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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언젠가-먼 옛날

2007.09.29 00:05

Set_Age 조회 수:181

집이 불타고있다.
집이라고 하기엔 너무 크다. 성이라고 하는게 맞을것 같다.

성이 불타고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밖으로 대피하고있다.

소녀가 걷고있다.
불타는 복도를 걷고있다.
검은 긴 생머리가 흔들린다. 레이스가 많이 달린, 화려한 드레스엔 이곳저곳 그을음이 묻어있다.

"------------"
사람들의 외침이 들린다. 소녀를 찾는 소리이다.
소녀의 걸음은 남다르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도 평정을 잃지않고 우아하게 걷고있다.
그 표정에선 비장함까지 느껴진다. 딱 보기에도 교육받은 집안의 자제라는 느낌이다.
아니, 비장함이라기보단 무감정이다.

소녀는 도망치지 않는다.
불타는 성 안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어떤 방 문을 연다. 이미 그 방도 불타고있고 손잡이도 뜨겁다.
하지만 소녀는 신경쓰지않고 문을 연다. 방 안은 불타고있다. 커다란 가구와 예쁘게 꾸며진 장식들.
크고 작은 많은 인형들과 꽃들. 소녀의 방인듯 싶다.
하지만 이미 모두 불타고있다.

소녀는 그 불꽃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곤 그 방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침대에서 집는다. 웬 긴 검 한자루가 침대에 박혀있다.
소녀는 그 검을 뽑아들었다.

소녀는 방에서 다시 나왔다.
사람들이 소녀를 찾아왔다. 무사한 것을 보고 안도한다. 한 사람이 소녀를 감싸러 다가온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소녀의 모습에 정신이 팔려 소녀의 손에 들려있는것까진 신경쓰지 못했다.
그리고-소녀에게 다가온 사람이 쓰러졌다.
그 뒤에 있던 사람도 쓰러졌다.
그제서야 뭔가 잘못됐다는것을 알고 다른 사람들이 도망가려고 한다.
하지만 늦다.
또 한 사람이 쓰러졌다.
또 한 사람이 쓰러졌다.
또 한 사람이 쓰러졌다.

소녀는 불타는 복도를 걸어간다.
지나가며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기위해 달린다.
하지만 모두 쓰러진다.

소녀가 어떤 방 문을 연다.
그 방 안엔 미처 도망치지 못한 사람들이 웅크리고 숨어있다.
---
모두 쓰러졌다.

성이 불타고있다.
소녀는 불타는 성 안을 걷는다.
아직 정상적으로 타고있는 촛대가 있으면 뽑아 불속으로 던진다.
아직 정상적으로 남아있는 창문이 있으면 깨트려버린다.

소녀의 흰 살이 불에 그을린다.
소녀의 고운 살결이 유리조각에 베여 피가 흐른다.

소녀는 붉다.
소녀의 눈에선 붉은 액체가 흐른다.
소녀의 입가엔 붉은 액체가 묻어있다.
소녀의 옷은 붉은 색으로 물들어있다.
소녀가 지나간 자리엔 붉은색 자국이 남는다.
소녀의 발자국이 떨어질때마다 붉은 흔적이 남는다.
소녀의 손에 들려있는 은빛 물체에선 붉은 액체가 방울져 떨어진다.

아무 생각도 없는듯
그저
걸어간다.
이 불길 속을
걸어간다.

그리고-걸음이 멈춘다.
앞을 가로막는 남자가 있다.

"──────"
남자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소녀는 눈물을 흘린다.
눈가의 붉은 액체와 만나 붉은 눈물이 흐른다.

소녀의 머리칼이 붉게 물든다.
소녀의 눈동자도 붉게 물든다.

소녀가 달려나간다.
남자는 슬픈 표정으로 바라만본다.
소녀의 검이 남자의 가슴에 찔린다.
남자는 무릎꿇는다. 소녀도 함께 무릎 꿇는다.
남자는 소녀를 껴안는다. 눈물이 흐른다.

남자가 쓰러졌다. 소녀는 계속해서 붉은 눈물을 흐른다.

소녀의 머리칼이 은빛으로 물들었다.
소녀의 머리칼도 은빛으로 물들었다.

그 은빛은
너무나도 눈부시게 빛이나서
주변의 불꽃마저도 은빛으로 타는듯한 느낌을 주었다.

순간-세계가 멈추었다.
색상이 반전되었다. 타고있던 불꽃도 멈추었다.
모든게 멈추었다.
반전된 색상의 세계 속에서 소녀만이 원래의 색상으로 남아있다.

그녀의 뒤로
한 여성이 걸어온다.

원래의 색상을 가지고 있는건지-반전된 색상이 지금이 색상인지
알 수 없다.

"내가...원한건 이런게 아니야..."
소녀가 말한다.

"내가 원한것도 이런게 아니야..."
여성이 답한다.

은빛으로 빛나는 소녀의 머리칼과 눈동자.

세계가 은빛으로 휩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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