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초승달 그네 초승달 그네..(7)

오얏나무 2006.04.08 09:02 조회 수 : 372

#12
콰콰콰콰!
레일과 바퀴가 부딪히는 엄청난 소리가 귀를 마비 시킬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안면을 세차게 때리며 지나가는 바람의 횡포 덕분에 질끈 감은 눈을 뜰 수 조차 없었다. 온몸은 앉혀진 의자를 따라 뒤집히고 옆으로 뉘여지기도 하면서 열차의 속도를 곧이 곧대로 받아내고 있었다. 밀려드는 공포감에 저절로 주먹이 꽉 쥐어지고 이가 악다물렸다.

슈우우우..
하고 열차가 속도를 올리며 360도 회전 코스를 돌아나가자 의자 바닥과 엉덩이가 살포시 떨어졌다. 뱃속으로 바람이 드는듯한 느낌이 밀려왔다. 지면을 향하는 종은의 몸을 묵직한 안전벨트가 붙잡고 있었다.

콰콰콰콰콰콰!
그리고 이어지는 고속뒤틀림코스.
종은은 지금 도쿄 디즈니랜드의롤러코스터 위에 얹혀져 있었다.

처음, 덜컹거리며 아득한 높이까지 롤러코스터는 천천히 올라갔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정점을 롤러코스터가 통과하는 순간 레일이 종은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다음, 이어지는 수직 낙하. 종은은 질끈 눈을 감아 버렸고, 그 후에 이제까지 죽, 감은 그대로 였다.
발바닥 아래의 감각이 사라져 버린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땀구멍 하나하나 속으로는 바람이 비집고 들어 오는 듯 했다.

'내가 왜.. 내가 왜... 내가 왜.....'

종은은 이미 숨쉬는 것 외에는 '내가 왜'라는 생각 밖에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콰과곽!

피유웅!
그리고 롤러코스터의 마지막 낙하!
종은은 꾹꾹 눌러왔던 비명을 한꺼번에 터뜨렸다. 그의 외마디 비명에서 언뜻 엿보이는 모태신앙이 그의 종교는 아니니라 굳게 믿는다.

"엄..마아아아아아!!!ㅇ!!ㅏ!!"

쿠궁,

푸슈우....
공기빠지는 소리와 함께 롤라코스터는 종착역에 멈춰섰다.
뒤이어, 안내원의 친절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가 들려왔다.
종은은 아직도 내가 왜..라며 중얼거리다 그를 누르고 있던 안전 장치가 올라가자 '내가 왜'의 이유를 바라보았다. 그 이유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까르륵대고 있었다.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러다 종은 자신에게로 눈을 돌리더니, 미호는
푸훗
하고 웃어버리는 것이었다. 즐거움과느느 약간 다른 느낌의 웃음.

"종은씨, 이런거 되게 못 타는군요. 재미있지 않아요? 크큭, 그 얼굴 좀 어떻게 해봐요, 너무 웃겨."

아,아, 지쳐버렸어. 벌써 열번은 더 이런 괴 장치들을 탔던것 같았다. 떨어지고, 빙글빙글 돌고, 무섭고........
이곳에서의 이전 세시간을 떠올리는것 만으로도 종은이 사색이 되는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도대체 뭐가... 뭐가 재미있다고 저 많은 사람들이 이런걸 굳이 줄까지 길게 서가면서
타려고 하는거지?'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의문에 봉착하였을 때, 미호가 종은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이제 나가자고 하는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롤러코스터를 같이 탔었던 사람들은 다 빠져나가 버리고 종은과 미호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안전띠 바깥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종은은 아직도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일어섰다. 그리고 출구로 빠져 나오는데 기다리고 있던 한 꼬마아이가 팔짱을 낀채 자신을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던것 같은 느낌이 드는것은 왜일까....
평생의 괴기스런 기억으로 남을것 같은 롤러코스터를 뒤로하고 종은은 미호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빠져나왔다.
빠져 나오자 마자 다음 사냥감을 찾으며 눈을 반짝이는 미호. 그런 미호를 보며 종은은 생각했다.

'제발.. 이제 좀 참아주면 안될까?'

밀려드는 후회, 왜 하필 이곳으로 데려와서는........ 종은의 늦은 후회와 애원하는 듯한 눈빛을 외면하고 미호는 통통 튕기듯 사람들 사이를 걸었다.

에휴...
종은은 한숨을 쉬면서도 미호가 저만치서 부르는 손짓에 걸음을 옮겼다. 다음 놀이기구를 고른것일까?
다행이도 그녀가 고른 다음 사냥감은 '아이스크림'이었다. 놀이기구를 또 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종은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하얀 바닐라향 아이스크림과 것름돈을 점원으로부터 건내받고서 둘은 분수가 보이는 벤치로 향했다.

"하아..."

