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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 더 월드 오버더월드1장-4

azelight 2008.06.04 17:26 조회 수 : 356


 최근 본 발틴사가.
 영웅은 불패불굴. 만약 희생이 필요한 때라면 기적을 일으켜 모두를 구하겠다.
 홍정훈님의 소설들은 모면 보통 시크하고 니힐한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만 발틴사가는 그에 비해 참 참신했습니다.
 고전적인 영웅사가의 플롯을 따르면서도 환상소설다운 방대함이 돋보였죠.
 특히 최종화인 창생멸사의 춤은 저 역시 제 글에 도용해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평범한 인간이 수많은 희생을 통해 사람들을 구한다면 진정한 영웅은 어떤 희생도 없이 모두를 구해야 하는 법
 절망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그를 뛰어넘어 기적을 일으켜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발틴사가는 행동하는 자의 고뇌와  행동하는 자에게 기대하는 자들의 저열함에 대해서도 극명히 드러내고 있죠.
 박해받는 영웅. 
 사람들은 그의 은혜에도 정작 눈앞의 위기와 고통때문에 그를 배반합니다.
 다만 발틴은 초월적인 의지로 그조차 끌어안고 신화를 일으키는데 간결한 묘사임에도 보는 이의 피를 끓게 하는 부분들이 참 좋았습니다.
 꼭들 읽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네요.
 사실상 이제 사장되었다고 여겨지는 기사문학과 영웅서사시.
 그 중에서도 하얀로냐프의 강이 기사문학의 현대판이라고 할만했다면 
 발탄사가는 현대판의 영웅서사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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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키의 집에 도착하자 아리키의 어머니인 위브가 그녀를 맞아주었다. 그녀는 이 마을 위브의 설립자이며 촌장이었는데, 그녀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을의 이름은 그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밤의 군주’와의 전쟁이 있던 해 그녀는 남편과 딸인 아리키와 함께 피난민들을 데려와 지금 위브가 있는 장소에 마을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피난민들을 이끈 리더였던 그녀는 그대로 마을의 촌장이 되었었다. 그 후 그녀의 이름을 가진 마을에서 남편과 오순도순 평온한 삶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현재 집에 있는 사람은 그녀뿐인 듯 보였다. 위브의 남편인 케레일은 마을의 축제 준비에 여념이 없는지 집에 없었다. 위브 역시 간식거리를 들고 곧 밖으로 나갈 생각이었다고 한다. 집안에서 옥수수빵을 구운 냄새가 향긋이 퍼져 나왔다. 슈는 아리키를 그녀의 방의 침대에 눕혀두고 내려왔다.

 

“데려다줘서 고맙구나.”

 

“아뇨. 별일 아니에요. 기절 할 만큼 주문을 쓰게 한 것은 저니까요. 그럼”

 

슈는 예의상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마을사람들과 친하긴 커녕 안면도 터놓지 않고 지내는 슈로서는 마을 사람들이 조금 거북한 경향이 있었다. 비록 그들이 슈에게 친절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런 경향은 여동생 같은 사매인 아리키의 어머니라도 그리 다를 바가 없어서 슈는 서둘러 떠나려 했다. 하지만 위브는 그럴 생각이 없는지 “잠깐만.”하고 슈를 부르며 그녀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슈는 반대 방향을 보고 있는 상태에서도 매끈한 동작으로 위브의 손을 피하고는 몸을 놀려 그 손을 붙잡았다. 유연하고 능숙하며 재빠른 몸놀림이었다. 덕분에 슈를 그저 그런 마법사정도로만 알고 있던 위브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슈를 바라보아야 했다. 다만 슈는 자신이 실수 했다는 것을 깨닫고 재빨리 사과를 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니아니. 사과할 필요까진 없어. 좀 놀라긴 했지만. 그보다 좋은 몸놀림이구나. 매커드씨랑은 비교도 안 되는 걸. 전사로서의 수업도 쌓았니?”

