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Depression Wish : 마루 - 01
2007.12.19 23:59
예측할 수 없던 일은 운명처럼 다가와 나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미안, 우리 그만 만나자.’
이유도 듣지 못했다. 일방적인 통보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쳇.”
좋지 않은 기억은 빨리 지워버리는 것이 낫다. 하지만 그 것은 말처럼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화풀이를 하는 양, 발로 바닥을 걷어찬다. 사람들의 발에 짓눌러 흙빛으로 변해가는 눈덩이가 내 발에 채여 날린다. 눈덩이는 얼마 가지 않아 땅으로 떨어지고, 몇 번 구르더니 다시 사람들의 발길을 기다리며 그 자리에 멈추어 버린다.
눈이 그친 지금, 더 이상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눈 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지저분한 땅 위의 불청객이자 걷는데 방해만 될 뿐인 무언가일 뿐. 처음 내리기 시작하였을 때 좋아했던 감정 따위는 이미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뭐, 내 꼴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지만…….
기분이 나빠진다.
편의점으로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러 나오는 길.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단 한 가지의 이유만으로도 종잇장 같은 사람의 기분은 쉽게 구겨져 버린다.
이미 다른 사람에 의해 구겨졌던 것이라면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불과 며칠 전에 보아왔던 세상과 전혀 딴 판으로 보이는 세상. 그 두 곳은 틀림없이 같은 곳이면서, 같은 곳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다른 곳이었다.
발걸음을 빨리한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서둘러 볼 일을 본 뒤 돌아가자. 그런 생각 외의 다른 생각은 들지 않는다.
유리로 된 문을 열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간다. 오늘도 안에는 제복을 입은 여자 점원이 지루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한창 무엇에 열중하고 있는 것인지, 이쪽은 보지도 않은 채 무언가에 빠져있는 모습이었다.
“…….”
그 인사조차 없는 무관심한 얼굴에 기분이 한층 더 나빠지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물건을 들고 카운터로 다가갔다. 바코드를 찍는 소리만 주기적으로 날 뿐, 조용하기만 한 이 곳. 관심 없다는 듯이 가격을 말해주는 점원에게 돈을 내민 뒤 도망치듯 편의점 바깥으로 나왔다.
바깥으로 나오자 안과는 달리 확실히 추운 공기가 느껴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한층 더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을 한껏 움츠렸다. 서둘러 집을 향해 걷는다.
“…….”
그러던 중, 주머니 속에 찔러 넣은 손으로 작은 떨림이 전해져 왔다. 손을 꺼내는 것조차 하기 싫어 무시한 채 걸어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그 휴대 전화는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리듯 몇 번이고 주머니 안에서 울어댔다.
“쳇, 뭐야?”
투덜거리며 주머니 안에서 휴대 전화를 꺼낸다. 액정 위에 표시되어 있는 것은 몇 명 되지 않는 친구의 중 한 사람의 이름. 지난 몇 달 동안 특별한 연락을 취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며 전화를 받는다.
“무슨 일이야?”
[여, 오랜만이야.]
휴대 전화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전부터 쓸데없이 밝은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성격은 아직도 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옆에 있으면 후끈한 열기라도 느끼지 않을까? 그런 어이없는 생각을 하며 가볍게 대꾸했다.
“뭐, 오랜만이긴 하네.”
[그래. 가끔은 먼저 연락도 하고 그래라. 너 죽었는지 아는 사람들도 많을 거다.]
그런 소리를 지껄이더니 저 혼자 키득거리며 웃는다. 왠지 모르게 짜증이 치밀어 오르며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진다.
대꾸할 기분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뭐하고 있어?]
“먹을 것 사러 나왔어.”
이어지는 물음에 대충 답한다. 어째 이야기를 하는 말투에서 특별한 용건도 없이 전화를 한 것 같다는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귀찮아…….
적당히 끊어버려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며 다음 말을 기다린다.
[오, 설마 그 애 만들어 주려는 거야?]
하지만, 녀석은 그런 물음을 던졌다.
하긴, 아직 이 녀석은 모르려나…….
