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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The last week 제 1부 -만남

2006.03.11 19:10

세이렌카렌 조회 수:201

제 1부 -만남.

“안녕하세요.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러 찾아 왔습니다.”

내가 죽음을 선고받은 그날 밤 그녀가 찾아왔다.

검은 원피스 차림에 품에는 무언가 커다란 책을 안고 있었고, 한밤중의 어둠에 녹아들 듯 검은 머리를 한 그녀는 내가 문을 연 순간 그렇게 말했다.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그 붉은 두 눈을 빛내면서.

“하아?”

그런 그녀와의 만남에서 처음 내뱉은 말은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럴 것 이 이미 주변의 불빛이 사라진 한밤중에 갑작스레 찾아와서 하는 말이 ‘소원을 들어 주겠어요!’라니, 누구나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마치 지금의 내 상황을 비웃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침 오늘 죽음을 선고받은 것이다.

원인불명, 치료방법 불명. 다만, 죽음의 날짜만을 기분 나쁘게 정확히 알려준 의사를 향해, 내 아버지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저 언제나 하는 정기검진의 일환으로 검사를 받은 것에 불과했다.

매년 이렇게 정기 검진을 받고 있었고, 지난 년도에는 ‘너무 건강하다’며 ‘감기라도 걸려 보는 건 어떻겠느냐’라는 농담까지 들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년도, 새해가 시작되는 날 나에게 통보된 사실은 가혹했다.

‘내장이 썩어들고 있다’고 했다.

‘이미 너무 진행되었다’고 했다.

‘살아남긴 힘들다’고 했다.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시간은 단 ‘일주일’에 불과하다‘고 했다.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지 않으려 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한,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현실은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내 주치의의, 아버지의 멱살을 잡고 흔들면서 소리쳤다.

‘기분 나쁜 농담은 하지 말라’고

‘어째서 내가 이렇게 되었냐’고

하지만 아버지는 힘들게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런 행동에서, 언제나 힘이 넘치던 아버지의 그런 행동에서 난 이것이 현실이라고 알 수 있었다.

참을 수 없는 분노에, 공포에, 절망에 아버지에게, 그토록 따르던 아버지에게 주먹을 휘두르고는 병원을 뛰쳐나왔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아올랐다.

참을 수 없는 공포가 날 휘감아 왔다.

그렇게 솟아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날 휘감아가는 공포를 뿌리치고, 끈질기게 쫒아오는 ‘절망’에서 도망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나와 아는 사람을 몇 만났다.

언제나 들리던 작은 골목슈퍼의 주인아주머니,

아침 운동을 하로 나가면 언제나 마주치던 할아버지,

십몇 년을 나와함께 지내온 친구 두 녀석,

그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나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런 그들의 행동이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

난 이렇게나 공포에 떨고 있는데, 난 이렇게나 절망에 쫒기고 있는데 어째서 웃고 있는 것 인지 이해 할 수 없었다.

날 비웃는 것 만 같았다.

내 죽음을 기뻐하고 있는 것 만 같았다.

그들의 성의가 담긴 인사를 뿌리치고, 그들의 미소를 저주하며, 쫒아오는 절망을 피하듯 비틀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참동안 도망치듯 걸어간 끝에 나의 ‘집’에 도착했다.

불과 2년 전에 마련한,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마련한 집을 보는 순간 왠지 마음이 놓였다.

그다지 작지는 않지만, 포근함이 느껴지는 집을 본 순간, 지금까지 쫒아오던 절망은 온대간대 없이 사라졌다.

떨리는 손으로 겨우 열쇠를 따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넘어서 내 ‘집’으로 들어갔다.

끊임없이 흐르던 식은땀은 어느새 멈춰 있었고, 발걸음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떨리던 몸은 이미 진정돼 있었다.

작게 숨을 고르며 아주 작은 정원을 지나 현관문 앞에 다다랐다.

