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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자」

황갈색머리를 단정하게 빗어내린 샤를로트 12세는 우리가 숨어있는 잔디 아래에서 등을 돌리며 그렇게 말했다.
분명히 이남자가 왕위를 계승할거라는 생각은 한적이 있다.오빠, 베냐민의 오랜 친구이자 어릴적부터 나와도 자주 놀았던 이 코흘리개 왕자님이.하지만, 지금 이렇게 만나다니…

「으, 욱」

나도 모르게 헛구역질이 일어난다.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큰 실수인지는 나도 몰랐다.
등을 돌려 마차로 향하던 샤를로트 12세는 이내 곧 발걸음을 멈췄고, 뒤로 돌아봤다.

「마부.」
「예, 예!국왕폐하.」
「방금 이상한 소리 듣지 못했나?」
「무, 무슨 소리 말씀이신가요?」

국왕은 마부의 물음을 무시하고서는 우리가 숨어있는 잔디로 천천히 걸어왔다.클라우스씨의 말대로라면 우리가 엎드려 있는 이곳에는 위장마법을 시전해, 겉으로 보면 보통 잔디가 깔려있는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자세히 보면 들킬 염려도 있다고 했다.거기다가 밤이고 하니 들킬 염려는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국왕이 뽑은 검이 내 눈앞의 잔디에 꽂혔고, 위험하다고 판단한 클라우스씨는 나를 한쪽팔로 안고서는 그대로 잔디에서 튀어나와 뒤로 물러났다.

「역시, 이런데에 숨어있었군.」

국왕, 샤를로트는 천천히 잔디에 꽂힌 검을 뽑아 손에 쥐었다.

「호오, 누군가 했더니 클라우스잖아?」

국왕의 그 시선은 굉장히 거만해 보였다.그럼에 비해 한쪽팔로 나를 끌어안고 있는 클라우스씨는 ‘치잇’이라며 생전에 절대로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연속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샤를.그동안 잘 지냈나?」
「나야, 지겨울 정도로 잘 지내지.그러면 클라우스, 자네는?」
「나도 이제 곧 기펴고 살 생각이였는데.이렇게 방해가 들어와서 말이야.」

예전부터 알고있었던 사이일까.국왕과 클라우스씨는 서로와 서로를 노려보면서 대화하고 있었다.

「호오, 클라우스.그 여자는 애인인가?」
「흥, 그렇다면 어쩔건가?우다무르트 제국을 순회중에 특별히 데리고 왔지.그 나라에는 이런 아름다운 금발의 아가씨가 굉장히 많더라고?」

클라우스씨의 말은 확실히 거짓말이였다.말을 끝내고 나서 클라우스씨는 조용히 내게 ‘얼굴을 숨겨’라고 속삭였다.뭐, 그 말에 조용히 그사람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지만.

「호오, 그래?그러고보니…」

국왕이 한걸음식 내딛으며 우리에게 걸어온다.

「이 나라, 그러니까 프랑크 왕국에 현상수배중인 반역자가 있는데.그게 또…」

국왕은 말을 이었다.

「금발이였지?0」
「그래?난 구석마을에서 조용하게 살고있어서 그런건 잘 모르겠는걸?」

국왕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 여성을 잠시만 조사해봐도 될까?클라우스?괜찮겠지?」
「샤를, 내 말을 못믿겠다는거냐?」

그러자 국왕이 말했다.

「당연히 못믿지.전번의 발렌타인 내란후에 아버지를 죽인게 누군데?선친의 원수를 누가 믿겠나?안그래?클라우스?」
「가까이 오지마.한발만 더 가까이오면 이 일대를 모조리 날려버리겠다.」

클라우스씨의 그 말은, 확실한 협박이였다.

「호오?날려버리겠다고?어쩔까나.날려버리면 베레니스 왕국에 있는 마법사 협회가 가만히 있지 않을걸?」
「내 한목숨을 버려서…」

‘이 여자의 행복을 지킬수 있다면…’이라는 목소리는 너무나도 작아서, 나에게 밖에 들리지 않았을거라 생각된다.

「뭐라고?」
「샤를.너도 아버지와 같이 멍청하구나. 우리 마법사는 이 칭호를 단 후부터 목숨을 걸었다.자──」

클라우스씨가 말했다.

「──덤벼라.」

그렇게 말하며, 클라우스씨는 나를 안고있던 팔을 거두었고, 등뒤로 물러나게 하며 조용히 속삭였다.

「엘자, 어딘가로 가서 숨어있어.큰 접전이 될지도 몰라.그리고…」

클라우스씨는 말을 이었다.