 

“아. 테드릴에게서 조금요.”

 

얼버무릴 겸 대충 슈는 말한다.

 

“그랬구나. 우리 아리키는 너무 운동을 하는데 관심이 없어서. 아리키는 너를 존경하는 것 같으니까 네가 말 좀 해주렴.”

 

“흠. 존경하는 지는 잘 모르겠네요. 체력에 관한 이야기라면 안 그래도 오늘 했었어요. 마법사라 하더라도 체력은 중요한 것이니까요.”

 

아리키가 도중에 거의 탈진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이야기를 해줬기에 제대로 알아듣긴 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네 양아버지는 그런 면에선 지지부진해서 이 아이에게 나쁜 버릇 들일까봐 걱정했는데. 네가 있어서 다행이구나.”

 

위브도 슈의 양아버지의 성격을 아는지 다행이라는 듯이 말했다. 하긴 슈가 알기로는 위브는 매커드와 상아탑의 동문이라고 했었다. 그녀가 직접적인 모험을 떠나며 마법사의 길보다는 전사의 길에 더욱 가까이 가긴 했지만 여러모로 동기였던 매커드의 성격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는 듯 했다.

 

“네. 그러고 보니 아버님과 동문 사이였었지요. 확실히 아버님은 육체적인 면은 하찮게 여기는 면이 계시니까요. 아리키에게도 채력 단련은 시키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너와 이렇게 이야기해 본 건 처음이구나. 몇 번 보기는 했지만 먼발치에서 본 게 전부라서 말이지. 마을 아이들과는 안면이 있던 것 같던데 말이야.”

 

그 안면이란 게 모두 아리키 덕이지만... 하고 슈는 속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그녀는 친하게 지내는 인물은 아리키를 제외하곤 마을에 존재하지 않았다. 얼굴을 알고 있는 아이들도 접촉이라고 해봐야 아리키를 위해서 그녀의 친구들에게 소소한 마법을 보여준 일이 전부다.

 

“아버님은 엄격하시니까요. 평소에는 마법 수련으로 여념이 없어요.”

 

“그렇구나. 하긴 매커드라면 그럴 만도 하지. 그 자신에게도 뭐랄까. 좀 그러니까.”

 

“동의해요.”

 

슈가 적당히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어 곤란해 하는 위브에게 영업용 미소를 띄우며 웃었다. 위브는 그런 슈의 말에 객쩍은 표정을 짓다가 순간 “아.”하고 뭔가 생각난 듯 손뼉을 ‘짝’ 쳤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수확한 옥수수를 줄려고 불렀는데 엉뚱한 이야기만 해버렸네. 잠시 기다려봐.”

 

그러곤 다시 부엌 쪽으로 들어가더니 바구니에 가득 찰 만큼 옥수수를 담아와 슈에게 안겨줬다.

 

“좀 많긴 하지만 마법 사용자라면 이 정도는 간단이 해결할 수 있겠지.”

 

양 허리에 손을 얻으며 의브가 말하자 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 정도의 물품을 옮기는 일은 그녀에게 있어 일도 아니다. 슈는 하나의 주문을 외웠고 그 주문은 푸른빛이 도는 거대한 원판을 만들어냈다. 슈는 옥수수가 든 바구니를 올려놓았다. 그러자 원판에 굴곡이 생겨 바구니를 안착시켰다. 거의 영창에 시간을 두지 않는 매끈한 시전에 위브는 감탄한 듯 말했다.

 

“마법도 제법 기교가 있구나. 역시 매커드의 제자인 걸까. 자 어차피 나도 나가야 했으니 함께 나가자.”

