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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야.”

커다란 저택 안. 아니, 중세 시대의 성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건물로 일행을 데리
고 간 남녀는 자신들을 맞아주는 다른 남녀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말에서 내렸다. 중간 정도
기른 갈색 머리를 묶고 있는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긴 은발
의 중년 여성. 일행을 데리고 온 두 남녀는 자신들에게 달려오는 어린 소년과 소녀를 안아주
며 그 둘의 응석을 받아주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그나저나 저것들은 뭐야?”

중년 여성의 말. 조금은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떻게 보면 무례한 말투였다. 10년 이라
는 시간을 자신의 영지에서 묶여 보내기에 그녀의 몸 안에 흐르는 모험가의 피는 너무 진했
다. 아마도 모험을 갈구하는 그런 마음이, 욕망이 그런 식으로 분출되는 것 일 것이다. 그녀
의 친구들도 그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일행은 그 것을 알지 못하니 당연히 발끈 할 수밖
에 없었다.

“이봐요. 아줌마. 뭐가 어쩌고 어째요? 저것들?”

그 말에 발끈하고 나선 것은 실린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이상한 곳에 떨어져 하루를 보낸 것
부터 시작해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이 곳에 자신들을 데리고 온 남녀에 대한 불만이 겹쳐 있
는데다가 갑자기 자신들을 비하하는 듯한 뉘앙스의 말투는 그녀의 성질을 폭발시키기 충분했다.

“아. 줌. 마?”

중년 여성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실린을 노려보았
다. 실린은 그녀의 눈빛에 전혀 밀리지 않은 채 소리쳤다.

“그래요. 아무리 당신이 높은 사람이건, 우리 보다 나이가 많건. 그런 말투는 잘못 되었다고
봐요. 아니 그 태도 자체가 잘못 되었어요. 적어도 이런 곳에서 사시는 분이라면 기본적인 예
의는 알고 계시리라 믿었는데 잘못 생각했나 봐요?”

챙!

순간 그 여성은 자신의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푸른 기운이 감도는 검. 아름답게
까지 보이는 깨끗한 발도는 그녀가 엄청난 고수라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실린은
전혀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기가 세어져 목소리를 한층 높이며 소리칠 뿐이었다.

“흥. 반박을 못하겠나보죠? 결국 힘으로 해결하겠다는 건가요? 좋아요. 얼마든지 상대해 드
리죠.”

“훗. 이방인인가? 나에 대해 잘 모르는가 보군.”

중년 여성은 차갑게 웃으며 실린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또 하나의 검
을 꺼내어 실린의 앞에 던졌다. 땅에 박힌 채 가볍게 흔들리는 검.

“무기가 없는 자를 공격하는 것은 기사의 도리가 아니다. 검을 들어라.”

“기....... 사?”

조금은 생소한 단어. 누가 뭐래도 저 단어는 실제 중세 시대에서나 쓰이던 단어다. 적어도 자
신들이 살던 곳에서는 저런 계층은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검이라니. 이 것은 실제로.......

순간 패닉 상태에 빠진 실린을, 다른 일행들을 구한 것은 다른 아닌 어제의 그 아름다운 여성
이었다. 둘 사이에 끼어들며 가볍게 둘을 말린 그녀는 검을 주어 중년 여성에게 돌려주며 입
을 열었다.

“그만해. 실린. 내가 데려온 손님이야.”






그 중년 여성의 이름을 듣는 순간 실린은 순간 움찔하며 놀랐다. 실린이라니? 그럼 저 사람이
나랑 이름이 같다는 건가? 뭐. 세상에 동명이인은 많으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에클레시아 백작이라는 이름이 울겠어. 모험이 그리운 것은 알지만 진정하라고.”

“쳇."

실린(2)은 투덜거리며 검을 회수했다. 그리고 가만히 손을 내밀며 사과했다. 하지만 패닉 상
태에 빠진 실린(1)은 그녀의 손을 잡지도 않은 채 혼란스러워 할 뿐이었다. 실린 에클레시아.
그 것은 자신의 이름. 이 것이 충격의 퍼스트 블릿드였다.