「아까의 그 소리는 나중에 물을게.」

아까의 그 소리란 헛구역질 하는 소리겠지.
그리고 그의 그 미소는, 고향으로 돌아온 후 내게 처음으로 보여주었던 미소였다.

「뭘 수근거리고 있나, 클라우스.이제 곧 죽을녀석이.」
「검이 마법에 상대가 될거라 생각하나?샤를?」
「아아, 그래.너희들 사이에서는 클라우스, 너를…대마법사라고 불렀지?그래, ‘대’가 붙으면 마법사는 더 강해지는건가?」
「헛소리는 거기까지다, 샤를.너도 아버지와 같은길을 걸어라.」

그렇게 말하며 그는, 손으로 허공에 무언가르 그리더니 그것은 이내 곧 보이지않는 칼날이 되어 샤를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크윽!」

간신히 공기의 칼날을 칼로 상쇄해낸 샤를은 조그만한 비명을 지르며 약간 뒤로 물러났다.하지만, 클라우스씨의 마법에 견디지 못한 그의 검은 걸레조각처럼 찢겨져 버렸다.

「윽!」
「검이없는 기사는 무능력 할뿐.거기까지다, 샤를.」

그렇게 말하며, 그는 다시 허공에 무언가를 그렸다.아까와 비슷한 무언가를.마법진 같은것일까?그리고 그 그림이 모두 완성되자, 공기는 다시 칼날이 되어 잔디를 베어지나가며 샤를국왕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이걸로 끝이다.」

하지만.
그 칼날은 닿지 않았다.

「큭!」

그의 비명소리와 함께, 새하얀 의사가운은 붉게 물들여졌고, 그의 오른팔에는 화살이 꽂혀 있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국왕폐하!」

그 목소리들은, 수많은 병사들이였다.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출동했습니다.저희, 샤니 가(家)의 기사단, 몸바쳐 국왕폐하를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크, 백작에게는 고맙다고 전해주게.」

은빛의 갑옷을 두른 기사들은, 철저히 자신들의 무장(활과 검)을 들고서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상대는 대마법사!한사람이라고 해도 절대로 방심하지 마라!전체마법을 쓸지도 모른다!」

수많은 병사들의 의기충천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 클라우스씨…」
「괜찮아, 엘자.그러니까 너는 내 뒤에서 떨어지지……」
「우욱..!」

헛구역질이 일어난다.아까보다더 강도가 심하다.괴롭다.슬슬 머리가 아파온다.도대체 이몸은 어떻게 된것일까.그렇게 생각하는동안, 걱정스러운 그의 목소리가 내 귀에 박혔다.

「엘자, 설마…」

그는 말을 이었다.

「임신이야…?」

임신?
임신이라니.그 말은 즉슨, 뱃속에 아기를 뱄단 말인가?도대체 왜?어떻게?

「이, 임신이라니…」
「미안, 엘자.너하고는 이야기 하고 있을시간이…」

그렇게 이야기 하고있을 때 마저도, 클라우스씨의 호흡은 거칠어지고 있었다.

「가, 가르쳐줘요 클라우스씨!어째서 제가 임신을…」
「바, 바보!!그런건 가르쳐달라고 해서 입으로 가르쳐줄수 있는게 아냐!!」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 그의 뺨으로 스쳐지나가는 화살을 보았다.

「쳇!」

욕짓거리를 하는 클라우스씨.그 모습에는 진지함이 확실히 베여있었다.

「적은 마법사다!확실한 사살을 요구한다!」

잠시만.
사살?

「크, 클라우스씨!!도망쳐요!!」
「지금 도망치기에는 글렀어!!수가 너무 많아!!일단 몇정도는 상대하고 나서 길을 트는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몸은 허공에 떴고, 누군가가 허리를 가로채 내 몸을 끌고간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리고 등 뒤를 돌아봤을 때…

「엘자 드 발렌타인.오랜만이로군.한 5년만인가?」
「샤를!!」

난 분명히, 샤를국왕의 그 차가운 팔에 붙잡혀 그대로 검은 말 위로 올라서게 되었다.

「그 여자를 내려놔!!」
「네 거짓말은 애초부터 들통났어.우다무르트 제국따윈 가보지도 않은 녀석이.아니, 프랑크 왕국을 나갈수도 없는 녀석이 우다무르트의 여자를 데리고 있을리가 없지.그리고, 제일 결정적인 증거는.」

샤를은 말을 이었다.

「우다무르트에는 금발이 없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말 고삐를 잡아당겼다.