 

위브는 자신이 미리 준비했던 바구니를 들고 슈와 함께 집을 나섰다. 두 사람은 마을의 광장까지 함께 걸어갔고 그 곳에서 헤어졌다. 슈는 마을의 외곽에 비해 활발하기 그지없는 마을의 모습을 보며 조금 부럽다는 웃음을 지은 후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돌아보는 광장의 풍경에는 다양한 모습들이 보였다. 마을의 가장 작은 아이들조차 광장에서 뛰어놀며 때로는 어른들을 돕기도 하고 방해하며 소리지르고 달렸다. 차를 마시며 휴식하는 모습도 보였고, 요란한 노랫소리를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슈에게는 조금 낯설게 보였다. 사실 그녀로서는 처음 보는 소란의 풍경이었다. 마을에서 제법 긴 시간을 살았는데 어째서 몰랐던 걸까? 조금 후회가 되는 뒤늦은 후회였다. 사실 조금만 신경 썼다면 마을 사람들과 접점을 만들지 못할 일도 없었다. 슈는 그 낯설은 풍경을 눈에 새겨 넣으며 집으로 가기 위해 발을 옮겼다.

그러던 중 그녀는 마을 사람들의 틈에서 마을 사람이 아닌 자들을 찾아냈다. 동시에 그들 역시 슈의 모습을 눈치 챘다.

 

“아! 슈다.”

 

은발의 셰리엘이 슈를 향해 외쳤다. 칠흑색의 머리칼과 검은 눈동자를 가진 슈만큼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그녀는 아예 인간이 아니었다. 라셰일림이라고 불리우는 수인 종족으로 아름다운 은발과 회백색에 가까운 피부, 새의 형질을 가져 날개를 지니고 있었다. 다만 평소에는 사람들의 눈에 띄기에 변신주문으로 브린엔계의 인간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녀 역시 8년 전 ‘밤의 군주’를 쓰러뜨렸던 자들 중 한명이며 지금은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아직도 모험하며 떠돌아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아. 셰리엘.”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가려고 했던 슈를 향해 셰리일에 뛰어와서 폴짝하고 안겼다. 그 기세가 상당해서 평범한 소녀였다면 뒤로 넘어갔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슈는 키부터 상당했고 완력도 결코 모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를 받아냈다.

 

“오랜만야. 슈. 정말 키가 컸구나. 그래도 한 번에 알아봤어.”

 

못 알아 보는게 더 이상하지. 하고 슈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검은 머리칼과 검은 눈은 이 테라단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색깔인데다가 그녀의 키는 평균적인 성인 남성보다 커서 한 번 본 사람은 결코 잊어버리질 못하는 것이다. 마을에 처음 들였다가 다시 찾아온 사람도 슈를 얼핏 봤음에도 기억하는 걸 보면 원치 않게도 상당히 인상을 깊게 남기는 것이 틀림없었다.

 

“응. 셰리엘은 별로 안 변했네. 그런데 안델과 윈델은 어쨌어. 같이 다니는 거 아니었어?”

 

이왕 붙잡히게 된 거 별수 없다고 생각하며 슈는 셰리엘을 상대해주기로 했다. 명랑하고 밝은 셰리엘과 안델, 윈델, 형제를 슈는 그렇게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호감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녀의 양부와 크라드, 테레사, 테드릴에 비하면 악감정이 없다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 녀석들이라면 지금 열심히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을 거야. 들어오자마자 광장으로 와서는 재밌겠다면서 ‘땅땅’ 거리기 시작했어.”

 

망치질하는 시늉을 해보이며 셰리엘이 말했다.

 

“아. 어디에?”

 

“저기.”

 

셰리엘이 가리킨 방향에 배낭을 그대로 짊어진 적발에 갈색 피부를 지닌 두 남자가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룬스나웰의 검은 숲에 거주하는 숲의 엘드라린과 인간의 혼혈인 두 사람은 상당히 눈에 띄는 외모였지만 워낙 행색이 남루해서 그런지 마을사람들의 속에 잘 녹아 있었다. 특히나 모험가라기보다는 마을 자경단 같은 모습과 복장이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작업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아무래도 두 사람은 일종의 기둥 같은 것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명은 열심히 나무의 끝을 톱질하고 있고 다른 한명은 잔가지들을 쳐내고 밑동을 다듬고 있었다. 슈가 그들을 자세히 살피기도 전에 셰리엘이 두 사람을 불렀다.

