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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막간 - 메로메로 마고 (10)






이름도 모르는 그녀를 따라서 간 곳은 학교 식당가 내의 작은 카페.
흔히 교내 커플들이 방과후에 들리고는 한다는 곳인데, 오늘은 왠일인지 사람이 적었다.

싸구려 커피를 한잔씩 시키고 가만히 앉아 있자니, 그녀는 나를 유심히 관찰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흐음..."

"아, 저... 저기, 이왕이면 무슨 용건인지 말해 주지 않으실래요? 약속이 있어서..."

"... 약속? 마고 선배랑요?"

"네, 아, 그 뭐랄까. 특별한 뜻은 아니구요."

내 대답에 그녀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마고 선배랑 사귀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 에에?"

여자의 감은 무섭다? 그렇게 생각해야 하나?
마고의 후배는 눈에 띄게 당황한 나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아, 그게. 마고 선배가 그렇게까지 가까이 사람을 들이는 걸 본적이 없거든요."

"... 으어."

뭐라고 해야 하지? 마고, 남들이 눈치 챘을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안 말했잖아. 도대체 이 상황에서 뭐라고 해야 한다?

"저, 저기. 눈치 채신 것 같으니까... 비밀로 해 주세요."

"에? 왜요?"

"마고가... 그렇게 바라고 있으니까요."

내 대답을 들은 그녀의 눈매가 갑작스레 매서워진다.
눈에 진심이 담겨있다는 건, 저런 걸 보고 말하는 거겠지

"당신, 마고 선배한테 진심이군요?"

"네."

왠지 그것만은, 아무런 주저 없이 내 입에서 나온다.
마고의 후배는 조용히 한숨을 쉬더니, 먼저 나온 물컵에 손을 댄다.

"후우... 비밀로 하는 이유는, 태려 선배 때문이죠?"

"어? 어떻게...?"

"모를리가요,  유명한 걸요. 두 사람의 관계."

내가 모르는 부분이다.
마고의 비밀, 내가 접근하지 못했던 진실, 과연 그건 뭐란 말인가.

"두 사람, 레즈비언이에요."

"... 에?"

"한 마디로, 서로 사랑하고 있다구요. 동성 연애라 더럽다느니 그런 나쁜 의미가 아니라, 정말 사랑하고 있다구요."

뭔가 차가운게 핏줄을 타고 흐른다.

"그... 하지만."

"소문이 곤란했을 테니까요. 그런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니까. 마고 선배도 눈속임 할 게 필요 했을 거에요."

아니다. 그건...

"알았어요? 당신이 진심인게, 보기 안쓰러워서 그래요. 마고 선배가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당신처럼 평범한 남자아이라는게 말이 되요? 당신이 마고 선배를 사랑하는 감정이, 그 감정이 당신을 상처입힐 것 같아서. 충고하러 온 거에요."

커피가 나왔다.

하지만 커피의 향이 느껴지지 않는다. 앞에서 분명 김을 올리는 따듯한 커피가 있지만, 난 그게 뭔지도 인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키스도... 하고..."

"마고 선배, 그렇게 보여도 거짓말로 사랑할 사람은 아니니까요. 분명 대용이라고 해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을 거에요. 당신도 그렇게 믿어 줄 것 같아요."

그 감정이 진심이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하지만...

"아직 안 믿기겠지만... 잘 되새겨 봐요."

"... 뭐를...?"

"마고 선배가 당신을 좋아할 이유가 있었어요? 어느날 갑자기 당신에게 접근해서 그렇게 된 거 아니에요? 평소에는 얼굴도 못보던 어려운 선배가 당신에게 갑자기 접근했던 거죠?"

먀고 팡~☆

갑자기 마음 속에 마고가 뛰어 들어온 것 처럼, 가슴이 울렸다.

'남자는 야한 것을 좋아한다. 남자는 귀여운 것을 좋아한다.'

그건 태려가 해 준 이야기라고 했던가.