「작별이다, 클라우스.재회는 없다고 생각하지.」

그말을 남기고, 내가 탄 검은 말은 성벽을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기달려 샤를!!」

멀리서 들려오는 그사람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어 발버둥 쳐봐도 무리.절대로 놓치지 않는다.달리는 말에서 떨어지면 아프다, 라는 생각따윈 이미 잊었다.지금은 이남자의 품에서 떨어져야…

「샤를」
「오빠를 붙여.」
「싫어.」
「이게…」

달리는 말 위에서도 그렇게 이야기 잘한다.그다지, 말은 많이 타본 기억은 없지만 어느정도는 타본적이 있기에.약간은 요령이 있다.그런데…난 이남자 싫다.

「샤를」
「아니면 폐하라고 불러.」
「내려줘」
「싫어」
「그런데 말이지.」

품고있던 의문을 이 바보 같은 남자에게 물었다.

「국왕폐하께서 친히 이몸을 납치해 가는 이유가 뭐야?난 분명히 반역자의 가족이지만, 그것 때문에 국왕폐하가 직접 납치해갈 이유는 없잖아?」
「이유, 알고싶어?」

샤를의 목소리는 묘하게 상냥했다.
하지만 난 알고있다.이것이 이남자의 가면이라는 것을.이젠 절대로 속지 않아.녀석에게 속지 않는다.절대로…

「엘자.넌 이나라의 왕비가 되는거야.」

그 소리는 아마도.지금의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던 말이였겠지.어릴때 읽은 동화처럼.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욕심많은 이웃나라 왕이 그 행복한 공주를 납치해가는 꼴이나 똑같다.

「샤를, 헛소리 하지마…」
「진심이야.어릴때부터 그렇게 다짐했어.너라면…」

이웃나라의 왕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너는 내 아내에 걸맞는 여성이야!」



「크윽!」

엘자가 걱정된다.그녀석, 도대체 어떻게 된거지?분명히 발렌타인 공작이라면 나 역시 안면이 있기도 하고…뭐, 발렌타인 공작의 딸이라면 어릴때의 샤를을 알지도 모르겠지만, 저녀석.너무 경계심이 없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이야압!」

내려쳐져 오는 검은 피하고 병사의 옆구리에 손을 가져다 댄다.내장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마법.뭐, 내가 고안해낸 마법이기에 특별한 이름은 없지만…이것 역시 인체의 구조를 잘 파악하고 있는 의사이기에 가능한 마법.

「쏴라!」

그 목소리와 함께 장전하고 있던 화살이 허공을 가를 때, 한꺼번에 그것을 멈추게 하고 바람의 흐름을 바꿔 날아오를 화살을 검을 든 기사들의 갑옷을 뚫게 하였다.
그리고 그 화살은, 분명히 갑옷과 갑옷 사이를 파고들어 기병들에게 큰 부상을 입히고 있었다.

「너희들과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다급하다.
엘자가 잡혀가다니, 도대체 그남자는 무슨생각을 하고있을걸까?확실히 엘자가 예쁘긴…하지만 감히 남의 여자를 뺏아가다니.샤를놈…

「베짱도 좋구나!!」

화살을 맞아 대부분의 기병들이 엉거주춤 하고 있을 사이에, 주위의 공기를 바꿔 다시 칼날로 바꾼다.그리고 칼날로 변한 공기들은 이내 곧 기병들의 갑옷을 찢으며 달렸고, 이내 곧 성벽을 타고 올라가 성벽에서 저격하거나 초원의 저 멀리서 저격하던 궁수들을 확실히 쓰러버렸다.
엘자가 없기에 쓸수있는 전체마법, 이럴때 그녀석이 없다는건 참 편하긴 한데.

「그런생각 할때가 아니잖아!!」

초조하다.
그녀석, 임신했다.도대체 왜 임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증세는 분명히 임신증세다.아무리 의사라해도 그런쪽에는 잘 모르지만, 내 경험으로는 분명히…

「기다려라, 엘자!」

다리에 바람을 실어, 움직일수 있는 몇몇의 기병들을 무시하고 달렸을 때──

「큭!」

등이 아파왔다.아아, 활에 맞아버린건가.궁수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그쪽은 멀리 있어도 저격할수 있으니.
뜨겁다.의식이 희미해진다.하지만, 이런데서 쓰러질수는…

푸욱.

화살이 한발 더 작렬한다.
이런 아픔따윈 무시해버려.

「기다려라 샤를, 엘자에게 손끝하나 대봐라──」

그렇게, 화살의 비를 뚫어 초원을 달렸다.