투덜거리고 싶은 마음 따위는 생기지 않았다. 그저 전화를 그대로 끊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 정도였다. 그런 생각을 억지로 참아내며 짐짓 무덤덤한 투로 대꾸했다.
“깨졌어.”
[뭐?]
마치 잘못 들었다는 것처럼 되물어 온다.
“깨졌다고.”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느끼며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휴대 전화 너머에서 할 말을 찾고 있는 듯, 잠시 머뭇거리는 녀석의 태도가 전해져 오고 있었다.
[언제?]
“얼마 안 됬어.”
불과 며칠 전이니까.
계속해서 떠올리고 싶지 않은 화제를 떠올리게 된다. 스스로에 의해서, 그 것이 아니라면 주변에 의해서.
이미 구겨진 마음은 펼쳐 보인다고 해서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망가져 있는지 지나칠 정도로 잘 보일 뿐이다.
[으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기에 그럴까? 그 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꺼내서는 안될 소재를 꺼냈다는 것에 대한 자책감일까? 녀석은 말을 잊지 못한 채 그렇게 가벼운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할 말 없으면 끊는다.”
그 침묵을 잘라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한다.
일방적인 통보.
불과 며칠 전에 내가 당했던 일이다.
그 것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스스로가 잘 알고 있으면서, 아무리 지금 상황이 그 때와는 다르다고 하지만, 자신이 주체가 되어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쓴 웃음이 새어나왔다.
“뭐, 결국 그런거지.”
자신이 당하면 그 것은 좋지 않은 일이고, 자신이 행할 때는 아무런 문제될 이유가 없는 일이다.
그건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서운 생각인가.
하지만 오히려 더 무서운 것은 그런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나 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휴대 전화를 다시 주머니 속에 찔러 넣는다. 피식 하고 웃으며 고개를 들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사람을 보았다.
새하얀 눈이 시간에 더럽혀지지 않았다면 그 사람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만큼 그 사람은 하얀 사람이었다.
마치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볼을 꼬집어본다.
그 만큼 그 사람은 환상 같은 사람이었다.
이 세상이 멈추어 버린 것처럼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 만큼 그 사람은…….
그렇게, 예측할 수 없던 일은 운명처럼 다가와 나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미안, 우리 그만 만나자.’
이유도 듣지 못했다. 일방적인 통보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쳇.”
좋지 않은 기억은 빨리 지워버리는 것이 낫다. 하지만 그 것은 말처럼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화풀이를 하는 양, 발로 바닥을 걷어찬다. 사람들의 발에 짓눌러 흙빛으로 변해가는 눈덩이가 내 발에 채여 날린다. 눈덩이는 얼마 가지 않아 땅으로 떨어지고, 몇 번 구르더니 다시 사람들의 발길을 기다리며 그 자리에 멈추어 버린다.
눈이 그친 지금, 더 이상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눈 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지저분한 땅 위의 불청객이자 걷는데 방해만 될 뿐인 무언가일 뿐. 처음 내리기 시작하였을 때 좋아했던 감정 따위는 이미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뭐, 내 꼴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지만…….
기분이 나빠진다.
편의점으로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러 나오는 길.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단 한 가지의 이유만으로도 종잇장 같은 사람의 기분은 쉽게 구겨져 버린다.
이미 다른 사람에 의해 구겨졌던 것이라면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불과 며칠 전에 보아왔던 세상과 전혀 딴 판으로 보이는 세상. 그 두 곳은 틀림없이 같은 곳이면서, 같은 곳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다른 곳이었다.
발걸음을 빨리한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서둘러 볼 일을 본 뒤 돌아가자. 그런 생각 외의 다른 생각은 들지 않는다.
유리로 된 문을 열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간다. 오늘도 안에는 제복을 입은 여자 점원이 지루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한창 무엇에 열중하고 있는 것인지, 이쪽은 보지도 않은 채 무언가에 빠져있는 모습이었다.
“…….”
그 인사조차 없는 무관심한 얼굴에 기분이 한층 더 나빠지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물건을 들고 카운터로 다가갔다. 바코드를 찍는 소리만 주기적으로 날 뿐, 조용하기만 한 이 곳. 관심 없다는 듯이 가격을 말해주는 점원에게 돈을 내민 뒤 도망치듯 편의점 바깥으로 나왔다.
