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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 하늘에서 레전드 기체 하나 안 떨어지나...' 라고 생각하며 궁시렁 대고 있던 아젠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닌데 이렇게 급하게 뛰어오는 사람이라니. 자신도 모르게 일단 고개를 돌려 본 아젠은 그 발소리의 주인공이 자신과 꽤나 가까이 지내는 사람 중 하나인, 그리고 자신을 보고 그렇게 뛰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짝!

 등을 한 대 맞은 뒤에야.

 "여, 오늘도 꿀꿀한 표정 어디 안가는구나. 또 졌어?"

 "맞을래?"

 눈을 흘기며, 아젠은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스스럼없이 지낸다고 해도 이 단순 바보는 여자에 대한 예의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것 같았다.

 "에이. 화 내지 마. 한두번 지는 것도 아니고."

 "그거 때문이 아니라니까...."

 만약 이 것이 만화 속의 장면이었다면 지금쯤 저 녀석은 땅에 쓰러진 채 파들파들 떨고 있었겠지. 하지만 아쉽게도 아젠에게 그런 능력은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좀 알아주기를 바라며 한숨 짓는 것 뿐. 아무리 그래도 역시 몸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

 "아, 그러고보니 나 어제 휴케바인 샀..."

 - 퍼억!

 패버렸다. 진심으로.

 만화처럼 멋드러지게 땅 위에 엎어지지는 않았지만 눈치 없는 녀석의 입을 다물게 하기에는 충분한 위력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젠은 얼얼한 손바닥을 살살 털어내며 아픔을 달랬다.

 "왜 때려!"

 "모르겠으면 게시판이든 지식 검색이든 뭐든 찾아봐."

 조금은 퉁명스럽게 말하며 아젠은 몸을 홱 돌렸다. 등 뒤에서 이유를 알 수 없다면서 궁시렁 대고 있는 녀석의 목소리에 이어 또 한 대, 누군가가 녀석을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히이로도 고생하는구나. 저런 녀석을 친구로 둬서.

 피식 하고 새어나오는 웃음을 뒤로 한 채, 아젠은 발걸음을 옮겼다.
 
 휴케바인. 이전부터 쥐슬이 반드시 그 것을 사겠다고 누누히 말해온, 말 그대로 벼르고 벼르던 기체의 이름이었다. 카테고리는 라이센스, 랭크는 VG 중 상급에 속하는 밸런스 형의 기체. 히이로가 '윙건담 제로'를 구입한 이후 '그럼 네 녀석과는 반대로 난 검은 색의 기체를 구해주지!' 라는 이유로 선택한 것이 휴케바인. 사실 검은색이라기 보다는 어두운 푸른빛에 그 위로 휴케바인 MK-3 라는 걸출한 친구가 버티고 있기에 사람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기체인데... 아니, 그보다

 색이라면 커스터마이즈에서 적당히 바꿔주면 해결되는 거잖아.

 그런 주변의 태클에도 불구하고 쥐슬은 결국 휴케바인을 구입한 모양이었다. 하여튼 저 단순한 친구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니까...

 뭐, 확실히 쥐슬의 실력은 괜찮은 편이고, 자신보다 플레이 횟수도 많기에 슬슬 새로운 기체를 구입할 때가 되긴 했구나.. 라는 생각은 충분히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일단 배가 아픈 것도 사실이긴 하다. 뭔가 뒤쳐지고 있는 것 같거든.  역시 너무 높은 기체가 아니라 좀 낮은 거라도 구입해서 포인트를 벌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며 아젠은 자리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례를 알리는 종 소리가 들렸다. 역시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리 일찍 온 것도 아닌 듯. 쥐슬과 히이로, 두 사람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던 아젠은 주변이 조용해지는 것에 올 사람이 왔구나... 라고 생각하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시장 바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시끄럽던 교실이 한 순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단 한 사람의 등장으로 그런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나름 신기한 느낌. 이미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지금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일이지만...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그 역시 참 재미있는 일이다. 

 뭐, 그렇게 따지다보면 세상에 신기한 일, 재미있는 일 아닌 것이 몇 가지나 될려나?

 그런 생각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던 아젠은 문득 교실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본래는 조용해야 할 교실. 하지만 무언가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떠있는 분위기가 이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대체 뭐지?

 영문을 알 수 없는 변화에 의아해하던 아젠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교실에 들어온 담임, 케이치의 뒤를 따라 누군가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전학생인 모양이었다. 조금 차가운 듯한 인상을 풍기는, 키가 크고 어른스러운 느낌의 여학생이었다. 케이치의 말에 그 학생이 전학생이 맞다는 것을 확인한 아젠은 '헤에...' 하며 그 사람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문득, 그 사람의 모습이 눈에 익다는 것을 발견했다.

 누구지? 난 저런 사람 아는 사람이 없는데?

 어디서 본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아젠은 슬쩍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조금은 들떠 있는 분위기, 특히나 남학생들 쪽의 분위기가 꽤나 고조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찾아보기 힘든 은색의 긴 생머리 만으로도 눈에 띄는 전학생의 모습은 확실히 미인이라고 할 수 있을테지. 저런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그 여학생의 모습과 분위기는 상당히 매치가 잘 되어 한층 그 분위기를...

 "으에에~? 고, 공주님?!"

 그리고, 그 분위기를 주도하는 선봉에는 다름 아닌 쥐슬이 서 있었다.

 그래, 말 그대로 서 있었다.

 .... 저 바보, 무슨 소리야?

 저런 녀석과 나름 친하게 지내고 있는 축에 속하는 아젠은 어쩐지 자신마저 부끄러워지는 느낌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슬쩍 옆을 바라보니 히이로 역시 비슷한 느낌인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나참... 대체 뭐하는 짓이야?

 멋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괴상한 비명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쥐슬은 케이치의 지적을 받은 뒤에야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 앉았고, 주위에서 쏟아지는 눈총과 웃음을 받아내야만 했다.

 하여튼, 대책 없는 녀석이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전학생을 향해 시선을 옮기던 아젠은 그제야 왜 저 전학생의 모습이 눈에 익은 것인지를 깨달았다.

 "..... 진짜, 공주님이잖아."

 게임이라는 것이 물론 남자들 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여성 게이머도 분명히 존재하며, 그 것도 상당수.

 하지만 그 숫자가 남자에 비해 적은 것은 사실인데다가 ED 같은 매니악한, 메카닉 계열의 게임에는 그 수가 분명 적을 수 밖에 없었고, 그 만큼 눈에 띄는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만약 그 사람이 눈에 띌 정도로 뛰어난 실력과 함께, 연예계 쪽에서도 눈독을 들일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면?

 '공주님' 이라는 별명이 이해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실린 에클레시아. 뛰어난 실력과 상당한 미모로 쥐슬을 필두로 한 뭇 남성팬들을 다수 확보중인 ED의 플레이어. 팀 배틀 모드 우승 경력까지 보유 중. 별명은 말했다시피 공주님. 

 생각보다 더 엄청난 사람이 전학을 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아젠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써야만 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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