「폐하!」
「호위는 어떻게 하시고 혼자서!거기다가 그 여자분은!?」

이곳은 아무레도 프랑크 왕국의 수도 ‘쟌’의 한 가운데에 있는 왕궁.이 성의 주인인 샤를로트 12세는 수많은 신하들의 부름을 받으며 붉은 융단이 깔린 복도를 걷는다.이것으로 내 옆에있는 이 남자가 ‘국왕’이라는것을 다시한번 실감했다.하지만…

「이거 놔, 샤를.이게 무슨짓이야?」
「무례하다!국왕폐하의 존함을 함부로 부르다니!」
「됐다.그것보다는 엘자, 어때?내 아내가 될 생각이 있나?」

개소리하지말고

「닥쳐.네놈한테는 관심 없어!」
「그래?아직도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가 보군.」

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를 밀치자, 등 뒤에 있는 두명의 기사가 내 팔을 붙잡았다.차가운 갑옷이 팔에 닿자 차가웠지만, 지금은 눈앞의 남자에게만 신경쓸수 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짓이야?샤를!」
「끌고가!그리고 지하감옥에 묶어놔!」

국왕의 명령에 기사들은 짧고 간결하게 ‘예!’라고 대답하고서는 내 두팔을 각각 잡고 끌고갔다.

「이거 놔!빌어먹을!샤를!!어서 풀어줘!!」
「엘자, 잊지마라.」

샤를[King Hades]은 말했다.

「반역자라는 네 처지를.」






-9.5#Gloomy days-


「어때, 성은 편안해?엘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두 손은 족쇄로 묶여져 천정에 달려있는 쇠사슬에 걸려있었다.눈에는 눈가리개, 입에는 가젤.불쾌해…냄새나는 지하실에서 그렇게 감금되어 있었다.왠지 죽음을 기다리는 양계장의 닭 같은 기분.
그렇게 천천히 국왕의 명령대로 어둠을 맛보고 있을 때, 녀석이 왔다.

「아아~ 미안.입에 그런걸 물고있으니 말을 할 수가 없구나?」

국왕은 너무나도 태연하다는듯이 그렇게 말했다.

「가젤을 풀어.그리고 눈가리개도.」

옆에있던 경비병은 짧고 간결하게 대답하고선, 이내 곧 나에게 다가와 눈가리개와 가젤을 풀어주었다.그리고…

「샤를 이 개자식!!이게 뭐하는 짓이야?」
「엘자, 네 생각을 고치기 위해 특별힌 만든 무대야.」

그리고 국왕은 말했다.

「어때?엘자?내 아내가 될 마음이 생겼어?」
「그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을 부르지마!!재수없어!!」
「걱정마, 엘자.」

국왕은 말을 이었다.

「클라우스는 버얼써 죽었을걸?아무리 대마법사라 해도 그 많은 병사들을 처리하는건 무리일거야.만약 살아남았다고 해도 자기 목숨 부지하는게 한계일걸?이 성까지 오는건…불가능해.」
「닥쳐!한번만 더 개소리 하면 죽여버린다!!」
「성격 드센건 여전하군…」

퉷.
입안에 침을 모아 그대로 잘난 국왕의 얼굴에 뱉는다.그리고 그 국왕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조용히 얼굴을 닦는다.

「경비병.」
「예, 옛!」
「이년, 잡아.」
「네…네?」
「뒤에서 이년 똑바로 잡으라고.」
「예..예!!」

그 명령에, 경비병은 내 등뒤에서 등을 받친다.

「엘자, 다시 한번더 묻겠어.내 아내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어!」

그것이 스위치였다.

「이 창년이!!」

국왕의 발이 내 배를 때렸고, 그것은 정신을 잃을만치 아프고 어질했다.

「한낱 마법사의 품에서 좋아라 즐기고 있는 도망자 창년을 데려다 국왕의 아내가 되라는데.뭐?거절해?너에게 거절할 권리가 있을거라고 생각하나!?」

그리고 또 다시 다리가 배에 작렬한다.정신이 희미해진다.의식에 안개기 끼고, 아프다라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차가운 지하실에서……

「우윽!!」

헛구역질이 난다.
아니, 어쩌면 지금은 정말로 구역질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것이다.아프다.아파서……

「호오, 엘자.어디가 아픈거야?아니면…」

흩어져가는 의식속에서 녀석이 말했다.

「임신, 이라거나?」

단숨에 찔렸다.

「호오, 임신이라.이 뱃속에 아기는 누구의 아기일까?」

그렇게 말하며, 이번엔 녀석의 주먹이 배에 작렬한다.

「응?클라우스의 것인가?아니면 쾌락에 찌든 마을 남자들중 한명의 것?집단강간이라도 당한거야?엘자?」
「그, 그만둬…샤를…아기가…」

아프다.
배가 굉장히 아프다.입은 겨울의 눈속에 발가벗고 버려진 어린아이처럼 파르르 떨고있었고,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굴욕, 이란 이런것일까….

