접히기 시작했다.
“두번째. 운전기사.”
“사고를 낸 사람?”
“운전기사는 여고생을 치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반대 차선으로 뛰어 들었어.”
“다음은....?”
“육교위의 청년. 운전자가 죽자마자 바로 육교위에서 추락해서 사망.”
마지막. 마지막 약지에 아이들의 고조된 시선이 몰렸다.
사실 근거 없는 황당한 말을 하는 것은 우진과 마찬가지였지만, 영준은 우진처럼 시끄럽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하면서도 감정 없는 그의 목소리는 묘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서 아이들은 어느새, 영준의 이야기에 깊숙이 빠져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그러나 영준은 뜸을 들이고 있었다.
“뭐해? 말하다 말고? 궁금하잖아???”
답답함을 참지 못한 아이하나가 언성을 높였지만, 영준은 말없이 자신의 약지만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마지막 사망자에는 뭔가 심각한 비밀이....?’
아이들의 답답한 감정은 이윽고 초조와 긴장으로 바뀌었다.
영준이 저렇게 고심하고 뜸을 들일 정도로 깊은 생각이 필요한 문제라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일!
이유 없이 자살을 택한 여고생. 그리고 베일에 싸여있던 두 명의 또 다른 희생자.
그들이 공개되지 않은 이유는? 그리고 저 영준조차 말하길 꺼려하는 마지막 사망자…….
여자아이들의 상상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때까지 긴 침묵을 유지하던 영준이 후 하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문을 열었다.
“사실은..........”
처음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압도적으로 부담스러운 시선들이 영준에게 쇄도했다.
무덤덤한 영준조차도 식은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애써 냉정함을 되찾으며 영준은 약지를 접어버렸다.
“미안. 착각했어. 4번째는 없어. 3명까지야.”
“에엑~?!”
상상치도 못한 반전에 소연을 비롯한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말도 안돼! 뭔가를 감추고 있지?!”
뒤통수를 맞은 아이들은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영준을 닦달했다.
“이건 분명히 누군가가 4명을 동시에 죽도록 조작한거야!! 저주라던가..”
“넌 가정교육을 환타지로 받았구나.”
“그 자살한 여고생은 사실 입양되었었는데, 구박을 견디다 못해 도로로 뛰어든 거지, 그런데 운전자가 알고 보니 친 아버지였던 거야!! 아버지도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드라마 그만 봐라.”
“육교위의 청년은 매일 버스로 통학하는 여고생을 남몰래 사모했었어. 언제나 육교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는데, 사고를 당하자 견디지 못하고...”
“순정만화 그만 보고 공부 좀 하시지.”
여자아이들에게 각기 일침을 놓은 영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급식 도시락을 챙겼다.
“미안한데.. 정말로 3명이야. 그리고 너희 셋.”
영준은 놀라운 추리를 보인 세명의 여자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 작가해도 되겠다. 작가해.”
“뭐야?!!”
“재능을 썩히는 건 죄악이야.”
발악하는 여자아이들을 뒤로 하고 영준은 말없이 자기 자리로 향했다.

1-1. 목 격 자.

하루라는 시간은 긴 시간이 아니다. 시간으로 따지면 24시간. 한 시간 한 시간.. 하나하나가 합쳐 24개쯤 되면 굉장히 길다고 칠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그 시간은 허무하게 가버리기 일쑤......... 그러면 그런 하루하루가 모인 일주일은 과연 길다고 할 수 있을까....
일주일이 네 번이면 한달. 한달이 4번이면 한 절기, 한 절기가 4번이면 1년............
그런 식으로 생각을 연장해 나가던 소년은 머리가 아픈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후후.. 이건 정말 병이라니까...........”
제동을 걸지 않으면 무한대로 뻗어져 나가는 생각의 줄기. 소년은 낮게 쿡쿡거리며 거리를 걸었다.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뻗어가는 생각의 나래만큼, 소년의 발도 거침없이 그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소년은 걸음을 멈추고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년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감돌았다.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변한 게 없어....”
거리는 일주일전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얼룩하나 남아 있지 않은 아스팔트 도로.
그리고 그 위를 무심하게 달리는 자동차들. 누가 봐도 교통사고가 일어났다곤 믿을 수 없을 만큼 평범하기 짝이 없는 도로.
일주일이란 시간이 길긴 긴 모양이었다. 이젠 그 어디에도 사고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으니까.......
소년은 안경을 고쳐 쓰고 육교에 올라 밑을 내려다보았다.
