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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雜談. 부정

2005.12.03 14:44

Lunate_S 조회 수:193

 이건 또 뭐야.

 “나를 잊을 수 있는가?”
 “아니,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지.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한번도 너라는 ‘무언가’의 존재를 잊은 적이 없으니깐.”
 씁쓸한 미소가 입가로 새어나와, 조용하게 바람을 따라 흐른다. 한때의 방황으로 우울해져버린 운명. 나의 운명은 이미 길이 끊겼다…. 아니, 나의 길은 분명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단지,
 그 길을 찾는 법을 모를 뿐이지….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렇다면, 그대. 내 존재를 잊어라. 나를 불러온 이 세계에서, 나를 지워라.”
 내 참. 사람 당황스럽게 스리…. ‘이것’은 어째서 내게 이렇게나 갑자기 다가온 거지.

 “그렇게 갑작스럽게 나에게 다가온 이유가 뭐지? 내가 네 존재를 알고 있는 것. 정확히는, 너라는 ‘무언가’를 느끼는 것이 나에게 잘못이라는 건가? 아니면, 너는 내가, 네가 지닌 운명의 몫까지 책임지라고 부탁하고 있는 건가?”
 가뜩이나, 나의 운명은 지워져버렸다. 존재한다, 라는 길을 잃어버린 운명은, 그 자신을, 지워졌다, 라는 그 자체로서의 말로서 봉인한다.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존재할 수 없다는 선고니깐.

 “나에겐 운명이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운명을 먹고 태어난 자들은, 자신의 운명대로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이다. 애초에, 그런 것은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깐.”
 그렇게 태연히 모순을 말해버리면, 이쪽에서 할말이 없어지잖아, 정말.

 “그렇다면, 그대. 내 존재를 부정否定해라. 지금 이 자리에서, 그대에게 명령하노니─ 내 존재를, 의지를 말살해라.”
 이거, 갈수록 태산이군.

 “그전에 네가 처한 위치부터 말해보도록. 내겐 타인의 명령을 들을 의무는 없다. 네가 인간이 아니더라도, 내게는 타인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정말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네 소원─ 들어주도록 하지.”
 내 자신 하나 가누지 못하는 주제에, 이런 말이나 하다니… 정말 한심하군. 살며시 이러한 생각이 자리잡아버렸다. 괜히 귀찮아지기도 하는데….

 “나는, 그대에 어둠 속에서 파생된 자. 그대의 일부이나, 그대에 제어에서 벗어난 자. 그대를 파멸시킬 자. 영원한 운명의 죽음을 가져오는 운명이다.”
 “…그게 너희 ‘무언가’의 정체인가? 단순히 ‘그것’뿐인가?”
 “그렇다. 우리가 언제 출현하게 됐는지, 그것은 우리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는 아마도, 우리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개체들을 섬멸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 의미이자, 존재 의지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대의 운명을 잡아먹고 태어났다.”
 내 운명은, ‘이것’한테 먹혀버린 거였나…. 괜히, 지금까지 ‘길’에 잘못만 탓해왔잖아. 이래서는, 완전 위선자로군, 젠장.

 “그렇군, 역시. 그녀도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말했어. 세계의 의지는, 대지의 의지는 자신을 해치는 자들을 언제라도 제거하려고 한다.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주제에, 모든 것을 파괴하려고 들지. 너 또한, 우리 인류를 제거하기 위해, 대지가 선택한 존재로군. 너희들이 인간을 죽이려는 이유는 잘 알았다. 그런데, 이유가 뭐지? 어째서, 너는 나를 죽이려하지 않고, 되려 내게 죽임을 당하려고 하는 거냐?”
 “나는… 내가 태어난 것을 부정否定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부정하며 살아간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세상을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언젠가 만난… 한 인간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 하지만, 인간은 너무 이기적이라, 그들만이 세상에 전부인 양, 모든 세계의 행위, 심지어는 자연까지도 자신들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렇기에, 자신들을 제외한 다른 동물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할 지성조차 없다고 생각하지. 인간을 제외한 동물도, 식물도,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단지, 인간은 그 시기가 맞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 또한, 인간의 운명. 그렇기 위해서, 대지는 우리라는 천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무언가’의 설명을 들으며 인간은 정말로 그렇다, 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뇌가 고동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녀석, 정말 위험하다. 이 녀석, 살려두면 우리가 ‘멸종’당한다. 내 온몸의 의지는―그 인간의 의지는 그렇게 부르짖고 있었다. 이 녀석을, ‘이것’을 『죽이라고』.’ 살려두면 안된다. 살려뒀다간, 도리어 내가 당한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존재로 태어난 것이 정말 싫다. 우리는 인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에, 사고방식조차, 인간과 비슷하게 되어버렸다. 어쩌면, 인간을 멸종시킨 뒤엔, 우리가 이 세계의 해악害惡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렇기에, 그런 모습을 보느니, 나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려 한다. 나는 그대로부터 파생된 자. 그대는 나를 부정함으로서, 힘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의지의 통합이라고 부른다.”
 “……뭐야, 그런 거였냐. 넌 정말로 겁쟁이로군. 단순히 말해서 말이지. 결국, 네가 내게 이러한 말을 하는 이유는, 네가 너의 종족을 배신하는 일을 자기합리화 시키는 것일 뿐이군. 그것도 내게 힘을 준다는, 그것을 통해 인류를 지킨다는 거창한 명분으로 미화시켜서. 안 그래?”
 “지금 그대는 나의 대의를 무시하는 것인가! 그대는 나의 부정 당하려는 용기를 치졸한 겁쟁이로 만들려는 것인가! 나는 지금 당장, 그대를 부정할 수도 있다!”
 뭐야, 그냥 겁쟁이일 뿐이었나. 괜히 긴장했네. 하아…, 정말 귀찮군. 귀찮은 녀석이야.

 “아니, 나는 네가 죽으려는 이유를 말한 것뿐이야. 그리고 너를 죽이지 않겠다고 한 적은 없다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악마한테라도 혼을 팔겠어. 나는 내 운명을 만들어야 하거든. 그러니…… 이만, 죽어라.”


 탕……!

 지독하게 연기를 뿜고 있는 총구를 불어내며 살며시 밑으로 내린다. 녀석에 형체라는 것은, 이미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어차피, 원래 희미한 존재였지만…. 의지의 통합이라, 그렇다면 나도 네오(능력자)가 된다는 소린가. 아니, 그전에 네오들은 모두 이렇게 만들어지는 거였나….

 땅속으로 스며들어가는 쉐도우(그림자)를 바라보면서, 별 생각 없이 다시 돌아선다. 어차피, 나의 세계는 미쳐있으니깐. 언제든지 인간이 죽을 수도, 이것들이 죽을 수도 있다. 생물은… 살아있다는 녀석들은 쉽게 죽어버리는 존재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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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쓰는 모든 소설에 공통된 적으로 포함한 녀석들의 대한 설명글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단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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