바깥으로 나오자 안과는 달리 확실히 추운 공기가 느껴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한층 더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을 한껏 움츠렸다. 서둘러 집을 향해 걷는다.
“…….”
그러던 중, 주머니 속에 찔러 넣은 손으로 작은 떨림이 전해져 왔다. 손을 꺼내는 것조차 하기 싫어 무시한 채 걸어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그 휴대 전화는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리듯 몇 번이고 주머니 안에서 울어댔다.
“쳇, 뭐야?”
투덜거리며 주머니 안에서 휴대 전화를 꺼낸다. 액정 위에 표시되어 있는 것은 몇 명 되지 않는 친구의 중 한 사람의 이름. 지난 몇 달 동안 특별한 연락을 취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며 전화를 받는다.
“무슨 일이야?”
[여, 오랜만이야.]
휴대 전화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전부터 쓸데없이 밝은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성격은 아직도 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옆에 있으면 후끈한 열기라도 느끼지 않을까? 그런 어이없는 생각을 하며 가볍게 대꾸했다.
“뭐, 오랜만이긴 하네.”
[그래. 가끔은 먼저 연락도 하고 그래라. 너 죽었는지 아는 사람들도 많을 거다.]
그런 소리를 지껄이더니 저 혼자 키득거리며 웃는다. 왠지 모르게 짜증이 치밀어 오르며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진다.
대꾸할 기분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뭐하고 있어?]
“먹을 것 사러 나왔어.”
이어지는 물음에 대충 답한다. 어째 이야기를 하는 말투에서 특별한 용건도 없이 전화를 한 것 같다는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귀찮아…….
적당히 끊어버려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며 다음 말을 기다린다.
[오, 설마 그 애 만들어 주려는 거야?]
하지만, 녀석은 그런 물음을 던졌다.
하긴, 아직 이 녀석은 모르려나…….
투덜거리고 싶은 마음 따위는 생기지 않았다. 그저 전화를 그대로 끊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 정도였다. 그런 생각을 억지로 참아내며 짐짓 무덤덤한 투로 대꾸했다.
“깨졌어.”
[뭐?]
마치 잘못 들었다는 것처럼 되물어 온다.
“깨졌다고.”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느끼며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휴대 전화 너머에서 할 말을 찾고 있는 듯, 잠시 머뭇거리는 녀석의 태도가 전해져 오고 있었다.
[언제?]
“얼마 안 됬어.”
불과 며칠 전이니까.
계속해서 떠올리고 싶지 않은 화제를 떠올리게 된다. 스스로에 의해서, 그 것이 아니라면 주변에 의해서.
이미 구겨진 마음은 펼쳐 보인다고 해서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망가져 있는지 지나칠 정도로 잘 보일 뿐이다.
[으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기에 그럴까? 그 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꺼내서는 안될 소재를 꺼냈다는 것에 대한 자책감일까? 녀석은 말을 잊지 못한 채 그렇게 가벼운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할 말 없으면 끊는다.”
그 침묵을 잘라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한다.
일방적인 통보.
불과 며칠 전에 내가 당했던 일이다.
그 것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스스로가 잘 알고 있으면서, 아무리 지금 상황이 그 때와는 다르다고 하지만, 자신이 주체가 되어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쓴 웃음이 새어나왔다.
“뭐, 결국 그런거지.”
자신이 당하면 그 것은 좋지 않은 일이고, 자신이 행할 때는 아무런 문제될 이유가 없는 일이다.
그건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서운 생각인가.
하지만 오히려 더 무서운 것은 그런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나 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휴대 전화를 다시 주머니 속에 찔러 넣는다. 피식 하고 웃으며 고개를 들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사람을 보았다.
새하얀 눈이 시간에 더럽혀지지 않았다면 그 사람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만큼 그 사람은 하얀 사람이었다.
마치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볼을 꼬집어본다.
그 만큼 그 사람은 환상 같은 사람이었다.
이 세상이 멈추어 버린 것처럼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 만큼 그 사람은…….
그렇게, 예측할 수 없던 일은 운명처럼 다가와 나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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