「샤를?내가 네 친구냐?」

그렇게 말하면서 이번에는 손바닥이 따귀에 작렬한다.뺌이 얼얼해지고, 이내 곧 샤를은 내 머리카락을 잡고 얼굴을 들이내밀며 말했다.

「똑바로 불러.주 인 님♡ 이라고.」
「그, 그만둬…」

간절히 애원해도 소용없는 소망.
이루어지지 않을 마음.

「주인님이라고 불러라고 했지?!」

아파…
머리카락쫌 그만 잡아 당겨…따귀도 그만 때리라고…날 죽여버릴 셈이야?무슨생각을 하는거야?

「알았어.그렇다면 왕비가 되는것까지는 강요하지 않겠어.대신──」

샤를.
국왕은 말을 이었다.

「──내게 그 몸을 바쳐라.」




「하아, 하아, 하아…」

숨이 차다.아무리 다리에 바람을 실었다 해도 숨이 차 올라오는 것은 매 한가지다.하지만 다행인 건 더 이상 쫓아오는 기병들과 화살이 없다는걸.

「따돌렸다…」

그렇게 생각하며 초원의 잔디 위에 앉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은 없다.내가 쉬고 있을 시간을 없단 말이다.나만 이렇게 쉬고있을 수는…

「엘자, 제발 무사하기만을….」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조용히 워프주문을 외웠다.




저벅, 저벅.

붉은 융단이 깔린 성의 복도를 걷는다.밤이라서 그런가?호위병 하나 없다.호위병이라 해봤자 성 입구에서 보초서고 있던 두녀석을 잠재우고 들어온 것 뿐, 성 안에는 현재 아무도 없는 상태.
이상하다.5년전, 발렌타인 내란때에는 복도에 몇 명식 호위병이 보초서고 있곤 했는데…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것일까?아니면…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 그곳에는 황금으로 장식한 아름다운 문이 있었다.내 기억으로는 이곳은 무도회장.귀족들의 사치가 만들어낸 확실한 산물.설마, 저곳에 있을까?

주위를 둘러본다.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후 천천히 문으로 다가간다.
문의 손잡이는 차갑다.황금의 손잡이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안좋은 예감이 든다.그것은 마법이 아니라, 인간으로써의 직감.그리고 황금의 문을 열었을 때.

「여어, 잘왔다 클라우스.」

왕좌에 앉은 샤를로트가,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그리고…

「샤를 네놈!!」

왕좌의 옆에 무릎꿇고 앉아있는 엘자에 시선을 돌린다.엘자는 굉장히 아름다웠다.길게 늘어뜨린 금발은 단정하게 늘어져 있었고 드레스는 굉장히 예뻤다.피부는 새하얘서 마치 설녀(雪女)를 보는듯 했고, 그 눈은……

마치 깊이를 모르는 진흙늪 같았다.

「엘자에게 무슨짓을 한거냐!!」
「아니?아무것도?그냥 살짝 네가 준것과는 다른 기쁨을 준 것 뿐이야.」

그리고 다시 엘자를 쳐다본다.엘자는 이쪽을 돌아보지 않았다.조용히, 아무것도 없는 깨끗하고 새하얀 바닥만을 내려다봤다.그 눈은 정말로…초점이 없었다.

「네놈…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보구나, 샤를…」
「그건 내가 할말이다, 클라우스.」

그렇게 말하며 녀석은 오른손가락을 소리내며 튕겼다.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무도회장을 맴돌았고, 그 소리는 이내 곧 무도회장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수많은 기사들이 뛰어들어오는
발소리에 이어졌다.

「이딴 계집애 때문에 잘도 여기까지 와줬다.」

샤를은 천천히 일어나며 내게 말했다.그리고, 그 손에는 무언가가 쥐어져 있었다.그것븐 분명히 엘자의 목에 연결되어 있는…개줄?
분명히 엘자의 목에는 개목걸이가 채워져 있었다.

「네놈…감히 엘자를…」
「여어, 그렇게 화내지 말라고 클라우스?난 그저 말이지.」

녀석은 말을 이었다.

「말안듣는 발정난 강아지를 조교시킨 것 뿐이야?」
「샤를…」

심장이 미치도록 뛴다.
점점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냉정을 잃어간다.
「이 개자식…」

조용히 중얼거린다.

「엘자를 돌려내…」
「돌려줄거면…내가 왜 뺏아왔겠냐?안그래 클라우스?」

그렇게 말하며 샤를은 앉아있는 그녀의 얼굴을 그 커다란 구둣발로 한차례 차버린다.도발이겠지.하지만 냉정을 잃지말자.아무리 엘자라고 해도 냉정을 잃을 수는…

「클라우스?난 이여자가 어릴때부터 참 맘에 들었어.」

그의 뾰족한 구두끝이 그녀의 배에 작렬한다.