이제는 떨림이 멈춘 손으로 현관열쇠를 꺼내들어 문을 열었다.

현관으로 들어가 신발을 벗고 싸구려 소파가 놓여져 있는 거실을 지나, 내방으로 들어가 TV를 틀었다.

채널을 조금 돌려보니 TV에서는 쇼 프로그램이 재방송되고 있었다.

그 프로그램은 내가 가장 즐겨보던 쇼 프로그램 이었고, 마침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개그맨이 과장 섞인 몸놀림을 취하며 이것, 저것 바보 같은 행동을 했다.

관객들은 폭소했고, 연기하던 개그맨들 역시 폭소했다.

그 화면을 보고 있는 나 역시 폭소했고, 눈에서는 오래도록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흘렀다.

“아하하하”

손을 들어 눈물로 범벅이 된 눈가를 거친 소매로 닦아낸다.

“아하하하하하하”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눈물을 막기 위해 두 손으로 눈을 강하게 눌렀다.

“아하하, 하하하하하!!”

억지로 폭소하며,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계속해서 닦아낸다.

하지만 한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도무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나 울어 본건, 눈물을 흘려 본건 근 3년만이었다.

마치 그동안 흐르지 못했던 눈물을 다 쏟아낼 것처럼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눈물을 닦고 있던 소매는 이미 축축이 젖어버렸고, 계속해서 문질러댄 눈가에서는 어느새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흐르는 눈물에 맞서, 공포에 맞서, 절망에 맞서 억지로 폭소하는 내 목소리는 너무나 작았다.

그렇게 절망에 맞서 억지로 웃음을 지은 지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대지를 비추는 햇살은 이미 산을 넘어가 버렸고, 거리에는 밤의 어둠이 점차 찾아들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TV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TV 따위 꺼버린지 오래였다.

관객들의 그 웃음소리가, 연기자들의 웃음소리가, 내 웃음소리가, 더욱더 눈물을 흐르게 만들었다.

근 반나절에 걸쳐 눈물을 쏟아낸 두 눈은 이미 엉망이었다.

퉁퉁 부은 두 눈에서는 아직도 눈물이 흐르며 약간이지만 붉은 피도 함께 섞여 나왔다.

난 그 상태로 그 자리에 드러누워 버렸다.

아직 겨울의 차가움이 가시지 않아서 인지 바닥은 뼛속이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이대로 잠든다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잠든 채로 죽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죽는다는 사실은 이미 변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진료였다.

단 한번도 아버지의 진료는 틀린 적이 없었고, 그렇기에 내 절망은 더욱 커져갔다.

처음 집으로 들어왔을 때 느낀 포근함은 이미 사라져 지금은 오히려 온몸을 칼로 도려내는 듯한 한기만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감은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흘러 나왔다.

웅크린 몸은 놀랄 정도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한기에 노출된 손과 발은 이미 감각이 없을 정도로 차갑게 얼어 있었다.

아니, 불안이, 공포가, 절망이, 슬픔이 내 몸에서 온기를 뺏어가고 있었다.

잠든다면, 이곳에서 잠들어 버린다면 죽어버릴 수 있을까, 이 절망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깊은 꿈속으로 빠져 들었다.



어두운 공간이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눈에 보이는 것은 단지 어둠뿐, 단 한점의 빛도 없는 어둠만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사각 사각-

무언가를 갉아가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집중하지 못하면 놓쳐버릴 수 있는 그 소리는 조금씩 주위를 채워가고 있었다.

-사각 사각-

저 멀리서 들리던 소리가 어느새 내 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 커졌다.

-사각 사각-

그리고 그 소리는 내 몸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귓가에서부터 시작된 작은 울림은 순식간에 내 온몸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마치 내 생명을 갉아먹듯, 공포가 온몸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을 그저 달리기 시작한다.