그러고보니 마고가 내게 야하게 보여야 할 이유, 귀엽게 보여야 할 이유. 그 어떤 것도 듣지 못했다. 그 이전의 이야기는 어느 새 빠져있다.
눈 앞에서 귀엽게 살랑거리는 마고를 보면서, 그런 생각은, 의심은 단 한줄기도 내 마음에 없었던 것이다.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치 내 가슴 속을 완전히 꿰뚫는 것 같은 한마디, 나는 커피잔의 수면을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반격하고 싶다, 뭐라고 한 마디 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몰랐던 사실들이 너무 많았고, 아직도 너무 많아서 한 마디도 하지 못하겠다. 

그런 내 모습을 어떻게 봤는지, 마고의 후배는 조용히 한숨을 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값은 제가 낼게요."

"... 낼 필요 없어."

갑작스레 번개가 치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며, 새하얀 전광이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앉은 의자와 테이블이 우우웅 거리며 밀려나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천지가 진동하고 있었다.

놀라서 뒤돌아 봤을 때, 나는 완전히 검은 암흑과 마주했다.

"마고!"

그것은, 마치 세상의 멸망이 현신한 것 같은 모습을 한 것은, 너무나도 차가운 표정의 마고였다.
빛이 얼어붙어서 빨려 들어가버리는 것 같다. 저 조그마한 여자아이의 몸은, 존재 자체로 주변의 모든 것들을 완전히 짓누르고 있었다.

"너, 상당히 큰 실수를 했어."

마고의 후배는, 처음에 내 뻗어왔던 전광에 당해 완전히 전투력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도망갈 생각도 못하고, 완전히 겁에 질려서 카페 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공황에 물든 눈, 하얗게 질린 입술.

마고의 손에, 새카만 영기가 모여든다.

"... 용서 못 해."

마고가 빙그레 미소짓는다.
그것은 어떠한 빛으로도 가릴 수 없는 절대적인 악의, 새삼 마고라는 여자아이가 얼마나 강대한 존재인지 깨닫는다.
도대체 어떤 힘을 가지면, 마고에게 대적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누가, 이 강대한 어둠 앞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마고의 손에서 휘몰아치는 검은 영기는 척 봐도 '죽음'을 의미하고 있다.
손이 휘둘러지고, 그 강대한 힘이 구현되려 하는 순간, 나는 그녀를 막아서고 말았다.

마고의 당황한 표정을 보며, 나는 힘껏 외쳤다.

"뭘 용서할 수 없는데?!"

내 옆으로, 엄청나게 강력한 기운이 뻗어나간다.
다행히 마고가 자신의 기운을 컨트롤해 준 모양이었다.

"... 아..."

마고의 몸 주변에 내뻗어가던 검은 영기가 조금씩 사라져 간다.

"왜 막아서는 거야?! 거짓말쟁이는 죽어야 해!"

"거짓말이면 왜 이렇게 흥분하는거야!"

마고는 그 순간, 정지한다.
검은 영기는 산산히 시들어 버리듯 마고의 몸 속으로 누그러들어 버렸다.

"... 아... 으..."

마고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사실이 아니어도 괜찮아. 네가 날 사랑했다는 말도. 거짓말이어도 괜찮아! 하지만, 지금 이 사람을 죽여버리면 진실은 어떻게 되는 건데? 네가 아무리 설명한다고 해도 이 사실은 남아서 네 말을 부정할거야. 그래도 괜찮아?"

"... 싫어..."

"화가 나는 거 알아. 나도 무척 화가 났으니까. 내 진심을 부정 당했으니까. 내 진심이 하찮은 것이라고 말하는게 싫었으니까. 하지만 꾹 참았어, 왜 그랬을 것 같아?"

마고는 곧 울어버릴 것 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다.

"다른 사람 말 백 마디 보다 사랑한다는 네 한 마디가 더 중요해!"

나는 마고에게 걸어간다.

"만약 그게 거짓말이었다고 해도! 내 마음은! 내 감정은! 거짓말이 아니었으니까!"

"거짓말이 아냐!"

마고가 절규한다.

주변의 공기가 쩡쩡 울릴 정도로 엄청난 목소리.

"...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냐..."

마고가 나를 올려다 본다.

"하지만... 맞아. 처음 접근한 이유는... 처음 너 한테 접근한 이유는... 그거니까."

가슴이 찌익하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나, 정말로 태려를 사랑해... 그것도 거짓말이 아냐. 처음엔 네가 단순해 보였어, 쉬울 것 같아서 선택했고, 아침에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갔었어."