「10살주제에 굉장히 도도하더라고?여왕님보다 더 여왕님 같애?시장 길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천한 애들이랑은 역시 달라.귀족집 따님이니까.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샤를은 그녀의 목걸이에 걸린 줄을 잡아당기면서 그녀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그녀는 맞을때만 가끔 꿈틀거릴뿐, 아무런 미동도 없는 인형이 되어버렸다.

「난 이년이 싫어.」

국왕은 말을 이었다.

「10살 주제에 나보다 더 잘났기에.10살 주제에!당시 왕자인 나보다 더 잘났고 당신 국왕인 우리 아버지보다 더 잘나신 이 발렌타인의 공주님이!아직도 기억하고 있어.그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알아?왕자의 권위가 한낱 꼬마년 때문에 떨어졌다고.그 기분을, 넌 모르지!?」

분노에 휩싸인 국왕은 조용히 허공을 바라보던 엘자의 얼굴을 그 구둣발로 힘껏 차버렸다.그리고 엘자는, 아무런 힘도 쓰지못하고 넓은 무도회장의 한가운데로 날라갔다.

「이대로 죽일수는 없어, 엘자.쫌더 가지고 놀아야지?쫌더 능욕하다 버려야 하지 않겠어?안그러면 장난감으로써의 가치도 없잖아 네년은!!」

빠른걸음으로 샤를국왕은 엘자를 향해 걸어간다.그리고 그녀의 눈앞에 바로 멈춰 뾰족한 구둣발로 엘자의 턱을 날려버린다.엘자의 몸이 허공에 약간 떠올랐고, 이내 다시 힘없니 바닥에 떨어진다.그 모습은 정말로 인형과도 같았다.

「일어나!!」

쓰러져있는 엘자의 배를 사정없이 발로 찬다.사정없이, 몇번이고.퍽퍽이는 소리가 온 무도회장을 감쌌고, 등 뒤에서 지켜보던 수많은 기사들도 그런 국왕의 모습에 질렸는지, 조그만한 탄성을 지르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맞고있던 엘자는, 힘없는 두 팔로 국왕의 다리를 붙잡았다.그만 해달라는 소리겠지만…

「이게 뭐하는짓이야?이거 놔!」

그 행동은 국왕의 발길질 한번으로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샤를」

조용히 녀석의 이름을 부른다.그러자 돌아보는 국왕.

「네놈은 꼭 내손으로 죽인다.」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녀석으로 걸어갔다.뚜벅.한걸음씩 걸을때마다 발걸음 소리가 무도회장의 온 무대에 울려퍼진다.의식하지도 않았는게 크게 들려오는 발소리.
천천히 걸어 샤를의 눈앞에 왔을 때, 조용히 그를 노려본다.그는 여전히 교만하고 거만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고, 엘자 역시 깊이가 없는 그 눈동자로 나를 조용히 쳐다보고 있었다.

「샤를.」
「응?」

하지만.
그 목소리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왜냐하면, 그남자는 말을 모두 잇기 전에 내가 시전한 마법으로 무도회장의 한쪽벽에 아무렇게나 쳐박혀 버렸으니.

「폐하!!」
「뭐하고 있는거냐!!어서 폐하를 모셔라!!」
「그, 그렇다면 저 마법사는!!」
「저녀석은 일단 나중이다!!지금은 폐하의 신변이 더 급해!!」

시끄럽게 떠드는 기사단을 무시하고,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아 깊이가 없는 눈동자로 날 쳐다보고있는 엘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그리고 그녀의 눈을 보며 말했다.

「엘자, 나야.알겠어?클라우스라고.」
「클라…우스…」

초점없는 두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몇번이고, 망가진 라디오 수신기처럼 몇번이고.내 이름을 천천히 읊조리고 있었다.그리고 이내 그녀는, 내 품에 와락, 하고 안겼다.

「클라우스…」
「그래, 엘자.나야.무서웠지?」
「아기가…」

그녀가 말했다.

「배 아파…아, 아기…아기…뱃속에…아기, 주, 죽은건…아니겠지?」
「………」

그 물음에 대답할수 없었다.나도 모르기에.정말로 그렇게 맞으면 뱃속의 아기는 죽을까?만약 배가 부를정도로 시간이 지났다면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하지만 난, 그녀를 품에 안고 무조건 근거도 없는 ‘괜찮아…’만을 연신 말하고 있었다.

「나…알고있어…이 아이, 당신의 아기란 말이야…죽게 할 수는 없, 어…절대로…이 아기만은 살려서…나랑, 당신이랑, 아기랑 같이……」

그 밤하늘을 같이 보고싶어.
라고 속삭이며, 품속에서 몇번이고 울고있었다.