 

“안델~. 윈델~. 여기 봐봐. 슈랑 만났어.”

 

셰리엘의 외침에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곧 반가운 얼굴로 슈와 셰리엘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이다.”

 

“반갑군. 그런데 얼마 만에 만난거지?”

 

두 사람은 각각 인사하며 다가왔고 슈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아줬다. 오랜만에 받지만 누가 윈델이고 누가 안델인지 헷갈릴 일은 없어보였다. 쌍둥이인 주제에 둘 다 개성이 뚜렷해서 조금만 주의력을 기울이면 누가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었다.

“2년하고도 반년 만인가. 모두 안 변했네.”

 

“뭐, 종족이 종족이니까. 우리도 엘드라린의 혼혈이고 셰리엘은 라셰일림. 장수하는 만큼 변화가 적을 수밖에.”

슈의 말에 둘 중 왼쪽의 남자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답해줬다. 호기로운 인상에 좀 미소가 떨어지지 않는 그가 바로 형인 안델. 오른쪽의 무뚝뚝하고 침착한 하고도 친절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 윈델이었다. 두 사람 다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상당히 헤져있는 것이 오래된데다가 마법적인 물품이 아닌 일반 물품 같아 보였다. 환상주문을 입혀두었다는 것을 슈는 단번에 알 수 있었기에 낡은 장비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우리에 비하면 너는 제법 컸는걸. 그때는 나랑 키가 비슷했나? 이제는 나보다 더 큰 것 같아. 안 그래, 윈델?”

안델이 슈를 올려보며 말하자 윈델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슈의 키는 두 사람보다 더 크다. 2년 반 사이에 또 키가 자란 것이다. 슈의 진짜 나이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아직 좀 더 자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더 크면 좀 곤란할지도.”

 

“으음. 내 생각도 그래.”

 

윈델에 이어 셰리엘도 동의했다. 슈도 솔직히 조금 그렇게 생각하는 지 “음.”하고 신음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마을에서 가장 키가 큰 여성보다도 머리 하나나 더 크기 때문에 자신의 키가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슈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내 키 이야기보다는 다들 아버님을 만나러 가야하는 거 아냐? 아마 기다리고 계실 건야. 상당히 중요한 이야기로 알고 있는데 안가도 괜찮아?”

 

“그렇긴 하지. 하지만 시작해버렸으니. 그래도 하던 일은마저 끝내야 하겠지.”

안델은 ‘어떻게 할까?’라는 눈빛으로 윈델을 보았다. 윈델은 고개를 잠시 숙고하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셰리엘의 생각을 묻듯 셰리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셰리엘은 두 사람과는 생각이 다른지 슈에게로 찰싹 붙었다.

 

“좋아. 그럼 둘은 열심히 일하고 내가 먼저 매커드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인지 전해줄게. 그리고 이 옥수수 슈네 집으로 가져가는 거지?”

 

“응.” 슈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면~. 오늘은 별식이겠네. 삶은 옥수수. 구운 옥수수. 둘이 일하고 있는 사이에 내가 다 드셔 주겠어. 가자, 슈.”

 

“으... 응.”

 

초기분파인 셰리엘은 그렇게 말하고는 슈를 붙잡고 후다닥 달리려고 했지만 슈를 끌고 가지는 못하고 도리어 잡아당겨져 슈에게 붙잡혔다. 셰리엘의 머리 위에는 “?”하는 물음표가 떠올랐다. 돌아보자 슈가 조금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셰리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다렸다가 같이 가야지. 게다가 어차피 가면 크라드와 아버님이 연회를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계실테니까 모두 다함께 가도록 해.”