그다지 높지 않은 육교였지만, 밑을 통과하는 차들의 속도에 아찔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소년은 아랑곳 하지 않고 더 허리를 구부렸다.
대형 트럭이 육교 밑을 지나면서 생긴 바람에 소년의 머리카락이 휘날렸지만 소년은 아랑곳 않고 이번엔 까치발까지 들며 밑으로 몸을 숙였다.
머리에 피가 쏠리면서 몸의 균형이 점점 앞으로 몰렸다. 등에 진 가방의 무게도 천천히 앞으로 몰려올 정도로 소년은 아슬아슬하게 육교난간에 몸을 숙이고 있었다.
가방이 천천히 목을 짓눌렀고, 코끝에 걸친 안경이 얼굴에서 미끄러져 나가는 감촉이 귀끝에 느껴졌다.
‘떨어지겠군....’
소년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영차 하고 힘을 주어 막 떨어지려던 몸을 되돌려 놓았다.
그리고 난간에 매달려 지저분해진 앞을 털며 가방과 옷가지를 정리하던 소년의 눈앞에 공포와 경악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소녀가 있었다.
“아...........”
“영준이 너 미쳤니?!!!!!”
빽! 하고 소리를 지르는 소연. 영준은 그 기세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소연은 영준이 육교 난간위에서 바둥거리는 걸 보고 급히 뛰어올라온 양, 거친 숨소리를 내쉬고 있었다.
“너 방금 전까지 얼마나 위험한 짓을 하고 있었는지 알기나해?! 떨어지면 어쩌려고?!!!!!”
영준은 소연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아직도 뭔가 미련이 남았는지 자꾸 육교 밑을 흘끔흘끔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왔어?”
조금은 방해 받은 느낌. 일부로 매일 같이 하교하던 소연을 떼어놓고 혼자 여기까지 왔는데 끝내 쫓아오고만 소연이 신기한 영준이었다.
“버스가 여기 지나가잖아.”
그러고 보니 그렇군.. 하고 영준은 고개를 끄덕인다. 소연과 영준이 사는 동네로 가는 버스는 이 사거리를 지나가니, 버스에 탄 소연이 육교에 매달린 영준을 보고 기겁해서 내렸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을 듯 싶었다.
“어쨌든! 너 여기서 뭐하는 거야?!!”
“아.. 실험.”
“실험........???”
소연이 작게 실눈을 뜨는 모습을 본 영준은 급히 해명할 필요성을 느꼈다. 저대로 그냥 두었다간 분명... 또 빽 하는 강렬한 옥타브의 공격을 맛보게 될 것이란 걸 오랜 경험으로 영준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점심때 얘기한거 기억하지?”
“아.. 그 사고가 1명만 죽은 게 아니라 4명이란 거....? 아니 3명이랬던가...? 너어!!!”
점심때를 생각해보던 소연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실험.. 점심때의 이야기.. 3명의 피해자. 육교에 매달린 것도 무슨 의미였는지 어느정도 이해가된 소연이었다.
“아무리 삼촌한테 들은 얘기라지만! 그걸 따라서 실험해 보는 게 말이 돼?!!!!!”
또다시 빽!
그다음에도 소연은 뭔가 계속 말을 했지만, 영준의 귀는 그 말을 들을 여력이 없었다.
영준은 전쟁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했다. 폭탄이 터지는 큰 소음 때문에 주인공의 귀가 먹어 동료들이 외쳐도 아무것도 안 들리는 고요한 상태...............
“어쨌든............”
겨우 멍한 귀를 진정시킨 영준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해보니까 알겠어...”
“뭘?”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선 떨어지기 어려워.”
영준은 난간을 짚어보았다.
“난간만 해도 가슴까지 올라올 정도로 높아. 일부로 떨어지려고 노력해도 힘든 높이지, 게다가....... 매달리는 동안에 저 밑의 차들을 보면 여기서 떨어질 생각하기도 그렇게 쉽진 않을걸.........”
“사람이 자살할 때 무섭다고 자살안하겠니?”
“조금은 주저하기 마련이야. 여기서 그 청년은 한 치의 주저도 없이 운전사가 차에 치이자마자....................아니. 반대 차선으로 뛰어드는 동시에 뛰어내렸어.”
“영준이너............”
소연은 영준의 말투가 조금 이상한 것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에게 들은 얘기가 아니라 직접 본 것처럼 얘기 하는 영준의 태도. 말끝을 흐리는 소연의 목소리를 들은 영준의 입이 작게 미소짓고 있었다.
“그래. 삼촌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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