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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az

 태양이 내려앉은 황야의 찬 바람이 몸을 쓸고 지나갈 때마다 지면이 얼어붙는게 아닌가 할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얼어있는 것 같은 달만이 지상을 푸른 빛으로 비추고 있었고 그 주변의 무수한 별들은 하늘에 떠있는 눈송이같았다. 본래 낮이라면 땅의 갈색과 붉은색으로 이루어졌을 황야와 산은 달빛을 받아 북극의 빙산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을 띄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녀석이 있을것으로 생각하는 산의 입구. 그 골짜기에는 달의 빛조차 닿지않아 검은 먹으로 그 부분만 칠한 것 처럼 암흑 말고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블랙홀처럼 그 주변의 모든것을 빨아들이는 것 처럼 보이는 그 골짜기 사이로 한 발 한 발 내딛어갔다.

 칼날바람이 몸을 스치고 지나가고 어둠에 가까워질 때마다 이성보다 생물적인 본능이 어둠을 거부하는것을 느꼈다. 하지만 다시 한 발. 어둠속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마치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듯, 칼로 딱 자른것처럼 나누어진 어둠이 한 쪽 발을 삼켰다. 내딛어진 다리 사이로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먼지가 어둠속으로 들어가는것이 보였다. 다시 한 번 한 발. 나머지 다리가 어둠속으로 삼키어지고 곧이어 허벅지와 몸에 이어 전신이 계곡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2초도 안 되는 이 과정이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차갑고, 끈적한 공기 안에서 그저 묵묵히. 녀석을 찾으러 스스럼없이 몸을 움직여갔다.


- 죽인다.


 소리없는 말. 차를 멀리 두고왔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은 나의 존재를 이미 알고있는듯, 적의가 바람을 역행하고 나를 덮쳐왔다.


"이쯤되면 숨길필요 없겠지."


 그에 답하듯이 나 또한 감추고있던 기척을 드러내고 발걸음에 힘을 주며 나아갔다. 세상과는 완전히 차단된 것 같은 계곡에 있자니 녀석의 둥지 안으로 들어왔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면 계곡의 입구를 통해 넓게 펼쳐진 황야와 지평선이 보였다. 그리고 위를 올려다보면 계곡의 정상 사이로 검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눈꽃들이 펼쳐져있는게 보였다. 나는 다시 고개를 내리고 녀석의 냄새가 나는 곳을향해 걸어갔다. 강한 바람이 불고있지만 숨길수 없는 녀석의 냄새는 나를 점점 더욱 강하게 자극해갔다.


- 죽인다.


 다시 한 번 녀석의 소리없는 경고가 흘러나왔지만 개의치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분명히 진심이겠지. 물론 상대가 누구던지간에 그렇게 할 놈이다. 그렇기때문에 물러설 수 없었다. 이것은 악취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 놈의 존재가 느껴지는 동굴 입구의 벽에 손을 짚고는 잠시 숨을 골랐다. 계곡엔 바람이 세차게 부는데 불구하고 입구가 열려있는 동굴 안은 그 무엇의 미동도 없이 적막함이 감도는것이 보였다.

 벽에서 손을 떼고 검을 검집에서 뽑아냈다. 스르릉-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메아리치며 동굴의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건 녀석에 대한 경고이자 선전포고.


- 죽인다.


 이것은 내가 녀석에게 경고하는 언어. 나도, 녀석도 물러설 이유는 없었다. 검을 뽑고 오로지 어둠에 익숙해진 두 눈동자에 의존하여, 짐승의 입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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