 

“기다리기 싫은데 심심해서.”

 

“기다리는 동안나랑 같이 이야기해. 안델과 윈델도 빨리 끝내버려. 외법을 쓰면 금방 할 수 있잖아.”

 

슈의 말에 안델과 윈델은 나란히 고개를 저었다. 평소에는 그다지 티도 안 나는데 이럴 때는 꼭 쌍둥이 같이 의견을 한데 모아 된다. 슈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먼저 윈델이 말했고,

 

“신에게 그런 사소한 것을 청원 할 수는 없는 일이지. 우리가 청원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거나 신의 뜻을 청원하는 때야.”

 

이어 안델이 말했다.

 

“자연은 의지를 가지고 있어. 무엇보다 힘에도 한계가 있고 용도도 한계가 있고 말야. 이런 사소한 일엔 사용할 수는 없지. 너희 마법사들은 이해 못하겠지만 말이야. 거기다가 이런 축제는 준비하는 것도 축제의 일부야. 손으로 하는 게 진정으로 참여한다는 말이지.”

 

어찌 보면 정론인데다가 둘가 꺾을 생각이 없어 보이기에 슈는 그냥 빨리 하고 오라고 손짓으로 그 둘을 보냈다. 그 직후 두 사람은 신나게 기둥하나를 썰더니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일 하나를 끝내버렸다. 묘하게 요령이 있어보여서 셰리엘에게 물어보았더니 일이 없는 경우에는 일용직으로 저런 노동도 가끔씩 한다고 했다. 모험가라는 오직 모험에만은 매진할 수 없는가 보다 싶었다.

 

“모아놓은 재산 같은 거 없어? 마법기물이면 상당한 가격일 텐데. 아무리 하루하루 생활이나 장비에 돈이 든다지만 그 정도에 금액은 아닐 것 같은데 일용직을 할 필요가 있었어?”

 

슈의 의문에 셰리엘은 쯧쯧하고 혀를 찼다.

 

“그 돈은 정착금이지. 모험가란 건 한철이라고. 꾸준히 대비하지 않으면 말년에 고생한다는 이야기야.”

 

“정착금?”

 

“응”

 

의외라는 얼굴로 물어오는 슈의 얼굴에 셰리엘은 함박웃음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적당한 장소에 자리 잡을 생각이야. 자리 잡은 후에는 뭘 할지 아직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여관이라도 할까? 미녀 주인이 있는 여관 말이야. 어때?”

 

“어떨까...”

 

슈는 뭐라고 답해야할지 몰라서 진지한 얼굴을 고민했다. 애초에 살아오면서 이런 고민을 가져 본 일이 없는 그녀로서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였다. 하지만 그녀가 고민을 마치기 전에 들려오는 안델과 윈델의 목소리가 그녀의 이목을 앗았다.

 

“끝났다.”

“끝났어.”

 

유쾌하게 외치며 안델이, 덤덤하게 윈델이 기둥을 만드는 일을 끝냈음을 고하며 셰리엘과 슈에게로 돌아왔다.

 

“빨리 했내?”

 

“뭘, 이 정도야 별거 아니지.”

 

안델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하자 윈델이 뒤에서 피식하고 조용히 웃었고, 셰리엘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특히 셰리엘은 그럴 수 있으면서 그 전에는 왜 그렇게 시간을 끌었느냐는 분노의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기다리던 일이 끔찍이 지루했던 것 같았다. 한바탕 불평을 퍼부을 듯 셰리엘의 볼이 부풀어있자 재빨리 윈델이 중재에 나섰다.

 

“끝났으면 기다리고 있는 이들을 위해 서둘러 가기로 하지. 슈가 아주 중요한 일일 것 같다고 했잖아.”