「알았어…꼭 모두 함께 보자.그러니까 어서 일어나…이곳을 빠져 나가야………….」

하지만 내말은 전혀 이어지지 않았다.아니, 이어지지 못했다.이제까지 수많은 검을 스치고 수많은 화살을 맞아가면서 달려온 이곳, 아픔도 잊고 지침도 잊고서 달려온 이곳에서, 나는 사랑하는 여성을 품에 안고…

「감히, 쳤겠다…클라우스….」

그녀석의.
그자식의 목소리만큼은 등뒤에서 똑똑히 들렸다.
가래가 낀듯, 쉰 목소리의 국왕의 목소리.그리고 그 국왕의 검은 분명히, 내 등을 파고들어 배를 간통했다.

「크, 윽…!!」

물렀다.
죽이지 않는다는 생각에 돌아온 보답이였다.그것은 마법협회가 무서워서 그런가?아니면, 저 거만한 국왕에 대한 내 무의식의 자비인가?
바보 같은…너무 방심했다.
목구멍 위로 피가 역류한다.그리고 그것은 억지로 삼킨다.눈앞에 사랑하는 여성의 얼굴이 있는데…절대로 그녀의 얼굴을 더러운 내 피로 물들이게 할 수는 없다.절대로………

「클라우스…?」

눈물이 고인 눈으로 이상하다는듯이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른다.미안, 아가씨.나 이대로 엘자의 부름에 대답하면 피토하고 쓰러질 것 같아.그러니까, 말걸지 말아줘.이대로라면, 나 조금정도는 더…

「끈질기군, 바퀴벌레 같은 놈.」

그렇게 말하며 칼날이 배에서 떨어진다.그것덕분에 또다시 피가 목구멍 위로 역류한다.하지만, 그것을 또 입을 막아 참아낸다.그런데도 입술 사이로 튀어나온 핏방울은…충분히 눈앞의 아가씨를 놀라게 하는데에는 충분했다.

「클라우스!!다, 당신…」

그러니까, 말걸지마.죽을것 같단 말이야…

그렇게 말했을 때, 깨끗하게 돌아온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등뒤의 모습…샤를은 공중에 크게 피묻은 검을 들고서는, 섬광과도 같이 내 목을……

내리쳤다.




「클라우스읏──!!!!!」


그녀의 절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아직 죽지는 않았는데…하아.의식에 안개가 서린다.이것이 죽는다는 것인가?도저히 무언가 어려운 것을 생각해낼 참이 아니다.등이 뜨거워 짐과 동시에 나는 그녀의 품에서 떨어져 바닥에 누워버렸다.이번에는 내가…바닥에 누워버렸다.그리고 그와함께, 참아왔던 피구토는 몇번이고 쏟아지고…

「클라우스!!정신차려요 클라우스!!」

손발의 감각이 사라져간다.하지만, 눈앞의 엘자는 몇번이고 내 어깨를 붙잡고 일어나라며 흔들고 있다.어이어이, 자꾸 그러면 목다칠지 모른다고.그러니까 제발 작작쫌……

「클라우스읏…하, 함께…함께 다시…그 밤하늘을 본다고 했잖아!!」

내 어깨는 붙잡고 있는 금발의 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외쳤다.아아, 그래.꼭 본다고 약속했지.그 하늘을…별자리가 가득한 나와 그녀의 하늘을…몇번이고, 몇번이고 볼수있어.살수만 있다면……
이제 곧 시야가 흐려진다.안개가 낀듯이…아니, 눈이 온듯이 새하얗게…아무것도 보이지 않듯이 시야가 사라지고 있을 때…울고있는 그녀의 목소리만이 들리고 있었다.

「클라우스!!아, 안돼!!」

그녀는 온몸을 다해 내 어깨를 쥐어잡고 있었다.그것은, 진심이였다.

「클라우스, 클라우스!!죽지말아요.클라우스!!」
「에…엘자….」

이젠 보이지도 않는데도.보이는것 같이, 떨리는 입술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엘자…우, 울지마…」
「아, 안울어요!!그러니까 얼른 일어나라구요!!」
「울고, 있으면서…」

최대한 웃어보인다.
이 미소가, 그녀에게 보여주는 마지막 미소일지도 모른다.

「엘자…난 이제 틀린 것 같아…안보여…엘자의 모습이, 하나도…하나도…안보여…」

죽음이란것은 이런것일까.내 몸안에서 흘러나온 피가 질퍽하다.그리고, 사지가 점점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 그런말 하지 말아요!!일어나요 클라우스.집으로 돌아가요!그리고 다시 보여줘요!그 하늘을…다시 이야기 해달란 말이에요!!그 슬픈 ‘처녀자리’의 이야기를!!」

그 목소리는 똑똑히 들렸다.
하지만…떨리는 입술은 그다지 상냥하지 못했다.