앉자마자 종은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세 시간 만에 간신히 찾아온 평화.
아이스크림은 맛있고 늦은 오후의 햇살은 따스했으며, 분수가 뿜어내는 물방울들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한껏 웃음짓는 그녀.
그녀, 나카시마 미호는 미소 하나로 여태껏 종은이 쌓아오던 후회를 남김없이 녹여버렸다.

'그래도 오길 잘한것 같지? 저렇게 웃으니.'

종은의 입꼬리도 어느샌가 웃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입 안으로 녹아드는 부드럽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맛을 혀끝으로 느끼며 종은은 편안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러자 한국에서의 추억들이 하나 둘씩 떠올랐다.

'너랑 같이 놀이공원에 갔을 때도, 이렇게 정신이 없었었지. 그때는 다리가 후들거리는것도 모자라 구토까지하고........ 마지못해 등을 두드려 주면서도 너 되게 즐거워했었는데.......
거기 위는 그때만큼 재미있니?'

하늘에 솜털같은 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또 하늘을 올려다 보네.'

나카시마 미호는 종은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저 사람은 이따금씩 저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슬픈 미소를 짓곤했다. 자신을 바라보면서 웃을 때도 어딘지 서글퍼 보여 가슴이 찡했다.
이상한..... 처음 느끼는 감정..

함께 있을 땐 손에 든 아이스크림의 달콤한이 가슴으로 번지듯 두근거리다가도 그의 슬픈 표정을 볼때면 누군가 심장을 쥐어짜는듯 가슴 한 켠이 쿡쿡 쑤셔왔다.
뭘 그렇게 생가하는 거에요?

미호는 넋을 빼놓고 하늘만 올려다보는 종은에게 괜시리 화가났다. 그래서 살짝 장난을 쳐주기로 결정했다.
손 안의 아이스크림을 종은의 볼 옆으로 살짝 가져갔다. 종은은 아직 알아채지 못한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미호는 종은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불렀다.

"종은."

"응?"

철퍽!
종은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다 볼로 아이스크림을 짖뭉개는 꼴이 되고 말았다. 차갑고 눅눅한 아이스크림이 그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꺄하하."

박수까지 쳐가며 미호는 웃었다. 그 모습을 망연자실히 쳐다보다 자신의 손 안에도 아이스크림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생각난 종은은,

"나카시마상.."

"에엑! 싫어어. 꺄악!"

그녀에게 똑같이 복수하려 아이스크림을 갖다대었다. 미호는 꺅꺅 거리며 종은에게서 도망쳤다. 도망치면서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미호는 연신 웃어댔고 종은은 진짜로 화가 났던지 그런 미호를 아이스크림을 들고서 쫓았다.
분수를 가운데 두고서 벌어진 둘의 술래잡기는 분수 둘레를 두어바퀴 돌다 지쳐버린 종은이 길바닥에 주저 앉아버리자 그때야 끝이 났다.

헥헥..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들고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언제 왔는지 미호가 종은의 뒤에서 나타나 그의 등을 팍하고 떠밀었다.

"어..어?!"

철퍽!
결국 양쪽 볼에 하얀 아이스크림 도장을 찍게된 종은이었다.

"나카시마상, 진짜 이러기에요?"

"헤헤헤"

주머니 안의 손수건을 꺼내 아이스크림을 닦아낸 종은은 개구장이 처럼 웃는 그녀를 보았다. 이미 아이스크림은 없어졌지만 어떻게든 복수 해 줄 요량으로 종은은 미호가 더이상 도망가지 못하게 그녀의 손목을 덥썩 붙잡았다. 그리고 일부러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미호는 깜짝 놀랬다. 종은의 화난 얼굴을 처음으로 본 것이었다.

자신의 장난이 너무 심했나하며 종은에게 미안해하고 있는데 종은은 벌써 팔을 들어 자신의 이마에 천천히 갖다대고 있었다. 엄지와 중지의 끝을 겹쳐 있는대로 힘을 주고 있는 모양으로 보아 땅콩이 당장이라도 자신의 이마로 떨어질 것만 같다.

미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손가락들이 무서워서라기 보다는 종은의 화난 얼굴이 겁나서였다. 이제 자신이 싫어졌으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들어 미호는 미안해요라고 속으로 읊조리며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그 다음, 그녀의 걱정과는 반대로 아픈 땅콩대신 종은의 큰 손이 미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으구, 이 개구쟁이 아가씨야."

종은의 그 손길이 따뜻하게 느껴져 미호는 배시시 웃었다. 가볍게 책망하는 듯한 그의 말투에도 왠지 용서할게,라는 메세지가 숨겨져 있는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더이상 하늘이 아닌 자신을 바라봐 주어서 안심했다.

"우리.. 저거 타러 갈래요?"

기분이 좋아진 미호는 밝게 웃으며 다음 놀이기구를 지목했다. 조그마한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눈으로 쫓아가자 그 거대한 대상물이 멀리서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종은은 사색이 되었다.
언젠가 롯데월드에서 본적이 있는것도 같은 그 놀이기구는 160M짜리 대형 자이로드롭이었다.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