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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마루 - 55

2008.06.21 01:26

카와이 루나링 조회 수:219

 길게 생각해 볼 것도 없었다.
 망설임 같은 것도 없었다.
 그대로 휴대 전화를 잡아 익숙한 번호를 누른다.

 - 따르르릉

 단조로운 통화 연결음이 들려온다.
 마치 시계의 초침 소리처럼 울리는 그 소리에 가슴이 세차게 뛴다.

 받아... 받으라고...

 실제로는 10초 남짓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극도로 흥분해 있던 내게 그 시간은 실로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이었다.

 "제길..."

 몇 번이나 혀를 차며, 몇 번이나 입 안에서 욕설을 되뇌인다.
 초조한 마음은 끊임없이 주변을 왔다갔다 거리게 만든다.

 대체 왜 안 받는거야!

 - 딸깍

 전화기에 대고 소리라도 지르려고 할 무렵,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황급히 걸음을 멈추고 전화에 귀를 기울인다.

 "에렐?"

 [.... 그래.]

 짧은 침묵과 그 뒤에 이어진 에렐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자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온다.
 그래, 아직은 괜찮은 건가...
 
 아니, 어쩌면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르지.
 단지 에렐이 모르고 있는 것 뿐인지도...

 짧은 순간, 수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가, 가볍게 숨을 고른다.

 "에렐."

 [.... 아, 미안하다.]

 다시 한 번 에렐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에 이어진 에렐의 답은 이번에도 조금 뒤에 돌아온다.

 [미안하다. 로베스가 잠시.... 그래, 이제 말해도 좋다.]

 짧게 이어진 에렐의 사과.
 그제서야 에렐의 목소리 뒤에 희미하게 울리는 로베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루 교사님' 이라는 말이 간간히 들려, 잠시나마 무슨 일인가 하는 궁금증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것도 어디까지나 잠시.
 어느샌가 난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채 에렐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괜찮아?"

 [.... 뭐... 그렇다. 무슨 일인가?]

 내 뜬금없는 질문에 에렐은 잠시 시간을 두었다가 답했다.
 어쩐지 에렐의 뒤에서 계속 로베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애써 무시.
 지금 중요한 것은 그 것이 아니다.

 가볍게 한숨을 쉰다.

 [... 머루?]

 여전히 내 이름의 발음만은 익숙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이야기 할 만한 기분은 아니었다.

 "아, 아니야. 그러니까, 지금은 괜찮은거지?"

 다시 한 번 새삼 확인해 본다.
 그에 대해 돌아오는 답은 여전히 긍정.
 그제야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는 것이 느껴진다.

 "음, 그래....  그러니까..."

 잠시 말을 고르는 사이 에렐은 가만히 내가 말하기를 기다리는 듯한 눈치였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작은 숨소리에 겨우 머릿속이 식는다.

 "음, 그러니까..."

 [... 말하기 곤란한가?]

 어떤 이야기를 먼저 해야할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 에렐은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물어왔다.
 그에 겨우 두근거리던 가슴이 진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아, 아니야."

 에렐의 말에 재빨리 답한다.
 
 "저기, 에렐."

 [.... 듣고 있다.]

 에렐이 답 하는 것을 잠시 기다다렸다가 말을 잇는다.
 
 "그... 조심해."

 [.... 응?]

 "자세한 설명은 다음에 대 줄께. 일단은, 조심해."

 에렐에게 아직은 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싫었다.
 그렇기에 대충 얼버무리 듯, 자세한 설명 조차 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맺는다.
 하지만 에렐은 그런 나의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 역시 진지하게 답해주었다.

 [알았다.]

 조금은 가라앉은 목소리.
 어째서인지 힘이 없는 듯한 목소리였다.
 
 "... 미안해."

 그에, 나도 모르게 사과해 버린다.
 미묘한 변화지만, 현재 에렐의 기분이 상당히 가라앉아 있다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로베스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역시 나 때문이겠지.

 [.... 아니다.]

 에렐의 답변은 이번에도 조금 늦었다.
 어쩐지, 뒤에 들려오는 로베스의 목소리가 커진 것 같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지금 그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겠지.

 "일이 끝나면, 바로 돌아갈께. 조금만 기다려줘. 이야기는... 그 때 해 줄께."

 [그래.]

 간단한 에렐의 답변을 끝으로 통화를 마친다.
 병원 쪽을 바라본다.
 아직 솔이는 잎새의 병실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에렐에게... 해 줘야 할 이야기가 많구나...
 잎새나, 내 가족에 관한 이야기...
 이전에 에렐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줄 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길게 한숨을 쉰다.
 어쩐지, 복잡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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