 

윈델의 선도에 의해서 셰리엘은 분노의 폭발을 멈추고 모두와 함께 매커드이 집으로 향했다. 두명의 허름한 옷차림의 모험가와 슈만큼 강렬한 인상을 지닌 셰리엘은 마을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마을의 광장을 벗어나자 그런 시선은커녕 사람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조용히 세 사람을 안내하며 앞장서서 걸어가는 슈와는 달리 셰리엘과 안델, 윈델은 그 사실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쑥덕거렸다. 마을의 분위기에 관한 대화였는데 아무래도 3사람은 위브에 재법 호감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매커드의 집에 도착하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샤드가 나타나 넷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안델님, 윈델님, 셰리엘님. 주인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뭔가 연출인지 과장되게 인사하는 샤드를 보고 슈는 저기서 딱 초대장만 받으면 책에서나 읽은 귀족들의 연회일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크라드도 그렇지만 의외로 검소한 슈로서도 매커드의 머릿속은 나름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왜 저렇게 과장이 심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슈의 옆에 서있던 안델과 셰리엘은 재미있다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고 윈델은 그런 눈을 흐뭇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샤드의 손에 의해 문이 열리고 안에서 향긋한 음식 냄새와 부드러운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미 도착해 있는 테드릴과 테레사가 넷을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왔구나. 생각보다 이르게 왔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테레사가 말했다. 테레단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인종인 센누족인 그녀는매커드나 크라드에 비해서는 좀 더 옅은 갈색의 단발을 가지런히 정리한 3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반면 그녀의 남편인 테드릴은 상당한 체구의 소유자로 큰 키가 특징인 북구지방 출신의 브리엔으로 짧은 금색 머리카락과 수염이 돋보이는 호남이었다.

“하하하. 네 녀석들 이제야 왔구나.”

반가운 외침과 함께 두터운 테드릴 팔이 안델을 포함한 세명을 끌어안았다. 그의 덩치가 워낙 컸기에 상대적으로 왜소한 그들 셋은 테드릴의 품속으로 쏙하고 들어갔다. 하지만 곧 테드릴의 반가움에 비례하는 안델들의 고통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왁!.”

 

“잠깐. 테드릴. 아프다고!”

 

“좁다고 팔꿈치로 밀지마, 셰리엘! 나도 갈 곳 없다고!”

 

테드릴의 조임에 완강히 저항하지만 워낙 완력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인지 셋은 쉽사리 그의 품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 사이에 슈는 테레사에게 말을 걸었다.

 

“아버님은요?”

 

 

“매커드라면 크라드와 함께 식당에 있어. 불러줄까?”

 

테레사는 테드릴과 안델들의 격투를 지켜보며 슈에게 말했다. 슈는 그럴 필요 없다는 듯 “아뇨.”라고 대답했다.

 

“아버님은 이 번 일에 아직 절 개입시킬 의사가 없으신 것 같아서요. 저도 좀 거리를 두고 볼 생각이에요. 그러니 저는 그냥 방에나 들어가 있도록 하죠.”

 

“그럴 필요 있겠어? 우리야 좀 그렇지만 그라나른 형제나 셰리엘과는 친하잖아.”

 

‘저는 소란스러운 일에는 흥미가 없어요.’라는 표정을 보인 후 슈는 웬일로 관대한 모습을 보이는 테레사를 무시하고 위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움직였다. 그보다는 내일 모레 아리키에게 약속했던 ‘멋진 것’을 어떻게 연출해야할지 생각하는 일이 더욱 건실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꼴은 뭐야?”

 

“아, 이거 우리 장비는 너무 눈에 띄어서. 위장 좀 했어.”

 

등 뒤로 테레사와 안델의 대화소리가 들려왔지만 계단을 올라 2층에 다다르자 목소리들은 희미하게 묻혀졌다.

“후우.”

 

슈는 한숨을 쉬었다. ‘뭘 할까?’ 모든 불길한 일들을 머리에서 밀어내버리고 슈는 오직 그 하나만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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