“레이지(2)도 인사하지 그래?”

“아아. 그럴까요? 일단은 실린 먼저 인사를 한 뒤에 하도록 하죠.”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격멸의 세컨드 블릿드. 실린(1)의 연인 = 레이지(1) 와 실린(2)의 남
편 (으로 추정) = 레이지(2) 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가운데 그 자리에 서 있던 일행들은 모두
패닉 상태에 빠져버렸다. 뭐지? 그럼 저 둘은? 설마 카루나와 제바스티안? 아니면 아젠과 토렌디?

“후우. 왜 그런지 몰라도 모두 정신이 없나보군. 난 로드 실린 에클레시아. 이 곳 에클레시
아 백작령의 주인이지. 마리아의 친구라면 내 친구기도 하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 행동해. 아
까는 미안했어.”

중년의 실린(2)의 인사.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레이지(2)의 인사.

“전 마스터 시프 레이지 에클레시아 라고 합니다. 에클레시아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왔죠.
이 곳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일행은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며 그 둘에게 인사를 했다. 실린과 레이지의 이름이 거론될 때
그 쪽 역시 놀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곧 평정심을 회복한 그 둘은 웃으며 안쪽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저택 안으로 들어가면서 일행을 이 곳으로 데려온 여성이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어제 그만 여러분의 대화를 엿듣고 말았습니다. 그 때 알게 되었죠. 저희 일행
들과 이름이 같다는 것을.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구나.‘ 그래서 놀라게 해 드릴려고 말을
안 드렸습니다. 저는 로드 위저드 마리아 렌 크레이시니아 라고 합니다.”

“저는 위저드 유리안입니다. 여기 있는 마리아의 남편이죠.”

그 옆에 서 있는 푸른 머리칼의 남성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소개를 한 뒤에 앞에
서 막 문을 열던 실린(2)를 불렀다.

“다른 사람들은 왔나요?”

“아. 이미 왔지. 너희가 제일 늦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일행을 안으로 안내했다. 길고 긴 복도를 지나 도착한 곳은 식당으
로 보이는 공간. 커다란 테이블이 가운데 있고, 수많은 의자들이 죽 늘어져 있었다. 벽난
로 안에는 따뜻한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고, 하녀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테이블에 몇 사람이 앉아있다가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아. 이제야 온 겁니까?”

“네. 페이트씨. 오랜만이네요.”

무언가 무협지에서나 어울릴 듯한 특이한 복장을 입은 사내는 일행을 보더니 가볍게 주먹을
감싸 쥐며 인사했다. 정말 말 그대로 무협지에서 보는 듯한 자세. 포권이라고 하던가? 그 자
세를 취하며 그는 자신의 소개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마스터 페이트 라디언트 라고합니다. 이 곳에 오신 손님이신가 보죠? 음보
나마나 음식 먹느라 인사 안할 이 어퍼 성직자씨는 세리나라고 합니다. 10년이 지나도 인사
안 할 것 같으니 제가 대신 하도록 하죠.”

“포박.”

“!”

순간 페이트의 몸이 뻣뻣이 굳으며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몸이 굳은 그. 마치 전신의 근육이 경직되어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고 일행이 공포
에 질려 아무 말도 못하는 사이.

날아들었다. 말살의 라스트 블릿드가.

“드워프 마스터 아젠이다. 뭐. 앞으로 볼 일이 몇 번이나 있을........”

“꺄아아악!”

왜 하필 자신이 저런 땅딸보 할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지니고 있는지. 순간 신을 원망하며 아젠
은 무의식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 라는 꿈을 꿨는데 뭐라고 보세요?”

일행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아젠은 어제 밤 꾼 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뜨거운 온천
속에 몸을 담근 채 실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언지 몰라도. 분명 뼈가 있는 꿈이군.”

그녀의 말에 에바 역시 동의하며 뜨거운 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맞아. 분명히 무언가 의미 있는 꿈이야.”

“그럴라나?”

깊어가는 의문 속에서 일행의 두 번째 밤은 저물어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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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훈 : 동명 이인이 너무 많다는데 무언가 느껴지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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