「미, 미안…미안, 엘자…내몫까지 열심히 살아줘, 엘자…절대로, 절대로 날 따라오지마……저세계에서, 저세계에서 널…엘자 너를 진짜 빨리 만나게 되면…절대로 아는척 안할 테니까……」

감각은 없어졌지만, 아직 움직일수 있는 손으로 그녀의 몸을 더듬는다.하지만, 느낌이 없다.감촉이 없다.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엘자…어, 어디있어…?엘자?안보여…엘자, 곁에있어줘…엘자…엘자……」

그리고.
23년동안 한번도 말하지 않은.

「무서워…곁에, 곁에 있어줘….」

두려움을 그녀에게 표시했다.

「아, 알았어요 클라우스!영원히 같이 있을 테니까!!그럴테니까 죽지말아요!!아악!!눈감지 말라구요!!이제와서 눈감다니…자, 잠시만!!왜 또 손에 힘이 빠지는거에요!!정신차려요, 클라우스.정신 차리라구요!!당신을 이렇게나 사랑하는 사람이 여기있는데, 어째서 당신은……」
「…엘자……」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사라져가는 의식속에서, 그녀의 이름을……

「엘자…나도, 나도 엘자를………………….」


푸욱.





-9.5#Farewell, and Restart-


목이 아프다.
그의 손이 내 품에서 힘없이 떨어졌을 때, 참고있던 목소리를 있는힘껏 내어 그의 목소리를 불렀다.그러기에 목이 아프다.하지만, 죽어갔던 그의 아픔과는 비교할수 없을것이다.죽는것을 깨달은 그의 공포와는 비교할 것이 못된다.
그리고, 눈물에 젖은 눈으로 피로물든 광장 위에 강림해있는 국왕, 샤를로트 12세를 노려봤다.

「샤를……」
「그런눈으로 보지 말라고, 엘자.아무레도 괴로워보여서 편하게 보내준 것 뿐이니까.」

그 목소리를 짜증스럽게도 태연했다.
당연하다는 죽음.그의 죽음이 당연하다는듯한 말투.녀석은 하나부터 열까지, 절대로 맘에 들지 않는다.

「샤를!!!」
「자, 너를 괴롭히던 남자는 죽었어.이제 내품으로 올 생각이 든거야?아니.왕비까지는 될 필요 없어?만약 네가 나에대해 영원한 충성을 맹세한다면…발렌타인 가문의 명예도 회복시켜주지.이 국왕의 이름으로.그리고 너 역시 발렌타인 가(家)의 공작부인이 되는거야.어때?젋은 공작부인!넌 이제부터 한 나라를 붙잡는 귀족부인이 되는거야.물론 현재 샤니백작의 관리하에 있는 발렌타인의 성도 돌려받을수 있어.고향으로 돌아올수 있다고?이거 좋은 거래라고 생각하지 않아?엘자?」

그 목소리는 굉장히 달콤했다.누구든 유혹할수 있는 목소리.난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싫다.그와는 다른 목소리…그것이 나는 너무나도 싫었다.하지만, 이제 도망칠곳은 없다.도망쳐봤자 또 다시 붙잡힌다.난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지레 겁먹어 사라져 도망쳐버린, 오빠와는 달라…나는……

「알았어, 샤를.그렇다면 위의 조건을 모두 만족시켜주는거야.」

내 말에 국왕은 약간 의외였는지, 잠시 깜짝 놀라고서는 ‘당연하지’라며 말했다.

「그리고 조건이 있어.」
「조건?」
「클라우스씨의 장례식을 치르게 해줘.」

그 말에 잠시 얼굴을 찌푸린다.표정변화폭이 심한 녀석이군.하지만 녀석은 이내 곧 흔쾌히 승낙했다.

「그리고 두번째.」
「두번째?」
「자금을 대줘.만약 내가 발렌타인으로 귀가하게 된다면 할일이 있어.그 일에 샤를, 네가 조금 도와줘야겠어.」
「호오, 알았어.그정도야 뭐.엘자의 부탁이니까 들어주지.대신.」

그는 말을 이었다.

「나에대한 확실한 충성을 보장해라.」
「걱정마, 아니.걱정마십시오, 국왕폐하.이 발렌타인의 이름을 걸고…」

피바다가 되어버린 무도회장.무시당해버린 그의 시체.나는 그 앞에서 국왕에게 머리를 조아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똑독하게 이야기했다.

「폐하께 충성하겠나이다.」

나 엘자 드 발렌타인은.
지금부터 이 나라와의 복수극 시작을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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