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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말하는 고양이1

2006.08.18 21:12

붉은눈물 조회 수:230

<너 어제도 여기를 지나갔지?>

길을 걷고 있는 내 귀에 낯설지만 끌리는 목소리가 잡혔다. 주위를 이리저리 살피는 내게 그 목소리는 다시 들리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굉장히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저음으로 - 그것은 내게는 굉장히 낯선 소리였다. 아니 어쩌면 소음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 흡사 바이올린과 첼로를 번갈아 연주하는 듯 했다.

<어이, 여기야 여기>

계속해서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를 찾아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여기라고. 아래! 아래를 보란 말이야. 도대체가 그렇게 감각이 무뎌서 어디다 쓰겠다는 건지 원.>

투덜투덜 불평이 섞인 그 낯선 목소리의 근원지는 바로 앞 전봇대, 아니 그게 아니라 그 아래 앉아 있는 고양이였다.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면서도, 웅크리고 앉아있는 고양이와 시선을 맞추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을 쭈그리고 앉아야 했다. 불편한 자세로 앉은 나는 고개를 왼쪽 오른쪽 좌우로 기울이다가 고양이가 내뱉는 투정과 같은 중얼거림을 듣고는, 급기야 중심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나는 전봇대 아래에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누워버린 꼴이 되었다. 급기야 그 모습은 고양이가 나를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 구경 하는듯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아마 친구 녀석들이 이 모습을 봤으면 비웃었을 법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넌,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늘 그렇게 사소한 것에서도 중심을 못 잡잖아. 사는 데에는 균형이 필요한 거야. 날 봐. 정말 멋진 고양이잖아. 난 절대로 떨어지는 법이 없지. 내가 지붕위에서 멋드러지게 낮잠을 자는 걸 본 적 있지? 왜 너희 앞집인 그 빨간 지붕 말이야. 그 지붕으로 올라가려면 내 수염의 반 정도 밖에 안 되는 넓이의 담장을 몇 개나 지나야 되는지 알기나 해? 중심이라는 것은 적어도 나처럼 잡을 줄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단 말야.>

아. 나는 그대로 누운 채로 고양이의 목소리를 감상하고 있었다. <말하는 고양이>의 잔소리가 어쩐지 애잔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기도 하거니와 그냥 좀 더 말하게 내버려 두고 싶기도 했던 것이었다. 어쩌면 말하는 고양이에게 최면이라도 걸려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말하는 고양이가 존재했었나?

<너 말이야. 지금 내가 말을 하고 있어서 놀라운가 본데, 세상에는 별의 별 동물들이 다 존재한다고. 동물뿐 아니라, 광물들도 이야기를 할 수 있어. 단지 인간들이 알아듣지 못할 뿐이라고. 인간들은 마음을 너무 꽉 닫아버리고 사니깐 말야. 인간들은 커가면서 상상력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말잖아. 안그래? 너도 이미 공상이란 걸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잖아.>

나는 말하고 있는 고양이를 쳐다보면서, 멍하디 멍한 표정으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누워있기로 결정을 해버렸다.

<나는 너를 보면 쥐 잡는 법이나 쓰레기 봉지에서 신선한 먹이를 찾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싶어지는 거 혹시 알아? 너처럼 매일 비틀거리면서 걷게 되면 결국 언젠가 쓰레기봉투 옆에 폐기처분될걸? 그것처럼 비참한 일이 또 어디 있냐 말이야.>

고양이는 조금은 거만하게 또 조금은 귀엽게 꼬리로 두어번 땅을 내려치거나, 앞발로 얼굴을 닦으면서 날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무언가 골똘하게 생각하는 듯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쩌면, 이 고양이는 내가 사람인 것을 잊어버린 걸지도 몰랐다. 아니면 떠돌고 있는 소문에 존재한다는 망각의 열매를 먹어버린 후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저번에 말이야. 네가 놀이터 벤치 아래서 혼자 울고 있는 걸 본 적 있어. 사실 그때 내 옆에 새로 온 예쁜 암컷만 없었더라면, 위로정도는 해 줄 생각이었지만 말야. 새벽에 그렇게 울고 있으면 큰 일 난단 말이지. 이렇게 세상이 험한데 나쁜 사람이 잡아가면 어쩌려고 그랬어? 궁금해서 그러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말해주면 안될까?>

고양이는 조금 오래 되서 바래버린 기억을 하나하나 들출 모양이었다. 아주 오래전 기억으로 치부해버리고 싶은 내 은밀한 주머니 속의 작은 점까지도 고양이는 모두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아마도 까마득히 잊어버린 것 같았다. 아니면 나를 고양이로 생각하고 있거나, 자신이 인간인줄 착각하고 있는 것이리라. 나는 조금은 자존심이 상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누워서 멀뚱멀뚱한 눈으로 고양이를 두어번 훑어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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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에 다 올리면, 보시기 힘드실꺼 같아서..끊어 올릴께요..(응?)
결국 제목옆에 숫자는 아무의미 없다..이런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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