마고가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손을 움찔 거린다.

나를 붙잡고 싶어한다. 하지만, 난 그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

"... 아하하... 나 정말 못 됐다. 그치?"

빙그레 웃는다. 마고가 빙그레 웃는다.

그런데, 가슴이 너무 아프다.

마고가 부서진 유리 파편을 집어들더니, 나에게 건냈다.

"나 한테... 뭐든 해도 괜찮아."

받아든 유리 조각이 너무나 차가워서, 떨어트려 버릴 것 같다.
그 유리 조각을 꾸욱하고 쥐어버리는 바람에, 손바닥이 찢어진다. 너무 아프지만, 가슴이 너무 아파서 그 정도 아픔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고는 내 손에서 유리조각을 떼어 놓으려다가, 내 손을 건드리지 못하고 손을 떨군다.

"제발... 나한테 상처 줘. 부탁이야..."

유리조각이 바닥에 떨어진다.

"... 못 해."

왜 인지, 나는 웃고 있다.

마고는 나를 올려다보더니, 몸을 꼼지락 거리며 움직이지 못한다.
그녀는, 나를 안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 거다.
그냥 끌어 안으면, 마음이 다 전해질 것 같아서 답답한 거다.

하지만, 안지 못한다.

"... 그래..."

마고는 몇 걸음 뒤로 도망갔다.

"날 괴롭힐 준비가 되면, 불러줄래?"

"... 마고..."

"정말 뭐든지, 뭐든지 순순히 당해줄게... 나, 강하니까... 그러니까, 괴롭힐 준비가 되면... 불러줘... 부탁해..."

마고가 고개를 떨구고, 뒤로 돌아 달려간다.
나는 그녀를 붙잡지 못하고, 그곳에 멍하게 섰다.

"... 뭐 하는 거에요."

그때, 마고의 후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이런 말 할 자격은 안 되지만... 쫓아가야 해요."

"... 어째서죠? 어차피 지금 만나봐야 괴롭기만 할 거고..."

"지금 안 잡으면, 더 괴로워 질거에요."

나는 멍청하게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제가 실수한 것은... 마고 선배의 마음을 무시한 거에요."

"마고의... 마음?"

마고의 후배는 고개를 끄덕인다.

"마고 선배의... 당신을 향한 마음."

그 순간 나는 뒤돌아 달리고 있었다.

이런 멍청한 바보 자식! 한심한  쓰레기 자식!

왜지? 이유가 그렇게 중요했단 말인가?
마고가 날 사랑하게 된 이유가, 뭐가 됐든. 마고의 마음이  거짓이 아니라는 건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았나?
배부르게 그 이유를 탓하면서 그녀에게 상처를 준 건가?

그리고 정말로 날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마고가 진심이라고,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수백번이나 말하고 있을 때, 나는 뭐라고 대답해 줬지?

난 도대체, 그녀에게 뭐라고 대답해 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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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





-번외1-

후배 : 마고 선배랑 사귀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영웅 : 헉, 그... 그럼 그걸 알고서 저에게 접근한 건가요? 양다리 플레이를 강요당하는 건가... 이래서 여자들의 질투란 무섭 (중얼중얼)

후배 : ... 엄마... 이 병신 진짜 무서워 (ㅠ_ㅠ)


-번외2-

후배 : 당신, 마고 선배에게 진심이군요?

영웅 : 네, 그녀의 빈유는 곧 세상을 지배할 빈유에요.

후배 : 로... 로리콘!

영웅 : 남자가 로리콘인게 뭐가 잘못입니까!? [버럭]

후배 : ... 엄마... (ㅠ_ㅠ)


-번외3-

영웅 : 거짓말이면 왜 그렇게 흥분하는거야!?

마고 : 거짓말! 우소다 우소다!!!

영웅 : [흠칫]


-번외4-

후배 : 제가 실수한 것은... 마고 선배의 마음을 무시한 거에요.

영웅 : 마고의... 마음?

후배 : 네, 설마 이런 얼간이를 좋아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가슴에 그렇게 자신이 없나?

마고 : (어느 새 되돌아왔다.)... 어이, 그 말 흘려듣기 힘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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