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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여우

그 목소리에 답하듯이, 한줄기 바람이 뺨을 스쳐지나갔다.

이윽고 바람은 거대한 돌풍이 되어 마르코의 몸을 휘감았다.


조심스럽게 눈을 뜬 마르코가 본 것은 구름 위를 날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머리카락을 가볍게 흐트러뜨리는 바람을 기분 좋다고 느낀 것은 얼마만일까.


그것은 예감이 확신으로 바뀌었을 때의 감각과도 비슷했다.

마르코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음을 느꼈다.


몸을 통해 전해지는 따뜻한 숨결은, 온기는,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것이었다.

어느새 마르코는 자기보다 연하로 보이는 소녀에게 안겨서 하늘을 날고 있었다.

소녀는 전신에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 무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롭게 바람을 누볐다.

하지만 겉모습보다 놀라운 것은 소녀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방대한 마나의 흐름이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마력의 소용돌이는 그녀가 평범한 인간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했다.


"묻겠다. 네가 나의 서번트인가."


무심코 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억누르며 마르코는 소녀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것은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묻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소녀야말로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줄 가장 첫번째 장기말에 틀림없었다.

소녀는 마르코의 질문에 이보다 더할 수 없는 매력적인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보면 몰라? 이 마스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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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입을 열고 처음으로 던진 한마디는 자신을 소환한 마스터에 대한 욕설이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도 그럴 게 이 마스터 님께서는 방금 전에 마술과는 무관계한 일반인이 타고있던 여객기를 통째로 폭파시켜 버린 것이다. 아니,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그 여객기에는 자신을 소환한 이 남자 말고도 다른 마술사들이 타고 있었다. 아마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성배를 손에 넣기 위해 찾아온 다른 방문자들이겠지. 만약 비행기가 이곳(시오시시오)으로 진입했다면, 그들 중 누가 령주를 받을 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까 여객기를 폭파시킨 건 좋아. 그건 넘어가겠지만! (아니, 사실 전혀 좋지는 않지만)

소녀는 이마에 혈관 마크를 띄운 채 남자를 계속 추궁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화를 내면 화를 낼수록 소녀의 얼굴은 더욱 사랑스러워졌다.


"너 생각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하마터면 죽을 뻔 했잖아. 이 높이에서 바다에 떨어지기라도 해 봐. 즉사라고? 아프다고? 바보야? 죽을 거야?"


남자는 자신에 대한 예상치 못한 반응에 어안이 벙벙해진 것 같았다.

그러나 곧 냉정함을 되찾은 뒤, 소녀의 질문에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널 소환하지 못한 시점에서 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실패도, 죽는 것도 내게 있어선 별반 다르지 않아."

"뭐어──?!"


이번에는 소녀가 어이를 상실할 차례였다.

이 남자는 무모한 계획을 세워서라도 저 섬에서 열리는 이 의식에 참가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혹시 실패한다면 자신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판단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아무런 망설임없이 여객기를 폭파시킬 수 있던 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 성배전쟁은 남자에게 있어서 인생의 전부를 뜻했다.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다면서 소녀는 감정을 추스렸다.


"......뭐, 이번 일은 불문율에 붙이겠어요. 결과적으로 나를 부르는 건 성공했고, 이렇게 무사하니까."

"다행이군. "

"하지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두 번 다시 그런 짓은 허락 못해. 자살원망자랑 같이 싸울 마음은 없으니까."

"네가 하고싶은 말은 알겠다. 하지만 그 가설은 의미가 없어."


어째서? 라고 되묻는 소녀에게 남자는 단언했다.


"나는 내 목적을 성사시키기 전까지는 죽을 수 없어. 그러니까 혹시 내가 죽는다면 그건───"


그건 네가 그 손으로 자신을 죽일 때 뿐이다.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흥. 그렇게 되지 않도록 알아서 내 기분을 살피는 게 좋을 거야."

"아아, 가능한 노력하지. 그래서 나는 널 뭐라고 부르면 될까?"

"그러고보니 자기소개도 아직이었네. 나는 라이더. 적당히 불러도 상관없어. 너는?"

"내 개인명은 마르코다."

"그래. 잘 부탁해,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마르코."

"이상한 별명은 붙이지 마."


그 말에 대답하듯이 소녀───라이더의 움직임은 더욱 박차를 가했다.

바람이 또다시 마르코의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한층 더 흐트러놓는다.


육지가 가깝다.

그들은 머지않아 저곳에서 열리게 될 축제의 가장 마지막 손님이었다.


그 때, 마르코가 손에 차고 있던 손목시계가 딱딱한 기계음을 냈다.

시계는 마르코의 예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듯 오전 5시 4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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