몸속으로 파고드는 그 소리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빛을 찾아서 그저 달리기 시작한다.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공포에 쫓겨, 절망에 쫓겨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달리기 시작한다.

한걸음 때어놓을 때마다 더 크게 울려가는 소리는 이미 내 몸속을 점령했고.

뚜렷이 느껴지던 몸의 경계마저 주변의 어둠에 물들어간다.

자신을 잊어버리는 듯한 감각.

들이마시는 숨은 얼음과 같은 감각

내쉬는 숨은 독과 같은 감각

지면을 박차고 있는 발은 늪지대를 디디는 듯한 감각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몸은 마치 무너질 듯, 부서질 듯 떨리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손을 뻗어주길 간절히 소망했다.

이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움을 간절히 소망했다.

얼음과 같이 온몸에 퍼져나가는 소리를 멈출 수 있는 따스한 소리를 간절히 소망했다.

끝나지 않을듯했던 이 꿈은 어느 순간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아주 조금, 자신의 일부를 내 몸에 심어놓으며, 어둠은 조용히 물러갔다.


눈을 뜨자 짙은 어둠이 사방을 덮고 있었다.

옆으로 쓰러지듯 누워있는 상태에서 눈앞으로 내 손을 가져왔다.

보인다.

고생이라곤 모를 것 만 같은, 굳은살 하나 없는 손은 어둠 속에서도 뚜렷이 자신을 나타내고 있었다.

옆으로 누워있는 몸을 돌려 천장을 봤다.

옅은 어둠에 쌓여 마치 날 삼킬 것만 같은 천장은, 신기하게도 작은 무늬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이렇게 눈이 좋았나?’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방안을 이곳저곳 훑어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해보니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절망에 빠져 있어도 몸은 영양분의 섭취를 바래왔다.

차가운 바닥에서 자서인지 뻣뻣해진 몸을 일으켜 새우며 나는 부엌으로 갔다.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마루바닥의 차가운 감촉은 아직은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내 생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뚜렷이 기억나게 했다.

“큭……. 큭큭…….”

참는 듯한 웃음소리가 입가로 세어 나온다.

지금의 이 상황을 비웃는 듯한, 물기가 가득 배인 웃음소리는 아무도 없는 집안에 울러 퍼졌다.

-딩동-

그때 현관 밸 소리가 울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시계로 시선을 옮겼다.

약 12시 30분

이런 한밤중에 날 찾아올 사람이 있을 리가 없을 탠데 …….

난 허둥지둥 얼굴에 흐른 눈물 자국을 닦아낸 후 현관으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나 차갑게 느껴지던 바닥은 어느새 희미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연 순간, 그녀를 보게 되었다.


밤의 어둠에 녹아들 것만 같은 검은머리를 하고 있는,

새카만, 하지만 자신의 윤곽을 뚜렷이 나타내는 검은 원피스를 입은,

내 머리만한 커다란 책을 들고 있는,

마치, 이 세상사람 같지 않은 붉은 눈동자를 가진 그녀는 처음만난 나에게 거리낌 없이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러 찾아 왔습니다.”

라고 말하며 그녀는 작게 미소 지었다.

어찌된 일인지 그녀의 미소를 본 순간 아주 조금, 가슴 한구석에서 따스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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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노기 꿈꾸는 사람들 소속 '세이렌카렌' 입니다.

고3도 됬고 해서 .. 마비는 접어 버렸어요 (운다)

아이템도 처분중이고 하아...

뭐 .. 그런 이야기는 접어두고

이 소설은 어느날 갑자기 떠오른 설정으로 근 한달에 걸쳐서 작업한 분량입니다 (털썩)

뭐 .. 확실히 본인의 소설쓰는 진도는 더디기 그지없습니다만 ..

이번에는 너무 심했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총 7부로 계획되 있고

현제 제 2부의 두번째 파트를 쓰고 있습니다.

그럼 문장의 어색한부분, 오타등을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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